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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겐의 수증관이 지닌 독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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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도겐의 수증관이 지닌 독특성
도겐은 1240년 이후 일본 임제선과 자신의 수증관과의 차이를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도겐이 고심했던 흔적을 우리는「普勸坐禪儀」에서 엿볼 수 있다. 「普勸坐禪儀」는 도겐이 널리 좌선을 알리기 위해 귀국하자마자 저술한 것으로, 坐禪行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도겐이 1233년에 天福本「普勸坐禪儀」을 썼는데 1243년에 가서 그 수정본인 流布本「普勸坐禪儀」을 저술했다는 사실이다. 왜 도겐은 천복본의 내용에 수정을 가했을까? 천복본의 어느 부분이 잘못 표현된 것인가, 아니면 천복본을 쓴 후에 그의 수증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또 兩「普勸坐禪儀」의 수증관은 위에서 살펴본 「불성」권의 수증관과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兩「普勸坐禪儀」의 수증관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1. 兩「普勸坐禪儀」의 수증관 비교
(1) 「普勸坐禪儀」에 대한 전통종학의 해석
도겐은「普勸坐禪儀」에서 수행자의 심리적 상태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좌선하는 身心 자세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즉 그는 「普勸坐禪儀」를 통해 좌선시 어떻게 몸의 자세를 취해야 하며, 좌선하는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좌선행법과 자신의 수증관을 함께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1233년에 저술된 天福本「普勸坐禪儀」와 10년 후 1243년에 쓴 流布本「普勸坐禪儀」사이에 수증관을 드러내는 표현상의 차이가 있다.
양 저술상의 차이에 대해서 전통종학에서는 도겐 내에 사상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해 왔다. 즉 전통종학자인 鈴木格禪은 천복본과 유포본을 비교하면서 “유포본에는 自筆本(天福本)의 어구가 삭제되고, 대신 새로운 말이 첨가되었으며, 동일한 부분에서도 그 의미를 달리 하는 어구로 교체된 곳이 여러 군데 있음”에 주목한다. 또한 ‘坐禪의 要術’이라고 보는 측면도 저술에서 달리 나타난다는 것이다. 천복본에서는 “妄念이 생기면 그 즉시 妄念임을 알아차려라. 〔그것이 妄念임을〕 깨달으면 妄念이 사라진다. (이렇게) 오래도록 모든 緣을 잊으면 저절로 (좌선의 상태와) 한 덩어리가 된다. 이것이 좌선의 要術이다”라고 한다.
그 반면 유포본에서는 “산처럼 우뚝 坐定하여 不思量을 思量하라. 不思量을 어찌 思量하랴. 非思量, 이것이 坐禪의 要術이다”라고 한다. 鈴木은 이러한 차이에 대해 “유포본은 천복본에 잔재되어 있던 宋朝禪의 余薰을 나타내는 語句나 習禪的 傾向을 드러내는 字句나 修辭를 완전히 없앴다”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도겐이 유포본을 저술한 것은 천복본에 남아있던 宋朝禪的인 면을 없앰으로써 宋朝禪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도겐 내에 사상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본다. 鈴木은 그것은 유포본에는 天福本에 보이지 않는 非思量과 不圖作佛이 나오는데 도겐이 이를 坐禪의 要術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도겐이 천복본에서 坐禪의 要術이라고 본 것과 유포본의 그것이 다른 것은 도겐의 수증관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라고 鈴木은 해석한다. 즉 「普勸坐禪儀」의 내용상의 차이는 도겐 자신의 부단한 내면적 苦鬪 위에서 이루어진 변화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兩「普勸坐禪儀」의 차이에 대한 鈴木의 해석은 그의 개인적인 견해만이 아니라 전통종학도 그렇게 보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鈴木이 말하듯이 도겐이 유포본을 저술한 것은 천복본에 잔재된 禪定사상에서 완전히 탈피하고 宋朝에 유행했던 待悟禪을 철저하게 부정한 것으로 본다. 또한 그 증거로 천복본과 유포본의 坐禪의 要術이 다름을 들고 있다.
鏡島元隆 역시 “選述 年月日은 확실치 않으나...... 「普勸坐禪儀」가 도겐에 의해 수정된 것이 밝혀진 이상, 천복본「普勸坐禪儀」는 옛 것이고 유포본은 도겐이 새로 택한 것이 확실하다”라고 말하면서 유포본의 특색은 ‘修證一等의 좌선을 강조함’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修證一等이라는 표현은 천복본 「普勸坐禪儀」가 나오기 2년 전에 選述된 「辯道話」에 이미 나오고 있지 않은가? “佛法에는 修證이 一等이며....修 외에 證을 기대해선 안된다.” 그렇다면 「辯道話」보다 2년 후에 저술한 천복본「普勸坐禪儀」은 「辯道話」의 수증관을 버리고 다시 宋朝禪을 취했다는 의미인가? 이러한 전통종학의 해석이 지닌 문제점에 대해서 우에다(上田閑照)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리고 있다.
(2)「普勸坐禪儀」의 수증관에 대한 또 다른 해석
우에다(上田閑照)는 도겐이 「辯道話」에서 이미 밝혔듯이 천복본 역시 유포본과 마찬가지로 修證一等의 수증관에서 저술된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도겐이 천복본에서 말한 좌선이나 「辯道話」에서의 좌선은 모두 修證一等으로서의 坐禪이라는 것이다.
그럼, 천복본과 유포본의 차이는 어떻게 보는가? 천복본은 ‘正念’을 중심으로 한 수증관인 반면, 유포본은 ‘正法’을 중심으로 한 수증관이라는 것이다. 즉 우에다는 전통종학의 해석은 마치 유포본이 천복본과 달리 돌연히 형성된 것으로 보는데 그렇다면 유포본에서 말하는 비사량은 공허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종학의 주장은 좌선을 이데올로기화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유포본을 천복본의 연계성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우에다는 兩「普勸坐禪儀」를 연속선상에서 보고자 한다.
