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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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겐 연구

동국대학교 일본불교연구소 학술세미나 발표논문 201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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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10-10-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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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傳佛法인 只管打坐


                        -『正法眼藏』「佛性」권을 중심으로- 

                       

                                                                          최 현 민


1. 문제제기


간화선 수행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불교계에서 묵조선을 언급하면 바로 묵조선을 향한 대혜종고(大慧宗杲)의 비판을 떠올리게 된다. 대혜는 『서장(書狀)』에서 "삿된 무리들이 사대부에게 "마음을 거두고 고요히 앉아서 하는 일마다 상관하지 말고 쉬고 또 쉬어라"고 합니다. ....이처럼 수행한다면 어떻게 外道와 이승(二乘)의 선적(禪寂)이란 단견(斷見) 경계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라 한다. 여기서의 삿된 무리라 함은 무사선을 칭하나 대혜는 묵조선 역시 무사선의 부류로 보아 묵조사선(黙照邪禪)이라고 비판했다. 


    흔히 도겐 기겐(道元希玄, 1200-1253)은 일본 조동종(曹洞宗)의 개조이며 중국 묵조선의 법맥을 이었다고 보기 때문에, 간화선 입장에서는 묵조선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도겐을 보기 쉽다. 과연 도겐의 가르침은 대혜가 비판한 중국 묵조선을 그대로 답습한 것일까? 도겐의 가르침이 묵조선과 다르다면 그의 독창성은 무엇인가? 본 논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도겐과 중국 묵조선과의 연계성을 살피기 위해서는 도겐과 그의 스승인 천동여정(天童如淨, 1163~1228)과의 관계를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양자의 관계에 대해 많은 연구가 나왔다. 양자의 수증관을 비교함에 있어 유념해야 할 것은 비교대상으로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역사비평학적 시각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정의 중국 제자들이 편집한 『천동여정어록(天童如淨語錄)』에서의 여정과 도겐이 여정으로부터 들은 바를 기록했다는 『보경기(寶慶記)』속의 여정, 그리고 도겐이 자신의 저술에서 언급한 여정이 같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가미시마 겐료(鏡島元隆)는 『천동여정어록』과 『보경기』를 비교연구한 결과, 『여정어록』이 전하는 如淨이 삼교일치(三敎一致) 논자인데 반해, 도겐이 전한 여정은 삼교일치 배격론자라는 차이를 밝혀냈다. 또한 양자의 수증관을 비교할 때 초심(初心)의 득도(得道)에 대한 견해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정은 초심득도를 부정한다. 반면 도겐은 “불도에는 수증일등(修證一等)이며 증상(證上)의 修이므로 초심의 변도(弁道)가 곧 본증(本證)의 전체”라고 하여 초심의 득도를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여정과 도겐의 수증관은 수증일등의 면에서는 같으나, 여정은 (수증일등이면서도) 修에서 證으로 향하는 시각적(始覺的) 수증관인데 반해, 도겐은 (수증일등이므로) 證에 즉한 修를 말하고 있다. 이는 양자가 지닌 문제의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여정은 송대의 묵조선과 간화선 간의 수증문제와 그 병폐를 문제삼은 반면, 도겐은 천태본각사상을 문제삼았다. 다시 말해 여정은 당대 묵조선자들이 무사선(無事禪)적인 경향을 띠고 있음을 인식했기에 기본적으로 수증일등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초심자들에게 수행의 실천을 강조하기 위해서 초심득도를 경계한 것이다. 반면, 도겐은 천태본각사상을 문제삼았으므로 보다 철저히 本證 위의 修로서 수행의 의미를 밝힘을 중시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여정어록』과 도겐의 저술 속에 나오는 여정 간의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여기서 우리는 두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도겐이 여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도겐이 자신의 저술 속에서 말하는 如淨像은 그가 만들었을 가능성이다.


도겐과 여정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역사비평학적 방법을 거치지 않은 채 이루어져 왜곡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 중 하나가 도겐의 저술에 나온 여정사상을 핵면 그대로 여정의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빌레펠트의 역사비평학적 연구에 따르면 도겐의 저술 내의 여정사상은 도겐의 수증관이 正傳되어온 불법임을 말하기 위해 자신의 사상을 여정에게 덧씌웠다고 본다.


『정법안장』의 후기(1243년 이후)작품을 보면 여정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다.(『정법안장』 25권에서 36번 나옴). 왜 도겐은 후기에 여정을 강조했을까? 빌레펠트는 그것은 임제종과의 세력적인 갈등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도겐은 당대 일본 임제종의 수증관과 차이를 느낀 와중인 1242년에 중국으로부터『여정어록』을 받았다. 도겐은 『여정어록』의 여정사상과 자신이 배운 여정의 가르침 간에 차이를 느꼈다. 그것은 중국선종의 수증관과 자신의 수증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도겐은 ‘정법안장으로서의 좌선’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후기에 가서 여정과 그의 계보인 동산(洞山)을 강조했고 임제전통에 대해 비판을 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도겐이 여정을 강조한 것은 중국조동종의 법맥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1240년말까지 도겐은 禪의 5家 종파를 강조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가 1243년에 저술한 『정법안장』「불조(佛祖)」에 보면 도겐은 오가종파 개념을 거부하고, 대신 정법(正法)인 좌선이 청원행사(靑原行思)를 거쳐 동산양개(洞山良价)로 전수되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겐은 정전불법으로서의 좌선을 말하기 위해 종래 선종이 지닌 종파적 개념을 초월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읽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위에 텍스트의 역사적 문맥에 대한 철저한 파악과 텍스트의 저자가 의도하는 심리적 지향까지 아는 것을 전제한다. 해석학적 관점에서는 텍스트를 이해할 때 문화적 역사적 문맥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정과 도겐의 관계를 이해함에 있어 이러한 측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자각하게 된다. 도겐은 불교사 안에서 자기 주장의 역사성을 확보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여정의 법맥을 빌려와 석존으로부터 자신에게로 전수되어온 것은 ‘좌선으로서의 정법안장’임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도겐과 중국 묵조선과의 연계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도겐이 전수하고자 한 정전불법에 대한 궁금증이 한층 더해질 수 밖에 없다. 도겐선을 이해함에 있어 간과해선 안될 점은 바로 다음 두 측면이다. 하나는 '정전불법'에 대한 도겐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가마쿠라 시대에 형성된 천태본각사상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이다.


