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씨튼연구원은 영성의 토착화와 종교간의 학문적 대화가 목적입니다.
일본종교 연구

제3장 일본불교 1. 나라불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14-06-30 14:09

본문

첨부파일

제3장- 일본 불교


1. 나라불교


당시 일본은 씨족사회로 아직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아니었다. 아스카 시대에서 나라시대로 넘어가는 즈음인 645년 다이카 개신이 일어났다. 종전 씨족사회에서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많은 씨족장들에 의해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렇듯 권력이 분권화된 상태에서 권력이 모아져 중앙집권화되는 즉, 씨족사회로부터 중앙집권화되는 사건이 다이카 개신이다.

그 당시에 소가()씨가 있었다. 소가 씨는 한 씨족 집단, 가문이었는데 한반도에서 넘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백제에서 일본으로 넘어와서 한 씨족을 형성하고 권력을 갖게 되었다. 소가 씨에서 천황이 나오는데 일본 천황이 한민족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얘기다. 소가 씨라는 한 가문에서(물론 처음부터 천황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지만) 요우메이 천황이 나왔는데 그는 581년에서 587년까지 짧게 집권했다. 그가 단명하자 뒤를 이어서 슈준천황이 즉위했는데 그는 5876년~592년 동안 재위했다. 요우메이 천황도 다른 씨족들과의 알력 다툼 속에서 죽게 되고 그 다음이 요우메이 천황의 누이인 스이코 천황이다. 여자가 처음으로 천황이 된 것이다. 스이코 천황이 왕 자리에 오르면서 천황의 조카 성덕 태자 쇼토쿠 태자‐일본 불교의 유입과 융성에 막대한 공헌을 했던 사람이다. 사실 쇼토쿠 태자는 요우메이 천황의 아들이고 스이코 천황은 고모 뻘이다. –가 섭정 정치를 하게 된다. 쇼토쿠 태자는 574년에서 622년까지 살았다. 쇼토쿠 태자가 죽고 나서 소가 씨가 멸망하게 된다.

소가 씨가 멸망하면서 텐지 천황이 정권을 이어받게 되는데 이 텐지 천황이 고대국가로서의 혁신을 일으킨다. 텐지 천황이 소가 씨 가문을 멸망시키고 천황으로 즉위하면서 혁신을 일으킨 것을 다이카 개신이라고 한다. 씨족 집단이 각각 세력을 잡고 있었던 씨족 사회를 텐지 천황이 중앙집권화하면서 고대국가의 형태가 취해진 것이다. 다이카 개신이 일어나면서 텐지 천황은 중국으로부터 국가 시스템을 가져온다. 그는 수 왕조의 법제를 모방하면서 수 나라의 율령제도를 도입했다. 국가 조직을 만드는데 있어서 율령제도라는 것이 중앙 정부 집중적 권력 구조를 가지면서 지방 호족들에게 권력을 나눠주는 형태인데 그것을 수나라로부터 도입해서 실행한 것이다.

한편 이런 와중에 텐지 천황이 국가적인 중앙집권의 이념으로 도입한 것이 불교이다. 거슬러 올라가서 쇼토쿠 태자와 소가 씨 일족을 통해 불교가 유래된 것을 이어받은 것이다. 불교 유입은 562년 긴메이 천황 때의 일이다. 552년이라는 설도 있고 538년이라도 설도 있는데 538년은 백제 성왕 때 불상이나 경전 스님들이 일본에 전해진 때를 추정한 것이다. 한편 일본 서기에는 552년이라고 나와 있다.