그는 도겐이 유포본을 저술한 것은 천복본에 나오는 ‘自成一片’을 ‘하나의 정지된것’으로 보는 것에 대한 부정이지, 전통종학의 해석처럼 自成一片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럼 우에다는 천복본과 유포본의 좌선관을 같다고 보는가? 만일 그렇다면 천복본과 유포본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에다는 ‘좌선을 하나의 原事實’로 봄으로써 양자를 하나의 연속성 안에서 보고자 한다. 즉 도겐은 천복본 「보권좌선의」를 ‘하나의 입장’으로 볼 위험이 있으므로, 이를 수정하여 유포본을 저술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종학처럼 유포본이 천복본에서 말한 正念사상에서 탈각한 것으로 보더라도, 이는 좌선이라는 ‘원사실’에 근거하여 ‘하나의 입장’으로 보려는 正念사상을 없애고자 한 것이지 좌선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에다는 도겐이 하나의 입장으로서 볼 위험성이 있는 正念사상을 탈각시키고 좌선을 正傳의 佛法 즉 ‘正法’으로서 구축한 것이 바로 유포본이라는 것이다. 즉 유포본은 좌선을 正法의 原事實로 보고 원사실로서의 좌선이 바로 도겐이 가르쳐온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에다는 천복본이 ‘正念’이라는 좌선을 원사실로 삼았다면 유포본에서는 ‘兀兀과 坐定’이라는 좌선을 원사실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도겐은 천복본 이전에 저술된 「辯道話」에서 ‘自受用三昧’를 말하고, 유포본 「普勸坐禪儀」 이후에 쓰여진 『정법안장』「三昧王三昧」에서는 “結跏趺坐가 三昧王三昧”라고 말한다. 이것은 도겐의 수증관이 천복본에서 유포본으로 변화되었다기보다 일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에다는 말한다. “覺을 하나의 입장으로 봄을 부정하는 것이 (도겐이 말한) '좌선'이며 그것이 바로 비사량이다.” 이와 같이 우에다는 좌선을 하나의 원사실로 봄으로써 兩「普勸坐禪儀」의 연속성을 주장했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兩「普勸坐禪儀」저술을 둘러싼 해석상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에다는 천복본과 유포본이 도겐의 수증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같은 수증관을 달리 표현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은 전통종학과는 달리 양자를 연속선상에서 보긴 하지만 그의 해석에도 한계가 있다. 그것은 그가 兩「普勸坐禪儀」에서의 좌선을 ‘原事實’로 본다는 점 때문이다. 그가 말한 ‘원사실로서의 좌선’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에다는 좌선을 ‘大前提’로 보거나 하나의 ‘土臺’로 본다. 즉 대전제로서의 지관타좌가 천복본에서는 ‘自成一片’이고 유포본에서는 兀兀坐定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전제’이자 ‘토대’인 좌선에 즉하여 좌선과 한 덩어리가 된 상태가 바로 自成一片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천복본의 自成一片이 좌선하는 자의 내면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유포본의 非思量은 약산과 제자의 문답에서 나온 것처럼 ‘올올좌’를 말한다는 것이다.(참조) 따라서 천복본과 유포본의 차이는 전통종학에서 주장하듯이 宋朝禪的 性格의 有無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라 ‘자각적 사실로서의 좌선’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도겐이 말한 좌선이 대전제로서의 ‘원사실’인가? 도겐의 좌선을 ‘전제된 무엇’으로 보려는 것은 도겐의 本證妙修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우에다의 도겐해석은 그가 속해있던 京都學派의 연구방법론에 입각한 도겐 이해방식이라고 본다. 교또학파의 도겐이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도겐이 지닌 시대적 문제의식을 배제한 채, 초역사적인 보편성 안에서 도겐사상을 해석하는데 있다.
천복본과 유포본을 長蘆宗賾의 「坐禪儀」과 비교할 때 천본본에 나오는 坐禪의 要術은 長蘆宗賾의 「坐禪儀」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그 내용 중의 ‘念起卽覺’은 煩惱妄念이 일어난 것을 본인 스스로 자각하는 것을 말한다. 念起란 妄念이 일어난 無明의 입장으로, 좌선 중에 망념이 일어난 사실을 자각하면, 곧바로 자신의 불성(본래심)으로 되돌아가므로 번뇌 망념은 곧 없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自成一片은 선이나 악, 일체의 차별심과 사량분별이 사라진 상태 즉 주관과 객관과 같은 상대성이 없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천복본에서 말하는 좌선은 善惡, 凡聖, 取捨 등의 상대적이고 분별적인 망념이 일어남을 자각하고, 본래심으로 돌아가는데 있다. 宗賾의 「坐禪儀」을 보면, 念起卽覺 앞에 ‘一切善惡 都莫思量(일체의 선악을 모두 사량하지 말라)’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는 바로 유포본에 나오는 비사량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비록 천복본에서는 이를 생략하지만, 도겐이 宗賾의 「坐禪儀」를 인용했다는 사실은 이 표현 또한 천복본 저술시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천본본과 유포본은 같은 내용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양자가 내용상 차이가 없다면 왜 도겐은 굳이 유포본을 저술했을까?
도겐이 천복본을 유포본으로 수정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각 「보권좌선의」를 썼을 당시 그의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겐이 천복본에서 ‘禪定’을 중시한 것은 수행을 등한시한 천태본각사상 중심의 천태종, 그리고 천태본각사상과 깊이 연루된 달마종에 대한 도겐의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즉 도겐은 禪定을 등한시하고 顯在卽佛만을 강조하는 천태종과 달마종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禪定을 강조한 천복본 「普勸坐禪儀」를 저술한 것이다.
그 후 도겐은 1240년 이래로 당시 일본 임제종과의 대립 갈등 속에서 자신의 수증관이 임제종의 그것과 다름을 자각하고 이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유포본을 지었던 것이다. 도겐은 천복본에서도 修證一等의 입장을 취했으나, 천복본 내에 당시 임제종의 수증관과 혼동될 요소가 잔재되어 있음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삭제하고 자신의 수증관을 잘 드러내 줄 표현으로 수정한 것이 유포본「普勸坐禪儀」이다. 따라서 도겐이 유포본을 저술한 것은 그 자신 안에 사상적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당대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도겐이 지닌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兩「普勸坐禪儀」에서 드러난 차이에 대해 살펴보았다. 도겐이 천복본을 유포본으로 고친 것은 당대 임제종과 자신의 수증관이 지닌 차이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볼 때 兩「普勸坐禪儀」의 차이는 도겐의 수증관 변화에서 온 것이라기보다, 도겐이 중국선종과 자신의 수증관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수정작업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도겐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本證妙修의 수증관을 지녔으며 이 입장은 시종일관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겐은 兩「普勸坐禪儀」에서 일관된 수증관을 보이고 있으며 「普勸坐禪儀」의 수증관은 「불성」권의 수증관과도 일맥상통한다. 도겐이 천복본을 유포본으로 수정하면서 택한 표현은 ‘非思量’이다. 비사량은 藥山惟儼(751-834)에게서 나온 표현이다. 도겐은 유포본 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비사량을 언급하고 있다. 그럼 도겐이 말한 비사량의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2. 도겐에 있어 非思量의 意味
도겐은 유포본 「普勸坐禪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뚝 坐定하고 不思量을 思量하라. 不思量은 아무런 思量도 하지 않는 것이다. 非思量 이것이 곧 坐禪의 要術이다.” 우뚝 선 兀兀地로서 좌선한다는 것은 우뚝 선 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좌선하는 것을 의미한다.