말법시대적 특징을 지닌 가마쿠라 시대를 살았던 도겐은 과연 무엇이 '正法'이며, 누구에게 그것이 전수되었는지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지녔다. 도겐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풀어줄 스승을 일본에서 찾지 못하자 중국 송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여정(如淨)을 만난 것이다. 도겐은 여정을 통해 지관타좌(只管打坐)야말로 정전불법(正傳佛法)임을 자각하고 돌아왔다. 지관타좌를 석존 이래로 제불여래를 통해 정전되어온 불법으로 본 도겐의 확신은 그의 전 저술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본고에서 살펴보려는 『정법안장』「불성」권도 마찬가지이다. 「불성」권을 살피기에 앞서 그의 사상적 배경을 먼저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도겐사상의 배경


1) 가마쿠라 신불교(鎌倉新佛敎)와 도겐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에 들어서면서 일본불교는 기틀이 마련되고 나름의 독창성을 갖게 되었다. 중세 전기에 해당하는 가마쿠라 시대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말법의식이 성했했던 당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신앙을 추구했다. 이러한 민중들의 갈망에 부응한 자가 가마쿠라 신불교의 개조들이다. 그들은 구원의 확실성이 요구되는 말법시대에 걸맞는 신앙체계로 선택전수사상(選擇專修思想)을 들고 나왔다. 이는 말 그대로 하나의 수행방법을 택하여 그것에만 전심전력을 기울리는 것이다. 신란(親鸞)의 ‘아미타불신앙’이나 니치렌(日蓮)의 ‘법화창제(法華唱題)’가 그 예이다. 신란은 인간의 자력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함께 아미타불의 본원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가르침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는 염불마저도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믿는 아미타불의 절대타력신앙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신란 뒤에 등장한 니치렌은 구원본불(久遠本佛)에 대한 신앙 아래 ‘법화창제’를 하면, 부처님의 공덕의 종자가 중생에게 심어져 현세 안에서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남묘호렌켓쿄(南無妙法蓮華經)’라는 창제였기에 일본 전역에 퍼져나갈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가마쿠라 신불교 개조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만을 말법시대에 걸맞는 실천방법이라고 주장하고, 그 외의 것을 포기하는 선택전수사상을 펼침으로써, 강한 종파적 성향을 드러냈다. 도겐도 ‘다만 오로지 앉을 뿐’이라는 지관타좌(只管打坐)의 수행법을 강조했기 때문에 종래에는 다른 가마쿠라 신불교 개조들처럼 말법시대에 걸맞는 전수사상의 하나로 ‘좌선’을 택한 것으로 이해해온 것이다. 즉 도겐의 지관타좌도 말법시대적 대응책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도겐은 하나의 종파적 차원에서 지관타좌를 말한 것이 아니다. 그는 본래 불교가 탄생한 그 시점 다시 말해 석존의 가르침에로의 회귀를 갈망했던 것이다. 새로운 종파를 창시하여 색다른 종풍을 형성하려 하기보다 붓다의 가르침과는 동떨어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정법에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지관타좌는 말법사상이 아니라 정법(正法)사상에 의거한 것이다. 정법을 지향하던 그는 석존의 수행방법을 떠나 헤매던 당대 사람들에게 정전불법인 지관타좌로 회귀할 것을 가르쳤다.


도겐은 스스로 “왜 좌선만이 정문(正門)이 되는가?”라고 묻고 답하기를 “위대한 스승 석존은 불도(佛道)를 체득하는 방법인 좌선을 정전하였고 삼세의 모든 여래도 좌선으로부터 불도(佛道)를 얻고 있다. 그 때문에 좌선이 정문(正門)임을 전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라 인도나 중국의 모든 조사(諸祖)도 좌선을 통해 불도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석존께서는 풍요로운 명상전통을 지닌 힌두교문화 속에서 사시면서 힌두명상의 최고 선정에까지 이르셨으나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것을 통해서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석존께서는 전에 자신이 했던 단좌명상을 통해 깨침을 얻으셨고 만물의 실상(實相)을 꿰뚫으셨다. 이렇듯이 석존의 깨침은 그의 단좌참선에서 나온 것이기에 단좌참선이야말로 그의 깨달음 곧 正見이 피어난 자리라 할 수 있다.


도겐은 바로 석존이 하신 수행방법인 단좌참선이야말로 제불에게 전수된 정법임을 확신했다. 우리는 도겐의 생애에서 정법에 대한 그의 갈망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처음 출가했던 히에이잔(比叡山)을 떠나 에이사이(榮西)를 찾아간 이유도, 거기서 중국 송으로 건너감도, 여정선사를 만남도, 일본에 돌아와서 가르친 모든 것도 정법에 대한 그의 갈망에서 나온 것이다. 무엇이 도겐으로 하여금 이토록 정법을 추구하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그가 살던 가마쿠라 시대에 팽배했던 천태본각사상(天台本覺思想)과 깊은 관련이 있다.


2) 천태본각사상(天台本覺思想)


도겐을 포함하여 가마쿠라 신불교 개조들은 모두 천태종의 본산지인 히에이잔 출신으로 천태본각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주장한 선택전수사상 역시 천태본각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천태본각사상에서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본각 의미를 확대 해석하여 “생멸․변화하는 현상계 자체가 본래 깨침의 세계”라고 주장한다. 즉 다양한 事相이 생겨나고 변화하는 현실 모습이 그대로 영원하고 보편적인 진리가 약동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본각을 전제하더라도 미혹한 중생이 不覺에서 覺에로 나아가는 始覺的 측면이 강조되므로 수행이 중시된다. 그러나 천태본각사상에서는 본래부처의 ‘본래’의 의미는 본질만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라고 해석한다. 이와 같이 현실의 범부 그대로를 본래부처로 해석할 때 성불의 관념은 부정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천태본각사상의 시원은 진언종(眞言宗)의 개조인 쿠우카이(空海, 774-835)의 본각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는 화엄교리를 빌려 밀교사상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화엄철학에 관련된 본각사상을 중시했다. 특히 본각과 현실 자체가 둘이 아님을 강조했고 현세에서도 여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즉신성불사상(卽身成佛思想)에 입각하여 진언밀교사상을 펼쳤다. 이러한 진언밀교사상은 그 후 히에이잔 천태종(比叡山天台宗)으로 이입되어 천태종 밀교인 태밀사상(台密思想)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천태종의 사이쵸오((最澄: 767-822)는 수행자의 몸과 언어, 마음을 붓다의 몸과 언어, 마음과 동일하게 보는 진언밀교의 삼밀(三密) 수행을 수용했다. 천태본각사상은 바로 이러한 태밀사상을 근저로 하여 탄생된 것이다.

