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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죽음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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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인의 우키요관
1)「우키요(うき世)」관의 발생근거
고대 일본인의 세계관이며, 자아관은 「世, 身」에 대 「憂」의 의식이 헤이안 시대의 「우키미」觀과 결합.
비개성적이며 집단적인 고대의 영혼관은 씨족사회가 붕괴하고, 개성의 자각이 싹터옴과 함께, 외래문화 특히 一切衆生의 佛性을 설파한 불교 교리에 자극되어, 원시적인 영혼관은 점차 변화를 보이게 된다.
<고대일본사회적 변화>
--씨족문화에서 개인문화로의 변화
--장원제를 기초로 한 고대 말기의 정치적·계급적 모순의 심각화, 그것에 따라 경험된 인간과 존재, 내부와 외부와의 화해하기 어려운 결렬이 영혼관·가치관의 불안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영혼의 위기감 혹은 자기상실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으며, 平安朝 문학에서 곧잘 발견할 수 있는 점이다.
영혼의 中世的 分化, 영혼의 개인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는 영혼관과 가치관의 불안으로 표출되게 된다.
平安朝 「우키요, 우키미」觀은 일본 고대인의 정신적 불안이라고 할 수 있는 個人化된 영혼 관념의 한 형태로도 표출된 의식어이다.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漂泊·漂遊해야 하는 마음의 불안한 상태, 바로 이것을 표현한 語가 平安朝 「우키요」이다.
고대부터 있었던 우키요관에 대륙으로부터 수입된 불교를 저변으로 하여 우키요관이 형성 즉 우키요관은 일본인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불교적 신앙관이자 사상이었다.
--- 厭世觀으로써의 宿世 사상과 無常觀 의 결합
「우키요」 意識의 자각과 그 반동으로써 죽음과 出家 등에 의한 自己消却과 淨土로의 欣求를 갈망하는 한 양식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平安朝 말기와 중세 초의 西行에 이르러 「우키요」는 확실히 변화를 하고 있다.
西行의 「우키요」觀의 사상적인 핵심은 「浮世」의 두 측면,
--현세인 「憂世」에 대한 긍정과 향락의 측면 이 두 성향 중 前者의 성향은 있어도 後者인 근세 「우키요」의 성향은 없다는 점이다.
- 염세적 의미의 「憂世觀」이 근세에 현세 긍정적 내지 향략적인 「浮世觀」으로 이행한 이유?
平安朝 시대 이후 「우키요」에서 <부키요>로 이행된 변화 과정의 과도기적인 현상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분명하지 않다.
--平安朝 불교의 특색인 浮土敎的 무상관과 염세관을 연결시켜 「우키요」觀에 「憂世」의 의미를 부여한 듯하다.
이러한 배경은 8세기부터 12세기에 이르는 소위 平安朝(794年-1192年) 문학과 연관
일본 平安朝 문학의 특징은, 대륙 문화의 단절과 귀족의 비호 아래 생겨난 平安朝 중류 여성의 정신적 산물.
일본 문학의 이념으로 일컫는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 「오카시(をかし)」등의 페미니즘의 경향이 짙은 문학관이 이 시대에 주류를 이룸.
이 영향 아래 「우키요」관 역시, 厭世的이며, 무상감이 짙은 「憂世」관으로 이해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平安朝 시대에 어떤 과정을 통해 「憂世觀」으로 정립이 되었나?
<우키요에서 부키요로>
중세의 우키요에서 근세의 부키요로의 변화.
「浮世」의 「浮」는 동사 「うく」 「うかる」 「あくがる」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아도 정신적인 불안으로 인한 마음의 혼란, 동요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近世에서 일컫는 「浮世」觀 은 현실 긍정 내지 향락적인 의미보다는 어디까지나 「표류하는 불안(浮び漂う不安)」이라고 해야 할 불안한 마음의 상태를 의미.
-平安朝 문학에 있어서 「우키요」觀은, 불교의 厭世觀으로 觀念된 자기 자신의 不幸觀을 根底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不遇 意識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厭世的인 「憂世」관이, 町人 文學으로 대표되는 근세의 문학관을 배경으로 하여 현실 긍정적 내지 향락적인 「浮世」觀으로 정립된 사실도 같은 연유에 의거할 것이다.
일본인들의 죽음이해 (死靈觀)
<모노노케히메-怨靈공주>
고대의 일본.... 필사적으로 숲을 지키려는 대자연의 신들과 인간들과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된다.
북쪽의 끝, 에미시족의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재앙 신이 나타나 마을을 위협한다. 이에 강한 힘을 소유한 에미시족의 후계자인 '아시타카'는 결투 끝에 포악해진 재앙신을 쓰러트리지만 싸움 도중 오른팔에 저주의 상처를 받고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결국, 재앙신의 탄생 원인을 밝혀 자신의 저주를 없애기 위해 서쪽으로 길을 떠난 '아시카타'는 여행 중에 '지코'라는 미스테리한 수도승을 만나 재앙 신이 생겨나게 된 이유가 서쪽 끝에 있는 '시시'신의 숲과 관련이 깊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한시 바삐 서쪽으로 향한다.
한편, 서쪽 끝 '시시'신의 숲 건너편에 위치한 '타타라'마을의 군주 '에보시' 일행은 식량을 수송하던 중 거대한 들개의 신 '모로' 일행에게 습격을 당해 큰 타격을 입지만 강력한 무기인 총포를 사용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때 마침 '시시'신의 숲의 계곡을 지나던 '아시타카'는 물살에 떠밀려온 '에보시'의 부하들을 구하게 되는데 먼발치서 자신을 지켜보는 들개 신 '모로'와 그의 옆에서 '모로'의 곁에서 상처를 치료해주는 신비스러운 소녀를 보게 되고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자신이 인간임을 부정하는 모노노케히메 '산'... '아시타가'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다...
귀빈 대접을 받으며 '타타라'마을에 머물게 된 '아시타가'는 재앙신이 '에보시'의 총에 맞은 멧돼지 신이었다는 사실과 재앙신의 저주가 숲을 파괴하려는 인간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깊은 실의에 빠진다. 순간, 적의 침입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시타카'는 총을 든 사수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는데 마을을 습격하고 있는 '원령공주'가 바로 '아시타카'가 숲에서 만난 소녀임을 알고 당황하게 된다.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으르렁거리며 사람들을 공격하던 '원령공주'는 '에보시'의 목을 노리며 달려오지만 총포로 무장한 '에보시'의 부하들은 그녀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데.. 순간, 망설이던 '아시타카'는 '원령공주'를 구해 마을을 빠져나간다.