산과 같이 단단히 앉아있는 兀兀坐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이것은 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몸으로만 不動의 자세만을 취하면 된다는 것인가? 도겐의 兀兀坐는 非思量을 통해 비로소 그 의미가 드러난다. 도겐은 『정법안장』「坐禪箴」에서 “兀兀地의 思量은 藥山의 길과 하나”라고 하면서 『景德傳燈錄』제14권에 나오는 藥山과 제자의 문답을 인용하여 兀兀坐의 本旨를 말한다.
大師가 앉아 있는데 어떤 僧이 물었다.
僧 : 〔스님은〕우뚝하게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師 : 생각하지 않음을 생각하고 있다.
僧 : 생각하지 않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師 :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藥山의 제자는 藥山에게 兀兀地의 의미를 묻는다. 兀兀地에서 兀兀은 不動의 모양을 말하고 ‘地’는 상태양상을 드러내기 위한 접미사이므로 兀兀地는 바른 좌선의 자세를 뜻한다. 즉 藥山의 제자는 坐禪行法이 지닌 의미를 물은 것이다. “그렇게 부동의 자세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이 물음 속에서 우리는 제자가 생각하고 있는 좌선의 의미는 깨달음을 지향하는 것이며 거기에는 깨달음을 지향하는 내가 남아있다. 이는 그가 앉아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묻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아직 사량(분별지)의 경지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나라는 주체가 깨닫는데 있어 좌선은 수단일 뿐이다.
즉 그에게 있어 ‘좌선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며 깨달음은 무언가를 사량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스승이 思量하는 내용에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를 품고 있던 제자에게 藥山은 ‘非思量’이라고 답했다.
혹자는 비사량을 불사량이나 사량의 이원성을 뛰어넘는 형이상학적인 세계로 해석하거나, 깨침의 체험이나 상태로 본다. 그러나 약산이 말한 비사량은 불사량이든 사량이든, 일체 사량을 멈추는 것이며 일체법을 보더라도 마음이 물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비사량이야말로 자기를 잊을 때 가능하다. 자기를 잊을 때 비로소 분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희진은 도겐이 말한 비사량을 “단순히 사량과 불사량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없는 절대적이고 단순하면서도 단일한 행동을 깨닫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즉 비사량은 명상에 있어 움직임없는 앉음에 대한 사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사량을 자칫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는 자세를 말하는 것인 양 오해할 여지가 있으나, 이것은 단순히 몸의 자세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겐이 말하려는 비사량은 사량과 불사량을 초월한다는 철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인 ‘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비사량은 의식의 특별한 상태를 말하려 한 것이나 붓다가 되기 위해 닦는 수행이 아니라, 自受用三昧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정법안장』중에는 「坐禪箴」권이 있다. 坐禪箴의 ‘箴’은 병이 났을 때 치유하기 위한 도구를 뜻한다. 따라서 坐禪箴은 좌선수행에서 생긴 병을 치유하는 도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좌선수행에서 생길 수 있는 병은 ‘깨달음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좌선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즉 禪定의 병은 기와를 닦아서 거울을 만들려는데 있다. 그 병을 퇴치하기 위해 나온 것이 坐禪箴이다.
도겐에게 있어 좌선잠은 좌선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데 있다. 도겐이 말하고자 한 비사량은 좌선잠의 의미와 깊은 연관이 있다. 약산이 말한 비사량은 좌선에 관한 제자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약산과 제자가 나눈 문답의 주제는 ‘좌선’이다. 약산이 ‘비사량’이라고 답한 것은 좌선에 대한 답 외 다른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나 심리적인 체험상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도겐에 있어 비사량은 좌선이며 지관타좌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도겐은 좌선이 正法임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그는 좌선을 藥山의 비사량과 연관지어 해석함으로써 자기의 주장이 佛祖를 통해 正傳되어온 것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석존으로부터 36代 藥山에게 전수된 정법안장이 바로 지관타좌요 非思量임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行持」권은 『정법안장』 중 최대의 장편으로 상하 두 권으로 나누어 있다. 도겐은 「行持」권을 통해 諸佛祖들의 行持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上卷에는 석가모니불, 마하가섭을 비롯하여 雪峰義存에 이르기까지 23명, 下卷에서는 보리달마를 비롯하여 天童如淨으로 끝나 11명, 도합 34명, 그 중 반복해서 나온 사람이 2사람이므로 실제 32명이 등장하고 있다. 도겐은 32명의 行持를 각각 소개하고 있는데 그 공통점은 坐禪弁道에 있다.
예를 들어 “平常心是道 卽心是佛”의 句로 유명한 馬祖道一이나 조동종의 開祖인 洞山良价는 20년간, 洞山의 스승인 雲嚴은 40년간 坐禪弁道했다고 한다. 石頭希遷은 돌 위에 초암을 세우고 낮밤을 자지 않고 좌선을 했는가 하면, 道信은 16년간 자지 않고 옆으로 눕지도 않고 마음을 집중하여 좌선에 전념했다고 전한다. 또 長慶慧稜은 靑原行思의 法嗣인 雪峰義存에게 嗣法한 후 雪峰의 제자인 玄沙師備에게 가서 배운지 29년, 그 사이에 좌포가 20개 떨어졌으며 어느 여름에 돌연 大悟했다는 것이다. 또 潙山宗의 開祖인 潙山靈祐는 百丈懷海로부터 법을 받아 大潙山에 올라가서 초암을 짓고 새와 짐승을 친구삼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지낸지 40년, 그 후 천하의 위대한 수행자들이 그에게 모여왔다고 전한다.
無字公案으로 유명한 趙州는 61세에 출가하여 南泉普願에게서 道를 배운지 20년, 80세가 되어 처음으로 化導하고 그로부터 40년을 지냈다고 한다. 끝으로 「行持」권에 나오는 선사는 바로 도겐의 스승인 如淨이다. 如淨은 19세에 교학을 버리고 坐禪弁道에 들어가 65세로 입적할 때까지, 좌선하기를 멈추지 않은 선사로, 도겐은 그에게서 ‘身心脫落으로서의 只管打坐’를 배운 것이다.
이와 같이 도겐은 「行持」권을 통해 조사들의 坐禪弁道를 소개하고 있지만 이것은 다만 조사들이 오랜 세월동안 좌선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행한 좌선행이 非思量의 行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坐禪은) 思量의 皮肉骨髓이며 不思量의 皮肉骨髓”라는 표현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도겐은 藥山의 非思量이야말로 모든 祖師를 통해 正傳되어온 佛法임을 밝히면서 이를 지관타좌의 의미와 연결시켰다. 그는 자신이 말한 지관타좌는 正傳되어온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도겐이 말한 思量과 不思量의 관계는 不染汚와 染汚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3. 不染汚에 대한 도겐의 해석
(1) 不染汚에 대한 종전의 해석
不染汚는 六祖慧能과 南嶽懷讓의 문답에 나오는 표현이다.
