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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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종교 연구

제3장 일본불교 2. 헤이안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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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14-06-3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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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헤이안 불교


1) 천태종


천태종을 창시한 사이초부터 살펴보자. 사이초는 767년에서 822년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그에게는 사후에 전교대사라는 시호가 붙혀졌고  이는 ‘가르침을 전했다’라는 뜻으로 그만큼 일본에 불교전교에  큰 공을 세웠음을 뜻한다.

 오늘날 일본사람들은 사이초를 전교대사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불교를 전수한 큰 스님으로서 사이초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초는 나라불교를 이렇게 비판한다. ‘나의 참된 염원은 불교의 힘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데 있다.’ 그의 이런 말 자체가 나라불교가 그 일을 못했다는 의미이다. 사이초는 12살에 출가해서 785년 18세 때 도다이지 계단에서 계를 받고 학문적인 불교로부터 수행이 중심이 되는 불교로 전환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히에이잔이라는 산으로 가서 수행을 했다. 그는 거기에 엔라쿠지라는 사찰을 지었는데 이는 교토의 굉장히 유명한 사찰이다. 그는 당시 칸무천황으로부터 학문도 뛰어나고 수행도 깊이 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중국 유학을 허락받았다. 국비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이초는 중국에 가서 천태종을 공부했다.

천태종은 중국 천태산에서 나온 이름인데 천태산의 지의라는 사람이 천태종을 세운 사람이다. 보통 천태산 지의, 천태 지의라고 한다. 천태산에서 수행을 하면서 법화경을 중심으로 천태종이라는 종파를 세웠기 떄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천태종은 법화경을 최고 경전으로 삼고 그 경전을 중심으로 불교의 내용을 재정비한 종파이다. 법화경도 대승경전이다. 대승 경전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법화경도 있고 금강경도 있고 반야경도 있는데 천태 지의는 법화경을 최고의 경전으로 삼고 그 가르침 아래 불교의 다른 교리들을 재정비했다. 그것을 사이초가 공부했고 그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에 있던 종파들 8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밀교, 선, 계율도 공부했다.

나중에 천태종은 밀교와 습합이 되는데 중국 천태종과 일본 천태종의 차이가 그것이다. 중국 천태종은 순수하게 천태종으로 남아 있는데 일본 천태종은 밀교와 습합이 되고 선적인 부분도 들어가게 되었다. 하여튼 사이초는 그것을 다 배운 뒤 관련 서적들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히에이잔에 엔라쿠지 사찰을 짓고 거기에 대학을 건립했는데 이 대학이 승려들이 거쳐가야 하는 대학이 되었다. 가마쿠라 불교에서는 모든 승려들이 히에이잔 엔라쿠지 출신이다, 원래는 천태종의 총본산인데 가마쿠라 불교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사이초는 엔라쿠지를 세우고 일본 천태종을 열게 되었다. 사이초는 세속화되는 불교를 비판했는데, 사실 그가 산으로 간 것도 탈세속화를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사이초가 가르친 것은 선, 계, 밀교를 융합한 새로운 천태종이었다.


사이초와 관련하여 기억할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불성 논쟁이고 또 하나는 대승계이다. 불성 논쟁은 사이초 전에 나라불교의 잔재로 남아 있는 법상종과 논쟁이 붙은 사건이다. 도쿠이찌라는 사람 (749‐824) 과 불성에 관한 문서를 통한 논쟁, 아주 유명한 논쟁이다. 법상종에서 주장하는 교리와 사이초가 주장하는 교리의 차이점이 이 논쟁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법상종에서는 오성각별설을 주장했다. 오성은 깨닫는 단계를 5가지로 나누는 것인데, 성문 연각 보살 –성문은 부처님의 소리를 듣고 깨닫는다는 뜻이다. 연각은 독각이라고도 하는데 혼자 깨닫는 것이고, 보살은 자기도 깨닫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하는 존재이다. 그 다음에는 부정성‐아직 성문인지 연각인지 보살인지 정해져 있지 않는 사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무종성인데 이것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이 안 보이는 것, 가망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5성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 법상종에서 말하는 불성이다.

대승 불교에서는 불성 사상이 무척 중요한데, ‘일체중생실유불성’ 은 열반경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유명한 말씀이다. 열반경에 나오는 불성사상에 기반을 둔 불교는 물론, 열반경이 대승경전이기 때문에 그 전에는 이런 불성사상이 없었다. 법상종은 그 전 것이다. 물론 열반경은 있었지만 법상종에서는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열반경의 불성사상을 비판했다.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다. 무종성은 없다는 것이 열반경의 불성 사상이지만 법상종에서는 존재를 다섯 가지로 나누었다.