숲과 산을 짓밟아 터전을 넓히려는 인간들과 그들의 야욕에 분노의 재앙신으로 변한 멧돼지를 비롯한 대자연과의 처절한 사투... 그리고, 그 전쟁의 중심에서 자연의 편에 선 '원령공주'와 그녀의 목숨을 구해 숲으로 들어온 '아시타카'... 두 사람은 이제 어느 편에 설 지를 결정을 내려야만 하고 인간들 은 최강의 군대를 동원하여 '시시'신의 숲으로 진격을 시작하는데...
에미시 마을에 갑자기 괴물 재앙신이 들이닥친다. 에미시족의 후계자 아시타카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재앙신을 쓰러뜨리지만 그의 오른팔에는 저주의 상처가 남는다. 저주를 풀기 위해 서쪽으로 길을 떠난 아시타카는 곧 숲과 산을 개간해 인간의 터전을 넓히려는 타타라바 마을의 영주 에보시가 저주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의 과욕에 실망한 아시타카는 숲을 지키기 위해 타타라바 마을을 습격한 모노노케 히메(원령 공주) 산을 사람들의 손에서 구해낸다. 이리의 손에서 자라나 자신이 인간임을 부인해온 소녀 산은 아시타카를 만나고부터 인간을 혐오하던 마음에 갈등을 느끼기 시작한다. 미야자키는 오랜 기간 고민해왔던 자연과 인간의 공생의 문제를 <모노노케 히메> 한 편에 집약시켜 놓았다.
산과 아시타카를 증인 삼아 인간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물론 스스로 설 땅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과정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모노노케 히메>는 해가 갈수록 더 깊어지는 미야자키의 통찰력이 일본 사회와 인간의 삶을 얼마나 잘 꿰뚫고 있는지 증명하는 대작이다.
미야자키는 오랜 기간 고민해왔던 자연과 인간의 공생의 문제를 <모노노케 히메> 한 편에 집약시켜 놓았다. 산과 아시타카를 증인 삼아 인간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물론 스스로 설 땅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과정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모노노케 히메>는 해가 갈수록 더 깊어지는 미야자키의 통찰력이 일본 사회와 인간의 삶을 얼마나 잘 꿰뚫고 있는지 증명하는 대작이다.
결론
고대인들은 죽음이나 사자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유?
영이 몸을 떠났기 때문--일본설화와 연관
(일본설화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상관관계
--고대일본인들이 죽음을 타부시했지만 현대에 들어와 일본인에게 죽음은 삶의 자리에 가까이 들어와 있다.
예) 불단을 집에 모심, 묘지가 시내복판에 있음 , 납골당이 성당이나 집 가까이에 있음
이러한 변화는 어디서 온 것인가?
고대 일본인의 인간관※
犬養公之※※宮城學院女子大學 敎授
李 姸 淑※※※번역:동의대학교 인문대학 한국어문학부 국어국문학 전공 교수
1. 육체의 종언
죽음은 부모와 자식을, 남편과 아내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끈을 끊는다. 그러므로 사별의 슬픔 속에는 끊기 어려운 끈을 어쩔 수 없이 끊어야만 하는 고뇌가 있다. 사람들은 시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간절한데, 그것은 시체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 온 끈의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거기에는 벗어나기 힘든 육체에의 집착이 있다고 생각된다.
??源氏物語?? ?夕顔?. 요괴에게 죽은 夕顔의 시체는 惟光의 계략에 의해 東山으로 보내어진다. 惟光의 보고를 듣고 源氏는 말한다.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시 한번 그 사람의 시체를 보지 않고는 아무래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으니 말을 타고 가보겠다.”
또 “아무래도 슬픔을 떨칠 방도가 없으니 적어도 지금 시체를 보지 않으면 또 어느 세상에서 그 모습을 만날 수 있을까”한다. 源氏는 마음을 정하여 東山으로 향한다. 아무래도 夕顔의 시체를 보고 싶다고 하며 ?지금의 시체?를 보지 않고는 안되겠다고 하며, ?지금의 모습?을 마음에 새겨두고 싶다고 한다. 살았을 때의 夕顔의 마지막 흔적이 거기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시체?에 대한 집착이며 ?육체?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古今集?? 哀傷歌에 僧都 勝延이 지은 ‘덧없는 매미도 껍질을 보며 위로받는다’. 그와 같이 나도 屈川의 大臣의 시체를 바라보며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고 하는 노래가 있다. (16?831)
제목을 보면 ?屈川 太政大臣?(藤原基經) 의 유해는 풀이 우거진 산에 묻혔다. 토장이었는지, 화장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토장이었다면 시체가 매장되어 위로받을 길이 없어진 지금으로서는, 화장을 하여 연기라도 되어 올라가 적어도 위로받고 싶다고 하는 뜻일 것이다.
화장이었다고 한다면, 시체를 보면서 위로받고 있었을 것이나, 지금으로서는 화장의 연기만이라도 계속 올라가서 쳐다보며 그리워할 수 있는 방편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僧都 勝延에게, 基經의 시체는 ?살아 있는 모습?의,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흔적이며 생각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시체를 보면서 한줄기 위안을 찾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源氏와 勝延처럼 고대인들은 시체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日本書紀?? (武烈紀) 에 影媛(카게히메)의 이야기가 있다. 武烈天皇은 稚??尊(와카사사키노미코토)라고 불리고 있었다. 影媛은, 物部?鹿火(모노노베노아라카비)의 딸이었다. 그 이름처럼 광채가 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생각된다. ?鹿火는 大連이었다. 大連이라고 하는 것은 大和朝廷의 執政官. 連이라고 하는 성을 가진 氏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수장에게 주어진 칭호이다. ?鹿火는 仁賢?武烈?繼體?宣化朝 때 요직을 역임하고 결국은 蘇我氏와 패권을 다툰 인물이었다.
稚??尊은 影媛을 아내로 맞이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매쟁이를 影媛의 집에 보내어 조만간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그러나 실은 그보다 앞서 影媛은 ?(시비)에게 범해진 상태였다. ?는 平群眞鳥(헤구리노마토리)라고 하는 대신의 아들이었다.
影媛은 稚??尊에게 구혼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사태가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는데 더구나 거기에는 平群眞鳥의 전횡이라고 일컬어지는 政爭이 깊이 얽혀 있었던 것이다.
稚??尊이 구혼하여 影媛과 만날 약속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眞鳥와 ?는 影媛이 그것을 거역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影媛대신에 대답을 한다. 歌垣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이다.
歌垣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서서 稚??尊은 影媛의 소매를 잡고 유인하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든다. 稚??尊은 하는 수 없이 影媛의 소매를 놓고 ?와 마주했다. 稚??尊과 ?는 노래로 겨룬다. 노래를 듣고 稚??尊은 비로소 ?가 影媛을 손안에 넣은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眞鳥와 ? 부자의 무례함에 분노하게 된다.
