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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교학회-2009.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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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元의 佛性觀과 修證觀
-悉有佛性論을 중심으로 -
최 현 민
Ⅰ. 문제제기
역사적으로 선(禪)은 출가와 독좌명상(獨坐瞑想)이라는 인도의 오랜 요가수행 전통에서 출발했다. 이와 같이 엄격한 출가와 좌선을 문자 그대로 충실하게 배우는 데에서 비롯되었던 선은 실천적인 명상수행이 그 중심이었기 때문에 독자적 사상 체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원시 불교로부터 전수되어온 선수행자들에 의해서 중국에 처음 선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선은 실제로 명상을 중심으로 한 수행이었다. 그러나 소박한 출가불교의 실천으로 전수되어오던 명상중심의 선은 중국에서 선종(禪宗)이라는 하나의 종파가 형성되면서 그 의미가 처음과는 상당히 다른 색채를 띠었다.
중국 초기 선종사를 볼 때 선종은 보리달마(菩提達摩)에서 시작되어 새로운 실천불교의 정신을 계승한 수행자(楞伽師)들이 시대의 흐름과 함께 최초로 하나의 정비된 수행집단을 형성하면서 비롯된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종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보리달마에서 시작되어 도신(道信), 홍인(弘忍)의 동산법문(東山法門)에 이르는 초기선종에서는 불성사상을 전제로 하면서도 마음을 관(觀)하는 관심사상(觀心思想)이 중심이 된 수행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8세기말에 가서 중국선종은 하나의 혁명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택신회(荷澤神會, 684-758)를 중심으로 한 남종선(南宗禪)의 혁명이다. 신회는 당대 북종선(北宗禪)과의 법통 논쟁과정에서 ‘돈오(頓悟)’를 새로운 선의 기치로 내세웠는데, 신회 이후 중국 선종은 바로 이 돈오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갔다. 그렇다면 돈오사상을 주축으로 하여 그 이전과 이후의 선은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를 보여왔고 그러한 변천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상좌불교(上座佛敎)에서는 생사를 극복해야만 열반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열반을 얻기 위해서는 생사를 극복하기 위한 계정혜(戒定慧)의 삼학(三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선정(禪定) 역시 계정혜의 삼학이므로 상좌불교에서는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보았다. 이와 같이 상좌불교에서는 계정혜 삼학을 통한 존재의 변화를 통해 열반을 증득하고자 했다면, 대승불교 특히 중국선종에서는 생사가 곧 열반임을 중시하고 있다.
이는 대승불교에 와서 ‘존재의 변화’보다 ‘인식의 변화’를 더욱 중시해 왔음을 의미한다. 인식의 변화로서의 깨달음을 중시해 온 중국선종사상은 ‘생사즉열반’이라는 대승교의를 기본전제로 하고 있다. 생사즉열반이라는 대승교의는 상좌불교처럼 생사의 세계에서 벗어나 열반에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의 세계에 즉하여 열반을 증득하고자 함을 말한다. 이는 생사세계가 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데 중점을 둠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승불교에서는 생사의 세계 속의 번뇌망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번뇌망상에 덮여 살아가는 중생은 본래 모습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무엇보다 중시해 온 것이다.
여기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의 교의가 나왔고, 더 나아가 이것은 바로 ‘내가 본래 부처’라는 믿음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지눌(知訥, 1158-1218)은 이 믿음을 조문(祖門)의 믿음이라 하여 이를 교문(敎門)의 믿음과 구별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질문: 조문(祖門)의 믿음과 교문(敎門)의 믿음이 어떻게 다른가?
대답: 교문(敎門)에서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인과를 믿으라고 한다. .....부 처가 되는 결과를 추구하는 이들은, 긴 세월동안 육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원인이 되고 깨침의 지혜(菩提)와 열반은 그에 따라 얻게 되는 결과라고 믿는다. 한편, 조 문(祖門)에서 올바른 믿음이라 하는 것은 이와는 다르다. 거기에서는 일체 유위(有 爲)의 인과를 믿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본래부처이고 누구나 다 自性을 지니고 있으며 열반이라는 묘한 체(體)를 각자 이미 다 완전하게 제 몸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디 밖에서 구할 게 아니라 원래 스스로 다 갖추고 있다는 것만을 믿으라고 한다.
‘내가 본래 부처’라는 조문(祖門)의 믿음은 중국선종사상의 기반이 되어왔다. 즉 중국선종은 이 믿음에 근거하여 이 믿음을 가짐이 곧 깨침(證)이요, 닦음(修)이라는 주장을 해온 것이다. 신회가 주장하는 돈오사상 역시 이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회는 북종의 좌선방편과 간심간정주의(看心看淨主義)의 선법(禪法)을 점교(漸敎)라고 비판해 온 것이다. 즉 조문의 믿음에 대한 불퇴신(不退信)을 지님으로써 자신이 본래부처임을 자각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북종선처럼 닦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신회 이후로 사람들은 돈오에 관심을 집중하게 됨으로써 좌선 수행 자체는 깨닫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좌선을 다만 깨침의 수단에 국한시켜 보았다는 점을 넘어서 수행론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신회사상의 근저에 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신회사상의 근저가 된 생사즉열반, 중생즉불사상, 자성청정심 등의 대승교의 자체 안에 수행의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내포되어 있는 점이다. 그것은 “생사가 곧 열반이고 중생이 곧 부처이며 우리의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는 대승교의 안에서 수행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대승교의에 비추어 볼 때 “내가 본래 부처라면 수행은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 물음은 “인간이 본래 부처라면 이미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순수하고 완전한 데 왜 수행이 필요한가”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중국선종의 돈오사상과 관련하여 대승교의 안에는 인간 실존과 관련하여 지적이고 도덕적이며 종교적 수행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잠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중국선종의 수증관이 지닌 문제는 불성관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중국선종의 수증관이 대승불교의 불성관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 도겐 기겐(道元希玄, 1200-1253)의 수증관을 그의 불성론과의 연관성 속에서 보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도겐은 과연 이런 대승교의 안에서 어떤 수증관을 펼쳤는가? 도겐의 불성론과 수증관의 관계를 고찰하기 전에 그의 수증관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Ⅱ. 도겐의 수증관의 사상사적 배경
1. 중국선종의 불성관과 수증관의 관계
불성사상은 인도의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여래장사상에서는 모든 중생은 여래라고 선언하면서 동시에 현재 미혹에 빠져 있으므로 양 측면을 아울러 ‘자성청정심 객진번뇌(自性淸淨心 客塵煩惱, prakŗti-prabhā-svara, prakŗti-viśuddhi āgantuka-kleśa āgantuka-upakleśa)’로 표현한다. 자성청정심은 마음으로 파악되고 있는 청정한 여래장이야말로 중생의 본질이라는 의미이며, 객진번뇌는 번뇌가 비록 현존할지라도 단지 외래적인 것, 우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성청정심을 기본으로 한 여래장사상이 중국으로 건너와 불성사상으로 발전되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불성에 대해서 자성청정심 이외에도 다각도의 해석이 있다. 수대(隋代)의 길장(吉藏 549-623)은 『대승현론(大乘玄論)』에서 이를 종합하여 11家로 정리했다. 길장 자신은 삼론종(三論宗)의 대가였으므로 반야에 근거하여 무아와 공을 강조했으며 불성 또한 중도(中道)로 해석함으로써 중도의 智(般若)에 이르면 모두 성불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상 길장 이후의 불성론은 유가행(瑜伽行) 대승이 발전함에 따라 심식(心識)의 측면으로 편중되어 갔다. 이와 같이 불성을 심식(心識)의 측면에서 해석한다는 것은 아뢰야식의 자성청정심으로 불성을 본다는 의미이다.