사이초는 법상종의 오성각별설에 대해 비판하면서 ‘일승불성’을 주장했다. 모든 존재의불성은 모두 다 같다는 것이다. 하나의 수레에 모두 다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박이 시작되었다. 모든 대승불교는 열반경의 이 불성사상을 수용한다. 법상종은 열반경을 비판한다. 법상종은 대승불교가 아니다. 그렇다고 상좌불교라고 할 수도 없지만 상좌불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법상종과 사이초 간의 논박은 ‘일체중생 일체개성’ 일체 중생이 모두 다 성불하는가? 의 문제이다. 사이초는 다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법상종은 무종성 같은 것은 씨 자체가 없으므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이안 불교에 오면 천태종이 더 우세해지므로 결국 이 논쟁에서 사이초 쪽이 힘을 얻게 된다.


사이초의 두번째 중요한 업적은 대승계단을 설립했다는 사실이다. 종전에 간진이 중국에서 가져온 계는 소승계였다. 사이초는 화엄경 계통의 법만경에 있는 ‘십중사십팔경계’ 열 가지 중요한 계와 48개의 가벼운 계 이것만 지키면 된다고 하면서 새로운 계획안을 제출했고 이것이 즉각적인 동의를 얻지는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의 사후에 받아들여졌다. 어쨌든 대승계가 만들어진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엔라쿠지라는 사찰의 계단이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승려들은 도다이지까지 갈 것 없이 엔라쿠지에서 수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이초는 수계를 받는 데 있어서도 복잡한 10승 7증의 수계의식을 간소화시켰다. 사이초는 이렇게 말한다. ‘세분의 스승은 석가모니 부처님, 문수보살과 미륵보살이면 되고 7명의 증인은 시방세계에 있는 전체 부처님이 증인이 된다. 따라서 수계의식에는 계를 전해줄 스승 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수계의식을 이렇게 굉장히 간소화시켰다. 그러나 나중에 엔라쿠지에서 수계를 받은 것은 중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도겐 선사의 경우 중국에 갔는데 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소승계가 아닌 대승계로 수계받은 것을 중국에서는 승려로서 인정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몇 개월간 배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하여튼 사이초는 개혁을 이루고 실천적인 측면에서 여러가지 일을 했는데 그가 애초에는 중생 구제를 위한 일을 하리라고 마음먹었지만 일을 너무 크게 벌이다 보니까 사실 거기까지 손이 미치지 못했다. 천태종 자체는 법화경이 중심이 되면서 서민적인 측면이 있지만 나중에 쿠우카이에 의해 시작된 밀교의 인기는 얻지 못했다. 밀교는 굉장히 실천적이었고 귀족들에게도 큰 인기가 있었다. 사실 사이초는 엔라쿠지 같은 큰 사찰을 짓고 대학까지 만들었기에 이것을 운영하려면 국가 재정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귀족들인데 이 사람들을 도움을 받으려면 그들이 선호하는 밀교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천태종이 밀교를 수용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천태종은 사이초의 후계자 엔린, 엔찐과 5대 안옌에 와서는 태밀(太密)이 된다. 천태종의 태(太) 자를 따고 밀교의 밀(密) 자를 따서 태밀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는데… 진언종을 세운 쿠우카이와 사이초는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다. 사실 쿠우카이는 2년 동안 중국에 가 있었고 사이초는 8개월을 유학했을 뿐이기에 쿠우카이는 밀교를 사이초보다 깊이 있게 배웠다. 그래서 사이초가 밀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쿠우카이로부터 책도 빌려보고 제자들을 보내서 배우게 했는데 제자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쿠우카이도 책을 빌려주다가 나중에는 열람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나중에 둘 사이가 안 좋아졌다.


2) 진언종


헤이안 불교의 대표적인 인물 사이초와 쿠카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쿠카이(774‐835)는 진언종을 세웠다. 진언종은 밀교인데 밀교는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넘어왔는데 일본 밀교를 진언종이라고 한다. 쿠카이는 처음부터 승려가 되려고 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관리가 되기 위해서 18세에 중앙관리양성학원에 입학하여 관리의 꿈을 키우다가 도중하차 하고 불교를 접해 승려가 되었다. 쿠카이는 809년 사이초와 함께 중국 유학을 떠났다. 그는 중국에서 진언밀교를 공부하고 사이초는 천태종을 공부했는데 쿠카이는 장안에 2년간 머물면서 혜가라는 스승을 만나 진언밀교를 전수받았다. 그는 2년 후 806년 돌아와서 고야산에 도량을 세우고 진언종을 가르쳤다.