 

천태본각사상에서는 본각진여(本覺眞如)를 범부중생 안에 있는 理로 보기보다 중생의 모습 자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생멸 변화하는 현상계를 깨침의 세계 그 자체로 봄으로써 '중생이 곧 부처'라는 중생즉불론(衆生卽佛論)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중생즉불이라는 상즉(相卽) 논리 안에서 수행무용론(修行無用論)이 잉태된 것이다.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중생 자체를 부처로 볼 때 성불하기 위한 수행은 무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문과 수행의 길을 닦는 것이 어렵게 되자 참된 구도의 길을 걷는 이들은 교단을 떠나 불교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운동을 펼쳤으니 그것이 바로 가마쿠라 신불교이다. 이런 점에서 가마쿠라 신불교는 천태본각사상의 왜곡된 측면에 대한 자각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도겐은 현실의 범부 그대로를 본래불로 해석한 천태본각사상에 내재된 수증 문제에 대해 커다란 의문을 품었다. 그것은 천태본각론에서 말한 “본래본법성(本來本法性) 천연자성신(天然自性身)”에 대한 것이었다. ‘본래본법성’은 개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것으로,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하는 性이 곧 법성을 말한다. 또 ‘천연자성신’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이 진실한 性을 그대로 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겐이 품은 의문은 천태본각론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 있는 그대로가 본각 상태라면 수행의 필요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와  “여래가 그 자체로 법신 법성이라면, 제불은 왜 다시 발심하여 깨침의 道를 닦는가?”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지닌 도겐은 宋으로 건너가 여정선사 밑에서 깨침을 얻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바로 그의 문제의식과 깨침이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낳은 것이다. 그 중 「불성」권은 「변도화(辨道話)」와 「현성공안(現成公案)」과 더불어 도겐사상의 대표적인 저술로 알려져 있다. 도겐은 귀국한 후 仁治2年(1241) 10월14일 교또 부근의 관음도리흥성보림사(觀音導利興盛寶林寺)에 있을 때 「불성」을 저술했다. 도겐이 수차례에 걸쳐  「불성」 권에 교정작업을 했음을 우리는 남겨진 그의 필사본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만큼 「불성」은 도겐이 중시해온 저술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불성」권 분석을 통해 도겐의 불성과 수증의 상관 관계를 살펴보자.


3. 실유(悉有)인 불성(佛性)


1) 종래의 불성이해에 대한 도겐의 비판


 불성사상은 대승불교의 핵심교의로 여겨져 왔다. 불성이 수증(修證) 문제와 불가분의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수행해서 깨침을 얻는다고 할 때 그 깨침은 우리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데 근거하기 때문이다. 보통 불성을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고 생각하거나 절대적이고 영원한 실재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바로 ‘불성내재론’과 ‘심상상멸론’(心常相滅論)적 불성이해이다. 불성내재론은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나 능력, 혹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원인을 지녔다고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성이해는 『열반경』의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에 근거하고 있다. 종래에는 ‘일체중생실유불성’을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다” 혹은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다”로 해석해 왔다. 불성을 지니고 있기에 수행을 통한 깨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겐은 특이하게 ‘일체중생실유불성’을 '일체는 중생이고 실유는 불성이다’라고 해석한다. 도겐의 새로운 독법에는 종전의 불성 이해에 내포된 왜곡된 측면을 타파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즉 모든 것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각 존재 속에 불성이 있다는 뜻이 되며 그래서 불성과 그것을 지닌 존재는 이원적인 관계가 된다. 도겐은 「불성」권에서 이러한 불성내재론을 비판하고 있다.


어떤 부류는 말한다. 불성은 초목의 종자와 같다고. 법우(法雨)가 내려 물기를 머금을 때 눈과 줄기가 자라고 가지와 잎이 나고 과실이 생긴다. 과실에는 또 종자가 생겨난다. 이러한 사고는 범부의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같이 생각한다고 해도 종자와 꽃과 과실 모두 하나 하나가 절대의 진실(赤心)임을 참구해야 한다.


도겐은 불성을 씨와 같은 깨달음의 잠재성이 아니라 뿌리, 가지, 잎이 그 자체로 각각 불성의 현현(顯現)이라고 본다. 이는 “종자와 꽃과 과실은 모두 각각 절대의 진실(赤心)임을 참구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적심(赤心)은 존재의 현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불성 이외에 종자나 꽃 과실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성이 씨나 열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체가 불성의 현현인 것이다. 즉 종자와 꽃, 과실은 각각 존재의 현성 그 자체이지 앞으로 불성이 드러날 가능성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이 바로 불성이 현현하는 때’라면, 불성은 이미 완성된 상태로 우리 안에 내재한다는 말인가? 이와 관련하여 나온 것이 심상상멸론(心常相滅論)이다. 심상상멸론은 『열반경』에 나오는 “일체중생은 불성이 있으며 여래는 상주하며 변이(變異)가 없다(一切衆生悉有佛性 如來常住 有無變異)”와 관련이 있다. 즉 '여래는 상주하고 변화가 없다'는 표현은 우리 심성 안에 상주하고 멸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심상상멸론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선종은 불심종(佛心宗)이라고 불리울 만큼 마음을 중시해 왔다. 이같은 경향은 “몸을 무상하고, 마음을 항상하다(身是無常 心性是常)”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심성상주(心性常住)로 해석하는 경향으로 나아갔다. 도겐은 『정법안장』「즉심시 불(卽心是佛)」권에서 대승교의 안에 심상상멸과 관련된 개념들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인도에는 외도(外道)가 있으니 선니(先尼)라 부른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영지(靈知)는 환경이나 사물과 달라 역겁(歷劫)에 상주한다..... 그러나 그것〔모든 실체들〕은 영지(靈知)와 같이 상주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멸하기 때문이다. ...또 진아(眞我)라고도 하고 각원(覺元)이라고도 하며 본성이라고도 칭한다.


도겐이 영지사상을 비판한 것은 인도의 선니외도에 대한 비판이지만 이는 동시에 중국선종사상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영지(靈知)나 각원(覺元)은 중국불교에 널리 알려진 『원각경』에 나오는 원각묘심(圓覺妙心)과도 비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각경』에 보면 “일체중생의 갖가지 환화(幻化)가 모두 여래의 원각묘심에서 마치 허공꽃이 허공에서 생긴 것과 같다. 환화는 멸할지라도 허공의 본성은 멸하지 않나니, 중생의 幻과 같은 마음도 幻에 의해 사라지나 모든 幻이 다 사라졌다 할지라도 본각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느니라”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원각묘심은 본각진심의 다른 표현이다. 도겐은 원각묘심이나 본각진심, 영지, 진아(眞我), 각원(覺元) 등으로 표현되는 멸하지 않는 절대화된 유심론적 사유를 배격한다. 하카마야 노리야키(袴谷憲昭)은 도겐의 심상상멸론 비판은 본각사상을 비판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각이란 현상세계를 초월한 근원적 깨침으로 이 깨침이란 본래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갖추어져 있어 상주하나 그것을 자각하지 않는 사이에 현상으로서 변화생멸한다. (중략) 그것은 동시에 심상상멸론을 의미한다.


 하카마야(袴谷)처럼 심상상멸론을 본각사상과 동일하게 보는 것은 문제가 있으나, 도겐의 심상상멸론 비판이 천태본각사상과 관련이 있다는 그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것은 원각묘심처럼 불성이 상주불변하다면 수행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도겐이 천태본각사상과 관련하여 품었던 문제의식이 아닌가? 도겐은 「불성」권에서 실유불성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2) 실유불성(悉有佛性)과 지관타좌


도겐은 먼저 『열반경』의 '일체중생실유불성'을 혜능과 남악(南嶽 677-744)의 문답과 연관지어 풀이한다.