일본에 불교가 유입된 것이 소가 씨와 연관되어 있다고 얘기했다. 외래 종교가 들어왔을 때 재래종교인 신도와 외래종교인 불교와의 관계에 있어서 불교의 유입을 찬성하는 것이 숭불파고 반대하는 것이 배불파다. 그런데 이 숭불파가 바로 소가 씨였다. 소가 씨가 언제 정확하게 넘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538년이면 백제 성왕 523‐554년이니까 그 시기 무렵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소가 씨는 숭불파였고 배불파는 물부 씨였다. 물부는 모노노데라고 읽는다. 두 파의 세력이 굉장히 강했다. 모노노데 씨는 진쟈(신사)의 일을 관장하는 씨족이어서 당연히 배불파의 입장에 섰다. 이때 숭불과 배불의 논쟁이 벌어졌었고 배불파인 모노노데 씨가 불교를 수용하지 않는 이유로 든 것이 ‘이미 우리나라에는 800만 신이 있는데 외국에서 또 신을 받아들이게 되면 신들간에 싸움이 일어나서 안 된다’ 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가 씨는 배불파의 입장에 대해 ‘그건 그렇지 않다. 더 힘이 센 외래 신을 수용함으로써 우리 나라를 번성하게 할 수 있다’ 고 했다.

소가 씨와 모노노데 씨의 논쟁에서 보듯 부처에 대해 이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부처를 하나의 신으로 알고 있었다. 부처를 불교에서 말하는 도를 깨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었던 가미의 하나로 이해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바깥에서 온 하나의 객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불교의 진면목, 부처님이 불교를 창시하신 문제의식, 인간의 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교라는 종교라는 것, 불교에서는 고집멸도 사성제라는 것이 있는데 인간이 갖고 있는 고의 원인은 집착이고 그것을 멸하게 되면 해탈해서 열반에 들게 된다, 구체적으로 고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리키는 것이 팔정도라는 점과 부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부처를 이웃나라 신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불교는 이러한 논쟁을 거쳐 일본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소가 씨족의 한 사람이었던 쇼토쿠 태자이다. 지금부터는 쇼토쿠 태자와 불교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쇼토쿠 태자의 스승은 고구려 승려 혜자이다. 쇼토쿠 태자는 혜자로부터 대승불교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고 고모인 스이코 황제에게 승만경을 강의할 정도로 조예가 깊었다. 또 경전에 주석도 달았다고 한다. 그는 세 가지 경에 대한 의소를 남겼는데 이를 삼경의소라고 한다. 삼경의소에서 삼경은 법화경, 승만경, 유마경이고 그에 대한 주석서를 말한다. 유명한 대승경전들에 주석을 남겼다는 것은 그 경전들에 능통했다는 것, 쇼토쿠 태자가 상당한 불교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성덕태자가 스이코 여황제의 섭정 정치를 하면서 헌법을 제정한 일이다. 이 헌법의 내용은 단순히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와 도덕 종교적 이상을 결합시킨 것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종교는 신도가 아니라 바로 불교이다. 불교의 이상적 정신들이 이 헌법 안에 녹아들어가 있다. 이 헌법 중에서 한두 가지 정도 보면, 제 2조 삼보를 받들라. 삼보는 불법승이다. 불은 부처님, 법은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승가. 불교라는 신앙을 갖는 것은 삼보를 믿는 것이다. 부처님에 귀의한다, 삼보에 귀의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런 불교의 근본이 헌법 제 2조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또 헌법 제 10조를 보면 개인이 지켜야 할 도덕원리가 나와 있다. ‘분노를 끊고 노여움을 버리고 사람들에게 어긋난다고 성내지 마라. 사람은 모두 각자 마음이 있다. 마음에는 제각기 집착함이 있다. 그가 옳다면 내가 틀리고 내가 옳다면 그가 틀리니 내가 반드시 성인이 아니며 그가 반드시 어리석은 자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이 내용 자체가 불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말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삼독이라고 해서 탐진치를 꼽는데 탐욕, 분노, 어리석음 이 삼독을 없애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이다. 탐욕을 없애기 위해서 집착을 끊고, 사실 집착의 문제는 만병의 근원이다.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해탈한다고 말한다. 해탈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집착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무지, 어리석음, 무명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런 내용들이 고스란히 헌법에 나와 있다. 이렇게 봤을 때 쇼토쿠 태자가 얼마나 깊은 불교 신앙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쇼토쿠 태자의 부인, 태자비는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남편이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쇼토쿠 태자의 가르침, 그의 글을 천수국수장에 새겨넣었다. 천수국은 죽은 다음에 가서 다시 몸을 입고 태어나는 곳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쇼토쿠 태자가 다시 천수국의 태자로 태어나길 빌면서 자수를 만들었다. 이는 큰 자수로 만든 것으로 크기가 사방 5미터라고 하니까 엄청나게 큰 것이다. 태자비가 다른 사람을 시켜 만들게 했는데 그 여인들이 백제 여인들이라고 한다. 현재 원본은 없고 일본 박물관에 조그만 조각이 하나 남아 있을 뿐이다. 인간 문화제 한상수 씨가 그것을 복원하는 작업을 했다.