六祖: 그 어떤 물건이 왔는가?
南嶽: 무엇이라고 말하면 바로 어긋나 버립니다.
六祖: 다시 수행하고 증득해야 할 것이 있느냐? 없느냐?
南嶽: 닦아 증득하는 일은 없을 수 없으나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六祖: 이 더럽힐 수 없는 것(不染汚)이 諸佛이 지켜온 것이다. 너도 이미 이와 같고 나도 역시 이와 같다.
도겐은 이 얘기를 『정법안장』과 『永平廣錄』의 여러 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정법안장』「卽心是佛」에서는 ‘卽心是佛은 不染汚卽心是佛이며 諸佛은 不染汚諸佛’이라고 한다.「洗淨」에서는 ‘佛祖가 護持해온 修證이며 不染汚’이라 한다. 또「行持」에서는 ‘不曾染汚의 行持’, 「坐禪儀」권에서는 ‘修證自不染汚’으로 나온다. 이와 같이 도겐은 혜능과 남악의 선문답 자체를 언급하거나 그 중 몇 구절을 뽑아 불염오에 대해 거듭 언급하고 있다. 그럼 도겐의 불염오는 중국선종에서 전수되어온 불염오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도겐은 중국선종의 불염오를 그대로 전수받은 것인가, 아니면 이를 새롭게 해석했는가?
불염오수는 혜능과 남악 간의 대화에도 나온 표현이다. 南嶽은 ‘什麽物恁麽來’라는 혜능의 질문에 대해 ‘說似一物卽不中’이라고 대답한다. “설사 하나라고 말씀 드리더라도 맞지가 않습니다. 이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는 뜻으로 자신이 깨친 바를 밝힌 것이다. 이에 혜능은 “깨달았다면 다시 수행하고 증득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이는 이미 깨달았는데 더 닦아서 證할 것이 있는가라는 의미이다. 이에 南嶽은 다시 ‘수행하되 다만 染汚되는 일이 없는 불염오수를 해야 한다’라고 응한 것이다. 여기서 말한 불염오수는 ‘수행하되 오염되지 않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실제로 ‘오염’이라는 표현은 중국불교 중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馬祖의 示衆에 나오는 독특한 표현이다.
道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汚染하지 않도록 하라. 무엇이 汚染인가. 다만 生死의 마음을 내고 造作하여 趣向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오염이다. 만약 곧바로 그 道를 알고자 한다면 平常心이 바로 道인 것이다.
마조는 생사심으로 造作하고 趣向하는 것을 汚染이라고 한다. 마조가 말한 汚染이라는 표현은 『二入四行論』의 巧僞나, 『臨濟錄』에서의 人惑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즉 오염이나 巧僞, 人惑은 모두 작위적 분별심으로, 조작하는 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불염오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馬祖의 平常心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그것은 마조가 “평상심이란 조작함이 없고 是非가 없으며 取捨가 없고 斷常이 없으며 범부나 성인이라고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칫 평상심을 그저 누구나 지닌 중생심과 동일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마조의 제자 南泉은 ‘평상심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졸리면 자고 앉고 싶으면 앉는 것이며, 더우면 시원한 것을 먹고 추우면 불을 쬔다”고 답한다. 이와 같이 일상적인 것 그대로를 평상심이라 규정하는 측면에서 우리는 마조의 평상심을 단순한 중생심으로 혼동할 가능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조가 말한 ‘평상심’으로서의 수행은 미혹한 중생이 행하는 오염수가 아니라 깨친 자에게서 나오는 ‘불염오수’이다. 다시 말해 평상심은 조작과 시비, 분별심에서 벗어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건 바로 어떤 집착도 버린 채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汚染’이라는 표현이 마조에게서 처음 나온 것이라면, 불염오를 주제로 한 혜능과 남악의 선문답은 마조 이후에 나온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마조보다 앞선 혜능과 남악의 문답에서 불염오수이 나온 것은 이 문답이 누군가가에 의해후대에 꾸민 얘기임을 알 수 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를 꾸몄을까?
혜능과 남악에 관한 史的 傳記는 불명확한 점이 많고 『寶林傳』 이후의 傳燈史에 실린 南嶽의 전기도 실제 행적을 전하는 기사는 극히 적다. 당시 혜능의 존재는 신회의 남종운동의 성과에 의해 이미 6조로 확정되어 있었으나, 남악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6조의 正系를 이은 사람이 남악임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었다. 마조의 스승인 남악은 종밀과 신회의 제자인 靈坦(709-816)의 碑文 등에 전하는 것처럼 開法하지 않고 은거한 무명의 선승으로 일생을 산 인물이다. 이렇게 볼 때 혜능과 남악의 선문답은 마조계 사람들이 남악이 마조에게 정법을 건네준 것을 알리고자 만들어낸 얘기임을 알 수 있다. 즉 혜능과 남악의 선문답은『寶林傳』의 편집과 더불어 혜능―남악―마조로 이어지는 조사선의 사상사적인 전승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조작된 이야기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염오의 본래 의미는 馬祖禪사상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불염오의 얘기가 혜능―남악―마조를 하나의 法脈으로 보려는 의도에서 마조계의 사람들에 의해 꾸며진 것이지만, 이 얘기가 조사선 전통을 잇는 핵심으로 등장하는 점에서 불염오의 수증관은 혜능―남악―마조로 이어진 중국선종의 수증관의 핵심을 드러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불염오수의 근거가 馬祖禪에 있다면, 마조에 있어 불염오수와 좌선의 관계는 어떠한가?
(2) 중국선종에서의 不染汚修와 坐禪의 관계
종밀은 ‘홍주종은 隨緣用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自性用은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라 하여 홍주종이 自性用과 隨緣用을 구별하지 않았음을 비판했다.
홍주종에서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나 생각을 움직이는 것이나 손가락을 퉁기는 것이나 눈을 움직이는 것과 같이 모든 동작이나 행위를 불성의 작용으로 보고 있다. 즉 모든 貪瞋癡나 善惡의 행위, 苦樂을 느끼는 이 모두를 불성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종밀은 홍주종이 自性의 불변하는 用 즉 眞心의 體 가운데 있는 知의 측면을 잘 몰라 일상생활의 모든 활동을 眞心의 用으로 보았음을 비판한다.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自性用으로 본다는 것은 자칫 妄心을 포함한 중생심 전체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조선은 凡과 聖이라는 차별을 없애고 凡과 聖 모두를 그대로 부처라고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언어나 동작, 탐하고 성내며 선악을 지어 고락을 받는 것이 모두 불성이며 부처이다. 이 밖에 달리 부처가 없다’라고 말한 것은 홍주종 내에 수행을 소극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自性用과 隨緣用 사이에 구별이 없다면 과연 수행의 필요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야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상행위를 自性用으로 본 마조의 견해는 ‘한번 깨닫게 되면 그것이 영원한 깨침’이므로 그 후의 行은 결코 미혹되지 않는다는 돈오에 대한 강한 믿음을 전제하고 있다. 『馬祖語錄』을 보면 한번 깨닫게 되면 영원한 깨달음이어서 다시는 미혹에 빠지지 않으니 마치 해가 돋으면 어둠과 함께 하지 않음과 같다. 지혜의 해가 돋으면 번뇌망상은 생겨나지 않는다. 마음과 경계를 모두 깨달으면 망상이 생겨나지 않으니, 망상이 나지 않으면 그것이 곧 無生法忍이다. 본래 있었으며 지금도 있기 때문에 修道나 坐禪에 의지하지 않는다. 닦지 않고 앉지 않음이 곧 如來의 淸淨禪이다.