자성청정심과 관련된 불성에 대한 해석은 구마라집(鳩摩羅什, 343-413)의 제자인 도생(道生, ?-434)까지 소급해 올라간다. 그는 『열반경』을 번역하여 거기에 나오는 ‘일체중생 실유불성’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일체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열반경』에는 동시에 ‘일천제(一闡提)는 성불할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옴으로써 일체중생이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부분과 상치하는 면을 보이고 있다. 일천제가 성불할 수 없다면 일천제에는 불성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일천제 성불의 문제는 불성론과 관련하여 논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열반경』 전체가 번역되면서 경전 전반부에는 일천제를 제외한 일체중생이 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후반부에는 일천제도 성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와 같이 『열반경』의 전후에 서로 다른 내용이 있는 것은 인도사회 전후의 변화된 상황을 반영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위에서 본 일천제의 성불에 대한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성론은 처음부터 수증의 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장(玄奘, 622-664)의 유식사상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오성각별론(五性各別論)으로 인해 일체중생실유불성론은 한 때 혼란을 겪었다. 오성각별론은 불성이 없는 무성(無性)을 인정하는가 하면, 불성이 있는 경우에도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는 정성보살(定性菩薩), 벽지불(辟支佛)밖에 안 되는 정성연각(定性緣覺), 아라한밖에 될 수 없는 정성성문(定性聲聞)을 세워 불성에 차별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상은 실유불성설에 근거를 둔 중국불교에 큰 혼란을 야기했지만, 화엄교학자인 법장에 와서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에 나오는 교상판석에서 법상유식종(法相唯識宗)을 대승시교(大乘始敎)에 둠으로써 이 문제를 극복하고 전통적인 ‘실유불성 실개성불(悉皆成佛)’을 회복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국 선종에서는 불성과 인심(人心)을 하나로 보는 쪽으로 나아갔고 이를 기반으로 즉심즉불(卽心卽佛), 견성성불사상(見性成佛思想)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남종선 전통의 근저가 되어온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는 중생과 부처의 차이를 단지 자신의 자성(自性)에 대한 깨침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즉 “자성에 미혹하게 되면 부처도 곧 중생이요, 자성을 깨달으면 중생도 곧 부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혹한 중생도 자성을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과 부처가 결코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자성 안에서 완전히 상통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단경』에서는 마음과 性을 실제로는 같으나 명칭만 다르다고 보아, “마음이 곧 性이고 性이 곧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人心을 강조한 『단경』에서는 “일체의 모든 가르침(萬法)은 자기의 마음에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불성을 인심(人心)의 측면에서 보는 이러한 관점은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즉불사상을 발전시켰고, 결국 중국선종의 분위기는 즉심즉불에 대한 자각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같은 즉심즉불사상은 남종선 전통을 중심으로 발전해 가면서 마음이 부처임을 깨닫는 돈오의 측면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불성을 자성으로 본 『단경』의 불성사상은 신회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신회는 이러한 불성론에 기초하여 자성의 공적본성(空寂本性)을 깨닫는 것을 '돈오'라고 규정한 것이다.
근원적인 도리와 지혜로써 파악하는 것이 돈오이니 단계적인 점법(漸〔法〕)으로 말미암지 않고 깨닫는다. 자연인 고로 돈오이며 자심(自心)이 본래부터 공적한 것이 돈오이다. 즉 마음에 머무는 바가 없는 것이 돈오이다. 이미 있는 법을 마음이 깨달으니 마음은 얻는 바가 없는 것이 돈오이다.
이러한 돈오개념은 그의 견성사상과 같은 맥을 이룬다. 신회는 견성의 ‘見’에 대해서, “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見해야) 곧 참된 見”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見은 ‘대상을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대상을 본다고 했을 때 거기에는 보는 주체와 대상인 객체를 상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회가 말하는 見의 의미는 주객이원론적인 봄이 아니라 ‘성품 그 자체를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돈오나 견성이 가능한 것은 중생심에 본래 '知'가 있기 때문이라고 신회는 말한다. 신회의 돈오와 견성사상 안에서 우리는 신회가 주장한 깨달음에서 인식적 차원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인식적 차원의 깨달음을 중시한 신회는 정혜(定慧)의 개념에 대해서도 새로운 견해를 피력했다. 즉 “생각이 일어나지 않아서, 있는 바가 없는 것이 곧 바른 定(正定)이며, 생각이 일어나지 않아 있는 바가 空하여 없음을 볼 수 있는 것을 곧 바른 慧(正慧)”라는 것이다. 신회는 이러한 정혜에 대한 해석에 기반을 두고 『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菩提達摩南宗定是非論)』에서 定으로서의 좌선을 慧의 차원으로 전환하여 ‘염불기 견본성(念不起 見本性)’이라는 정의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念不起)이 坐이고 자기의 본성을 깨닫는 것(見本性)을 禪이다.
염불기 견본성(念不起 見本性)으로 표현되는 신회의 좌선관은 종전에 관심(觀心)을 중심으로 했던 좌선관과는 다른 관점일 수밖에 없다. 이는 신회가 좌선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기 전에 먼저 신수(神秀)의 『관심론(觀心論)』이나 『대승무생방편문(大乘無生方便門)』 등에서 주장하는 북종의 교설에 대해서 다음 네 구절의 격언으로 요약하여 북종의 교설을 점교(漸敎)라고 비난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만일 사람들에게 마음을 집중시켜(凝心) 禪定에 들게 하고, 마음의 움직임을 멈추어(住心) 그 청정함을 看하게 하며, 마음을 일으켜(起心) 밖을 비추고, 마음을 수섭하여(攝心) 안으로 증득케 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깨침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회는 응심(凝心), 주심(住心), 기심(起心), 섭심(攝心)과 같은 북종선의 수행을 오히려 깨달음을 방해한다고 말하면서, 참된 선정은 불용심(不用心), 불간심(不看心), 불간정(不看淨)이라고 정의한다.
