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민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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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연구

영성생활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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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15-06-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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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의 함정


                                                                                                                  최    현  민


영성생활은 거창한데 있지 않다. 신학적 철학적으로 아리송한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건 영성생활과는 그리 관계있어 보이지 않는다. 초월이니 내재니 하는 말들은 실제로 영성생활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의미있게 다가오는가?  현실에 발딛지 않은 말들은 그저 空華 곧 ‘허공의 꽃’일 뿐이다.

  영성생활을 살려는 이들의 일상 속에는 많은 함정들이 숨겨져 있다. 오늘 아침 일이다. 주방장 수녀님께서는 어머님께서 병환이셔서 토요일 저녁식사 당번을 내게 부탁하셨다. 아니 일요일 식사당번인 내가 하루 댕겨 당번을 하는 것뿐이다. 오늘 큰 문제가 없는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문제는 공교롭게도 오늘 토요일이 내 기도당번날인 것이다. 그래서 깍둑이-기도당번이 없을 때 대신 해주는 역할로 공동체에서 결정된- 수녀님께 기도주도를 부탁 드렸다. 사실 그 수녀님도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안 되어 기도를 주도하긴 어렵지 않을까 생각은 했다. 짐작대로 수녀님은 어려워 하셨고 그래서 다른 수녀님께 부탁했다. 그러나 그 수녀님도 이유를 잘은 모르지만 아무튼 부탁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얼마 전에 어느 수녀님이 찾아와 속상해 하며 했던 말도 오늘 내가  느낀 것과 유사한 것이었다. 살다보면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자기 것만을 챙기려 한다면 같이 사는 게 팍팍해지고 그래서 힘도 빠지게 된다. 일상 안에서 부닥치는 상황들에 우린 늘 자기는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는 이유를 갖고 있다. 사실 우리는 쉽게 자기 합리화를 해가며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러한 자기합리화가 자신의 영성생활을 좀먹고 결국 구멍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일상 안에서 내게 다가오는 작은 도전들 앞에 ‘예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사실 그것은 자기포기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기포기는 거창한 데 있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부닥치는 상황들 속에서 우리에게 도전으로 다가온다.

 가면 갈수록 우린 점점 더 시간에 인색해져간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 시간을 내주기가 점점 어려워져간다. 그러나 그러한 인색함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힘 빠지게 만들고 결국 자신의 영성생활에도 구멍을 숭숭 만들고 만다.

토마스 머튼이 말했던가. “우리는 포기하는 것만을 얻는다”고. 이기심은 자신 안에 분열을 가져오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분열을 조장한다. 그 분열은 자기포기를 통한 사랑에 의해서만 다시 봉합가능하다. 

어제 모처럼의 기회가 주어져 대학로 내여페 극장에서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를 보았다.  평범했던 조선 여인 정난주는 천주쟁이 황사영의 아내라는 이유로 사대부부인에서 노비로 전락해서 5대독자 젖먹이 아들과도 떨어져 제주도에서 참혹한 일생을 살았다. 천주 위해 목숨을 바친 남편, 몰락한 집안, 죄인으로 제주도 땅을 밟은 자신, 어디 사는지 조차 알길 없는아들을 그리워하며 가혹한 현실을 끌어안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했던 정난주. 그녀는 결코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운명을 받아 안고 일생을 견디어낸 이 시대의 또 다른 형태의 순교자가 아닐까.

뮤지컬 중 그 여인이 품어내는 깊은 신음소리는 그 공간에 함께 있던 나에게도 그대로 그 절절한 쓰라림이 전해졌다. 제주도 바람만큼이나 모진 시련을 신앙과 인내로 이겨낸, 한 평범한 여인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순교였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순교는 어떤 식으로 다가오나, 신앙 때문에 남편이나 아이를 잃을 위험이 우리에겐 주어지지는 않지만 대신 우리에겐 일상 안에서 자기를 포기해야 할 순간들과 직면하며 살아간다. 오늘 내게 주어진 이 도전 앞에 과감히(?) 자기포기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린 영성생활 그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2015. 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