(여기 중간에 있는 것이 태자가 연꽃을 타고 가는 모습이다. 나중에 태자 신앙이 생기는데 거기서 태자가 관세음의 화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극락왕생의 모습들을 큰 비단에 자수를 놓은 것이다. 이것은 원본이 아니라 인간문화제 한상수씨가 복원작업을 한 것이다. 이것이 쇼토쿠 태자의 초상화이다. 옆에 시녀들이 있고. 백제의 아좌 태자가 쇼토쿠 태자를 만나고 깜짝 놀라서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마치 자기 할아버지를 만난 듯한 느낌 이었다고 하는데 굉장히 닮았다는 얘기다. 태자는 백제 후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태자가 부인에게 한 말이 새겨져 있다. ‘세간허가유불시진()’ 그렇게 씌어 있다. “모든 세상은 헛되고 본래적인 것이 아니며 오직 부처만이 참되다.”라고 천수국 수장에 새겼다고 한다. 태자가 태자비에 그런 얘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태자비가 그것을 기억하고 천수국장에 태자가 했던 말을 새겼을 것이다. 태자가 얼마나 불교 신앙이 깊었는지 알 수 있다. 쇼토쿠 태자가 이런 일들을 다 했냐고 할 때 오늘날 학술계에서는 태자 혼자 한 것이 아니라 학자 집단과 함께 작업했다고 본다. 경전에 주석서를 다는 일이 보통이 아닌데 어떻게 혼자 다 했겠는가. 어쨌거나 쇼토쿠 태자의 불교 신심은 일본에 불교가 자리잡는데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태자 사망 2년 후인 624년에 절이 46개가 세워지고 승려가 816명이 나왔고 비구니 스님이 569명이 나왔다고 한다. 태자가 죽은 다음에 또 태자 신앙이 생겼다. 아까도 말했듯이 태자가 관세음의 화신이라는, 관세음이 몸을 바꿔서 쇼토쿠 태자로 왔다는 그런 믿음이 생긴 것이다.