그날 밤 稚??尊은 大伴金村에게 가서 金村과 모의하여 수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를 奈良山에서 죽였다. 影媛은 ?의 뒤를 따라 가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두려움에 떨며 슬픈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影媛은 밥과 물을 손에 들고 울면서 ?布留(후루)??高橋(타카하시)??大宅(오오야케)??春日(카스가)??佐保(사호)? 땅을 지나서 매장지로 향한다. ?의 유해는 매장되었다. 매장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 그 때, 影媛은 오열하며 ?억울하다 오늘 나는 가장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다?고 했다고 한다. 그것은 상실의 비통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影媛의 이 말에 주목하고자 한다. 影媛은 ?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공포에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슬픈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거기에서 ?내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다?고 말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문맥을 그대로 따르는 한, ?의 시체를 매장하고 난 후, 影媛의 마음을 엄습한 생각이 이것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僧都 勝延이 基經의 시체를 ?풀이 우거진 숲에 매장하고 난 뒤? 받아들이고 있었던 생각과도 통하는 것일 것이다. ?매미가 껍질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있었던? 것은, 시체를 매장한 뒤의 일로서, 위안의 길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살아있었을 때의 흔적을 상실한 비창함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체에 대하여 집착하는 것은 源氏가 ?다만 지금 시체를 보지 않고서야?라고 하며 ?생전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한 것이나, 勝延이 ?시체를 보며 위안을 얻자?고 한 것처럼 실제로 보고 싶다고 하는 마음이었다. 시체에 대한 집착은 ?몸?에의 집착임과 동시에 눈에 보이는 것에의 집착이었다. 그러므로 매장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온 마지막 끈을 끊는 것이며 생전의 흔적을 묻어버리는 것, 눈앞에서 죽은 자를 빼앗아 가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육체적인 죽음을 확실히 받아들이는 것이며 影媛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육체를 가지고 살았던 인간 존재의 종언을 의식하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고대인에게 있어서 생과 사는 순간에 단절되는 것은 아니었다. 생과 사는 부드럽게 연속되어 있었다. 그것은 고대인들의 殯(모가리)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殯이라는 것은 생과 사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며 죽은 자는 생과 사가 겹치는 시간, 혹은 생과 사의 여백을 살아왔던 것이다. 山折哲雄氏의 말을 빌리면 ?생리적으로는 죽은 상태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아직도 살아 있는 이른바 擬屍體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그 殯의 기간 마지막에 매장이 이루어졌다. 육체를 가지고 살아 온 그 사람의 생의 종언을 인정하고 매장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육체의 죽음이 완결되었다고 하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되풀이하여 말하면 매장 후에 사람들을 빼앗아 가는 상실의 슬픔이라는 것은 육체적인 죽음의 종언을 받아들이는 슬픔이며, 생전의 흔적을 잃게 되는 슬픔이며, ?몸?에의 집착을 단절하는 슬픔이며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죽은 자를 몰아내는 슬픔이었던 것이다.
그 슬픔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이해하기 쉽다. 입관의 슬픔과 납골한 뒤에 엄습하는 그 상실감을 거기에 겹쳐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에의 집착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식 속에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2. 혼에의 집착
고대인은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하여 잠시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의식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는 위에서 본 것처럼 ?몸?에의 집착이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 이상으로 ?혼?에 대한 집착도 보여 주고 있다.
??萬葉集??의 挽歌에 다음과 같은 노래가 있다.
① 天智天皇의 병이 위독해졌을 때 大后가 바친 노래 1수
수목 울창한 木幡(코하타)山의 위를 魂이 오감을 눈으로는 보지만 직접 만날 수 없음이여! (148番歌)
② 天皇이 사망한 후에 倭大后가 지은 노래 1수
故人을 슬퍼하는 일 남들은 그만두겠지만 그림자처럼 계속 보여 잊을 수 없어라. (149番歌)
天智天皇이 서거했을 때 倭大后(야마토노오오키사키)가 부른 노래이다. 2수의 노래는 ?눈으로는 보지만?이라고 하며, 또 ?만날 수 없음이여?라고 하며, 또 ?계속 보여 잊을 수 없어라?라고 하여 눈에 보이는 것에 계속 집착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에 계속 집착하고 있음은 ?몸?에의 집착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뒤에서 논하기로 하고 위의 각각의 노래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①에서 大后는 ?눈에 보이는? 것과 ?직접 만날 수 없는 것?을 대비하여 노래부르고 있다. 눈에는 보이지만 직접 만날 수 없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倭大后는 木幡山 주위를 ?다니는? 모양을 ?눈에 보인?다고 말한다. 무엇이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남편인 天智天皇이며 통설대로 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른바 생명의 存在態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육체로부터 분리된 영혼은, 때로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믿어졌던 것일 것이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눈으로 보면서 大后의 슬픔은 치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표현대로라면 그것은 ?직접 만날 수 없는? 슬픔이었던 것이다. 天智天皇과 직접 만날 수 없기 때문이며 天智天皇이 ?직접? 만나주지 않기 때문이다. 大后는 살아 있는 몸과의 만남이 거부되어 있는 것에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②에 대하여 倭大后는 天智天皇의 모습이 ?그림자? 로 자꾸만 보여서 잊을 수가 없다고 노래한다. 그림자라는 것은 혼의 모습?형체를 말하는 것으로, 시각적으로 파악된 生命態를 말하는 것이다. 大后에게는 ?그림자?가 계속 보이고 있었다.
그림자로 보이는 것도 슬픔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 있는 몸과의 만남을 잃어버린 뒤에 받아들이는 슬픔과는 다른 것이다. 그 차이는 ?직접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것과 ?잊을 수 없어라?라고 하는 표현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①은 天皇의 서거 직후이기 때문인지, ?직접 만날 수 없는? 사실, 즉 살아 있는 몸과의 만남이 거절된 사실에서 느끼는 깊은 슬픔이 노래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②는 살아 있는 몸과의 만남이 거절된 것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잊을 수 없는 悲傷이 노래되고 있다. ?그림자?로서 계속 보이므로 잊을 수 없는 슬픔이 있음과 동시에 ?그림자?로서 天智天皇이 계속 나타나는 것에 한줄기 위안조차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倭大后의 悲傷은 먼저 살아 있는 몸을 가진 天智天皇과의 만남을 상실한 데에 있다. 그것은 大后가, 아니 그보다도 고대인들이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고 있은 것을 깊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며, 한마디로 말하면 살아 있는 ?몸?에 대한 집착을 나타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있어서 ?몸?을 상실한다는 것이 인간 존재 전부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고는 있지 않았던 것이다. 고대인들은 살아 있는 몸을 잃어버리고 나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임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힘이며, 생명의 存在態이며, 혼?그림자로 불리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비단 倭大后에게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天武天皇의 서거 후에 大后(후의 持統天皇)가 지은 ??萬葉集??卷第二의 159에서 ?저녁무렵이라도 되면 지금도 천황의 영이 찾아 와서 바라볼 것임에 틀림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中西 進氏가 말하는 것처럼 ?자신에게는 명확히 그렇게 지각된? 것이다. 그처럼 大后는 天武天皇의 사후의 혼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이다. ?죽은 혼?이 雷丘 주위에 있음을 지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 슬픔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슬프고?, ?쓸쓸하게 생활하고?,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또 倭大后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육체와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몸?에 대한 집착을 읽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몸인 것은 ?몸?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혼을 함께 가지고 살아가는 육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大后는 사후의 혼을 생각하고, 살아있는 몸과의 만남이 상실된 까닭에 슬퍼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살아있는 몸에 대한 집착뿐만이 아니라 사후의 혼과 그림자에 대한 집착을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
?本人麻呂는 아내가 죽은 후에 泣血哀慟하여 노래를 지었다고 하지만, 거기에도 倭大后와 持統天皇과 같은 생각을 읽을 수가 있다. 그 노래는 長歌와 反歌로 이루어진 4수이다(2?207-209, 201-212).