석가모니불께서 말씀하신 “일체중생실유불성” 그 종지(宗旨)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 어떤 물건이 왔느냐’(是什麽物恁麽來)고 말한 것이며 〔불교를 포괄하여 그 근원을 제시한 대설법인〕 전법륜(轉法輪)이다.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는 ‘부처님말씀(佛語)’와 “무엇이 이와 같이 하여 왔는가(是什麽物恁麽來)'”는 ‘조사의 말씀(祖語)’은 무슨 연관이 있는가? “너는 누구냐? 어떻게 왔느냐?(是什麽物恁麽來)"는 혜능이 남악에게 건넨 일종의 화두이다. 남악은 혜능으로부터 이 화두를 받고 8년간 이것과 씨름했다고 한다. 이렇듯 '시십마물임마래'는 단순한 객관적 명제나 사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남악 앞에 서 있는 혜능의 실존에 대한 물음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겐이 일체중생실유불성을 '시십마물임마래'와 연관지어 해석하려는 의도를 감지할 수 있다. 도겐은 불성을 '모든 존재는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선험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시십마물임마래라는 실존적 물음을 지니고 수행하는 자리에서 불성을 이해하고자 한다. 즉 불성은 모든 존재 내에 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시십마물임마래'라는 존재의 실상과 직면하는 자리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겐이 불성을 수증(修證)과 연관지어 설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음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지금 불성이 실유(悉有)라고 하는 有는 유무(有無)의 有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실유는 부처님말씀(佛語)이며 부처님의 혀(佛舌)이며 불조(佛祖)의 눈동자(眼睛)이며 선승의 진면목(衲僧鼻孔)이다.


도겐은 유무의 有나 시유(始有), 본유(本有), 묘유(妙有), 연유(緣有), 망유(妄有)와 같은 관념의 세계에서는 실유(悉有)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설한다. 이는 조주의 유불성에 대한 도겐 해석에서도 드러난다. 한 승려가 조주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에 조주는 말한다. ‘있다.’ 승려는 “개는 이미 불성인데(旣有) 왜 불성이 개의 육체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까”라고 되묻는다.


이에 대해 도겐은 조주가 말한 有는 今有(시간 안에 실재하는 有)나, 古有(고래부터 있던 본래의 有), 旣有(이미 존재하는 有)가 아니라, 선승의 행리(行履) 곧 수행의 자리에서 비로소 불성이 드러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도겐은 실유는 관념의 세계가 아님을 말함으로써 도겐은 불성이 결코 관념의 세계에서 드러나지 않음을 설하고자 한 것이다. 즉 관념에서 자유로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실유(悉有)로서의 불성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겐은 “실유는 부처님말씀(佛語)이며 부처님의 혀(佛舌)이며 불조(佛祖)의 눈동자(眼睛)이며 선승의 진면목(衲僧鼻孔)”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곧 '지금 여기'에서 좌선수행하는 이에게서 불성이 현현함을 의미한다. 좌선수행하는 자리가 실유로서의 불성이 현현하는 자리라는 실유불성론의 의미는 도겐의 무불성론에서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4. 무불성과 지관타좌


1) 4조와 5조의 무불성


도겐의 무불성론은 『육조단경』에 나오는 4조, 5조의 문답에 대한 그의 해석에서 드러난다.


4조가 말한 “당신은 무슨 姓이냐(是何姓)”에서 ‘何는 是이며 是는 何이고 그것이 곧 姓’인 것이다. 무엇(何)이라고 묻는 것이 是이며, 是라고 하는 것이 何이다. 姓은 是이며 何이다.


4조는 5조에게 “너의 성(姓)은 무엇이냐”고 姓을 물은 것인데 도겐은 ‘是, 何, 姓’ 을 何는 是이고 是는 何이며 姓은 是라고 풀이한다. 무슨 말인가? 도겐은 是 何 姓 각각을 現成하는 불성으로 해석한다. 즉 何라고 물을 때나, 是라고 답할 때, 모두 불성이 현현(顯現)하는 때라는 것이다. 이어서 四祖가 ‘姓이 무엇이냐(是何姓)’고 묻자 五祖는 ‘불성이다(是佛性)’라고 답한다. 5조는 4조가 물은 개별적 姓의 관점에서 '보편적 불성'에로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에 4조는 다시 5조에게 '너는 무불성'이라고 답한다. 실제로 부모없이 태어난 5조에게 “너는 불성이 없다”고 한 4조의 말은 5조의 출신을 무시하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5조는 “불성은 空이므로 無”라고 응하여 空의 입장에서 불성을 해석한다.


 그러나 도겐은 무불성과 관련한 4, 5조의 문답을 통해 불성은 구체적인 수행의 자리에서 드러남을 말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무불성은 수증(修證) 세계를 떠나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수행의 자리에서 불성이 현현한다면 수행의 자리가 '깨침의 자리'라는 말인가? 우리는 도겐의 다음 표현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4조는 말한다. 너는 무불성이다. 이는 너는 (다른) 누가 아니라 너는 너일 뿐이지만 무불성으로서 開示한 것이다. 여기서는 어떤 시절의 무불성인지를 알고 배워야 한다. .. 불성성불시 무불성인가, 보리심을 발한 때(發心한 때) 무불성인지를 묻고 말해야 한다. (禪院에 있는 하나의) 노주(露柱)에게도 물어보자. 노주에게도 묻지 않으면 안된다. 불성에게도 묻지 않으면 안된다.

도겐은 4조가 말한 무불성을 풀이하면서 발심할 때의 무불성, 수행할 때의 무불성, 성불할 때의 무불성이 차이가 있는지를 묻는다. 보통 우리는 발심하여 수행한 후 깨침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수증(修證)은 이러한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러나 도겐은 발심의 때나 수행, 보리, 열반의 때가 각각 불성이 현성(現成)하는 때라고 말한다. 따라서 ‘발심(發心)시 무불성’이나  ‘불성성불시 무불성’ 모두 불성의 현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겐이 수증관계를 인과(因果)적 관계가 아니라 인과적 동시성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수(修) 속에 증(證)이 있고 증(證) 속에 수(修)가 있어 수(修)와 증(證)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도겐의 용어 중에 행지도환(行持道環)이라는 표현이 있다. 행지의 ‘行’은 佛行(수행)이고 ‘持’는 호지(護持)의 의미로, 행지도환(行持道環)는 보리심을 발하고 수행하고 깨침을 열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 사이에 어떠한 틈도 없다는 것이다. “불도의 대도(大道)는 반드시 무상(無上)의 행지이며 도환(道環)하여 단절이 없다. 발보리심(發心) 수행 보리 열반에 어떠한 간격도 없이 행지도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도겐은 수행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행지로 보고 이것이야말로 ‘불조(佛祖)의 대도(大道)’라고 말한다. 행지도환의 가르침은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하는 이들에게 수행의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유불성이나 무불성은 불성의 유무를 말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무불성을 자각하는 것에 괘애의 역량이 있다고 한 것이다.