질문: 무엇을 대승의 선정이라고 합니까? 대답: 대승의 선정이란 마음을 쓰지 않고(不用心) 마음을 看하지 않고(不看心) 고요함을 看하지 않고(不看 淨) .....일체의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바로 대승의 선정이다.
선정을 불용심(不用心), 불간심(不看心), 불간정(不看淨)으로 본다는 것은 북종선의 수행방법처럼 객진번뇌를 떨쳐버리기 위해서 행하는 좌선 즉 용심(用心), 간심(看心), 간정(看淨)을 위한 좌선을 작위적이고 조작적인 수행으로 보았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신회는 북종선의 좌선관을 비판하고 염불기 견본성(念不起 見本性)이라는 인식론적 깨달음의 차원에서 좌선을 재해석함으로써 종전에 (禪)定의 의미였던 좌선을 慧의 의미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북종선의 선수행에 비판을 가하고 돈오견성사상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승을 제창한 신회는 자신이 주장하는 돈오사상의 합법성을 위해, 이는 자신이 처음 말한 것이 아니라 달마로부터 혜능에 이르는 6대 조사가 모두 설해 온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즉 달마로부터 내려온 돈오선이 혜능에게 전해졌고 신회 자신에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회의 견성사상이나 더 나아가 좌선에 대한 견해는 현재 남아있는 보리달마의 글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밝혀진 달마의 근본사상은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을 중심으로 한 벽관(壁觀)이다. 이는 이입(理入)에 입각한 수행론의 의미가 강하므로 수행의 측면이 중시되지 않는 신회의 사상과 같다고 볼 수 없다.
이와 같이 달마의 사상과는 그 성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신회가 자기 사상의 근거를 달마에까지 소급하여 주장한 것은 자신이 보리달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정법(正法)을 혜능으로부터 전수받은 7조임을 내세우기 위해서였다. 종밀(宗密, 780-841)은 신회의 荷澤宗(하택종)을 선의 정종(正宗)으로 간주하였지만, 그가 입적한 후 하택종은 점차 영향력을 잃어갔다.
신회의 사상은 중국선종사에서 법맥을 계승해 가지 못했으나, 후대 중국선종은 마조선을 중심으로 보다 더 돈오 중심으로 흘러갔고, 돈오와 함께 견성이 중국선종 안에서 깨침을 드러내는 핵심적 표현으로 자리잡아 갔다. 이와같이 조문(祖門)의 믿음을 근저에 둔 돈오사상이 선종의 지배적 사상이 되면서 좌선은 성불의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져, 그 중요성이 간과되어 왔다. 더 나아가 신회 이후로 중국선종에서는 선(dhyāna) 대신 돈오를 강조해 오면서 마치 디야나와 무관한 것같은 인상을 풍기기까지 했다. 돈오를 주장하는 이들은 선을 언급하지 않고도 어떻게 그들이 말하는 깨침의 세계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dhyāna)과 초월적인 돈오수행 간에 일종의 긴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중국선종사상은 도겐의 수증관의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도겐에게 직접적으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가 살았던 일본 가마꾸라시대(鎌倉, 1192-1337)의 천태본각사상(天台本覺思想)이다.
2. 일본 가마꾸라불교(鎌倉佛敎)의 천태본각사상
(1) 일본 가마꾸라불교의 특징
일본은 고대체제―즉 고대국가와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율령(律令)정치―의 붕괴과정이 일어나면서 중세에 접어들게 되었다. 중세의 전기에 해당하는 가마꾸라시대에 일본은 전반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있었다. 이 시기는 정치적 개혁뿐만 아니라 종교의 측면에서도 일본불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때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시기에 새로운 불교인 가마꾸라불교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본은 가마꾸라불교를 통해 중국불교에서 답습해오던 불교형태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독창적인 신앙체제를 열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가마꾸라불교가 발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은 무엇이었는가?
가마꾸라시대에는 가마꾸라막부가 출범하면서 정권의 중심이 교또에서 가마꾸라로 옮겨졌고 정치, 문화, 종교도 귀족 중심에서 무가(武家) 본위로 탈바꿈해 갔다. 특히 불교의 경우 무사중심의 시대가 되면서 귀족불교에서 민중불교로 바뀌었다. 즉 무사를 중심으로 한 민중세력의 상승이 귀족불교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민중신앙을 낳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중신앙이 싹트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당시 일본은 귀족 간의 투쟁, 무사들과의 전쟁 등 만성적 전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의 격렬한 변동과 심각한 위기적 상황도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이와 같이 정권교체와 세력다툼으로 전란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설상가상으로 엄청난 재해까지 덮치게 되었다. 이러한 당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종전과 같은 현세기복적 차원의 불교로는 해결될 수 없는 근본적 물음과 말법의식을 갖게 되었고, 이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신앙을 추구했다.
말법시대적 상황에 처한 헤이안(平安) 말기에 사람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한 것은 세간적 안전보다는 초세간적 구제였고, 국가와 집단의 종교가 아니라 개인적 신앙이었으며 옛 종교의 안이한 시각을 떠나 세계와 인간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종교였다. 이러한 사람들의 갈망이 바로 가마꾸라시대에 혁신적 종교운동이 발생하게 된 요인이 된 것이다.
불교는 본래 초세속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불교가 원래 지녔던 종교적 가치가 제자리를 잡아가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자각은 불가피했다. 사실 가마꾸라불교 주창자들-신란(親鸞), 도겐(道元), 니치렌(日蓮)-이 제창한 불교 형태는 민중의 종교적 요구를 채워주고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적은 아니었다. 신불교의 출현은 당시 불교에 문제의식을 지녔던 이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의문을 해결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출발하여 각자 나름대로 깊은 자각을 얻은 후 민중구제 활동으로 나온 것이다.