그 처음 작품은 두 번의 ?다른 방도가 없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다른 사람의 눈과 소문을 조심하여, 아내가 살고 있는 輕里에 가는 것을 마지못해 자제하고, 후에 만날 것을 마음의 위안으로 삼으며 지나치려고 하는데 하인이 아내의 죽음을 전해준다. 아내의 죽음을 들은 人麻呂는 말문이 막히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슬퍼한다. 그러나 슬픔에 빠져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일어나서 ?다른 방도가 없어? 아내가 언제나 나가곤 했던 輕市에 가서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아내를 찾는다. 그러나 귀를 기울여도 아내의 목소리는 조금도 들려오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를 주목해도 아내를 닮은 사람을 볼 수가 없다. 人麻呂는 아내의 죽음을 들었으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아내의 모습을 쫓으며 살아 있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였다. 살아 있는 몸과의 만남이 거절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무참하게도 무너진다. 아내의 소리를 들을 수도, 아내를 닮은 사람을 찾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人麻呂는 한층 더 슬픔에 휩싸인다. 그 깊은 슬픔 속에 人麻呂는 ?다른 방도가 없어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소매를 흔든다?고 노래하였다. 살아 있는 육신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지금 人麻呂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소매를 흔들며 혼을 불러보는 것이었다. 저 세상을 향하여 아내를 찾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人麻呂의 의식 속에는 두 번의 ?하는 수 없음?을 통하여 살아 있는 아내에 대한 집착에서, 혼의 아내에게 집착하여 가는 것이다.
두 번째 노래도, 이 땅에서 살았던 살아 있는 아내에 대한 집착에서, 저 세상(혼)에로 이행해 간다.
다만 처음의 노래에 비해서 저 세상에 대한 집착이 훨씬 강하다. 그것은 이미 살아 있는 몸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생의 영역(이승)과 죽음의 영역(저승)사이에 넘기 어려운 단층이 있음을 의식하고 전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人麻呂는 풀무레나무가 우거진 것처럼, 깊이 사랑하는 아내도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인간에게 ?세상을 등지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숙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人麻呂는 아무리 탄식해도 어쩔 도리가 없고, 아무리 사랑해도 만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는 아내를 찾기 위하여 이제 더 이상 輕市에 나가거나 하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아내가 羽易山에 있다?는 것을 듣고는 힘든 산길을 간다. 羽易山이라는 것은, 큰 새가 날개를 포개고 있는 속에 감싸여 있다고 하는 느낌을 주는 산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그곳은 다름 아닌 죽음의 영역이며 저승이었다.
人麻呂는 羽易山에서 아내의 ?죽어 사라진 그림자?를 찾는다. 거기에 두 번째 노래의 전개가 있다. 그러나 人麻呂의 생각은 거기에서도 배반을 당한다. ?잘도 빗나간?이라고 하는, 내뱉듯한 표현이 그 절망적인 탄식을 말해주고 있다. 그 이유는 ?덧없다고 생각한 아내가 어렴풋이라도? 보이지 않는 데에 있었다. 사람들의 시야에서 그림자는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고대문학을 통하여 우리들은 혼에의 집착을 읽을 수가 있다. 고대 사람들에게 인간이라는 것은 ?혼?과 ?몸?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伊藤博氏는 ?고대 일본인은, ?사람?(生)이라는 것은 ?體?와 ?魂?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람으로서의 실체는 ?身?으로도 불리며, ?身?에는 ?壽?라는 글자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고대 일본인들에게 ?죽는다?고 하는 것은 ?身? 속에 있는 ?魂?이 시들어 결국은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시들어 가는 상태가 ?병드는? 것이며, 빠져나가 버린 상태가 ?죽는? 것이었다.?고 하였다. 바로 이것이 고대 일본인들의 인간관이며 生死觀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伊藤氏가 ?사람?을 ?生?으로 파악한 것은 고대의식의 핵심 단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다.
倭大后의 노래나 人麻呂의 노래가 그런 것처럼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하여 무엇보다 먼저 ?몸?에 집착하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살아 있는 육체에 집착하여 그 만남이 거부된 것을 슬퍼하였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이 냉엄한 사실인 것을 알면 혼과의 만남을 바라며 그리운 사람과의 만남을 찾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3. 시체를 빌어 혼이 돌아옴
?혼?을 잃어버린 ?몸?은, 때로는 공허한 껍질에 지나지 않았다. ??古今集??의 다음 노래,
매미 허물은 나무마다 붙어 있지만 혼이 간 곳을 볼 수 없는 슬픔이여!(10?448)
이 노래의 의미는 표면적인 의미 외에, ???는 ?骸?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여, 매미의 벗은 허물임과 동시에 죽은 시체이기도 하며, ?나무?는 문자대로 나무이면서 동시에 ?棺?을 말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眞淵 이래 거의 통설로 되어 있는데 옳다고 생각된다. ??? 앞의 ?헛된 매미?, 또 매미가 간 곳을 ?혼이 가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시사하는 대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은, 시체를 관 속에 넣지만 혼이 가는 곳을 알 수 없으니 슬프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되풀이하여 말하면 고대 일본인은 인간을 ?혼?과 ?몸?이라고 하는 이원론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이 ?몸?에 깃들어 살고 있는 것에 인간의 존재를 인식하였던 것이다. 또 ?혼?은 사후에도 계속 살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도 있었던 것이다. 이 이원론을 전제로 하여 전개된 것이 借屍還魂說話이다.
??日本靈異記??의 ?염라왕의 사자가, 데리러 간 사람의 대접을 받고 은혜를 갚은 이야기?(中卷 第 二十五)가 일본문학에 나타난 가장 오래된 예이다.