쇼토쿠 태자와 불교는 이렇듯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었다. 불교는 아스카 시대와 나라 시대에 걸쳐서 일본에 유래되었고 퍼져나갔는데 나라 시대에 비로소 불교가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라 불교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나라 불교는 국가 불교의 형태를 취했다. 국가가 불교를 정책적으로 수용했다. 예전에 쇼무 천황의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동대사에 대해 말할 때 언급했었다. 동대사는 어떤 절이라고 했나? 엄청나게 큰 비로자나불이 있는 사찰이고 그 자체도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고 했다. 쇼무 천황은 중앙집권화를 위해 동대사를 지었고 대불을 만들었다. 비로자나불은 화엄경에 나오는 우주 만물을 위해 빛을 비추는 부처이다. 비로자나불은 모든 세상에 빛을 비추고 그 밑에 조상신 같은 가미들이 있다. 천황이 자기 권력을 여기에 투사시킨 것이다. 천황이 위에 있고 씨족들, 호족들이 밑에 있다는 중앙집권적 구조를 비로자나불로 형상화한 것이다. 동대사가 중앙 사찰이 되고 그 밑에 국분사라는 지방사찰이 생긴다. 이런 것들을 중앙집권화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불교의 본래 의미를 아스카 시대나 나라 시대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불교는 국가의 안녕을 위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진호국가불교. 국가를 보호해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도다이지라는 엄청난 목조 건물을 짓고, 엄청난 크기의 대불을 만들고 그걸 전부 동으로 만들고, 엄청난 돈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인원이 동원되었다. 물론 의도는 국가의 중앙집권을 확립한다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사업은 국가 재정에 상당한 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도다이지, 고쿠분지 등 불교 사찰, 불상을 짓는데 국가 재정을 쏟아 부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승려들 역시 관승이라고 해서 국가 관리로 승려가 자리잡게 되는데 이들에게 굉장한 특혜를 주었다. 조세 부역 면제 특권을 주니까 너도나도 다 승려가 되려고 해서 승려 수가 급증하고 사원 경제는 팽창했지만 국가 재정은 위기를 맞았다. 귀족들은 또 사원과 결탁해서 탈세를 하고 복잡한 상황이 벌어졌다. 나라 불교가 국가 불교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나라 불교에 불교적인 가르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라 시대에 들어온 종파를 남도 6종이라고 한다. 남도 6종은 여섯 종파의 이름인데 첫번째는 삼론종이다. 논서를 중심으로 한 종파인데 삼론은 중론, 십이문론, 백론 세 가지이다. 중론은 중관 사상과 연결되어 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중관 사상은 나가르쥬나의 공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즉, 삼론종은 용수의 공 사상에 기반을 둔 논서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 종파인 것이다. 구마라집이 삼론종의 시조가 된다. 이제, 삼제에 대한 이야기를 전에 했었는데. 이제는 진제, 속제 이렇게 두 가지이다. 제 라는 것은 진리를 말하는데 본래의 진리는 공한 것, 자성이 없는 것이다. 자성이 없으니까 공이 되는 것이다. 속제라는 것은 자성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보는 현상을 구현하는 것들에 대한 설명이다. 진제는 공이지만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가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공이다. 진제는 본질의 입장에서 본 진리의 세계이고 속제는 현상의 입장에서 본 진리의 세계이다. 삼론종에서는 진 속 이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백성들에게 이해가 되었겠는가? 삼론종이 학자들의 수준에만 머무르는 불교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탈불중도’() 사상도 있다. 진리의 세계를 중도라고 하는데 중이라는 것은 공과 가 사이의 진리의 세계이다. 여덟 가지의 대립되는 것들,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니라는 불생불멸.() 단도 아니고 상도 아니다. 불단불상. 끊어짐도 아니고 영원함도 아니다. 하나도 아니고 다름도 아니다. 불일불이.()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 불거불래. 이렇게 여덟 가지가 된다. 파사현정()도 있다. 삿됨을 드러내는 것 잘못된 진리를 파하는 것 바로 그 자리에 올바른 진리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파사 즉 현정. 이것이 다 산문에서 가르치는 가르침이다. 이것이 나라불교의 남도6종의 일파인 삼론종에서 가르친 것들이다.