여기서 마조는 ‘닦지 않고(不修) 앉지 않음(不坐)이 곧 如來의 淸淨禪’이라고 한다. 이는 道不用修(道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와 일맥상통한다. 그럼 마조가 말한 道不用修이나 不坐는 좌선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인가? 이는 마치 마조가 수도나 좌선을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으로 보고 있다는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마조의 不修, 不坐와 평상심은 그가 말한 불염오의 의미와 연결시켜 이해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마조가 말한 不修, 不坐는 좌선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汚染修로서의 좌선 즉 깨침을 얻기 위해 닦는 수단으로서의 수행을 거부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마조가 비판한 것은 오염수로서의 좌선임을 알 수 있다. 즉 마조는 돈오가 전제되지 않은 좌선을 오염수로 간주하고 이를 비판한 것이다 이것이 마조가 말한 오염의 의미이다.
이렇게 볼 떄 그가 말한 不坐에서의 ‘坐’는 오염수로서의 앉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조에 있어 不坐에서의 좌선은 그가 말한 평상심으로서의 불염오와 구별될 수 밖에 없다.
좌선에 대한 마조의 견해는 신회의 좌선관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신회 역시 종전의 좌선을 깨침의 수단으로 보았기 때문에 좌선에 대해 ‘念不起 見本性’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신회가 좌선을 다시 정의한 것은 ‘좌선’을 ‘앉는 수행’에서 ‘본성을 자각한다(見한다)’는 ‘悟’의 의미로 전환시켰음을 뜻한다. 즉 신회는 돈오의 관점에서 좌선을 다시 정의한 것이며, 실제로 몸으로 앉는 수행을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신회는 수단으로서의 좌선수행을 비판하고 ‘無念’으로서의 수행을 말했다. 이는 마조가 말한 불염오수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壇經』에 나오는 無念에서의 ‘念’은 妄念이 아니라 眞如의 用으로 眞如本性이 일으키는 念을 의미한다. 즉 無念은 본성이 妄念에 가려있다고 보아 망념을 제거하여 본성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본래 眞如本性이 청정함을 믿어 相을 떠난 念으로서 그 청정성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이렇게 볼 때 無念은 수행에 대한 인식적 전환을 의미한다. 즉 신회는 客塵을 떨쳐 버리기 위해 좌선을 거부하고, 진여본성의 청정을 念함에 중점을 두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무념을 진정한 修로 보고 좌선을 念不起 見本性으로 재해석한 신회의 좌선관 안에는 구체적인 좌선수행을 오염수 즉 깨침에 대한 집착을 지닌 수행으로 해석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신회의 좌선관은 그의 불성사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신회가 좌선을 見本性으로 해석한 것은 불성을 常住하는 것으로 본 신회의 불성관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회의 이러한 해석에서 見本性의 의미는 상주불변하는 불성에 대한 자각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돈오적 측면에서 좌선을 해석함으로써, 결국 좌선수행 자체는 깨침의 수단에 머무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신회에서는 돈오점수적 측면이 드러난다. 이는 신회가 북종선을 비판한 기록인 『菩提達摩南宗定是非論』에서 나타나는데 이러한 사유는 신회의 법맥을 이은 종밀의 돈오점수설과 무관하지 않다. 신회는 무슨 연유에서 북종선의 수행론을 비판하면서도 돈오 후의 수행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이에 대해 石井修道는 신회가 자신이 주장한 극단적인 돈오론이 그저 북종선 비판만을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에서 돈오후 수행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 아닐까라고 해석한다.
한편 신회는 돈오적 자연주의의 해방적 힘을 분명히 의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실존의 문제로 다가오는 현실적 괴로움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깨달음 후에도 수행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해석도 있다. 즉 신회가 돈오점수를 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돈오의 측면으로 실존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밀이 마조의 법맥에서 하택신회 쪽으로 기울어진 것도, 자신의 실존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마조에게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종밀이 홍주종 내에 수행의 취약점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음은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돈오 후에도 여전히 우리의 실존은 구체적인 수행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상적으로나 이론적으로는 한번의 확실한 깨달음이면 될지 모르나, 우리 실존 안에 드리운 뿌리깊은 번뇌망상은 한 번의 깨달음으로 완전히 퇴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밀이나 보조국사 지눌에서 볼 수 있는 돈오점수적 측면은 단 한번의 깨침으로 완전한 광명에 영원히 머물 수 없다는 실존적 자각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신회에게서 돈오점수적인 측면이 보이긴 하지만 신회의 중심사상은 역시 ‘돈오’이다. 그러기에 그에겐 좌선을 깨달음의 수단으로 보는 측면이 강한 것이다. 중국선종의 좌선관에 대한 전통종학의 견해는 이같은 신회의 좌선관에 근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불염오수와 좌선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조와 신회는 종밀이 지적하듯이 眞心의 用을 보는 관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좌선을 깨달음의 수단으로 보는 측면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좌선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데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신회의 북종선 비판에서 잘 드러난다. 그것은 북종선 내에 이러한 좌선관이 잔존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신회에서 이어온 중국선종의 좌선행은 우리가 지금까지 고찰한 도겐의 좌선행과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좌선과 불염오수의 관계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다. 도겐의 수증관은 중국선종과는 다르다. 그는 좌선을 불염오수와 불가분의 관계로 해석한다. 다시 말해 도겐에게 있어 좌선은 깨달음의 수단이 아니라 불염오수인 것이다.
(3) 도겐에 있어 不染汚의 의미
우리는 이미 좌선관이 불성관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좌선을 깨침의 수단으로 본 신회의 좌선관은, 불성을 常의 측면으로 본 신회의 불성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도겐의 좌선관 역시 그의 불성관에 근거하고 있다. 도겐은 常으로서의 불성을 거부한다. 무상으로서의 불성은 점진적으로 깨달아가는 의미의 불성이나 영원불변한 의미의 불성이 아니다. 이는 前後際斷이라는 시간관에 기초하여 ‘지금 여기’에서 현현하는 불성을 의미한다. 도겐의 좌선관은 바로 이러한 무상불성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무상인 불성 안에서 좌선이기에 이는 깨달음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불성의 현현인 것이다.