讚岐의 山田郡에 布敷臣衣女(누노시키노오미키누메)라는 여자가 있었다. 衣女는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들었다. 그녀는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문의 좌우에 제?지내었다. 疫神(疫病神)에 대한 선물이며 대접하기 위하여 식사를 마련한 것이었다. ?염라대왕?의 사자는 衣女를 데려오도록 명령받았으므로 그 여자를 찾고 있었다. 찾아다니다가 완전히 지쳐버렸다. 가만히 보니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사자는 그것을 먹어 버렸다. 먹어 버리고 나서 생각했다. 대접을 받은 이상 이 여자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자의 목숨을 구해주자고 생각한다. 사자는 衣女에게 말한다. ?나는 너의 대접을 받아버렸다. 그러므로 너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 혹시 너와 동성동명의 사람이 없는가.? 여자는 말한다. ?같은 讚岐國의 ?垂郡에 同姓의 衣女가 있습니다?. 사자는 衣女를 데리고 ?垂의 衣女에게 가서 빨간 주머니에서 1자 되는 끌(鑿)을 꺼내어 ?垂의 衣女의 이마를 내리찍었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끌이 이마를 내리찍었으니 그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혼을 데려가기 위한 방법이며 죽음의 지표였던 것이다. 혼은 ?垂의 衣女의 혼을 閻羅王廳에 데리고 간다. 山田의 衣女는 가만히 집으로 돌아간다. 염라대왕은 衣女가 오는 것을 기다려 조사해보니 山田의 衣女가 아니었다. ?이 사람은 데리고 오라고 한 여자가 아니지 않는가?. 염라대왕은 ?垂의 衣女에게 말하였다. ?너는 잘못 왔다. 그러니 잠시 여기 머물고 있으라?. 그리고 나서 사자에게 ?곧 가서 山田의 衣女를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였다. 사자는 숨길 수가 없어서 山田의 衣女를 데리고 온다.
한편 ?垂의 衣女의 혼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 보니 삼일동안에 여자의 몸은 이미 화장을 했으므로 몸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여자는 閻羅王廳에 돌아가서 호소한다. ?나는 몸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머물 곳이 없습니다?. 염라대왕은 말한다. ?山田의 衣女의 몸은 남아 있는가?. 山田의 衣女의 시체는 아직 남아 있었다. 아직 화장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염라대왕은 말하였다. ?그 시체를 너의 몸으로 하여라?. 이렇게 해서 ?垂의 衣女는 山田의 衣女의 ?몸?을 가지고 소생하게 되었다. ??靈異記??는 그것을 ?따라서 ?垂郡의 衣女의 몸으로 되어 소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衣女?의 몸은 이렇게 山田 衣女의 ?몸?과 ?垂의 衣女의 ?혼?을 가지게 되었다. 山田 衣女의 ?몸?을 가지고 소생한 衣女는 말한다. ?이것은 나의 집이 아니다. 나의 집은 ?垂에 있어?. 山田의 衣女의 부모는 놀라서 말하였다. ?뭐라 하였니? 너는 우리의 자식.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부모가 계속 말하는 것을 衣女는 듣지 않는다. ?垂의 집에 가서 말한다. ?여기야. 나의 집은?.그런데 ?垂의 부모는 의아스럽게 말한다. ?너는 우리자식이 아니야. 우리 자식은 이미 화장하여 버렸다?.
그래서 衣女는 자세하게 지금까지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양쪽의 부모는 ?과연?그렇다고 생각하고 두 집의 재산을 물려줄 것을 인정하여 衣女에게 물려주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衣女는 4인의 부모와 두 집의 재산을 가지게 되었다.
閻羅王廳에 끌려온 것은 衣女의 혼이었다. 그리고 衣女가 소생하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하였다. 몸이 없어지면 혼이 머물 곳이 없기 때문이다. 혼은 몸을 집으로 하여 이 세상을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육체는 혼의 집이었다.
山田의 衣女의 몸을 집으로 하여 소생한 ?垂의 衣女는 ?이것은 내 집이 아니야?라고 말하였다. 어디까지나 ?垂의 衣女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몸은 山田의 衣女이지만 혼은 ?垂의 衣女인 이상, ?나?는 ?垂의 衣女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점이다. 인간의 ?실체?를 혼에서 찾고 있은 것이며,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몸이 아니라 혼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衣女가 설명하는데도 불구하고 山田의 부모는 ?너는 우리 자식?이라고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는다. ?垂의 부모도 ?너는 우리 자식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말할 것도 없이 衣女의 존재를 눈에 보이는 모습, 형태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衣女의 몸은 山田의 衣女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인 것을 인정하는 기본은 몸쪽에 있었던 것이다. 만약 衣女의 설명을 듣고 그것을 믿지 않았다면 누구나 다 衣女를 山田의 衣女로 밖에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衣女의 설명을 ?그렇다?고 믿었다. 衣女를 衣女답게 하는 것은 혼에 있으면서도 ?垂의 부모의 자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또 누구나가 山田의 衣女로밖에 보지 않았는데도 山田의 부모의 자식으로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양가의 자식으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합당한 결정이었던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고대인들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은 혼만도 아니고, 몸만도 아닌, 그 총체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衣女의 이야기는 ??今昔物語??에도 들어 있다.(卷第二十 第十八). 여기서도 살아간다는 것은 혼과 몸의 총체이었던 것이 보다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垂의 부모는 衣女를 보고 ?모르는 여자가 온 곳을 보고 놀라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부모에게 거기에 있는 것은 모르는 여자였던 것이다. 그것은 모습?형체가 山田의 衣女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衣女는 염라대왕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모는 그것을 듣고 슬피 울며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를 묻는다. 衣女의 대답은 모두 생전과 같았다. 부모는 그것을 듣고 몸은 다르지만 혼은 바로 자기들의 자식이었으므로 기쁘게 소중하게 키웠다고 하였다.
山田의 부모는 그것을 듣고 와서 혼은 다르지만 모습?형체는 그대로이므로 더할 나위 없이 귀여워하였다고 하였다.
이야기의 결말은 여기서도 ?이 여자는 4사람의 부모와 두 집의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하였다.
借屍還魂說話에서 명백한 것은 혼이 생명원리인 점이다. 혼은 사후에도 계속 살아 있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생각을 가지고, 감정을 가지고, 말을 하고 주장을 한다. 생명기능을 따를 뿐만이 아니라 감정기능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衣女의 衣女로서의 생명과 생각은 혼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衣女의 ?나?는 혼에 있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존재의 생각이나 감정을 ?혼?의 작용에 두고 있은 것이 고대인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비해 ?몸?은 공허한 껍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衣女를 衣女로서 부모가 먼저 인정하는 것은 그 ?몸?이었던 것이다. 혼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며,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衣女는 그 몸이었기 때문이었다.