두번째는 법상종()이다. 법상종은 어떤 종파인가? 삼론종이 공 사상, 중관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했다. 불교에 두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중관 사상이고 또 하나는 유식 사상이다. 법상종은 유식 사상에 기반을 둔 종파이다. 유식 사상은 공 사상 다음에 나왔는데 나가르쥬나의 공만 가지고는 현상을 설명하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다. 유식학파에서는 일체 현상을 설명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그래서 유식 철학이 나온다. 오직 식뿐이라는 것이다. 식에는 6식, 7식, 8식으로 나누어지는데 만법이 다 유식에서 나온 것이다, 식이라는 것은 현상을 설명하는데, 식의 작용에 의해서 현상이 드러난다고 본다. 의식만 식이 아니다. 안이비설신 눈으로 귀로 코로 입으로 혀로 이게 다 식의 작용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 본다 아름답다 싫다 좋다 그런 모든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다 식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유식사상에 기반을 둔 것이 법상종이다. 그 중에서도 성유식론 제10권이 중심이 되었다. 인도의 세친의 유식 30권도 이런 것들도 다 포함된다. 삼라만상의 만법을 유식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유식 사상에 기반을 두어서 일체를 설명한다. 삼론종에서는 진리를 공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본질의 측면을 강조했다면 법상종에서는 현상 내지는 현실에 관심을 두어 식을 통해서 설명하려고 했다. 일본에서는 어떤 것이 더 성행했을 것 같은가? 법상종이 더 우세했다.

성실종이라는 종파도 있었는데 이름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인도의 하라발마라는 사람이 지은 성실론이라는 논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내용 자체는 공 사상에 기반을 두었다. 그래서 삼론종과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종파로서 자리매김을 하기 전에 삼론종의 부속이 되어 흡수되어 버렸다.

네번째 구사종은 유식 사상의 대가인 세친이 지은 구사론에 기반을 두었는데 유식사상과 유사해서 성실종의 경우처럼 법상종에 흡수되어 버렸다. 다섯번째는 화엄종인다. 삼론종이 법상종 때문에 힘을 받지 못하자 삼론종 자리에 화엄종이 들어온다. 남도 6종의 다른 다섯 가지는 다 논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불교에서는 논과 경을 구별해야 한다.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반야경 등은 불교의 경전을 말하는 것이고 구사론, 성실론, 중론은 논서이다. 논서는 주석을 단 것이다. 경전은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것이고. 유일하게 경전에 기반을 둔 종파가 화엄종이다. 화엄종은 화엄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 화엄종의 사상은 법계연기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삼라만상을 연기로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에 성기사상도 있는데 모든 삼라만상이 일어나는 것을 법성의 드러남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법성이 드러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진여가 드러나는 것이다.

삼론종과 법상종의 대립 속에서 법상종이 조금 더 우세했는데 삼론종을 대신해서 나타난 것이 화엄종이었다고 얘기했다. 화엄종도 사실 공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실 불교에서 중관 사상과 유식 사상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차이가 있지 근본 교리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관사상은 공으로 해석한 것이고 유식 사상은 식으로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이지 그 자체가 사상적으로 대립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어느 관점을 중시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특이한 것은 삼론종 성실종 법상종 모두 논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엄종은 화엄경이라는 경전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율종, 율종에서 율은 계율을 의미한다. 사실 불교에서는 경전, 논서, 율장 이렇게 불교의 서적들을 세 가지로 나눈다. 여기서 계율이라고 하면 승려들의 생활규범이 되는 것인데 계를 파기하면 승단에서 나가야 한다. 스님이 되기 위해서는 구족계를 받는데 이것을 받는 의식을 수계의식이라고 한다. 그 전에는 행자 생활도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사미 그 다음 수계의식을 치러 구족계를 받고 승려가 된다. 남자는 비구, 여자는 비구니가 된다. 비구와 비구니가 받는 계가 다르다. 비구들은 250계를 받는다. 지켜야 할 것이 250개이다. 비구니는 곱절이다. 348개이다. 이 안에 불평등이 있다. 비구니가 비구에게 어떻게 해야 된다 여자니까 유혹을 줄 수 있어 조심해야 하고, 비구니는 아무리 젊은 비구에게도 절해야 하고 등 불공평등성이 드러나 있다. 어쨌든 율종에서 승려가 되기 위해 지켜야 할 계율들을 써 놓은 것이 사분율이다. 이 사분율 안에 비구가 지킬 250개와, 비구니가 지킬 348개가 다 들어가 있다. 사실 이 사분율이라는 것 소승불교, 올바른 표현으로는 상좌불교 소승은 대승 쪽에서 자신들은 큰 수레로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다, 종전의 불교는 수레가 작다는 의미로 썼으니까 상좌 라는 말을 써야 한다. 또 보통 제자들 중에서 첫번째 제자를 상좌라고 한다. 어쨌든 사분율은 소승계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소승불교 계율에서 나온 것이라서 그렇다.