4조, 5조의 문답인 무불성의 도득(道得), 그 괘애(罣礙)의 역량(力量)을 지닌 일우(一隅)를 받아서 가섭불(迦葉佛) 및 석가모니불의 제불이 작불하고 전법(轉法)함에 ‘실유불성’이라고 말할 역량이 있다. 실유의 有는 무무(無無)의 無를 통해 법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모든 무불성의 얘기는 4조와 5조(의 室)로부터 듣게 된다. 이 때 六祖정도의 사람이라면 이 무불성의 말을 공부해야 한다. “有無의 無는 그만 두고 불성이란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이 불성인지 물어야 한다. 지금의 사람들도 불성을 물을 때 불성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불성의 有無의 뜻을 묻는다. 이것은 경솔(倉卒)한 일이다. 모든 無의 無는 무불성의 無에서 배워야 한다.


 괘애(罣礙)란 ‘방해한다’는 뜻으로 보통 보리심을 방해하는 번뇌나 갈등, 망상의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즉 이는 깨침의 길에서 장애요인이기에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도겐은 괘애야말로 4조가 5조에게 불법을 전수해 준 하나의 힘으로 본다. 어떻게 괘애가 그런 힘을 지녔다고 볼 수 있을까? 종래에는 ‘괘애의 역량’을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이 ‘한정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해석해 왔다. 마치 절대적이고 영원한 불성이 석존으로부터 가섭존자라는 구체적인 존재를 통해 전해져온 것과 같이, 불변적이고 영원한 불성이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것을 괘애의 역량이라고 본 것이다. 즉 괘애의 역량은 영원과 지금, 불변과 변천의 양면을 이어주는 힘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불성’을 영원하고 불변적인 ‘常’으로 전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영원불변한 불성이 있어 그것이 역사 속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도겐은 처음부터 불성을 상주불변하다는 견해를 철저하게 비판해 왔으므로 罣礙에 대한 이러한 해석에는 문제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도겐이 왜 무불성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무불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성을 선언적 차원에서 우리 안에 내재된 것으로 이해하려는 견해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불성’이 ‘좌선’을 통해 드러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도겐은 무불성의 의미를 알려면 불도(佛道)에 참입(參入)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도겐에게 있어 ‘불도에 참입’함은 좌선수행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좌선을 통해 드러난 불성의 세계에서 우리는 비로소 괘애의 역량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괘애의 역량은 불조(佛祖)가 불조에게 불법을 전수해준 하나의 힘인 것이다.


도겐은 유불성과 무불성을 통해 불성의 현현은 수증일여(修證一如)인 좌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말한다. 즉 유불성이든 무불성이든 불성의 세계는 '지금 여기' 좌선하는 자리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성의 참뜻을 알려거든 ‘좌선하라’는 메시지가 도겐의 유불성과 무불성 풀이 속에 함축되어 있다. 도겐은 이를 신심일여(身心一如)의 '몸'으로 불성을 드러낸 용수의 신현불성(身現佛性)을 통해 가르치고 있다.


2) 용수(龍樹)의 신현불성(身現佛性)


용수보살은 남인도에 계실 때 여러 대중에게 설법을 하시며 기이한 현상을 보이셨다고 전해진다. 즉 그의 몸이 마치 달과 같았고 설법하는 자리에선 설법하는 그의 음성만 들릴 뿐 그 형체를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때 대중 가운데 함께 있던 제바(提婆)가 그 상(相)을 살피고 잠잠히 그 뜻에 계합하여 말하기를 “지금 이 화상(畵像)은 스승께서 불성을 드러내 보이신 것이지 스승의 몸은 아니다. 무상삼매(無相三昧)로 그 형체가 보름달과 같으니 불성의 뜻은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느니라.”  즉 용수가 몸으로 둥근 달 모양을 드러냄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體를 표현했다(身現圓月相 以表諸佛體)는 것이다.


이러한 용수의 만월상 일화와 관련하여 도겐은 宋에 머물 때 독특한 체험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그가 아육왕산(阿育王山)의 광리선사(廣利禪寺)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 사찰의 벽에는 석존을 비롯한 인도 중국인 조사들의 화상(畵像)이 그려져 있었다. 그 때 도겐은 33인의 조사중 제14대 조사인 용수존자(龍樹尊者)를 그린 그림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용수신현원월상(龍樹身現圓月相)’이라는 제목이 붙혀진 그 그림에는 둥근 달(圓月)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겐은 그 때 자신을 안내하던 지객(知客)에게 묻는다.


이것이 무슨 변상(變相)입니까.”〔라고 도겐이 묻자〕 지객은 “용수의 신현원월상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렇게 말한 그의 얼굴에는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았으며 〔대답하는〕목소리에도 살아있는 기세가 없었다. 나(도겐)는 “확실히 이것은 하나의 그림의 떡과 유사하군요”라고 말했다. 그 때 지객은 크게 웃었지만 그 웃음 안에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곧 지객과 나는 사리전(舍利殿) 및 6곳을 보는 동안 거듭 이 문제를 물어 보았으나 그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아육왕산의 지객처럼 신현원월상의 의미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그림의 떡'처럼 생각할 수 있다. 도겐은 수백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대송국의 누구 하나 그 그림 속에 담겨진 의미를 알거나 이해하는 자가 없음을 한탄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정법(正法)인 좌선을 사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실천하지 않는데 대한 도겐의 한탄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용수를 중관철학을 확립한 사상가로 간주하지만 도겐은 그가 좌선수행한 선사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도겐은 용수의 신현원월상을 통해 이를 말하고자 한다. 즉 용수가 몸으로 드러낸 원월상은 그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좌선을 통해 드러난 삼매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봄이 그것이다.


 "신현원월상의 相을 그린다는 것은 법좌 위에서 신현상(身現相)해야 한다. 양미순목(揚眉瞬目) 그것이 단직(端直)되어야 한다. 피육골수(皮肉骨髓) 정법안장 반드시 兀坐(只管打坐)해야 한다."


 세존과 마하가섭 간의 점화순목(點華瞬目)이나 보리달마가 제자들에게 전수한 피육골수(皮肉骨髓)를 통해 전수된 정법이 용수에게도 전수되었고 그것이 그의 신현원월상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도겐은 용수의 신현원월상이 자신이 전하고자 한 정전불법인 올좌(兀坐) 곧 지관타좌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말한다. '올올좌(兀兀坐)'는 도겐이 유포본「보권좌선의(普勸坐禪儀)」에서 좌선의 요술(要術)로 밝힌 것이다. 


 “산처럼 우뚝 좌정(兀兀坐定)하여 불사량(不思量)을 사량(思量)하라. 불사량(不思量)을 어찌 사량(思量)하랴. 비사량(非思量), 이것이 좌선의 요술(要術)이다.”