진언종은 대일경과 금강정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 쿠카이가 중국에서 밀교를 배우고 가져왔지만 일본은 중국 밀교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쿠카이는 중국 밀교에 천태종을 결부시켰다. 본래 밀교는 비밀스러운 가르침이고 주술적인 측면이 많이 있는데 천태종은 합리적이고 교의적이다. 이 둘이 결부되면서 진언종은 주술적인 성격과 함께 합리적인 논리성도 함께 겸비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진언종에서는 우주 만물을 다 포용하는 부처로서 대방광불을 이야기한다. 대방광불의 몸과 그의 음성과 마음에 대한 것을 ‘관’하는데, 관하면서 진언을 읊는다. 모든 다른 부처와 보살은 대방광불이 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비로자나불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대방광불의 속성이 발현한 것, 곧 우주 만물에 작용하는 대방광불의 힘이 드러난 것으로 본다. 밀교에서는 대방광불이 지닌 여러 형태가 삼라만상에 다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인격적인 신앙관이 드러나있다고 할 수 잇다. 대방광불과 삼라만상의 관계성을 이야기할 때 비인격적인 측면보다 인격적인 측면이 더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쿠카이는 주술을 할 때 대방광물이 갖고 있는 몸, 손과 손가락을 이용한 몸짓을 통한 명상을 가르치고 있다. 이 명상을 통해 즉신성불‐ 쿠카이가 가진 제일 중요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몸이 그대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현재 이 몸을 가지고, 이 몸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성불한다는 가르침이다. 그 방법으로 쿠카이는 입으로 진언을 외우고 몸으로는 부처님의 인을 결하는 것을 가르쳤다. 마치 도장을 몸에 찍는 것처럼 입으로는 참된 부처님의 말씀을 계속 읊어대고 몸으로는 부처님의 인()을 결해서 삼매경에 빠지면 그 몸 자체가 즉신성불의 경지를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방법들에 대해 세밀하게 가르쳤다.

 진언종에는 이렇듯 은밀한 명상에 대해 체계를 갖고 비밀스럽게 전수되는 측면이 있고 또 다른 측면으로는 주술, 주문을 통해서 민간에 파고드는 성격도 강하다. 그것은 중국 밀교가 본래 지닌 성격이다. 주술, 주문이 결합되면서 민간 생활에 깊이 자리잡게 된다. 종전의 불교와는 다른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밀교는 불자들에게도 상당히 호응이 좋아서 많은 사람이 입교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천태종의 밀교화 역시 이루어졌다. 천태종은 본래 밀교적인 성격이 없었지만 나중에 진언종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사이초가 후대에 가서 밀교를 받아들이고 천태종 안에 밀교와의 습합관계가 이루어지면서 나온 것이 태밀이다. 진언종의 경우는 동밀(東密)이라고 부르는데 동사의 밀교라는 의미이다. 천태종의 밀교는 진언종이 지닌 양상들을 수용해나갔다. 천태종의 태밀은 히에이잔 진언종이라고도 해서 진언종의 밀교와 구분짓기도 한다. 태밀의 형성은 사이초의 제 5대 제자인 안연에게서 이루어졌다.

어쨌거나 헤이안 불교에 나오는 진언종이나 천태종은 종전에 나라불교에서 갖고 있었던 국가불교의 형태로부터 민간신앙의 형태를 취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진언종은 비교적 성공했던 반면, 천태종은 민간신앙까지 파고들기엔 한계가 있었다. 천태종에서는 교학적인 부분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밀교의 형태를 취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지만. 어쨌거나 헤이안 불교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내려보자면, 민간에서 흡수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완전히 흡수되지는 못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언종이나 천태종도 귀족들과 깊은 결속 관계를 가졌다. 귀족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개인적이고 현세적인 이익을 위해 기도하고 주술적인 의례를 부탁하는 등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양부신도의 금강계 만다라, 태장계 만다라를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 본래는 진언종에서 나온 것이다. 진언 밀교의 명상을 할 때 두 만다라를 이용한다. 금강계 만다라는 대방광불이 있고 주위에 부처님과 보살들이 있는 형태이고, 태장계 만다라는 더 복잡하고 바깥에는 신도의 신들이 배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금강계 만다라, 태장계 만다라 특히 태장계 만다라는 신도의 신들을 흡수하면서 신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불교가 일본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