신불교가 종전의 불교와 달리 초세속주의적 분위기를 지닐 수 있었던 것도 그에 대한 신불교 종조들의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불교는 이들에 의해 비로소 세속과 대치하는 절대적 신앙세계를 구축하고 불교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갔다고 볼 수 있다. 가마꾸라 시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일본불교는 인간존재의 근본적인 절대모순을 자각하고 신앙에 눈뜨게 되었다는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의 표현도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가마꾸라불교 창시자들은 절대적 신앙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지만 이와 동시에 당시 민중들의 구원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역시 그들의 과제였다. 민중들의 요구와 그들 자신의 신앙을 결합시킨 것이 바로 그들이 주장한 선택전수사상(選擇專修思想)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깨달음이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선택전수사상을 주장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가마꾸라불교 창시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만을 가장 높은 달마로 보고 그 외의 것은 포기하는 선택전수사상을 펼침으로써, 강한 종파적 성향을 드러냈다. 전수사상은 간단하고 쉬운 신앙형태를 지녔기 때문에 민중들 속으로 급속히 확산되어 갔고 이로써 당시 불교는 귀족불교에서 민중불교로 탈바꿈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도겐 역시 그들과 같은 말법시대에 걸맞은 전수사상으로 좌선을 택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도겐은 다른 가마꾸라불교 창시자들처럼 말법관에 의거한 사상을 전개하지 않았다. 이러한 도겐의 관점에 대해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는 도겐이 일본의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현실을 무시한 채 중국선종만을 답습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도겐은 말법시대적 상황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삼시(三時)를 보는 관점이 다른 신불교 창시자들과 달랐던 것이다. 도겐 역시 자신의 저술 곳곳에서 당시 말법악세(末法惡世)에 진실한 불법이 사라졌음을 개탄했고, 다른 종조와 유사한 시대적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도겐은 삼시를 역사적 전개라고 보기보다 인간 각자의 마음에 달렸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삼시는 역사의 어느 특정시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서나 일어나고 있으므로 어느 시대에서도 삼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있다고 도겐은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도겐은 당시 일본의 말법시대에 맞는 불법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넘어서 붓다로부터 전해 내려온 불법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다. 이와 같이 도겐은 시대적 문제의식을 해결하는 방안을 정전불법에서 찾고자 했다는 점에서 다른 신불교 창시자들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도겐이 신불교 창시자들과 삼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의 비판은 일면에 치우친 점이 있다.
가마꾸라불교 창시자들은 모두 천태종의 본산지인 히에이산 출신으로 천태본각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이 주장한 선택전수사상 역시 천태본각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도겐 역시 히에이산 출신으로 천태본각사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럼 가마꾸라불교의 사상적 근거가 됨과 동시에 도겐의 문제의식이기도 한 천태본각사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2) 천태본각사상의 발생 근거
천태본각사상의 발생근거는 중국의 본각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각이란 말이 처음 설해진 것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다. 『기신론』은 화엄종을 비롯한 중국불교의 여러 종파에 영향을 미친 논서이므로 중국불교 내에서 두루 써졌을 뿐 아니라, 거기에 나오는 본각사상은 『기신론』 이래 발전한 중국불교 전체와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천태본각사상을 해명하기 위해서 『기신론』에서 나온 본각사상부터 고찰할 필요가 있다. 『기신론』에서는 본각을 망념을 완전히 벗어버린 순일한 진여(眞如)의 모습 즉 법신(法身)으로 설명한다.
깨달음(覺)이란 마음의 본체가 망념(念)에서 벗어난 것을 일컫는다. 망념을 떠났다는 것은 허공과 같이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법계의 순일(純一)한 모습이다. 즉 이것은 여래의 평등한 법신이다. 이 법신에 의지하여 본각이라고 이름하여 말한다.
『기신론』은 여래가 번뇌에 의해 감추어진 중생심을 중시하므로 심진여문(心眞如門)보다 여래장을 중심으로 한 심생멸문(心生滅門)이 그 핵심을 이룬다. 심생멸문에서는 근본무명을 소멸하고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 타파되어 불각(不覺)이 사라지고 본각을 회복하는 것을 시각(始覺)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시각을 이룸에 있어 본각은 중생이 불각(不覺)을 물리치고 각(覺)에로 나아가는데 하나의 근거로 제공된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본각이 없다면 어떤 선연(善緣)을 만나더라도 궁극적인 깨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깨침의 근거로서 본각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에 선연(善緣)을 만나 시각(始覺)에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기신론』에서 본각은 시각적 수증관을 위해 상정된 것에 불과하다.
『기신론』의 본각이 지닌 내재적 원리는 중국화엄교학에 와서 크게 부각되어 진여(眞如), 일심(一心) 또는 여래장(自性淸淨心)과 결부해서 논의되어 왔다. 본각사상 연구의 대가인 타무라 호우로(田村芳朗)는 『본각사상론』에서 “본각사상은 중국의 화엄3조인 현수법장(賢首法藏, 643-712)이 『화엄경』과 『기신론』을 병용하여 화엄철학을 확립한 데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다. 법장은 『기신론』의 주석서인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를 저술했는데, 거기서 그는 본각을 중심으로 한 ‘여래장연기(如來藏緣起)’를 말하고 있다. 이는 달리 진여수연(眞如隨緣)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진여와 만법(萬法)이 상호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법장은 『화엄경』과 『기신론』에서 강조한 일심(一心)을 진여로 보고 진여가 현실의 제법(諸法)이 되어 전개한 진여수연을 논한 것이다. 법장의 진여(本覺) 개념은 종밀에 와서 진성(眞性)이나 진심(眞心)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본각진성(本覺眞性), 본각진심(本覺眞心)이라 불리게 되었다. 종밀은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의 전반부에서 “근원은 일체중생 본각진성이다. 이를 불성이라 하며 심지(心地)”라고 해서 일체중생에게 본각진성이 있다고 말한다. 한편 『도서』의 후반부에서는 이를 ‘본각진심’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종밀은 본각진성이니 본각진심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본각을 상주불변하는 실재로 보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종밀이 이러한 본각사상을 갖는 데에는 『원각경(圓覺經)』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원각경』에 보면 “일체중생의 갖가지 환화(幻化)가 모두 여래의 원각묘심(圓覺妙心)에서 생겨남은 마치 허공꽃이 허공에서 생긴 것과 같다. 환화는 멸할지라도 허공의 본성은 멸하지 않나니, 중생의 미혹한 마음도 미혹에 의해 사라지나 모든 미혹이 다 사라졌다 할지라도 본각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느니라”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원각묘심은 앞서 말한 본각진심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기신론』의 진여사상이나 『원각경』의 원각묘심사상과 관련하여 본각은 본래부터 상주불멸하는 실재로 해석될 여지를 지니고 있다. 진여라든가, 본각진심 혹은 원각 등을 상주불변하는 실재로 본 본각에 대한 해석이 바로 일본 천태본각사상의 근거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천태본각사상은 중국불교의 본각사상에 기반을 두었지만, 그 외에도 다른 사상들―천태, 화엄, 밀교사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양자를 전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럼 천태본각사상의 형성과정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3) 천태본각사상의 형성과정
천태본각사상은 『기신론』의 본각을 확대 해석하여 “생멸․변화하는 현상계야말로 본래 진실한 깨침의 세계”라고 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다종다양한 사상(事相)이 생기․변화하는 현실의 모습 그대로를 영원․보편적인 진리의 생성․약동하는 모습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천태본각사상의 시원은 진언종(眞言宗)의 창시자인 쿠우카이(空海, 774-835)의 본각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쿠우카이는 현세에서도 여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즉신성불사상(卽身成佛思想)에 입각하여 진언밀교사상을 펼쳤다.