혼과 몸의 이원론은 인간 존재를 이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혼을 인정하면서 눈에 보이는 몸으로 그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다.
되풀이하여 말하면 고대 일본인은, 혹은 고대일본인도 혼과 몸의 총체로 인간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 衣女의 눈에 보이는 개체로서의 존재를 몸으로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衣女의 ?실체?로서의 존재를 혼으로 인정하고 있은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4. 身과 體
借屍還魂說話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衣女를 衣女라고 알 수 있는 기본은, 무엇보다도 ?體?이었다. 한편 衣女에게 ?나?라는 존재의 실체는 ?혼?에 있었다. 그러므로 ?혼?을 잃어버리는 것은 생명을 잃는 것이며, ?나?를 잃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혼?을 잃은 ?體?는 바로 공허한 ?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또 ?骸?는 공허한 ?殼?만은 아닌 것이다. ?體?에 의해 개체는 식별된다. 그 의미의 중요성은 시체나 백골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萬葉集??의 挽歌에는, 자고 있는 것으로 죽음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있다. ?누워 있다?든가 ?엎드려 있다?는 것이 그런 표현들인데 아마도 시체가 그처럼 넘어져 있는 사실을, 혹은 그러하다는 것을 상정한 표현일 것이다. ?거친 침상에 누워 있는 그대?(2?220), ?바위 위에 그대가 누워있네?(3?421) 등등이 있다.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시체에 대하여 ?그대?라든가 ?나그네?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점이다. 萬葉歌에서 ?骸?라는 표현이 발견되지 않는 점 - 그렇다고 해서, 萬葉歌 시대에 ?骸?라고 하는 단어가 없었던 것을 결코 의미하진 않지만--과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시체는 무기질의 물체가 아니었다. 공허한 껍질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人?이었다. 생각컨데 ?體?를 가지고 그 사람인 것을 식별하고 인식하는 의식은, 사체에 대해서도 부연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표현은 거의 行路死人歌라고 통칭되는 작품들에 보이고 있다. 行路死人이라는 것은 여행 도중에 길에서 죽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혼이 위로받거나, 죽음이 확인될 수 없는 채로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죽은 자는 생과 사의 경계선을 방황하고 있다고 믿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것은 아닌 것이다. 누워있다고 표현한 것도 쓰러 엎드려져 있다고 하는 사실을 나타냄과 동시에 擬死體인 것을, 문자대로 뜻한 것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고대적인 의식에서 누워 있는 시체는 드디어 일어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래들에서 시체가 ?人?이며 ?그대(君)?라고 표현한 것도 죽은 자로 보지 않은 데서 온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표현의 내면적 뜻을 설명하자면 그러해야만 할 상태를, 말로 보증하기 위하여 선택된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擬死體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行路死人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高橋?麻呂는 葛飾의 眞間의 테코나의 일을 ?파도소리 철썩대는 만의 깊숙이 그대가 누워 있다?(9?1807)고 노래하였다. 무덤에 매장된 시체를 ?그대가 누워 있다?고 노래하는 것이다. 시체는 여기에서도 ?妹(아내)?였다. 테코나는 자살한 여자였다. 그래서 그러한 자살한 사람이나 行路死人 등의 횡사한 삶에 대해서만 특히 그러한 표현이 주어졌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다.
?本人麻呂는 앞의 泣血哀慟歌하의 反歌에서 죽은 아내의 시체를 ?妹?라고 부르고 있다.
萬葉歌에서 보듯이, 죽은 시체도 사람들에게는 계속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行路死人과 횡사자에 대한 생각에서 두드러지듯이, 더구나 그 뿐만이 아니라 죽은 자를 죽은 자로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심리가 그러한 표현을 낳게 하였던 것이라 생각된다. 혹은 시체나 백골이 살아 있을 적의 흔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러한 생각과 함께 ?體?를 가지고 그 사람으로 생각했던 의식이, 시체에 대해서도 또 ?體?의 엣센스로서의 ?骨?에 대해서도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萬葉集??은, ?大津皇子의 시체를 葛城의 二上山에 移葬?할 때에 황자의 누나인 大伯황녀가 슬퍼하여 부른 노래(2?165)에서 시체가 이장된 산을 ?弟?로 보고 있다. ?骨?을 그 사람이라고 보는 의식은, 그것이 이장된 산을 弟로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환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體?라는 것은 원래 어떠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었던 것인지 확인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또 사람들에게 ?身?과 ?體?는 어떠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體?라는 말은 아무런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실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佐竹氏는 앞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여곡절 심한 의미변화를 거친 말과 몇 백년 동안 조금도 뜻이 변하지 않은 평온한 말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그 내용, 꽤 복잡한 의미상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 있다. 인간 세계와 마찬가지로 의미의 세계도 또한, 무표정한 포커?훼이스야말로 당치도 않은 거짓인 경우가 적지 않다. 신체를 나타내는 ?體라는 말도 아마 그러한 포카?훼이스 아래에 많은 사람들을 속여온 한 예가 될 것이다?
우리들은 ?身?과 ?體?를 동의어로 보아왔다. 확실히 그러한 면은 있으며 萬葉歌의,
둘도 없는 사랑을 하면 보통 때는 한겹으로 매던 띠를 세겹으로 할 정도로 내 ?身?은 야위어 버렸다.(13?3273)
에서의 ?身?은 ?體?로 바꾸어도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佐竹氏는, ?體?라는 것은 ?살아 있는 인체에 사용되지만 결코 ??身??의 同義語는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 ?그리이스어로 신체의 뜻을 나타내는 soma는, 원래 死體라는 의미에서 변한 말이라고 하지만 室町時代의 ??몸??에도, 死體에서 生體에로 의미변화가 발생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하면서, 月庵僧光禪師의 假名法語를 언급하면서, 그것이 ?어디까지나 形骸的인 육체라는 의미에서 死體와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죽는 것과 일시적인 방임을 같은 차원에서 파악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있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아마, 死體?生體의 구별없이 形骸的으로 파악된 육체를 나타내는 것이, ??몸??의 원래의 뜻이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身?에 대해서는 ?가끔, ??목숨??이라고 하는 말로 바꾸어도 지장이 없는 듯한 용법이 있다?고 하고는 ?亭子院歌合?의,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는 헛되이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身만 있으면 후에 만날 수도 있으련만
을 들고 또 萬葉歌의,
내집 뜰의 풀잎에 하얗게 내린 이슬처럼, 목숨도 아깝지 않네. 그대를 만나지 못하므로(4?785)
를 든 뒤, ?이처럼 ??身??이 동시에 ??목숨??이기도 했다는 것은, 즉, ??身??이 생명있는 육체를 나타내는 말이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氏의 ?身?과 ?體?에 대한 견해는 아마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身?과 ?體?는 육체라고 하는 차원에서 파악되고 있다. 육체라는 점에서 ?身?과 ?體?는 같지만, 그 차이는 ?體?가 ?形骸的?으로 파악된 것, 한편 ?身?은 ?생명있는 육체?로 파악된다는 것일 것이다.
