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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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종교 연구

제3장 일본불교 5. 에도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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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14-06-3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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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에도불교


기독교인을 착출해서 재판하는 차원에서 에도 막부는 전국에 종문개를 설치했다. 기독교인들은 착출되어서 발각되면 종문개에 보내져서 재판을 받았다. 종문개에 대목부라는 부서가 있는데 거기에 감찰관으로 전체를 관장하는 감찰관이 이노우에라는 사람이었다. 적발된 기독교인이 이노우에에게 보내지면 재판을 받는데,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발부받아야 했다. 기독교인이 아님을 증명하면 사찰로 들어가게 된다. 또 다시 기독교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착출된 기독교인을 불교로 개종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종문개 제도와 단가 제도는 밀착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은 하나의 단가에 소속되어야 했다. 특정 사원의 한 단가가 되어서 사찰로부터 사청이라는 증명서를 받았다. 단가는 자신이 한 사찰의 소속되어 있는 불교신도임을 뜻한다. 당시 사원의 모든 경제적인 부분들은 단가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 지탱하는 형태였다. 단가는 사원의 보수, 신축 비용, 주지의 생활비를 부담하고 그 대신 소속된 사찰에서는 단가 집안을 위해 불사나 법사를 해주었다. 이때부터 일본불교는 장례식을 중심으로 한 장식불교로 정착되었다.

에도시대의 스님들은 에도막부의 관에 소속된 관승이었다. 단가제도, 종문개 제도는 불교가 기독교 안에 유입되는 과정 중에 생겨났는데 이것과 더불어 에도불교의 또 한가지 특징으로 본말제도를 들 수 있다. 본말제도 역시 에도막부가 실시한 종교 통제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사실 에도 시대 전부터 있었지만 에도 시대에 들어 정책적으로 확립된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본말제도를 확립시켰는데 각 종파의 본산들‐ 밑에 말사를 두었다. 그래서 본산이 말사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말제도의 특징이다. 본산 이외의 모든 사원들은 다 특정 본산의 말사가 되어야 했다. 각 본산에서는 어디가 자기 본산의 말사인지 분명하게 명시하도록 했다. 본말제도에 해당되지 않는 사원들은 다 없애도록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렇게 불교의 여러 종파들을 통제하는 제도를 펼침으로써 불교는 에도시대에 굉장히 위축되었다. 사상적으로 하쿠인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긴 했지만 사상적인 발전도 가져올 수 없는 상황을 맞았다. 불교의 자유로운 포교 활동도 금지되었고 사원의 개별적 건립도 금지되었다. 또 출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출가를 위한 일종의 면허를 취득해야 했다. 그것을 ‘득도’라고 표현했다. 보통 ‘득도’는 깨달았다는 의미이지만 여기서의 득도는 출가자로서의 면허를 취득했다는 뜻이다. 


1) 하쿠인 


에도 막부가 불교 정책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상황 속에서도 발전한 불교종파는 임제종이다. 임제선은 5가 7종 중 하나로 선종에서도 대표적인 선풍으로 알려져 있다. 임제선의 법맥은 송대  대혜선사를 통해 간화선 선풍으로 자리잡아갔다.

간화선을 화두선 혹은 공안선이라고 하는데 무자 화두가 대표적인 화두이다. 이 화두는 <열반경>의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는 ‘일체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는 가르침이 상식화되어 있는 것에 대해 반격이다. 어떤 제자가 조주 선사에게 묻는다. “스님, 일체중생 실유불성이라고 하는데 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묻자 스님이 ‘무’라고 대답했다.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왜 개에게는 없다고 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화두를 든다는 것은 의심하는 것이다. 당연시 받아들여졌던 사실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품는 것이다.

화두를 든다는 건 한번의 의심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화두를 들다보면 후에는 자신과 화두가 하나가 되어 의심덩어리(疑團)가 된다고 한다. 곧 화두에 대한 의심이 의심덩어리가 되어 걸어갈 때나 밥 먹을 때나 잠잘 때나 쉴 때나 화장실 갈 때나 언제든지 화두를 품게 된다는 것이다.

화두에는 무자 화두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스님은 ‘부처가 뭡니까?’ 라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 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부처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는데 ‘뜰 앞의 잣나무’라니....이게 뭔가. 바로 이러한 의문을 품게 됨이 바로 화두를 드는 행위가 된다. 또 흥미로운 화두로 '간시궐'을 들 수 있다. ‘부처가 뮙니까?’라고 묻자 운문스님은 ‘간시궐!’이라고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깊은 산골에 가면 화장지가 없어 신문지로 뒤를 처리해야만 했다. 신문지도 없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나무 막대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간시궐은 뒤처리를 위해 썼던 막대기 바로 그 ‘마른 똥막대기’를 의미한다.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는데 마른 똥막대기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가장 높은 이상향인 부처에 대해 묻는 데 이를 가장 비천한 똥막대기에 비유한 것이다. 이 간격을 어떻게 메워야 할 것인가. 이것이 화두이다. 중국 송대에 화두가 점점 많아지자 이를 모아서 화두집을 만들었다. <무문관>, <벽암록>이 그것이다. 이 화두집은 화두에 대한 해설을 붙여놓은 것으로 여기서 화두를 침구하기보다 화두를 연구하는 문자선이 생겨났다. 대혜선사는 화두를 문자식으로 공부하는 문자선을 비판하면서 간화선을 세웠다. 그는 선은 문자로 공부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면서 간화선이라는 선풍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대혜선사는 화두집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대혜선사의 스승은 원오극근이었는데 사실 그가 <벽암록>의 편집자였다. 대혜는 자기 스승이 만든 벽암록마저 불태워버린 것이다.