그래서 도겐은 좌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것이다. “坐禪은 習禪이 아니다. 大安樂의 法門이며 不染汚의 修證이다.” 신회는 좌선을 깨침의 수단으로 간주하지만 도겐은 좌선을 不染汚修로 보았다. 이와 같이 좌선을 불염오수로 보았음은 ‘證을 떠나 修를 말할 수 없다’는 그의 표현에 잘 드러난다.
‘오로지 다만 앉을 뿐’이라는 지관타좌는 바로 그러한 수증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깨침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행하는 좌선행은 그 자체가 證의 行인 것이다. 그러기에 證은 ‘지금 여기’에서 행하는 좌선행을 떠나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좌선은 성불을 지향하는 修가 아니라 그 자체로 불염오의 수증임을 깨닫게 된다.
이상에서 우리는 도겐에게 있어 좌선이 곧 불염오수임을 살펴보았다. 이와 같이 좌선이 불염오수임은 깨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깨침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와질 때 그러한 우리의 시각은 좌선 뿐 아니라 일상사까지 달리 바라보게 한다.
『정법안장』「洗淨」과 「洗面」권은 이를 보여준 것이다. 도겐은 「洗面」권에서 『法華經』에 나오는 “기름을 갖고 몸에 바르고 먼지를 씻어내고 새로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면 안도, 밖도 깨끗하게 된다”라는 표현을 인용하여 이를 第一의 佛法이라고 말한다. 또한 도겐은 釋尊의 成道 광경을 떠올리면서 석존이 道場에 앉아 成佛하려 할 때 먼저 가사를 빨고 身心을 청결하게 했음을 말한다. 도겐도 이를 ‘不染汚修’라고 칭한다.
좌선을 깨침의 수단으로 보면 일상사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좌선과 일상사를 깨침의 수단으로 보면 깨침의 의미 또한 인식적 차원이나 마음을 닦는 차원에 국한되어 버린다. 그러면 몸의 수행과 마음의 수행을 이원화시킬 위험이 있다. 사실 선종은 心卽佛이라 할 정도로 마음을 지나치게 중시해 오지 않았던가?
좌선을 불염오수로 봄은 일상사의 의미 또한 불염오수로 바라보게 한다. 이는 몸수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는 자칫 우리가 몸과 마음을 이원화시킬 위험에서 구제해준다. 우리가 혹시 몸보다 마음을 더 중시해 온 경향을 지녔다면 그것이 지닌 왜곡성을 자각케 해준다. 이러한 관점이 도겐이 세정 세면을 통해 가르치고자 한 바이다. 마음닦음만 중시하는 이들은 자기 몸닦음을 소홀히 생각할 수 있다. 도겐은 당시 大宋國의 수행자들에게서 이러한 폐단을 보았다.
佛法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佛道에 참가하지 않은 어리석은 자는 ‘몸을 씻는 것은 몸의 때를 씻는 것뿐이다. 그러나 몸 안에는 오장육부가 있다. 이를 하나하나 씻지 않으면 진정으로 깨끗하게 될 수 없다. 따라서 무리하게 몸의 표면만을 닦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이는 마음닦음만을 깨침을 도달해야 할 구극의 목적지로 보고 마음만을 닦아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도겐은 당시 중국선종의 수행을 문제삼아마음수행만을 통해 깨침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고자 한다. 도겐 당시 大宋國에서는 法眼이 없는 자로 손톱이나 머리를 기른 僧들이 많았다고 한다. 도겐은 여정에게서 “長髮, 長爪는 俗人도, 出家者도 아니고 畜生에 지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들었다. 이는 당시 선승들에 대한 如淨의 비난이다. 도겐은 如淨에게서 청정한 마음은 청정한 몸과 더불어 이루어짐을 배웠다. 그러나 도겐은 이러한 如淨의 가르침을 깊이 숙고하면서 자신의 문제의식과 연결시켜 이를 재해석한다. 즉 도겐은 中國僧들에게서 보여지는 모습은 인식적 깨침인 頓悟만을 중시하고, 좌선을 성불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온 송대 간화선의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겐은 불염오수를 좌선과 일상성 안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종래의 문제들에 대응하고자 했다. 도겐은 『正法眼藏』「洗淨」권에서 洗淨의 구체적인 作法에 대해서 7-80%를 할해하고 있다. 수건 사용방법, 옷벗는 방법, 손씻기 위한 통사용법, 용변법, 용법을 끝낸 후 竹이나 종이에 의해 洗淨하는 작법, 잘못 통을 더럽혔을 때 주의할 것 등이 그것이다. 왜 도겐은 이토록 자질구레한 행위들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을까?
도겐은 이러한 작법이야말로 불국토를 정화하고 장엄하게 하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닦음만을 중시해온 자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고 하찮은 것일 수 있는 洗淨의 작법들이 도겐에게는 모두 불염오수인 것이다. “대소변을 씻는 행위 외에 따로 佛道나 佛法은 없다”(「洗淨」)는 도겐의 표현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도겐이 그토록 강조해온 본증묘수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좌선이 불염오수일 때 비로소 우리의 일상행위도 불염오수일 수 있다. 도겐은 ‘證을 떠난 修’만이 아니라 ‘修를 떠난 證’도 거부한다. 이러한 도겐의 관점이야말로 천태본각사상을 비롯하여 중국선종 내에 내포된 수증의 문제를 푸는 열쇠인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비사량과 불염오수에 대해 살펴보았다. 도겐은 중국 조사선 전통에서 전수되어온 약산의 비사량, 혜능과 남악의 불염오수와 자신의 지관타좌를 연결시켜 자신의 수증관은 조사들에 의해서 正傳되어온 正法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즉 “不染汚야말로 諸佛이 지켜온 세계”라고 말함으로써 불염오수가 과거불로부터 正傳되어온 불법임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을 통해 도겐은 자신의 좌선관이 당대 중국선종의 좌선관과 다름을 부각시켰다. 이는 作佛에 대한 도겐의 해석에서 보다 잘 드러나고 있다.
4. 作佛에 대한 도겐의 해석
作佛은 그의 수증관의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5조와 6조의 문답에서 작불 문제를 다루었다. 여기서는 중국선종의 작불과 도겐의 작불에 대해비교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남종선 사상의 기반이 되어온 돈오사상은 ‘나는 이미 부처’라는 祖門에서의 믿음에 바탕하고 있다. 이 믿음에 근거할 때 성불하기 위해 좌선한다는 것은 모순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부처’이면서 또 다시 성불에 대한 집착을 지니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불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는 이상, 이는 온전한 깨침일 수 없다. 따라서 돈오사상에 근거할 때 좌선행은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도겐이 문제삼고자 한 작불의 문제이다. 작불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예로 馬祖와 南嶽의 일화를 들 수 있다.
