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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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연구

하느님의 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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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14-01-2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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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모상

(본고는 운주사에서 출간된 <불교와 그리스도교, 영성으로 만나다, 최현민 저> 제5강 ‘하느님의 모상과 불성‘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최  현  민

1) 그리스도교 전통신학에서의 하느님의 모상

대승불교에서는 인간의 본래성인 ‘자성은 청정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절대 긍정적 인간관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전통 그리스도교 교의신학은 인간을 ‘하느님의 형상이면서 동시에 죄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본래성을 단순히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을 하느님의 형상이면서 동시에 죄인으로 볼 때, 하느님의 형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리스도교 신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신학에서는 인간을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피조된 존재”로 이해해 왔는데, 이는 P문서에 나오는 창조 기사인 창세기 1장 26-27절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 구절에서 두 가지 개념을 도출했습니다. 하나는 “형상(imago)”이고, 다른 하나는 모양(similitudo)이라는 겁니다. 이 두 개념의 대한 논쟁은 초대교회의 교부 시대부터 있어 왔습니다. 클레멘스Clemens와 오리게네스Origenes는 하느님의 형상이 인간의 영혼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본 반면, 이레네우스Irenaeus와 테르툴리안Tertullian은 하느님의 형상을 인간의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와도 결합되어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형상과 모양’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 하느님의 ‘모양’은 상실되었으나 하느님의 ‘형상’은 상실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유는 중세 스콜라 신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형상’을 인간이 타락한 후에도 남아 있는 이성, 의지의 자유로 보았고 ‘모양’은 인간의 타락과 함께 잃어버린 ‘본래적인 의’로 해석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후에 에밀 브룬너에게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형식적 하느님의 형상(formale imago Dei)과 실질적 하느님의 형상(materiale image Dei)을 구분했습니다. 형식적 하느님의 형상은 인간의 언어 능력과 책임성, 자유, 양심, 이성으로 남아 있는데 반해, 실질적 하느님의 형상은 죄로 인하여 상실되어 하느님과의 관계를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종교 개혁자들은 하느님의 형상을 첫 인간에게 주어진 ‘본래적인 의’의 근거로 보지 않고 실제적인 하느님과의 관계로 보았습니다. 즉 그들은 하느님의 형상이 현실적인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 사이에서도 하느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에 현저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루터(M. Luther)는 원죄를 통해 인간은 하느님의 모양뿐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까지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았습니다. 즉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하느님의 형상과 모양까지 완전히 상실했다는 겁니다. 그는 형상과 모양을 구분할 수 있는 근거는 성서 어디에도 없으며, 인간은 타락한 후에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반해 칼빈(J. Calvin)은 타락한 인간에게도 하느님의 형상의 파편이 남아 있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구별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칼빈은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한 하느님의 형상과 모양을 구분하는 이론을 수용했던 겁니다.

19세기 변증법적 신학자인 칼 바르트K. Barth는 루터의 전통을 이어받아 하느님의 모상성이 인간의 고유한 성품과 연관이 있다고 보는 모든 견해를 반박했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타락했기에 하느님께서 지으신 하느님의 형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은 인간 편에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만(sola gratia)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이 바르트는 하느님의 모상성은 인간이 소유했다가 상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이고 인간의 운명이라고 보았던 겁니다.

이렇게 볼 때 하느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두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해버렸다고 보는 견해(M. Luther-K. Barth)이고, 다른 하나는 모양과 형상으로 구분하여 모양은 상실했으나 (완전하지는 않지만) 형상은 남아 있다고 보는 흐름입니다(초대교부, J. Calvin, E. Brunner 등). 이렇게 하느님의 모상에 대한 이해는 서로 달랐지만, 하느님께서 창조한 최초에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성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뭔가 상실되었다는 건 상실 이전에 있었던 상태를 전제합니다. 다시 말해 죄로 인해 그 상태를 잃어버렸다는 건 그 시초가 완전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느님의 모상성은 최초에 한 번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원죄로 인한 타락 이전이라고 보는 것이 전통 그리스도교 신학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태초에 완전한 상태가 죄로 인해 상실되었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잃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교파 간에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본 교부 시대부터 중세를 거쳐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형상에 대한 견해는 현대신학에 와서 어떻게 자리매김해 왔는지 판넨베르크의 사상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시다.


2) 하느님의 모상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견해

전통신학에서는 신을 전제하여 인간을 이해해 왔기에, 다른 학문(생물학, 사회학 심리학 등)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과는 차별화되어 왔습니다. 판넨베르크는 이에 문제의식을 느껴 타 학문의 인간 이해를 수용하여 인간을 새롭게 이해하고자 시도했습니다. 현대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려 듦으로써 세계를 넘어선 존재가 되어버렸기에 종래 그리스 철학에서처럼 우주 질서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막스 쉘러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대상세계에 종속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벗어나기도 하고 그 세계로부터 자신을 돌본다는 점에서 인간의 특성을 ‘세계 개방성’으로 보았습니다. 판넨베르크는 이러한 막스 쉘러의 영향을 받아 ‘신개방성’을 인간의 본성적 특징으로 언급했습니다. 즉 인간은 세계를 향해 자신을 실현코자 하는 세계 개방성을 지녔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신을 향한 개방성으로 나아간다는 겁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판넨베르크에게 신개방성은 ‘하느님의 모상’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모상을 신개방성으로 이해하게 된 데에는 쉘러와 함께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입니다. 헤르더는 전통신학자들이 가르쳐 왔듯이 ‘원래 인간은 완전한 하느님의 형상 속에서 창조되었으나 타락에 의해 완전성을 상실했다’는 주장을 부정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인간은 원래 완전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가는 인간성을 지녔다고 봅니다. 따라서 인간은 점점 하느님을 닮아간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인간 실현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판넨베르크는 헤르더의 이러한 주장을 수용함으로써 하느님의 형상을 완성되어 가야 할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이 판넨베르크는 인간의 특성을 쉘러의 ‘세계 개방성’과 헤르더의 하느님의 형상을 향한 목표를 지닌 존재로 본 것입니다.

한편 그는 인간은 신개방성이라는 자기 본성에 모순되게, 자기중심에 갇혀 살아가는 경향을 띤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와 같이 세계와 신을 향해 자기를 폐쇄하는 것을 판넨베르크는 ‘죄’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판넨베르크는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인 신개방성과 함께 자기 폐쇄성을 지닌 존재이며 이러한 양면의 긴장관계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전통 신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쉘러가 말한 세계 개방성과 헤르더의 하느님 형상을 결합시켜 ‘신개방성’으로 하느님의 형상을 해석한 판넨베르크의 관점은 신학적인 인간 이해를 넘어 종교의 보편적 관점에서 인간을 묻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