화두집을 공부하지 말고 오로지 무자 화두 하나만 들라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타파하면 된다는 것이다. 대혜선사는 무자 화두를 중심으로 한 간화선을 확립한 반면, 하쿠인이 대혜의 간화선을 가져다가 자기 나름대로 변형시켰다. 일본 임제종의 대표적 선사로 하쿠인을 들 수 있다. 하쿠인 선은 오늘날 일본의 대표적인 선종인데 특히 하쿠인은 선을 대중화시킨 공로가 크다. 하쿠인선의 특징은 벽암록에 있는 1700개의 화두 하나하나를 다 타파해나가는 데 있다.

 첫번째를 통과하면 스승으로부터 두 번째 화두를 받고 세 번째, 네 번째 화두를 받아 이를 모두 타파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대혜선사가 얘기했던 공안선과 달리 하쿠인이 주장한 선은 점진적으로 깨달아가는 수양방법이다. 현재 일본에 하쿠인 선은 이러한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스승으로부터 하나의 화두를 받아 깨치면 그 다음에 또 하나의 화두를 받고 통과하면 또 그 다음 화두를 받고 이런 식으로 단계를 밟아나간다. 쉬운 화두부터 시작해서 점점 어려운 화두를 타파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선의 대중화를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을 무자 화두 하나만 가지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선방이 활성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스승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가지면서 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하쿠인이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1700개 이상의 공안을 하쿠인이 다시 공안집으로 다시 만들었는데 자기가 만든 독특한 공안도 하나 있다. 척수(隻手)공안이 그것이다. 척수란 무엇인가?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날까? 한 손으로는 소리가 안 난다고 보통 생각한다. 그러나 소리는 본래 있다. 우리가 못 들을 뿐이다. 이 분별지를 뛰어넘게 되면 한 손으로 쳐도 소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척수 공안이다.

하쿠인은 마치 계단을 오르듯이 단계적으로 화두를 하나하나 타파해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100m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는데 99m까지 올리고 1m 남아있으면 그것은 물을 못 마신다는 얘기다. 다 올라와야만 물을 마실 수 있다. 저 밑에 있는 물이나 코 밑에 있는 물이나 못 마시기는 매한가지이다. 끝까지 올라오려면 이 단계들을 다 거쳐야 한다. 맨 마지막 단계 내 입에 물이 들어오는 순간까지 하려면… 깨달았다는 스님들 이야기를 들으면 별 것 아니다. 감이 뚝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고 하는가 하면, 하쿠인은 범종이 들리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고 한다. 또 어떤 선사는 복숭아 꽃이 피는 것을 보고 깨달았고 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넘어지면서…. 이게 다 뭘 얘기하는가? 99.9m 을 가고 남은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99.9까지 의단을 계속 붙들고 있는 상태가 있어야 그 다음을 가는 것이지 그런 것 없이 맹숭맹숭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깨닫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을 예로 들면 물이 끓어서 100도가 될 때 물은 수증기로 변한다.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상황이 바로 질적인 전환, 비약이다. 진화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세상에 무생물이 있었는데 무생물에서 생명체라는 비약이 생겨났고 생명체에서 인간이라는 질적으로 비약하는 새로운 종이 생겨났고 인간종은 지금도 계속 진화가 일어나고 있다. 진화는 진행형이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 깨달음을 통해 질적으로 비약하는 것이다. 인식의 전환만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 변환이 이루어 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세계로 도약하는 것이다. 화두선에서 하쿠인이 말하는 공안은 이런 의미를 갖고 있다. 하쿠인선이 비판받을 수 있는 측면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깨달음을 지향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임제선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삼는다. 깨닫기 위해서 화두참구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좌선은 수단으로 전락한다. 조동선은 깨달음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래서 좌선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 깨달음과 수행이 둘이 아닌 하나의 경지를 이룬다. 이런 측면에서 임제선과 차이가 있다.

어쨌거나 화두선이 하쿠인에 와서 일본선의 독특함으로 자리가 잡혀갔고 오늘날까지도 같은 방법으로 화두참구를 하면서 상당히 대중화되었다. 하쿠인에 의한 단계적인 선 수행과 스승과 제자 간에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측면 덕분에 선 대중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요즘 들어 일반 불자들도 선을 한다 화두를 든다고 하지만 아직은 선이 대중화되지는 못한 실정이다. 그러나 일본은 굉장히 선이 대중화되어 있다. 

에도 시대에 성행한 선풍 중에서 또 한 가지를 든다면 황벽종을 꼽을 수 있다. 황벽종은 원래 중국에 있던 선풍이다. 황벽종의 개조인 인겐은 중국 명나라 복건성에서 태어나서 임제선을 배웠다. 34세에 득도 하고 나서 1654년에 일본으로 건너왔다. 교토의 황벽산 만복사에 개창을 하고 인겐선을 펼쳤다. 인겐선의 독특함은 정토종과 선을 결합한 형태에 있다. 염불과 선을 같이 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염불선이라고도 표현한다. 원래는 임제종의 황벽파로 이름이 붙여졌는데 나중에 종파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즉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황벽종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조계종이라고 불리우지만 대혜 종고의 간화선을 기본으로 하는 임제선 종풍을 따르고 있다. 일본의 하쿠인 선은 대혜종고의 간화선을 나름대로 변형한 것이지만 우리는 간화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현대에 들어와서 우리나라에도 선을 대중화시키는 작업의 하나로 일본의 하쿠인선이 들어왔다. 간화선 자체가 지닌 문제점도 있지만 우리나라가 중국 선불교 전통에 제일 가까운 선풍을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