南嶽: 大德은 좌선을 해서 무엇 하려 하시오.
道一: 부처가 되려 합니다.
(南嶽은 하나의 기와를 가져다가 돌 위에 문지른다.)
道一: 스님 무얼 하시렵니까?
南嶽: 거울을 만들려 하오.
道一: 벽돌을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南嶽: 좌선을 한들 어찌 부처를 이루겠는가.
江西: 그럼 어찌 하여야 하겠습니까?
南嶽: 사람이 수레를 몰고 가는데 수레가 가지 않으면 바퀴를 때려야 하겠소. 소를 때려야 하겠소.
(馬祖는 대답하지 않으니 대사가 다시 말했다)
南嶽; 그대는 좌선을 배우는가, 앉은 부처를 배우는가. 만일 좌선을 배운다면 좌선은 앉는데 있지 않고, 만일 앉은 부처를 배운다면 부처는 일정한 형상 이 아니오. 머무를 곳이 없는 법에 대하여 취하고 버리려는 생각을 내지 마시오. 그대가 만일 앉은 부처가 된다면 그는 부처를 죽이는 일이요, 앉는 일에 집착된다면 그 이치를 통달할 수 없소.
우선 우리는 위 문답에서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문답에 대해서 전통종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좌선을 통해서 깨침을 얻는 것이 아니다. 깨침은 이미 주어져 있다. 깨침은 번뇌의 無自性을 자각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번뇌의 無自性을 모르고 번뇌를 없애고자 좌선에 집착해선 안된다.” 이러한 해석에는 두 측면의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번뇌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모두 본래성불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의 존재성이 본래성불이므로 성불하기 위해 닦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위 문답은 불염오의 수증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는 좌선해서 성불하고자 하는 작위성과 분별성을 비판한 것이다. 南嶽과 馬祖의 問答에서 남악이 ‘좌선해서는 작불할 수 없다’고 하자, 마조는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如何卽是)”라고 묻는다. 여기서 馬祖의 如何卽是은 ‘作佛이 목적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좌선을 해야 합니까’라는 의미로 좌선과 作佛의 관계를 물은 것이다. 즉 마조의 질문 속에는 좌선을 성불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좌선해서 성불하려 하던 마조는 “좌선해서 어떻게 成佛할 수 있겠느냐?”는 남악의 물음에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럼 어떻게 하면 옳습니까(如何卽是)”라고 남악에게 물은 것이다.
‘如何卽是’라는 물음에 대해 도겐은 독특한 해석을 내린다. “이 如何卽是는 물음인 동시에 답”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도겐은 이것을 마치 친구가 친구를 만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즉 자신에게 상대가 친구라면, 상대에게도 내가 친구이듯이 ‘如何卽是는 一時에 出現한다’는 것이다. 如何卽是가 一時에 드러난다는 표현을 통해 도겐이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좌선과 작불의 동시성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즉 도겐은 이를 통해 좌선하는 때가 곧 성불의 때임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남악은 마조에게 ‘若執坐相 非達其理’라고 했는데 이는 “앉는 일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다”라는 의미로 이해해 왔다. 즉 앉는 일을 하나의 작위로 보거나 분별심을 지닌 수행에 대해 경계하기 위함으로 해석해온 것이다.
그러나 도겐은 이 표현을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하고자 한다. 즉 執坐를 ‘執坐相(앉는 일에 집착한다)’의 의미에서 ‘좌선에 철저하다’는 뜻으로 해석함이 그것이다. 또한 非達其理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남김없이 진리에 도달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다시 말해 ‘앉는 일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다’라는 종래의 해석으로부터 ‘좌선에 철저한 것이야말로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라는 의미를 전환시킨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좌선’을 성불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를 부처행으로 보는 그의 수증관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해 도겐은 悟를 얻는 수단의 의미로부터 좌선 그 자체를 부처행으로 본 것이다. 이는 “坐禪을 배우는 것이 곧 坐佛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 도겐의 표현에도 잘 드러난다. 즉 좌선을 배우지 않는다면 坐佛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坐禪을 배움이 곧 坐佛을 배우는 것’이라는 의미는 佛로서 앉아있음을 배운다는 의미이다. ‘佛’로서 앉아있는 것은 거울을 만들기 위해 기와를 닦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와를 닦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성불’하기 위해 좌선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좌선할 뿐’인 것이다. 도겐은 『정법안장』「古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大聖도 〔기와를〕 닦는 법이 없다면 어디에 爲人의 방편이 있겠는가? 〔사람이 本來人이 되도록 하는〕爲人의 힘은 佛祖의 본질(骨髓)이다. 예를 들어 〔作佛과 같은〕 構得〔행위〕도 〔修證을 전하는〕 家具이다. 家具가 없다면 佛家에 전해지는 일이 없다.