사실 도겐은 유포본(1243년)을 저술하기 전인 1233년에 天福本(천복본)「보권좌선의」를 저술했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좌선의 요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망념(妄念)이 생기면 그 즉시 망념임을 알아차려라. 〔그것이 망념임을〕 깨달으면 망념이 사라진다. (이렇게) 오래도록 모든 연(緣)을 잊으면 저절로 (좌선의 상태와) 한 덩어리가 된다. 이것이 좌선의 요술(要術)이다.”


이와 같이 천본본에 나오는 좌선의 요술은 장로종색(長蘆宗賾)의 「좌선의(坐禪儀)」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따라서 천복본에 나온 좌선의 요술은 도겐만의 독특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도겐은 자신의 수행방법의 독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좌선의 요술을 '올올좌와 비사량'으로 바꾸어 '유포본'을 저술한 것이다. 이와 같이 도겐이 올올좌를 더욱 강조한 것은 당시 일본임제종과의 차별화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우리는 용수의 좌선을 통해 드러난 삼매 곧 원월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몸으로 드러낸 원월상은 자기를 비워 신심탈락(身心脫落)된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지관타좌를 통한 신심탈락은 용수가 좌선을 통해 드러낸 신현원월상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우리는 신현원월상을 통해 도겐이 불성내재론과 심상상멸론적 불성 이해에서 벗어나 지관타좌에 즉한 불성의 현현을 말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도겐의 가르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관타좌를 ‘석존으로부터 정전되어온 불법’으로 보고 있는 점이다. 그는 "불법의 많은 門 중 왜 유독 좌선이 불법의 정문(正門)인가" 스스로 물은 후 "그것은 모든 부처님이 이로 인해 깨침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도겐은 우리에게 지관타좌의 내용을 설명하지 않고 지관타좌는 석존의 좌선이라는 자기확신만을 비추어줄 뿐이다. 중생의 입장에서는 도겐이 그토록 정전불법이라고 확신한 그 지관타좌의 내용이 궁금할 수 밖에 없다. 「변도화(辨道話)」에서는 修와 證이 불이(不二)의 관계에 있음을 수증일등(修證一等)으로 표현한 바 있다. 수행과 깨침이 불이(不二)라는 것이며 수행의 자리가 곧 깨침의 자리라는 것이다. 수증일여(修證一如)인 지관타좌는 도겐이 그토록 차별화하고자 했던 임제선의 수증관과 어떻게 다른가?


5. 작불(作佛)과 지관타좌(只管打坐)


1) 작불과 성불(成佛)


 지관타좌는 수증일등(修證一等)이라고 하지만 이 표현으로는 도겐이 정전불법으로 여겨온 지관타좌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남종선에서도 정혜즉등(定慧卽等), 정혜일체(定慧一體), 정혜일등(定慧一等) 등의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남종선의 수증관과 도겐의 그것의 차이를 파악하려면 양쪽의 좌선의 의미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육조단경』에서는 종전의 좌선에 대해서 “道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깨닫는 것인데 어찌 앉아 있음에 있겠는가”라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좌선을 정의하고 있다.


“이〔南宗頓敎의〕 법문 가운데 일체의 경계에 무애(無礙)한 것을 말한다. 즉 밖으로는 일체의 경계에서 번뇌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坐'이며, 자기의 본성(佛性)을 깨달아 산란됨이 없는 것을 禪”이다.


이와 같이 『단경』에서는 坐를 념불기(念不起)로, 禪을 견본성(見本性)이라 하여 '몸으로 앉는' 좌선의 의미가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으로 탈바꿈되어 버렸다. 즉 좌선을 '定의 차원'에서 '慧의 차원'으로 바꾸어 정의한 것이다. 가가미시마 겐료(鏡島元隆)은 이를 도겐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혜능이 ‘좌선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다면, 도겐은 역으로 불법을 좌선의 종교로 파악함으로써 좌선으로부터 깨침을 해방시켰다.” 이 해석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남종선에서는 좌선을 慧의 차원으로 정의하면서 정작 '몸'으로 앉는 좌선수행은 작불행으로 비판받아왔다. 보통 작불이라 하면 깨닫기 위한 수행, 곧 부처가 되기 위해 좌선하는 오전수(悟前修)로 여겨져 왔다. 이는 남악(南嶽)과 마조(馬祖) 간의 문답 곧 좌선과 작불, 기와를 가는(磨塼) 것과 거울을 만드는(成鏡)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아무리 기와를 갈아도 거울이 될 수 없듯이 좌선해서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남악은 말한다. 이는 『육조단경』에서 6조가 작불을 비판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도겐은 작불을 어떻게 보았는가?


도겐도 34세 때 쓴 유포본 「보권좌선의」에서는 ‘佛이 되기를 꾀하지 말라(莫圖作佛)’고 하여 작불을 비판한다. 그러나 「불성」권에서는 다른 각도에서 작불을 해석하고 있다. 『단경』에 나오는 5조와 6조의 문답과 관련된 작불에 대한 도겐의 풀이가 바로 그것이다. 도겐은 「불성」권에서 5조와 6조의 문답을 인용한다. 5조는 6조에게 “너는 영남인이기 때문에 불성이 없는데 어떻게 작불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혹독하게 6조를 무시한다. 이에 대해 6조는 “사람은 작불해도 불성은 작불하지 않는다”고 하여 작불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도겐은 이는 표현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무슨 말인가? '불성이 작불한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남악과 마조의 문답에 대한 도겐의 해석에서 드러난다.


좌선을 통해 부처가 되고자 한 마조는 “좌선해서 어떻게 성불할 수 있겠느냐?”는 남악의 물음에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조는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옳습니까(如何卽是)”라고 남악에게 물은 것이다. 이는 ‘성불이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좌선을 해야 하는가’라는 좌선의 의미를 물은 것이다. 천태본각사상에 대한 도겐의 문제의식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남악은 “앉는 일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다(若執坐相 非達其理)"라 하여 앉는 수행에 대한 집착을 경계시키고 있다.


 그러나 도겐은 '집좌(執坐)'를 ‘執坐相(앉는 일에 집착한다)’로 해석하지 않고 ‘좌선에 철저하다’는 뜻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非達其理)’를  ‘남김없이 진리에 도달하고 있다’는 뜻으로 본다. 다시 말해 ‘앉는 일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다’라는 부정적 의미가 ‘좌선에 철저한 것이야말로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바뀐 것이다. 이렇듯이 도겐에게 있어 '좌선에 철저함'이야말로 부처로 사는 길이다.