쿠우카이는 그의 주요 저술인 『즉신성불의(卽身成佛義)』에서 밀교의 실천방법론인 육대체대설(六大體大說)과 삼밀유가설(三密瑜伽說)을 중심으로 즉신성불설(卽身成佛說)을 설했다. 육대체대설은 일체제법을 구성하는 요소인 육대(六大) 즉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오대(五大)와 식(識)의 육대(六大)가 상호 간에 相卽相入(상즉상입) 관계가 있다는 설이다. 쿠우카이는 일체제법을 하나의 전체로 보는 육대법계설(六大法界說)을 통해 중생이 곧 부처라는 불범일체(佛凡一體)라는 일체관을 세운 것이다.
또한 삼밀유가설(三密瑜伽說)은 인격신적 존재인 대일여래(大日如來)를 중심으로 여래의 신구의(身口意) 활동인 신밀(身密), 구밀(口密), 의밀(意密)의 삼밀(三密)로 번뇌에 빠져있는 중생의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의 삼업(三業)을 정화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즉 손으로는 인계(印契)를 맺고, 입으로는 본존(本尊)의 진언(眞言)을 외우고, 의(意)로는 중생과 부처가 본래 일체임을 관함으로써 부처의 삼밀(三密)이 범부의 삼업(三業)에 영향을 주어 중생성불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여래의 신구의(身口意) 3밀(密)을 매개로 하여 부처의 대비(大悲)가 중생의 신심에 나타나고(加) 중생의 신심이 이러한 부처의 대비(大悲)를 느껴 체득하는(持) 가지(加持)에 의해 가능해짐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신구의(身口意)의 삼밀행(三密行)을 통한 즉신성불설을 주장한 쿠우카이는 이를 본각의 상주설과 결부시켜 설명하고자 했다.
쿠우카이는 밀교사상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기신론』을 응용 해석한 『석마가연론(釋摩訶衍論)』을 활용했다. 그 과정에서 쿠우카이는 『석마가연론』에서 말하는 불이마가연법(不二摩訶衍法)의 불이(不二)를 강조한 부분을 밀교에 적용시켰다. 즉 쿠우카이는 밀교의 즉신성불사상(卽身成佛思想)을 체계화함에 있어 본래 부처와 현세적 범부가 둘이 아니라는 불범불이(佛凡不二)를 강조한 것이다. 이와 같이 밀교와 본각사상을 융합한 쿠우카이는 본각진여가 범부중생 안에 있는 리(理)가 아니라, 중생의 모습 그 자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생멸 변화하는 현상계가 곧 본래 진실한 깨침의 세계라는 천태본각사상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
이와 같이 본각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 그 자체가 둘이 아니라는 쿠우카이의 해석은 그 후 히에이산 천태종으로 이입되어 천태종의 밀교인 태밀사상(台密思想)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사이쵸(最澄, 766-822)가 즉신성불의 구체적 실천방법을 제시한 진언밀교를 중시하여 이를 천태법화사상과 융합하고자 함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즉 사이쵸는 수행자의 몸과 언어, 마음을 붓다의 몸과 언어, 마음과 동일시해서 보는 진언밀교의 삼밀(三密) 수행을 빌려와서 이를 통해 중생과 붓다를 동일시함으로써 깨침의 세계에 들어가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사이쵸의 뒤를 이은 겐닌(圓仁), 겐찐(圓珍)에게 와서 현열밀승(顯劣密勝)라는 식으로 밀교를 강조하기에 이르렀고 5조인 안젠(安然, 841?)에 와서 태밀사상이 집대성되어 히에이산 진언종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쿠우카이, 사이쵸로 인해 형성된 천태본각사상은 ‘중생심이 곧 본각진여’라는 것을 현실에 적용시켜 일상의 모든 소작, 욕망까지도 부처의 산 자태라고 긍정하는 철저한 현실긍정의 세계관을 펼쳐가게 되었다. 다시 말해 천태본각사상은 중생즉불이라는 상즉(相卽) 논리의 극치로 나아가게 됨으로써 속세, 속사, 번뇌 등 현실의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앞서 우리는 가마꾸라불교 창시자들의 선택전수사상과 천태본각사상이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언급했다. 이는 선택전수사상이 천태본각사상이 지닌 현재적 구원론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특히 신란의 아미타불신앙이나 니치렌의 법화창제에서 잘 드러난다. 신란은 인간의 자력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함께 아미타불의 본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바탕을 둠으로써 아미타불로부터 회향된 신심에 대한 신앙으로 나아갔다. 그는 왕생사상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했는데 그것은 아미타불로부터 신심을 부여받을 때 이미 왕생이 확고하게 결정된다―이를 정정취불퇴위(正定聚不退位)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란은 신심의 확정과 함께 현세적 구원이 주어진다고 봄으로써, 전통적 정토신앙이 지닌 미래지향적 구원론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러한 신란의 현세적 왕생사상은 천태본각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니치렌은 『법화경』 제목 안에 석존의 지혜와 능력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으므로 법화창제를 하면 부처의 공덕의 종자가 중생에게 심어져 현세 안에서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화창제를 통해 현세성불의 가능성을 주장한 니치렌의 사상 역시 천태본각사상과 관련이 있다. 빌레펠트는 이들과 같은 맥락에서 도겐 역시 천태본각사상의 영향을 받아 ‘지관타좌(只管打坐)’를 주장했다고 해석한다. 도겐이 강조해온 좌선이 빌레펠트가 말한 것처럼 천태본각사상에 대한 독법인지의 여부와 관련하여, 도겐이 지닌 문제의식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3. 도겐의 문제의식과 송대 선종사상
(1) 도겐의 문제의식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태본각사상에서는 부처와 범부의 대립을 넘어서서 현실의 범부 그대로를 부처로서 드러낸다고 보았기 때문에 성불뿐만 아니라 성불을 위한 수행 역시 무용하게 되어 버린 결과를 낳게 되었다. 따라서 본각사상을 추진하던 천태 학승들은 ‘현실 그대로의 중생이 곧 부처’라는 경지에 도취된 나머지, 이를 현실에 적용하여 악 그대로가 선, 번뇌 그대로가 보리라는 식으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천태본각사상의 근원지이면서 천태종의 본산지인 히에이산(比叡山)으로 출가한 도겐은 수증의 문제와 관련하여 천태본각사상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느꼈다. 천태본각사상과 관련하여 도겐이 지녔던 문제의식은 『영평고조행상건시기(永平古祖行狀建撕記)』에 수록되어 있다.