그런데 이것이 대승불교에도 그대로 전수되었다. 계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소승계를 그냥 지킨다. 이것이 사실 모순이긴 하다. 일본에 오면 대승계가 생긴다. 헤이안 불교의 사이초가 대승계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을 중국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분율 소승계를 지키지 않으니까. 우리나라는 중국불교가 그대로 들어와서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에 소승계를 그대로 지킨다. 어쨌든 사분율이라는 이 계율에 의해서 율종은 정식 승려가 되기 위해서 수계의례를 해야 하는 것을 잘 체계화시켰는데 일본에 중국으로부터 간진이라는 계율 학자‐계율의 주석서를 쓰고 계율학에 아주 뛰어난‐가 초빙되어 왔다.

 그는 688년에서 764년까지 살았던 사람인데 일본에 초빙받아 오려고 애를 썼는데 무려 5번을 실패했다. 12년 동안 오려고 고생하다가 754년에 드디어 일본에 왔다. 그만큼 이 사람도 일본의 제대로 되지 않은 불교를 중국의 계율을 가르침으로써 일본 불교를 정착시키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한번 실패하면 관두었을 텐데 6번이나 도전해서 왔다. 결국 와서 일본에 율종을 퍼드리는 계율을 가르치는 스승이 된 것이다.

이 사람이 했던 큰 일은 도다이지‐동대사와 관련된 일본불교 역사가 굉장히 많은데 율종하고도 관계가 깊다. 도다이지에 계단이 세워졌다. 수계의식을 지키기 위해 수계 장소가 정해져 있어야 한다. 도다이지에 계단을 만들고 정식 수계 의례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식 수계 의례는 삼사 – 세 명의 스승‐과 7명의 증인이 필요하다. 결혼할 때보다 더 힘들다. 도합 열 사람이 증거하는 앞에서 계를 받는 것이다. 간진 자신이 계를 주는 계사가 되고 그 외에 두 명, 일곱 명의 증인 앞에서 계를 주는 정식 수계 의례를 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계율을 지키겠노라 약속한다. 그럼 그 전 스님들은 수계도 안 받고 다 가짜인가? 그 전에도 수계가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하진 않고 약식으로 했었다. 스승도 변변치 않았고 간진 이후로부터 일본 승려들이 정식으로 수계의식을 치렀다. 중국에 가려면 도다이지 계단에서 받은 수계 증명서가 있어야 중국에서 승려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데 도다이지 계단에 가야만 계를 받을 수 있으니까 사이초는 자기가 세운 엔라쿠지에 계단을 만들고 소승계도 없애버리고 대승계를 만든다. 천황이 또 그걸 승인해줘서 일본에는 계가 두 개가 생기게 된 것이다.

나라 불교를 다시 정리해보자. 나라 불교는 첫번째 국가불교였다. 남도육종 학문의 세계는 서민들의 삶과 전혀 무관했다. 불교는 철학이 아니다. 물론 철학적 요소가 굉장히 많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불교는 인간을 구제해주는 종교, 신앙이다. 그래서 종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나라불교는 국가불교로서 서민들의 밑바닥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지 못했다. 단지 천황 중심의 국가 안녕을 비는 진호 국가 불교였다. 또 승려들은 관승이었다. 그래서 관승에게는 법률적으로 관승으로서의 신분이 주어졌다. 701년에 승리령이라는 법령이 제정되어서 이것에 의해서 관승이라는 신분을 갖게 되었다. 관료가 되자 관료로서의 혜택도 주어졌다. 세금 면제, 의식주 보장, 형법 상 특권도 주어졌다고 한다. 사형에 처할 만한 죄를 지어도 받는 형벌은 한 등급 낮은 형이 부과되었다고 한다. 굉장한 특권이다. 누구나 다 승려를 하려고 할 만하다.