눈앞의 법 곧 기와를 닦는 수행을 통해 佛의 통로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佛을 보면서도 佛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기와를 닦는 자가 바로 불조(佛祖)이고 그 행위가 곧 작불(作佛)이며 그 자리가 불성이 현성하는 자리이다. 다시 말해 좌선함 자체가 작불행인 것이다. 그러나 그 작불행은 닦아서 깨치는 인과적 수행이 아니라 修의 자리가 곧 證의 자리인 수증불이(修證不二)로서의 수행인 것이다. 도겐에게 있어 작불로서의 좌선은 종래의 해석처럼 부처가 되기 위해 닦는 염오수(染汚修)가 아니라 修와 證이 불이(不二)로서 드러나는 수행인 것이다. 이것이 작불에 대한 도겐의 새로운 해석이다. 불성은 작불행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도겐은 '불성은 작불하지 않는다'는 6조의 말에 '한계가 있다'고 한 것이다. 도겐은 남종선에서 작불로 비판받던 몸의 수행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좌선은 불법을 정전(正傳)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구(家具)이며 이것을 통해 고경(古鏡)의 생명이 유지되어 왔다." 도겐은 『정법안장수문기(正法眼藏隨聞記)』 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안과 조사의 어록을 읽고 조금은 이해되어도 그것은 佛祖의 道로부터 멀어진 것이 된다. 무엇도 얻으려 하지 말고(無所得) 무엇도 깨달으려 하지 말고(無所悟) 다만 좌선하는 시간을 보내면 이것이 그대로 佛祖의 道이다. 고인(古人)도 간어(看語)와 지관좌선을 함께 권했으나, 역시 좌선을 통해 앞으로 나아갔다. 물론 화두로써 깨달음을 열은 자도 있으나 그것도 좌선의 功에 의해 깨달음이 열리는 因緣이 된 것이다.


그럼 도겐의 지관타좌와 굉지정각의 좌선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2) 굉지정각의 본증묘수(本證妙修)와 도겐의 지관타좌


굉지가 활동한 송대에는 임제선의 아류가 무사선을 오해하여 무사선의 부정적인 입장에 빠져 있었다. 간화선과 묵조선의 가르침은 무사선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양자는 수행방법상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간화선은 본래성불의 입장을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번뇌에 뒤덮혀 살아가므로 그 본래청정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시각(始覺)적 수증을 강조한 반면, 묵조선은 본각적 수증관에 더욱 철저하고자 한다. 즉 묵조선은 평상무사(平常無事)한 의미의 무사선(無事禪)의 오해를 벗고 보다 철저한 본각수행을 계승하고자 한 것이다.


도겐과 중국묵조선의 연계성에 대해서는 앞서 여정과의 관계를 통해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는 굉지정각에 대한 도겐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한다. 도겐도 굉지처럼 「좌선잠(坐禪箴)」을 남겼다. 그는 굉지의 좌선잠만이 홀로 법계의 표리를 꿰뚫은 광명이라고 『정법안장』「좌선잠」에서  극찬하고 있다.


좌선잠은 ....굉지선사 정각화상이 택한 그것만이 참된 불조(佛祖)에 의한 것으로서 참된 좌선잠이고 이 좌선잠만이 불법계의 표리(表裏)를 꿰뚫은 광명이며 고금에 걸친 불조 가운데의 불조이며 과거불과 미래불도 이 좌선잠으로 계를 삼으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조사들도 이 좌선잠에 의해서 출현한다.


도겐의 좌선잠은 굉지의 그것과 같은 것인가? 아니면 차이가 있는가? 『도겐과 중국선사상(道元と中國禪思想)』을 쓴 하연생(何燕生)은 도겐이 자신의 좌선관을 표명하기 위해 스스로의 선체험과 깊은 인식을 기초로, 자신의 선사상과 계통이 같은 굉지를 참고하여 자신의 좌선잠을 저술했다고 본다. 그는 도겐이 굉지를 여정과 함께 고불(古佛)으로 칭송한 점과 조동종 법맥을 이은 여정으로부터 배운 점을 들어 도겐이 굉지선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이시이 슈도우(石井修道)는 도겐이 굉지의 선사상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도겐선을 형성했다는 주장한다.  그는 양자의 좌선잠에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굉지의 좌선잠(坐禪箴)에는 ‘대상에 접하지 않아도 알고, 경계에 반연하지 않고 비춘다(不觸事而知 不對緣而照)'라는  표현이 나온다. 도겐은 이 표현을 자신의 『정법안장』「좌선잠」에서 인용하면서 이를 다음과 같이 고쳐 쓰고 있다. "사량하지 않고 드러나며 서로 뒤섞이지 않고 이루어진다.(不思量而現 不回互而成)" 여기서 이시이(石井)는 도겐이 굉지의 ‘知와 照’ 부분을 ‘現과 成’으로 바꾸어 쓴 것에 주목한다. 그는 굉지의 知와 照는 도가적 관조(觀照)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면, 도겐의 現과 成은 지관타좌를 통해 드러나는 불사량(不思量), 불회호(不回互)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굉지는 좌선잠을 통해 이법(理法)으로서의 관조의 세계를 드러냈다면, 도겐선에는 좌선 그 자체를 친밀히 닦아서 드러나는 무소오(無所悟)의 현성(現成)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좌선잠」에서 드러난 차이 외에도 이시이(石井)는 도겐이 『정법안장』이나 『영평광록(永平廣錄)』 중에서 인용하고 있는 굉지의 언어를 바꾼 것을 예로 들면서 도겐이 굉지의 선사상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도겐선을 펼쳤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굉지와 도겐의 사상적 연계성에 대해 학자 간에 견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정법안장』에 나오듯이 도겐은 굉지의 좌선잠을 높이 평가하고 고불이라 칭송한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 간에는 차이가 없지 않다.


도겐의 『영평광록(永平廣錄)』에 보면『굉지록(宏智錄)』제4의 상당(上堂)에 나오는 “호옥무하 조문상덕(皓玉無瑕 彫文喪德)”를 “호옥무하 탁마증휘(皓玉無瑕 琢磨增輝)”로 바꾸어 표현한 부분이 나온다. 양자를 비교할 때 호옥무하(皓玉無瑕) 부분은 같으나 뒷부분인 ‘주문상덕(彫文喪德)’을 도겐은 ‘탁마증휘(琢磨增輝)’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다. 굉지는 ‘본래 티가 없는 옥에 세공을 가하면 오히려 옥이 지닌 아름다움이 상실된다(皓玉無瑕 彫文喪德)’고 하여 본래 옥에 티가 없다는 본증(本證)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반해 도겐은 옥에 티가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닦고 닦음으로써 점점 옥이 빛을 더하게 된다'고 하여 수행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도겐에 있어 수행은 단지 본래성에 머무는데 그치지 않고 본래성의 빛을 드러내는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양자의 수증관 간에 미묘한 차이를 엿보게 된다. 굉지는 ‘다만 본연의 모습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하여 '본각'을 강조한 데 반해, 도겐은 ‘닦아서 더욱 빛나게 해야 한다(琢磨增輝)’고 하여 '수행'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양자의 시대적 배경에서 각자 지녔던 문제의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굉지가 당대의 무사선을 문제삼았다면, 도겐은 가마쿠라 시대의 천태본각사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녔다. 즉 굉지는 당대의 무사선이 지닌 오류를 극복하고 보다 철저한 무사선이 되고자 했다. 다시 말해 굉지는 보다 더 ‘본각’에 철저한 수증관을 펼치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이 굉지가 '본각'에 보다 철저하고자 했다면, 도겐은 천태본각사상에서 야기된 '수행' 곧 '좌선'의 필요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도겐은 천태본각사상에서 야기된 수행 문제를 풀기 위해 불교의 시발점 곧 석존으로부터 내려온 '정법'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도겐은 '좌선이 정전불법'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중국 묵조선의 수증관을 표현할 때도 본증묘수(本證妙修), 수증일여(修證一如)나 지관타좌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같은 표현이어도 양자가 지닌 문제의식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의미에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도겐에 있어 좌선은 '정전되어온 불법 그 자체'이다. 우리는 이를 「좌선잠」권 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굉지선사의 좌선잠은 그 표현이 불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위에 이같이 표현함이 적절하다.  일반적으로 불도(佛道)의 아손(兒孫)은 반드시 좌선이야말로 일대사(一大事)임을 참학해야 한다. 이것이 불조(佛祖)로부터 단전(單傳)되어온 정인(正印)이다."