이와 같이 도겐에게 있어 ‘기와를 닦는 행위’는 중요한 家具의 증거가 된다. 즉 ‘기와를 닦는 행위인 좌선’이 곧 佛法을 正傳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家具라는 것이다. 도겐은 기와를 닦는 것을 통해 古鏡의 생명이 유지되어 왔다고 본다. 그래서 도겐은 눈앞의 법 곧 기와를 닦는 작업을 통해 佛의 통로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佛을 보면서도 佛을 알아보지 못하고, 부처를 만나면서도 부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즉 기와를 닦는 자가 바로 佛祖이고 그 행위가 바로 作佛이다. 또한 그 자리가 佛性이 現成하는 자리이다. 이것이 도겐이 말하고자 한 메시지이다.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좌선은 證을 떠나서 말할 수 없다. 證을 떠난 좌선은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작불에 대한 도겐의 해석은 이러한 목적적 좌선관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도겐의 수증관을 접하면서도 우리 안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일면이 있다. 그의 가르침은 깨친자의 입장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과연 도겐의 수증관이 당시에 아직 그의 제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하는 점이다. 도겐은 『정법안장』의 각 권 끝마다 그것이 어디에서 示衆한 것인지 밝히고 있다. 과연 그의 설법을 들은 제자들은 도겐의 말을 이해했을까? 도겐이 철저하게 本證妙修의 입장에서 법을 설했다면 이것은 분명 깨친 자의 입장에서 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깨치지 못한 중생은 그의 메시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상에서 우리는 중국선종의 좌선관과 도겐의 그것 사이에서 드러나는 차이에 대해 살펴보았다. 중국선종의 수행관에서는 돈오를 강조하다 보니 돈오 이전의 수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시각을 지녀왔다. 이러한 측면은 도겐 당시 일본의 천태본각사상에서 극단화되었다. 도겐은 이를 문제삼았고 ‘證은 修를 떠나 존재하지 않으며 修 역시 證 위의 修’라는 本證妙修의 수증관을 펼침으로써 좌선행과 證간에 불가분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도겐은 귀국후 기존의 일본 임제종과의 대립 안에서 자신의 수증관이 중국선종의 그것과 다름을 깊이 인식했고 그 다름에 대해 『정법안장』을 통해 다각도에서 서술하고자 했던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非思量과 不染汚修 그리고 作佛과 관련한 坐禪行의 문제는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겐의 수증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修를 떠나 證이 없고 證을 떠나 修가 없다’는 수증관계이다. 이것을 설하기 위해 도겐은 비사량이 좌선의 다른 표현임을 강조했고, 좌선을 불염오수로 보는가 하면, 洗面, 洗淨과 같은 일상행위 또한 불염오수와 연관지어 해석한 것이다. 작불에 대한 도겐의 해석 역시 그의 수증관인 본증묘수 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Ⅵ. 결론
1.「佛性」권을 통해 본 도겐의 수증관
이상에서 우리는 「불성」권의 내용분석을 통해 도겐의 불성관과 수증관의 상관관계를 고찰해 보았다. 도겐은 「불성」권의 서두에서 ‘一切衆生 悉有佛性’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그것은 종전과 같이 ‘一切衆生 悉有佛性’을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로 풀이하지 않고 ‘一切는 衆生이고 悉有는 佛性’으로 해석한 것이다. ‘悉有는 佛性’이라는 도겐의 새로운 독법에서 우리는 종전의 불성관과 다른 관점에서 불성의 의미를 풀어가고자 하는 도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도겐은 먼저 일체중생실유불성을 慧能이 南嶽에게 준 ‘是什麽物恁麽來’라는 화두와 연관지어 해석한다. 도겐의 이러한 해석 안에는 일체중생실유불성 또한 스승이 제자에게 전수해 준 불법으로 보고자 한 그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이와 같이 도겐은 일체중생실유불성을 선언적 차원에서의 이해에 머물지 않고 수증의 문제와의 상관관계 안에서 재해석함으로써 불성을 선언적 차원의 불법이 아니라 修證을 통해 正傳되어온 불법으로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앞서 우리는 도겐이 지녔던 大疑團이 천태본각사상에 내재된 수행의 무용론에 관한 것임을 언급해 왔다. “우리가 진정 本覺을 지녔다면 굳이 수행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문제가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겐이 품었던 문제의식이 본각과 수행의 상관관계, 특히 ‘본각 위에서 어떻게 수행의 필요성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본각과 수행의 상관관계에 관해 도겐이 품은 의심은 천태본각사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승교의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본래성불을 말하는 대승교의도 도겐이 지녔던 문제의식인 본각 위에서의 수행의 필요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불성」권 역시 천태본각사상과 관련하여 도겐이 품은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도겐이 「불성」권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그의 수증관과 직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통종학에서는 도겐이 「불성」권에서 말한 ‘悉有는 佛性’을 ‘존재하는 모든 것이 佛性의 顯現’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전통종학은 수증의 문제와 직결하여 불성을 해석해 보려는 도겐의 의도를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했다. 그것은 ‘悉有는 佛性’의 의미를 ‘존재하는 모든 것을 佛性의 顯現’이라고 본 전통종학의 해석에서는 수행의 필요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통종학의 해석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이 佛性의 顯現’이라면 중생 역시 깨달음 속에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되므로 굳이 수행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전통종학자들은 자신이 佛이라는 철저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중생의 수행 역시 도겐이 말한 본증묘수로서의 수행으로 보았다.
그러나 전통종학이 말한 ‘본증묘수에 대한 信의 佛法’이 참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身心脫落하는 깨침(悟)’이 필요하다. 悟를 무시한 채 본증묘수를 논하는 것은 비판종학자들이 비판한 것과 같이 佛性顯在論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전통종학은 悟의 문제를 간과한 체 도겐의 본증묘수를 해석하고자 함으로써 도겐의 수증관이 지닌 본래 의미를 왜곡되이 해석해온 경향이 있어왔다.
이와 같이 전통종학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면 도겐이 말한 ‘悉有는 佛性’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도겐은 실유불성론을 펼치면서 ‘是什麽物恁麽來’라는 표현을 쓰는가 하면, 正當恁麽時나 轉法輪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是什麽物恁麽來’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스승이 제자에게 건네준 화두이며, ‘正當恁麽時’는 75권『정법안장』에서 도겐이 쓰고 있는 용법을 볼 때 좌선의 때, 깨침의 때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도겐은 悉有佛性을 是什麽物恁麽來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함으로써 단순히 중생에게 불성이 주어진 것으로 보는 선언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마치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받은 是什麽物恁麽來라는 화두를 갖고 닦아가듯이, 불성을 닦음의 문제와 직결시켜 보고자 함을 의미한다. 즉 이미 불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수행이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본래성이 부처이므로 반드시 수행이 필요함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부처란 깨침의 상태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깨침을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깨친 자에게 있어 깨침과 수행은 둘이 될 수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도겐의 시각은 실유불성을 ‘轉法輪’이라고 표현함에서도 드러난다. 도겐은 실유불성을 전법륜으로 표현함으로써 불성을 佛祖를 통해 正傳되어온 불법과 연관지어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앞서 우리는 도겐이 좌선이야말로 佛祖를 통해 正傳되어온 불법으로 주장해 왔음에 대해 살펴보았다. 따라서 실유불성을 전법륜이라고 한 것은 정전불법인 좌선과 불성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불성을 修證의 문제로 보려는 도겐의 견해는 그의 ‘무불성론’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4조, 5조, 6조로 이어지는 무불성과 관련된 問答에 대한 도겐의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6조가 말한 “인간은 作佛해도 불성은 作佛하지 않는다”에서 ‘불성이 작불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대해 종래에는 불성이 상주불변하기 때문으로 해석해온 경향이 있었다. 이와 같이 불성을 상주불변하는 것으로 볼 때 그 불성을 자각하기만 하면 되므로 성불하기 위해 수행한다는 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종래에는 성불을 목적으로 하는 좌선행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아 왔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중국선종사의 중심인물인 6조 혜능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여겨져온 『壇經』과 관련된 것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壇經』은 신회의 불성론과도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즉『壇經』의 불성론은 상주불변론적 불성론을 말한 신회사상과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겐은 이같은 상주불변하는 불성론을 비판하면서 작불에 대해서 새롭게 해석했다. 즉 종전의 불성론에서는 작불을 깨달음에 대한 집착으로 보고 이를 비판해 왔으나 도겐은 作佛行을 本證妙修로 보았다. 이는 그가 말한 ‘無佛性의 正當恁麽時’는 무불성으로서 좌선하는 때이면서 동시에 깨침의 때를 의미한다. 즉 도겐은 무불성으로서 좌선하는 때를 ‘作佛’이라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이 작불을 깨침의 때로 봄으로써 작불이 성불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수행이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