“천태종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줄기는 본래본법성(本來本法性) 천연자성신 (天然自性身)이다. 〔그러나〕이 理는 현밀(顯密)의 양종(兩宗)에 머물지 말라. 크게 의심할 바가 있다.”
이와같이 도겐은 천태본각론에서 말한 “본래본법성(本來本法性) 천연자성신(天然自性身)”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본래본법성’은 개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것 즉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하는 性이 바로 법성(法性)임을 말한다. 또 ‘천연자성신’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이 진실한 性을 그대로 발현한 것을 의미한다. 천태본각론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본래부터 법성이고 태어날 때부터 자성(自性)의 몸이라면 수행의 필요성을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천태본각사상이 품고 있는 수행무용론은 가마꾸라불교계에 문제가 되었고 도겐 역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과연 천태본각론에서 말한 것처럼 수행이 무용하다면, 그래서 “여래가 그 자체로 법신 법성이라면 제불은 왜 다시 발심하여 보리(菩提)의 道를 닦는가?”하는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도겐은 현실의 범부 모습 그대로를 본래부처로 해석한 천태본각사상 속에 내재된 수증의 문제에 대해 대의단(大疑團)을 품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중국에는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의 간화선(看話禪)과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의 묵조선(黙照禪)이 성행했다. 그럼 이 두 선사상은 도겐의 수증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 간화선과 묵조선
도겐이 입송(入宋) 했을 당시 중국선종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던 종전과 달리, 문자로부터 선의(禪意)를 추구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문자선이 형성되고 발전되어 갔다. 이와 같이 송대에 들어와 고인의 어구를 문자적으로 연구하여 선의 의미를 추구해 온 문자선이 발전한 것은 수많은 어록과 등록(燈錄)이 편찬되었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환오극근(圜悟克勤, 1063-1138)이 편찬한 『벽암록(碧巖錄)』을 들 수 있다.
문자선은 본래 학인들이 보다 쉽게 공안의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으나, 실제로 문자선의 발전으로 드러난 결과는 지성적 사유와 해석으로 선의 의미를 깨닫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자선의 폐단이 점점 드러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선학(禪學)이 생겨났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굉지의 묵조선과 대혜의 간화선이라 할 수 있다. 굉지는 “도리를 만들지 말지어다. 언사(言詞)에 삐걱거리며 쓸데없는 방(棒)과 어지러이 할(喝)을 하는 것은 모두 업식(業識)이 유전(流轉)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문자선이 언어문자로써 선을 해석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와 같이 문자선을 비판한 굉지는 어떤 수증관을 펼쳤는가? 그것은 굉지의 다음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묵묵히 말을 잊고 밝고 밝게 앞에 나타난다.
확연하되 신령스러워서 본래빛이 스스로 비추며, 고요하되 응하니 대용(大用)이 앞에 나타난다.
여기서 우리는 굉지가 본래부터 누구에게나 구비되어 있는 본각이 그대로 드러남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에게 있어 좌선이 바로 본증(本證)의 현현(顯現)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본증의 현현을 드러내는 좌선이 묵조선법이라 할 때 좌선은 깨침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좌선 그 자체가 깨침의 세계가 된다.
다시 말해 깨치기 위한 좌선이 아니라 깨침의 세계를 드러내는 좌선이라는 의미이다. 묵조선의 수증관에서 말하듯이 더 이상 깨침을 추구하지 않고 다만 좌선 자체를 본증이라고 볼 때 자칫 이는 무사선(無事禪)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무사선은 남종선(南宗禪)의 수증관을 잘못 이해하여 깨달음을 전제하지 않은 채 즉심시 불(卽心是佛)을 왜곡되이 봄으로써 중생의 상태를 그대로 佛로 본 것이다. 그래서 결국 무사선은 미혹한 중생의 행위 그대로를 깨침이라고 보는 병통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묵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승교의의 즉심즉불사상(卽心卽佛思想) 내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즉심즉불사상은 마음이 곧 부처라고 봄으로써 본래 부처성과 중생이라는 현재 모습 간의 간격을 원만하게 해결해 주는 듯 하지만, 그 안에 혼란을 야기시킬 요소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부처와 중생 간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소실될 위험성이다. 그러나 대승교의에서 말한 즉심즉불의 의미는 무분별지(無分別智)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지, 분별지의 입장에서 언급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즉심즉불사상에는 이미 깨달음이 전제되어 있다. 만일 이를 간과해 버리고 미혹한 중생 자체를 부처라고 본다면, 무사선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대혜는 당대의 묵조선 수행자들을 무사선과 같다고 보고, 이를 묵조사선(黙照邪禪)이라고 칭했다. 그는 당시 묵조선이 깨달음에 대한 전제없이 자신의 앉음새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 수행하는 경향을 지녔다고 봄으로써, 묵조선 안에 무사선적 경향이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대혜는 당시 선풍의 보완책으로 중생의 입장에서 깨침에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인 간화선을 제시한 것이다. 즉 대혜가 제창한 간화선은 당대의 무사선과 진헐청료(眞歇淸了, 1088-1151)의 묵조선법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간화선은 공안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문자선과 같지만, 공안을 언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화두를 갖고 평생 참구한다는 점에서 문자선과 다르다. 대혜는 간화선의 화두를 문자선의 화두와 구별하여 활구(活句)라고 말한다. 활구는 이성으로 풀 수 없는 벽에 직면하도록 학인을 인도하며, 다시 질문과 대답 간에 논리상의 관련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유방식을 바꾸고 자신으로 돌아오게 해야 비로소 학인을 깨닫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혜는 무자화두(無字話頭)를 통해 대의단(大疑團)을 갖고 깨달음을 얻는 것을 강조했는데 이는 중생의 입장에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혜가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중생의 입장에서 볼 때 理로서는 “사람마다 모두 본래 본증(本證)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에 미혹해 있는 중생의 입장에서는 시각(始覺)에서의 수증(修證)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혜의 시각적 수증관은 깨침을 목적으로 지향하므로 결국 좌선은 깨달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와 같이 무사선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지닌 묵조선과 깨달음을 지향하는 간화선 안에서 도겐은 어떤 수증관을 갖게 되었는가? 앞서 도겐은 당시 천태본각사상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지녔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간화선과 묵조선 그리고 중국선종의 불성관과 수증관에서 본 중층적 문제가 도겐의 불성관과 수증관의 저변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이상에서 살펴본 문제와 관련하여 도겐은 어떤 불성관과 수증관을 펼치고 있는지 『정법안장』「불성」권의 분석을 통해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Ⅲ. 「불성」권 분석을 통한 도겐의 수증관
1. 불성내재론에 대한 도겐의 새로운 해석
‘불성’이라는 주제는 대승교의의 기본전제와 연결되어 동아시아 불교를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이 되어왔다. 일반적으로 불성의 의미는 붓다의 본성, 깨침 그 자체의 성질, 미완성으로부터 부처가 될만한 성질, 부처가 될 가능성으로 알려져 왔다. ‘불성’에서 ‘性’은 본래 ‘dhātu’를 말하는데 이는 놓인 장소, 기반, 토대라는 의미이며, 교의상으로는 종족, 종성(種姓, gotra), 因(hetu)와 같은 뜻이다. 따라서 불성은 불종(佛種) 혹은 불종성(佛種姓)이라는 부처가 지닌 속성으로 이해해온 것이다. 이같은 본성론적인 불성 이해는 여래장사상과 함께 깊은 뿌리를 내려 중국선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물론 중국불교의 불성 이해가 본성론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도겐 당시 일본불교도 같은 맥락 속에 있었다. 불성을 본성론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성불의 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본래성불이라는 대승적 믿음과 현실적 중생이 지닌 실존 간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불의 문제와 관련된 불성론은 『열반경』에 나오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에 기초를 두고 있다. 종래에는 ‘일체중생실유불성’을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다” 혹은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다”로 해석해 왔다.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되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불성의 해석에서 불성과 여래장을 동일시하는 견해가 생겨났다.