나라 불교에서 기억해야 할 한 사람이 있는데 교키()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좀 독특한 사람이다. 보통 아기가 태어날 때는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양막이 터지면서 아기가 나오는 법인데 교키의 어머니가 교키를 낳을 때 그는 양막째로 나왔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너무 놀라서 아이를 버렸다. 나무 위에 걸어뒀는데 다음날 다시 가 보니까 아이가 살아서 울고 있었다. 그래서 데리고 돌아와 귀하게 키웠다. 교키는 아주 재능이 많았다. 16세에 출가해서 관승이 되었는데 사명감과 자비심이 많아 서민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 저수지를 만들고, 연못, 다리를 만드는 등 민간인들이 필요로 하는 사회복지 사업을 많이 했다. 물론 제자들도 많았다. 그는 또 민간포교까지 했다. 당시는 민간인들에게 포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교키를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능력도 많았고 제자도 많았으며 문하생을 받아 사도승이라는 집단을 만들었다. 사도승이라고 하는 이유는, 당시 나라불교에서는 승려들이 전부 관에 소속되어서 등록을 해야 했는데 교키의 문하생들처럼 등록되지 않는 승려들은 사도승이라 했다. 국가불교에서는 이것이 당연히 인정되지 않지만 자금조달과 같은 그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었다. 당시 천황인 쇼무천황은 그에게 도다이지를 짓고 대불을 만들 자금을 모으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가 자금 조달을 해 주자 천황은  그의 행동을 인정해주었다. 교키는 나라불교에서 유일하게 서민불교 냄새가 나는 사람이고 나라불교에서 기억할 만한 사람이다.

세번째는 남도육종이다. 남도육종은 일부 학승들의 서재 안에서의 학문이었지 현실의 살아있는 신앙과는 무관했다. 그 말은 남도육종이 종파로서의 의미보다는 그 계통의 연구분과를 의미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6종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각 학파의 차이에 불과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외면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따라서 나라불교의 승려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승려 생활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라 불교의 문제점 역시 서민들에게 뿌리내리지 못한 귀족 국가 중심의 불교 형태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다음 시대로 넘어가보자. 794년-1185년까지가 헤이안 시대이다. 이때는 국가불교로부터 실천 불교 형태를 취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 나라불교와 비교했을 때 헤이안 불교는 경전이 중심이 된다. 나라불교는 논서가 중심이 되었는데 헤이안 불교에서는 불교 냄새가 짙어졌다. 논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부처님 말씀이 적혀있는 경전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이것이 나라불교와의 차이점이다. 경전을 놓고 헤이안 불교는 크게 두 종파로 갈려 구분이 뚜렷하다. 하나는 천태종이고 다른 하나는 진언종이다.

천태종은 법화경이 교의 경전이다. 법화경은 정식 이름은 묘법연화경이다. 일본에서는 불교가 천태종을 중심으로 한 것이 한국불교와의 큰 차이점이다. 우리나라는 선종이지만 경전으로는 화엄경 중심이다. 진언종은 밀교이다. 비밀이 전수되는 도이다. 진언종은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주류가 된다.

또 한가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헤이안 불교에서는 나라불교처럼 지식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실천이 중심이다. 특별히 진언종은 실천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서민 안으로 깊이 들어간다. 그러면서 일본 불교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지만 헤이안 불교도 한계는 있다. 종교적 실천이 강조되고 국가 불교의 그러한 측면을 벗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잠재적으로 국가불교적 측면, 귀족불교적 측면이 많이 남아있었다. 또 한번 변신하는 것은 가마쿠라 불교에 가서이다. 이렇게 헤이안 불교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