宮地敦子氏도 ??心身語彙의 史的硏究??에서 佐竹氏의 설을 바탕으로 하여 ?몸은 중세에, 生體?死體 관계없이, ??마음?????영혼?????精?? 등이 사라진 껍질, 즉 정신을 버린 形骸로 파악되었다?고 하였다.
?身?과 ?體?의 차이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이미 통설로 되어서 ??岩波古語辭典??도 ?體?를 설명하여 ?생명이 깃든 육체를 身이라고 하는데 비해, 생명이 깃들지 않은 形骸로서의 身體?를 말한다고 하였다.
고대인이 인간을 ?혼?과 ?體?의 총체로 파악한 점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보았다. 살아가는 것은 ?혼?이 ?體?를 머물 곳으로 한 점이었다. 따라서 佐竹氏가 논하듯이 ?생명있는 육체?가 ?身?이었다는 것은, 그것을 고대적으로 설명하면 ?혼을 함께 가진 體?가 ?身?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살아 있는 인간을 총체로서 파악한 단어가 ?身?이라고. 역으로 말하면 혼을 잃어버린 ?體?가 때로 공허한 ?껍질?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잘 알 수 잇는 것이다.
??岩波古語辭典??이 ?殼???軀?를 ?枯??와 같은 어원?이라고 하고, ?水分?생명이 완전히 없어진, 껍질이 된 것?, 또 ?實(열매)?를 ?身과 같은 어원?이라고 하여, ?身?은 과실처럼 충실한 알맹이를 가진 것으로 파악한 점도 수긍할 만하다.
?身?과 ?體?의 차이는, 앞에서 예로 든 ??靈異記??의 衣女 이야기에서도 거의 확인할 수 있었다. 염라대왕이 ?山田郡의 衣女의 體는 있는가?라고 묻고, ?垂의 衣女의 혼을 향하여 ?그것을 너의 身으로 하라?고 했으며, 또 ??垂郡의 衣女의 身이 되어 다시 살아났다?고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宮地氏는, ?[카라]는 생물의 외곽 즉 [殼]의 뜻에서, 사람의 形骸?遺體를 가리키게 된 것으로 보아진다?고 설명하고, 나아가 ?라틴어 corpus(身體)는 근원[?]이라는 뜻이었다?는 것과, ?영어의 corpse가 死體의 뜻을 나타내게 된 것?을 대조적으로 다루었다. 고대 일본어의 [카라]를 [?]의 뜻이었다고 보는 것은 재미있다. ?생물의 외곽?을 ?카라(껍질)?라고 하는 것도, 이미 살펴보았듯이 蟬殼은 ???(카라)였으며, ??古事記??에 전해지고 있는 노래에도 ?겨울에 마른 가지를 素幹(스가라)?라고 하고 있으며, 稻幹(이나가라)?麻幹(오가라) 등의 ?카라?도 ???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카라다(體)?의 ?카라?도 확실히 形骸的으로 해석할 수 있는 ???로, ?屍???骸?를 ?카라?라고 하여, ?혼?이 없어지고 남은 ???로서 이해한 것일 것이다.
다만,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體와 혼이라고 하는 이원론을 전제로 한 이해라는 점이다.
5. 보이는 존재
?身?은 혼을 가지고 살아가는 生身의 육체를 말하며, ?體?는 生體?死體에 관계없이 육체의 形骸的인 ???를 말하였다. 그것이 현재 우리들이 얻은 결론이며, 그것은 나름으로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인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는가 하는 명제에 그것은 어느 정도 대답할 수 있는 것일까?
고대에, 존재는 ?ある(있다)?라고 표현되었다.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萬葉歌에서 그러한 예를 찾아보면, 大伴旅人은,
어정쩡한 인간으로 살 바에야 차라리 술독이나 되었더면. 술에 빠져 있을 걸(3?343)
라고 노래하였으며, 山上憶良이 貧窮問答歌에서 ?나 외에 참인간은 없을 걸(あらじ)?(5?892)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다. 萬葉歌 뿐만이 아니다. ??竹取物語??는 ?지금은 옛날, 竹取노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ありけり)?로 시작하여, ?竹取노인이라고 하는? 존재가 ?あり?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극히 당연한 표현으로 계속되고 있다. ?いる?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ある? 라는 것은 ?現る(나타나는 것)?이상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미 충분히 설명하였듯이, 인간 존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원래 살아 있는 것도 ?ある(있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으며 인간의 탄생도 ?ある(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탄생도 출현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ある?라고 하는 말이 너무나 일반적이고 광범위하다고 생각한다면, 고대인이 인간을 ?허망한 풀잎?이라고 표현한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허망한 풀잎?을 ??日本書紀??는 ?顯見蒼生?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顯現하는 것에 인간 존재가 인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萬葉集?? 挽歌에서 죽음의 표현은, 앞에서 살펴본 눕는다는 표현 이외에, 또 다른 표현 즉 ?간다?라든가 ?숨는다?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靑木生子氏가 논급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적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 비해, 死者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몸을 감추는 것이었다?.
고대인이 생각한 ?우주?는, 눈에 보이는 영역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또 안의 영역과 밖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생의 영역과 죽음의 영역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되었다. 생의 영역은 ?現의 영역?으로, 죽음의 영역은 ?나타나지 않는 영역?으로 파악되었다. 죽는 것이 ?숨는?다고 표현된 것은, ?現의 영역?이 눈에 보이는 영역이며, 따라서 죽는 것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일 뿐임을 말하는 것이었으며, 안의 영역으로 파악되었을 때, 죽는 일은 밖의 영역으로 떠나는 것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인간이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영역에 있는 것이며, 안의 영역에 있는 것이었다. 고대인에게, 인간은 눈에 보이는 영역에, 눈에 보이는 존재로서 있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는 존재라는 것은 말하자면 모습?형체를 가진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古事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은 주목할 만하다.
이 세 신(아메노미나카누시노가미?타캄니므스히노카미?카무므스히노카미)은 모두 결혼하지 않은 신으로 身을 숨기고 있었다.
이 두 신(우마시아시카비히코지노카미?아메노토코타치노카미)도 마찬가지로 결혼하지 않은 신으로 身을 숨기고 있었다.