여래장사상은 중생이 안에 부처를 품고 있는 것처럼 중생에게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나 능력, 혹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체중생에 불성이 있다고 보는 불성사상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상적 연계성 안에서 종래에는 불성을 부처가 될 수 있는 힘이나 능력, 가능성으로 해석해 온 것이다. 이같은 사상은 불성이 내재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불성내재론’이라고 불리워진다.
불성내재론는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불성을 하나의 종자로 보고 씨가 자라나듯이 성장하는 가능성으로 보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미 완전한 불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것이 단지 번뇌로 가려져 있을 뿐이므로, 번뇌(무명)에서 벗어나면 그대로 불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성을 부처가 될 가능성으로 보거나, 이미 완성된 상태(본래부처)로 본다는 점에서 해석상의 차이가 있지만, 두 견해 모두 불성을 내재하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럼 도겐은 불성내재론에 대해 어떤 견해를 펼쳤는지 살펴보자.
어떤 부류는 말한다. 불성은 초목의 종자와 같다고. 법우(法雨)가 내려 물기를 머금을 때 눈과 줄기가 자라고 가지와 잎이 나고 과실이 생긴다. 과실에는 또 종자가 생겨난다. 이러한 사고는 범부의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같이 생각한다고 해도 종자와 꽃과 과실 모두 하나 하나가 절대의 진실(赤心)임을 참구해야 한다. 과실 안에 종자가 있고 종자 안에 보이지 않아도 종자로부터 뿌리와 줄기가 생겨나 있다. 모여 있는 것이 아닌데 많은 가지가 나와 큰 나무가 된다. 이것은 종자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고금에 걸쳐서 진실한 것이다. 범부의 견해(가능성으로서의 불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뿌리나 줄기(根莖)와 가지나 잎(枝葉)은 동일하게 살고 동일하게 죽으므로 같은 실유(悉有)의 불성이다.
여기서 우리는 종자가 싹이 트고 자라서 가지, 잎, 꽃, 과실이 되듯이 불성을 부처가 될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는 불성내재론에 대한 도겐의 비판적 견해를 볼 수 있다. 즉 도겐은 종자가 자라서 싹이 트고 뿌리와 줄기와 잎이 생기듯이 수행을 통해 점진적으로 불성을 완성해 나간다고 보는 이해방식을 배격한다. 도겐에게 있어 불성은 훗날 깨닫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다시 말해 불성은 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어가듯이, 씨와 같은 깨달음의 잠재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겐은 불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도겐은 뿌리, 가지, 잎을 하나의 성장과정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를 각각 불성의 현현(顯現)이라고 본다. 이는 “종자와 꽃과 과실은 모두 각각 절대의 진실(赤心)임을 참구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적심(赤心)은 존재의 현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즉 종자와 꽃, 과실은 각각 존재의 현성 그 자체이지 아직 미완성인 가능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뿌리나 줄기(根莖), 가지나 잎(枝葉)은 동일하게 살고 동일하게 죽으므로 같은 실유(悉有)의 불성”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를 통해 도겐은 불성이 어느 시기에 이르러 드러나는 깨달음의 잠재성이 아니라, 지금이 바로 불성이 현현(顯現)하는 때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이 바로 불성이 현현하는 때’라고 할 때 이는 이미 불성이 완성된 상태로 우리 안에 내재한다는 견해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이 도겐이 말한 ‘실유는 불성’이라는 표현을 ‘이미 불성이 현현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게 되면 수행의 필요성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드러난다. 조동종의 비판종학 학자인 마쯔모또 시로오(松本史朗)은 “실유는 불성이다”라는 도겐의 표현을 ‘이미 불성이 현현한다’라는 의미라고 해석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불성현재론(佛性顯在論)이라고 주장했다.
불성현재론은 좌선이 없이도 ‘실유로서의 중생 그 자체가 불성’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즉 좌선 수행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비판종학자들은 이러한 불성현재론적 측면이 75권『정법안장』내에 잠재되어 있으므로 도겐이 이를 인식하고 12권『정법안장』을 기점으로 『정법안장』을 수정하고자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와 같이 좌선 수행과 관련된 수증의 문제를 안고 있는 불성현재론은 불성내재론의 두 번째 해석인 심상상멸론(心常相滅論)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2. 심상상멸론에 대한 도겐의 해석
심상상멸론은 마음 안에 상주불변하는 것이 있다는 사상인데 이에 대해 도겐은 『정법안장』「즉심시 불(卽心是佛)」권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인도에는 외도(外道)가 있으니 선니(先尼)라 부른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영지(靈知)는 환경이나 사물과 달라 역겁(歷劫)에 상주한다. 지금 현재 있는 모든 환경도 영지의 측면에서 보면 진실한 것이 아니다. 본성으로부터 緣하여 생겨나서 실제의 법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모든 실체들〕은 영지와 같이 상주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멸하기 때문이다. 명암에 상관없이 靈知하므로 영지라고 말한다. 또 진아(眞我)라고도 하고 각원(覺元)이라고도 하며 본성이라고도 칭한다.
