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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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종교 연구

제8장 3. 2) 정통그리스도교 신학과 자유신학 3) 한국 그리스도교와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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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14-09-0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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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통그리스도교 신학과 자유신학

이렇듯 무교회주의자들이 소수라면, 일본 기독교의 주류는 누구인가? 주류파는 초기 서구 신학을 해온 유럽식의 전통신학자들로 그의 대표적인 신학자는 우에무라이다. 또 우치무라 간조의 새로운 토착신학과 함께 일본 안에 있었던 또 하나의 새로운 움직임은 자유신학이었고 그의 대표적인 학자는 가나모리였다. 가나모리가 말하는 자유신학은 전통적으로 주장되어 온 것들에 대해 반발로 성서 전체에 대해 전통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태도에 대해 상대적 태도를 취했다. 성서를 자유롭게 해석하고 상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직 예수?>라는 폴 니터의 책이 있다. 이 제목 뒤에 숨겨진 의미는 ‘오직 예수에게만 구원이 있는가?’라는 것이다. 오직 이라는 표현은 대단히 배타적이다. 자유신학자들은 ‘오직, 유일’같은 표현대신 ‘비교적 우위’라는 표현으로 재해석을 시도했다. 우에무라는 성서의 가치를 절대가치가 아니라 상대가치로 해석하려는 시도들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가나모리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정통 그리스도교 신학을 펼쳐나갔다. 우에무라의 신학은 서구 신학을 그대로 모방한 신학으로 서구 신학을 그대로 가져와 일본의 기독교 신학으로 집대성한 일본식의 정통 신학이다. 그러면서 주류적 일본 기독교는 천황제와 결탁해 교회를 유지해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류를 이루는 일본 교회도 한국 교회와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종파가 엄청나게 많지만 일본에서는 교파를 통합시켰다. 교파를 강요해서는 일본에서 선교가 불가능하다는 자각을 한 선교사들이 처음부터 교파를 주장하지 않았다. 이것이 굉장한 차이점이다. 일본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우리나라처럼 미국에서 바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다.

중국인들은 중화의식이 강하다. 자기네 문화에 흡수되고 자기네 문화식으로 바뀌지 않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벌써 중국에서 실패를 경험한 그들은 교파를 주장해서는 선교가 어렵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이렇듯 일본 교회는 발생 초기부터 무교파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것이 한국교회와 다른 점이다.

일본교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일본인들의 정신 세계가 정(情)을 무척 중시하고 체험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동양사상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 사람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중심적인데 반해 동양인들은 정적이고 체험 중심이다. 한국에서 교회가 커질 수 있었던 것도 감정에 호소하던 부흥 운동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신학적인 것보다 체험 중심이다. 이와 같이 초교파적인 성격, 무교회주의적인 성격이 일본 기독교의 독특한 면으로 등장하고, 이런 기독교 신앙이었기에 천황 숭배나 신사 참배 등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천황 숭배나 신사 참배도 하고 기독교 신앙 생활도 하고.


전쟁 후에 일어난 일본 그리스도교의 변천사에 대해 살펴보자. 전쟁 후 일본이 남의 나라를 침략했다는 측면에서 일본그리스도교는 전쟁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느꼈는데 이것은 서구 지향의 일본 신학이 제3세계로 관심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민중신학이 생겨났다. 그 중심에는 기타모리라는 신학자가 있었다. 그는 <아픔의 신학>을 썼는데 그는 여기에서 ‘하느님이 아파하신다, 인간의 아픔과 함께 하신다 인간이 당신의 아픔에 동참하기를 촉구하신다’는 성찰을 했다.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을 일으킨 책임에 대해 한국 등 제3세계에게 했던 짓이 얼마나 하느님을 아프게 했는가 하느님의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민중신학을 펼쳤다. 이 민중신학이 70년, 80년대데 계속 이어져 민중 중심, 아시아 제3세계로 일본 신학의 주제가 바뀌었다. 일본 내 소수민족에 대한 무관심도 반성하며, 교회가 소수민족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민중신학은 현대 일본 신학의 한 성과로 보고 있고, 오늘날 한국 민중신학과도 많은 교류가 있다.