이 두 신(쿠니노토코타치노카미?토요쿠모노노카미)도 마찬가지로 결혼하지 않은 신으로 身을 숨기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 神은 ?身?을 감추고 나타내지 않았던 것이다. 神은 生身의 육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가지고 있지 않은 점에서 인간과 단절되며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었다. ??古事記??에 등장하는 神들도 원래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身?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西鄕信綱氏는 ??古事記註釋??에서 ??隱身?은 현대풍으로 말하면 抽象神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獨神이었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였을 터인데 ?隱身?이라고까지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抽象神?이기 때문에 ?몸을 숨겼다?고 하는 것이다. 中西進氏도 ?체험적인 세계와는 다른 추상개념의 신격은, 모두 ?獨?이며 ?隱?이었다?고 하였다. 이 신들이 ?隱의 영역?에 있다는 의미는 추상신이라는 점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西鄕氏는 계속하여 ?古事記 冒頭의 이 단락에서부터 국토생성의 단락에 걸쳐, ??身??이라는 용어가 계속 사용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身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루어졌으며, 적어도 성적으로는 獨神은 아직 눈에 보이는 ??身??은 아니었다고 보았던 것이 것이다.
氏는 ?身?이라고 하는 말에 주목하여 ?獨神은 아직 눈에 보이는 ??身??은 아니었다?고 하였다. 이 지적은 시사적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身??은 아니라?고 하는 것은, 神은 ?身?을 가진다는 말인지, 아니면 가지지 않는다는 것인지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古事記??는 ?身을 감춘다?고 하였으며, 문맥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나타났던 신이 그 ?身?을 감추었다고 하는 것인지, ?身?을 감춘 채 있다고 하는 것인지 어느 한쪽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身?이 없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타난 다음에 숨은 것이든, 숨은 채로 있는 것이든 神에게는 神 나름의 ?身?을 상정하고 있은 것이 고대인들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바로 그 점인 것이다.
확실히 신들은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白川靜氏가 논급하였듯이 신화는 ?그 민족과 문화의 성립과정에서 생겨나, 그 발전 단계에 따라 전개하며, 무언가 통일적인 생각에 의해 체계화되는 것?이며, ?통일은 그 최종적인 단계에서 어떤 구심적인 목적에 대하여 그 신화적 표상을 통하여 성취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그것은 국가성립의 단계에 이루어졌다?.
어쨌든 일본신화에 그러한 경향이 강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古事記??는 ?天皇家의 절대성 확립을 위한 신화?를 말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金井淸一氏가 논급한 것처럼 ?이 신화들이 身을 감추는 것은, 신들의 세계 즉 高天原의 질서 확립을 위한 것이다. 高天原의 최고신은 후에 탄생하는 天照大御神이다. 따라서 天照大御神에 선행하여 존재하고, 보다 근원적인 기능과 의미를 지닌 신들이, 天照大御神의 출현 후에도 여전히 高天原에 동등한 차원의 존재로 존재한다는 것은, 天照大御神을 최고신으로 하는 질서의 성립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신은 세계의 뒤쪽에, 어두운 곳에 몸을 숨기고, 이른바 인간계의 신처럼, 신들의 세계의 신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天照大御神을 탄생시킨 伊耶那岐神은 身을 숨기지 않지만, 天照大御神을 낳은 후, ??淡海의 多賀에 좌정했다??고 되어 있으며, 역시 두드러진 신들의 세계에서 은퇴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신들을 이와같이 처리하는 것을 古事記는 명백하게 기록하여 天照大御神의 최고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신들이 ?隱의 영역?에 있는 것에 대한 논의는 이렇게 하여 일종의 해답을 얻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러한 ?身?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논급한 것은 거의 없다. 아마도 그것을 너무나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필자는 바로 그것을 문제로 다루고 싶다. ?神의 身?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대인의 ?身體觀?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그에 대한 대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문맥내용을 그대로 따른다면, ?身을 숨긴다?는 것은 모습?형체를 숨기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神의 身?이라는 것은 신의 모습?형체를 말하는 것이며, 사람들은 신에게도 모습?형체를 상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隱身?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지극히 단순한 해답은, 우리들의 ?身?에 대한 통설적인 이해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이 파악한 ?身?이라는 것은, 육체 그 자체가 아니라고 하는 점, 그리고 고대인에게 ?身?이라는 것은 모습?형체만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身?은 모습?형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가지고,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말을 사용하여 나름으로 실체를 포괄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습?형체를 가지고 있는 한에서 파악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신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형체를 가지고 있었던가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古事記??에서 神의 ?身?에 대한 설명은 여기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노고로 섬에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聖婚을 이야기 하고 나서 ?身?의 형태에 대해 말한다. 이자나기는 말한다. ?너의 몸은 어떻게 생겼는가?. 이자나미는 ?내 몸은 만들어지고 만들어지다가 부족한 한 곳이 있다?고 말한다. 이자나기도 또 ?내 몸은 만들어지고 만들어져서 남는 곳 한 곳이 있다?고 한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身?은 인간의 형태와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고대 일본의 많은 신들이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신들은 인간과 다름없는 모습?형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신들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에테르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肉塊로서의 ?體?를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신들에 대하여 시각적으로 주어진 육체성을 희구했을 뿐인 것이다. 더구나 그 모습?형체를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체를 상상하여 그렸던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보면, ?身?은, 비유를 포함하여 3개의 ?像?(=姿?形)으로 파악할 수가 있다.
1.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의 모습?형체를 눈으로 볼 수가 있고, 그 像을 實線으로 그릴 수가 있는 것이다.
2. 그에 비해 影(面影)이라고 불리는 신이나 혼의 모습?형체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눈앞에 나타나며 우리는 그것을 그리려고 하면 그릴 수가 있다. 實線의 像과 구분하여 말하면, 점선에 의해 그려지는 像인 것이다.
3. 점선의 像을 가지는 한, 신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나름의 모습?형체를 틀림없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점선으로조차 그릴 수 없는 像을 想定한다. 그것이 고대 일본인이 파악한 제 3의 ?身?이었다. ?隱身?이라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투명한 그대로의 白線의 像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모두를 인간들은 ?身?으로 파악하였다. 이로써 사람들이 어떻게 파악했던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실선으로 그릴 수 있는 像(1)이 ?現의 영역?에 있는 ?現의 존재?인 것은 자명한 것이다. 점선조차 그릴 수 없는 白線의 像(3)은, ?現아닌 영역?의 ?현존하지 않는 존재?인 것도 자명하다. 그에 비해 影(面影)처럼 점선으로 그려지는 像(2)은, ?現아닌 영역?에 있는 것이면서, 눈에 보이는 점에서 ?現의 존재?임을 주장한다. 육체를 가지든 가지지 않든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형체가 있으며, 실선이든 점선이든 우리가 像을 그릴 수 있는 것은 ?現의 영역?에 나타나 있는 ?現의 존재?인 것으로 고대 일본인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神의 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