 '석존으로부터 도겐 자신에 이르기까지 정전되어온 불법'인 지관타좌, 그것이야말로 불법의 전수자로서 확고한 자기정체성을 지닌 도겐이 가르치고 전수하려 한 것이다. 정전불법에 대한 깊은 자각과 확신, 우리는 거기에서 도겐의 가르침의 독특성을 재발견한다.


3) 지관타좌와 깨달음


 앞서 도겐의 지관타좌는 수증일여(修證一如)임을 수차례 언급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 이는 깨친 자의 입장이 아닌가? 중생도 본증묘수인 지관타좌를 할 수 있는가? 깨치지 못한 중생이 어떻게  證 위의 수행이 가능한가? 이 문제는 일본 조동종의 전통종학과 비판종학의 논쟁거리였고, 비판종학이 전통종학을 비판한 대목이기도 하다. 전통종학은 도겐의 가르침을 '믿음(信)의 불법'이라 규정한다. 과연 '미궁에 빠져 살아가는 중생이 본증(本證)의 믿음(信)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해 전통종학은 불도(佛道) 수행자는  ‘자기도 불도 안에 있는 사람’임을 먼저 '믿는 것'이 수행의 기본자세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미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러한 자신을 믿지 않고 붓다(佛)라는 이상을 멀리서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자신이 불도 안에 있음을 믿는 일임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전통종학에서는 믿음(信)의 불법을 강조하지만, 신현성(信現成)까지의 구체적인 과정과 지침은 명시하지 않고 있다. 즉 그들은 다만 믿는 것에 의해서 佛의 자각에 도달한다는 점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미궁으로부터 어떻게 깨침으로 나아가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즉 중생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信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행하는 수행이 본증묘수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종학이 말한 '信의 불법'의 문제점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전통종학이 말한 본증묘수가 진정한 信의 불법이 되려면 깨달음(悟)이 필요하지 않는가?


불이(不二)적 사유에 근거한 대승불교의 수증론 (修證一等) 안에는 중생인 우리의 현실문제를 간과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불이(不二)를 말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불이(不二)는 불일(不一)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고 할 때에는 “양자가 같지 않다”라는 말이 전제되어 있다. '부처와 중생이 동일치 않다'는 불일(不一)에 대한 철저한 인식없이는 수행의 필요성을 말하기가 어렵다. 도겐의 문제의식인 천태본각사상 역시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라는 대승교의에서 비약된 문제였음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는 일본 중세 불교의 문제만이 아니라 불이(不二)사상에 근거한 동아시아 불교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간화선에서 제시한 시각(始覺)적 수증관은 불일(不一)과 불이(不二)의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본각(本覺)에 입각한 수행이 중생에게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간화선 수행자들은 불각(不覺)에서 깨달음(覺)으로 나아가는 시각(始覺)적 수증관을 펼친다. 즉 본각을 전제하고 불각에서 깨침으로 나가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불각(不覺)에서 깨달음(覺)으로 나아가는 '깨침'이 강조될 수 밖에 없고 좌선은 결국 깨침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깨침을 얻기 위한 좌선행, 곧 작불은 염오수(染汚修)라 하여 남종선에서 비판받아왔다. 우리는 이미 마조와 남악의 문답을 통해 그 예를 살펴보았다. 마조가 염오수(染汚修)로서의 좌선을 거부하고 불염오수(不染汚修)를 말한 것이 그것이다.


도겐의 지관타좌가 염오수가 아닌 불염오수라고 할 때, 우리는 중생에게 불염오수가 가능한지 다시 물을 수 밖에 없다. 깨친 자는 본증묘수로서의 삶이 가능하지만 깨치지 못한 중생은 어떻게 본증묘수가 가능한가? 다시 말해 '부처와 중생이 실존적으로 같지 않다'는 不一의 입장에서 중생에게 어떻게 깨침 위의 수행이 가능한지를 묻는 것이다. 도겐은 깨치지 못한 제자들에게 어떻게 지관타좌를 가르쳤는가?


다시 마조의 '기와를 가는(磨塼)' 이야기로 돌아가자. 수증일여(修證一如)의 입장에서는 기와를 갈아서 거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도겐은 '좌선수행'이 기와를 가는(磨塼) 것 외에 또 무엇이 있느냐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좌선해서 부처가 되려는 마음의 지향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거울을 만들기 위해 기와를 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와를 갈 뿐이다.


여기에 좌선의 원동력은 '수증불이(修證不二)에 대한 믿음'이다. 이는 修證이 시간적 인과관계를 넘어 동시인과(同時因果) 혹은 상의성(相依性)을 지니고 있음에 대한 믿음이다. 즉 修가 있는 자리에 證이 있고 證이 있을 때 修가 있어 修와 證은 동시인과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증불이에 대한 믿음이 석존의 깨침인 연기(緣起)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수증의 연기적 표현인 수증일여에 대한 믿음 下에 앉는 것이다. 그러한 초심으로 앉게 되면 그 자체가 좌불이 된다. 그래서 도겐은 "초심(初心)의 좌선은 최초의 좌선이며 최초의 좌선은 곧 최초의 좌불(坐佛)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좌선행이 기와를 가는 수행이다. 모든 제불(諸佛)은 바로 그 기와 가는(磨塼) 좌선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었다. 그래서 도겐은 남악의 말을 뒤집어 "어찌 좌선을 해서 부처가 되겠느냐(坐禪豈得作佛耶)"를 "좌선을 해야만 부처가 된다"고 말한 것이다. 즉 부처가 되는 것은 좌선과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겐은 "좌선을 배우려면 좌불을 배워야 한다"고 한 것이다.


 "고경(古鏡)도, 명경(明鏡)도 기와를 가는(磨塼) 것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많은 거울이 磨塼(기와를 갈다)에서 왔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불조의 말을 알 수 없고, 설법을 이해할 수 없으며, 숨결을 경험할 수 없다."


6. 나가면서


「불성」권을 통해 도겐이 전하려 한 것은 '지관타좌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