도겐이 영지사상을 비판한 것은 인도의 선니외도에 대한 비판이지만 이는 동시에 중국선종사상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도겐은 『정법안장』에서 남양혜충(南陽慧忠, ? -775)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남양혜충이 당시 중국에 선니외도적인 견해를 지닌 사람들을 비난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唐의 대증국사(大證國師) 慧忠和尙(혜충화상)이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師; 어디서 오는가?
僧; 남방에서 왔습니다.
師; 남쪽에는 어떤 선지식이 있는가?
僧; 많은 선지식이 있습니다.
師; 어떤 것을 가르치고 있는가?
僧; 그 곳의 선지식들은 당장에서 학인들에게 제시하기를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는 깨닫는다는 뜻이다. 그대들은 이제 모두가 보고 듣고 깨 닫고 아는 성품을 갖추었는데 이 성품은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껌벅 이게 한다. 가고 옴에 활용되어 온 몸에 두루 편재하므로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알고 다리를 끊으면 다리가 안다. 그러므로 정변지(正徧知)라 한 다. 이것을 떠나서는 따로 부처가 없다. 이 몸에는 생멸이 있지만 심성 은 시작이 없는 옛부터 일찍이 생멸한 적이 없다. 몸이 생멸한다 함은 용이 뼈를 바꾼 것 같고 뱀이 껍질을 벗은 것 같으며 사람이 헌 집을 나 서는 것과 같다. 몸은 이렇듯이 무상하나, 性은 변함이 없다(常)”고 하였 습니다. 남방에서 말씀하신 것이 대략 이렇습니다.
師;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선니외도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말하 기를 “나의 이 몸에는 하나의 신비한 성품이 있어 이 성품이 감각을 느 낀다. 그러다가 몸이 무너지면 정신이 떠나는데 마치 집에 불이 나면 주인은 나가는 것 같아서 집은 무상하고 주인은 항상하다”고 한다.
남양혜충은 남쪽 스승들의 가르침을 선니외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면서 당시 남방사람들을 비판했다. 즉 그것은 ‘몸은 생멸하지만 심성은 생멸하지 않고 영원하다’는 남방사람들의 주장이 이원론인 선니외도의 견해와 유사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선니외도는 뱀이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이나 사람이 옛 집을 나와 새로운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무상한 신체와는 달리 상주불변하는 불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심상상멸론에 대한 혜충의 비판에 대해, 그것은 남방종지만이 아니라 당시 중국선사상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연생(何燕生)은 주장한다. 홍주종(洪州宗)의 ‘심성(心性)’이나 하택종(荷澤宗)의 ‘영지’ 모두 상주불변하는 것을 말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남양혜충과 동시대를 살았던 종밀(宗密 780-840)이『도서』에서 홍주종과 하택종을 비교하면서 양자 모두 진심(眞心)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다고 한 점은 하연생의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물론 종밀은 홍주종이 진심의 體 중 변하는 用인 수연용(隨緣用)만 알고 불변의 用인 자성용(自性用)을 모른다고 비판했지만, 양자 간의 차이는 불성론의 차이가 아니라 진심의 用을 보는 관점의 차이에 불과하다. 이렇게 볼 때 남양혜충이 비판한 심상상멸론은 중국선종의 불성론과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겐은 혜충의 심상상멸론 비판을 인용하면서 그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도겐의 심상상멸론 비판은 당시 일본 천태본각사상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중국 본각사상이나 불성사상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불성내재론이나 심상상멸론적 해석에 대해 비판을 가한 도겐은 어떤 관점에서 불성을 이해하고자 했는가?
3. 수증(修證)으로서의 실유불성
도겐의 불성론은 『열반경』에 나오는 ‘일체중생실유불성’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앞서 불성내재론에서 살펴 보았듯이 종래에는 ‘일체중생실유불성’을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다” 혹은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다”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도겐은 ‘실유불성’ 부분을 ‘실유는 불성이다’라는 새로운 독법으로 해석한다. 중국문법에 의하면 도겐의 읽는 방식이 반드시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도겐은 왜 새로운 독해방식을 택하여 종전과 달리 실유불성을 ‘실유는 불성’이라고 해석한 것일까?
이러한 도겐의 해석은 그가 천태본각사상에 대해 지닌 문제의식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그것은 “일체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여래는 상주하고 불변한다(一切衆生悉有佛性 如來常住 有無變異)”는 『열반경』의 표현이 천태본각론에서 말한 “본래본법성 천연자성신”에서 야기된 常으로서의 본각 실재에 대한 의문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도겐은 불성을 모든 중생 안에 실재하는 것으로 보는 측면 즉 ‘常으로서의 불성’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문이 도겐으로 하여금 “불성이 상주불변하며 우리가 본래 부처라면, 굳이 우리에게 수행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불성과 수증의 상관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도겐은 ‘일체중생실유불성’에 대해 “모두(一切)가 중생이고, 모든 것(悉有)이 불성이다”라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이같은 독특한 독법에 담긴 도겐의 의도는 ‘일체중생실유불성’을 중국선종의 육조인 혜능이 남악(南嶽, 677-744)에게 물었던 ‘무엇이 이와 같이 하여 왔는가(是什麽物恁麽來)’와 연관지어 해석하고 있는 점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석가모니불께서는 말씀하신 “일체중생실유불성” 그 종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것이 이와 같이 하여 왔는가’(是什麽物恁麽來)고 말한 것이며 〔불교를 포괄하여 그 근원을 제시한 대설법인〕 전법륜(轉法輪)이다.
여기서 도겐은 『열반경』에서의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는 부처의 말(佛語)과 즉 “어떤 것이 이와 같이 왔느냐(是什麽物恁麽來)?”라는 조사의 말(祖語)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시십마물임마래는 혜능과 남악이 처음 대면했을 때 스승인 혜능이 남악을 향해서 “너는 누구냐? 어떻게 왔느냐?”라고 묻는 일종의 화두이다. 도겐은 왜 ‘일체중생실유불성’을 설명하면서 ‘시십마물임마래’라는 선문답을 서두에 꺼낸 것일까?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는 부처의 말과 ‘시십마물임마래’라는 조사의 말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시십마물임마래는 단순한 객관적 명제이거나 사실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의 주체적 사항을 묻는 말이다. 도겐은 일체중생실유불성을 시십마물임마래로 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