이와같이 신학적인 측면에서는 반성, 성찰이 이뤄졌지만, 현대 일본 교회는 한국교회와 달리 그리 성장하지 못한 실정이다.


3) 한국 그리스도교와의 비교

여기서 한국 그리스도교 교회의 성장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한국 그리스도교가 성장하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었는데 시대적, 사회적 요인들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한말에 당시 전통 종교였던 불교나 유교는 공백 상태였다. 성리학은 조선 후기로 가면서 예론 논쟁에 빠져서 공허한 이론이 되어버렸고 불교도 고려 시대 이후 생명력이 상실되었다. 이와 같이 유교나 불교가 사회적 역할을 못하는 공백 상태에서 그리스도교가 들어왔다. 시기적으로 종교적 공백상태에 그리스도교가 한국인의 공허한 심성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당시 청일전쟁 러일전쟁 시기 동안 교회는 피난민 수용소를 운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설치한 피난민 수용소에 들어가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배우게 되었다. 전쟁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깊은 감화를 받아 많은 이들이 서교 신자가 되었다.

일제 시대에 국권이 강탈당한 상황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교회는 당시 한국인들의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대부흥운동을 펼쳤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대부흥운동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유명한 것으로 100만명 구령운동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일제시대에 탄압받는 상황은 한국 그리스도교가 급성장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제강점시기에 한국 기독교는 탄압을 받으면서 105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 기독교의 지도자들을 투옥하고 고문시켰던 사건인데 이 사건은 3.1 독립운동으로 이어진다. 3.1운동 33인의 대표 중에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1920년대로 넘어가면서 많은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부흥운동은 내세지향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신앙의 성격을 띄었고 이것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성격을 규정짓는 한 틀이 되었다. 1945년 해방 후 한국 교회는 또 다른 계기로 성장한다. 이승만 정권 시대에는 기독교인들에게 상당히 많은 혜택을 주었다. 정부 기관에 기독교인들을 많이 등용시키는가 하면 기독교 기관에도 특혜를 주었다. 그 이후에도 민족복음화 운동, 대형 집회는 1980년도 세계복음화대성회까지 계속적으로 일어났고 이것이 한국 기독교를 성장시키는데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 교회 성장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한국 기독교회의 성장에 따른 반성과 과제를 짚어보자. 긍정적으로는 한국 문화를 민중 속에 정착시키는데 기독교가 크게 기여했다. 특히 신자들은 성경을 읽기 위해 한글을 깨치게 되었다. 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민족 운동 특별히 3.1운동 참가는 한국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기여한 측면이었다. 또한 기독교 가치관은 한국 사회의 기존 가치관을 변화시켰다. 십계명, 만민평등 사상 덕분에 윤리관과 직업관이 많이 바뀌었고, 재물 소유에 대한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만민 평등 사상 때문에 혈통, 신분제에서 많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남녀평등을 주장할 수 있는 윤리적 근거도 제공했다.

이에 반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부분도 많이 있다. 첫째로는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많은데 왜 한국 사회는 어두운 구석이 많은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신앙과 행위가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과 행위가 분리된 근저에는 한국 기독교 가르침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원론적 신앙관이다. 한국 개신교는 미국 근본주의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왔기 때문에 희랍 철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중세 그리스도교 신학에 이원론이 자리잡았다. 현세와 내세를 이원화시키게 된 것이다. 창조주와 피조물, 정복자와 피정복자. 자연을 정복하라는 구절이 창세기에 나오고 이것이 인간들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로 이어졌다는 것이 기독교가 비판받는 측면이다. 이런 이원론적 구조들, 세계관 이것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내세 중심이 되고 현세를 무시하는 태도,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지 상관 없이 하느님만 믿으면 된다는 자세가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 현실을 외면하게 되고 현실 문제에 뛰어들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는 동기가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세 중심, 체험 중심, 개인 구원 중심이 한국 기독교의 기본에 깔려 있어서 아무리 신도 수가 많아져도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현실을 구원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일치시키느냐이다. 이 이원론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세계관에서 빠져나와 현실 세계의 고통과 사회 공동체의 구원에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신앙관이 바뀌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한국 개신교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