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글종교간_대화라는_표현의_위험성 10.10.25
- 다음글니시타니의 도겐해석 10.10.25
니시타니의 종교관
페이지 정보

본문
< 西谷啓治의 종교관 >
서론
1.西谷啓治の生涯
1) 제1기(1900-1949) a) 철학의 길에로
b) 선의 길에로
2) 제2기(1950-1961)
3) 제3기 (1962-1990)
2. 니시타니의 문제의식-허무주의
1) 시대적 상황으로서의 니힐리즘
a. 종교적 입장 위에 선 니힐리즘
b. 과학적 입장위에 선 니힐리즘
2) 실존적 문제로서의 허무주의-인격중심, 자아중심
a. 신중심적 인격의 문제
b. 인간중심적 인격성(무한한 유한성-윤회로서의 니힐리즘,
무명 원죄와 관련된 니힐리즘- 악의 문제)
3. 니힐리즘 초극의 시도1
1) 니체를 통한 니힐리즘의 극복
2) 마이스터 엑카르트를 통한 니힐리즘의 극복
4. 니힐리즘 초극의 시도2-공의 입장
5. 공의 입장에서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해석
6. 니시타니사상의 한계
1) 인격관과 자아관
2) 공의 입장에서의 역사의 주체의 문제
3) 니시타니의 신과 예수의 이해
7. 니시타니의 후기사상
(1) 니시타니의 후기사상의 문제의식
(2) 후기사상의 새로운 해석
1) 하세쇼또의 해석
2) 브락트의 의문
8. 후기사상의 특성
(1) 자각에 있어서의 自와 他의 관계
(2) 자각과 信
(3) 공의 신체성
1) 몸의 의미-대지의 의미
2) 行的 의미를 지닌 신체- 수행의 의미
9. 정법안장의 세계
(1) 지관타좌
1) 도겐의 문제의식-본각과 시각(시간과 영원, 개별과 보편, 인간과 신, 불)
2) 지관타좌 (자수용삼매, 자타불이, 불향상의 입장)
3) 신심탈락과 탈락신심( 자타불이와 보살, 발무상심과 발보리심)
(2) 현성공안
1) 현성의 의미
2) 미궁과 깨달음
3) 자기와 만법
(3) 불성
(1) 정의로서의 공
1) 정의의 개념
2) 구상력과 정의로서의 공
(2) 자각에 있어서의 자와 타의 관계
1) 유의 투명화
2) 사사무애의 세계
3) 자각과 信
(3) 공의 신체성
1) 몸의 의미-대지의 의미
2) 行的 의미를 지닌 신체- 수행의 의미
3) 공의 역사성
9. 니시타니와 도겐
(도겐의 자연관, 무상관의 영향이 강하지 않는가? 不作의 作이 곧 무위자연이다. 大活現前 全體作用, 선에서는 무엇이 활동력이 되는가? 應無所住而生業心(涅槃經)
3) 오오타니대학에서의 신체에 대한 강의
4)정법안장강의
10.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1) 자각과 信(허무를 자각적 측면과 신앙적 측면에서 해결; <공과 즉> <현대의허무와 신앙> 종교와 비종교 275-) 허무를 자각적 측면과 신앙적 측면에서 해결하고자 함. 정의의 안에서의 자각적 측면을 본 그는 종교적 신앙의 측면과 만날 수 있다고 본다.
2) 지혜와 자비
3) 타자가 현존하는 무아, 타자가 인정되는 무아(17, 10-11)
니시타니의 참된 실재(real reality), 스즈끼의 平常心是道(동양적 見方(스즈끼의 세계, 燈影文庫 燈影舍), 도겐의 現成公案이 통한다. 색즉시공보다 공즉시색의 세계를 더 강조한다.
서론
1. 니시타니 생애
니시타니의 생애를 그의 사상과 관련하여 3기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기는 니힐리즘이 출판(1949년, 49세)되기 전까지의 시기, 2기는 니힐리즘에서 <종교란 무엇인가>가 출판된 시기, 3기는 그 이후로서 그가 61-90세까지로 이 때에는 주로 선을 테마로 많은 논문이 집필된 시기로 볼 수 있다.
제1기-철학적 연구 <허무주의 출판 전; 49세전까지>
<셀링의 절대적 관념론과 베르그송의 순수경험24세> <근원적 주체성의 철학40세> <독일 신비주의주의과 독일철학 43세> <신비주의의 문제 44세>
제2기-자신의 선적 체험을 통해 공의 입장을 수립 <니힐리즘 출판 49세>-<종교란 무엇인가61세>까지
<니힐리즘, 49세> <존재의 문제와 존재론의 문제49세>
<신화의 문제 56세> <종교란 무엇인가61세>
제3기-61세-90세
<나의 철학적 발족점 63세> <선의 입장 11권> <반야와 이성79세> <공과 즉 82세> <정법안장 출판 87세-89세이나 강의는 12년?전부터> <오오타니 강의록1권 64-75세, 2권 76-81세, 3권 82-87세>
<선의 입장의 서문>
본서는 선에 대한 종교철학적인 고찰이라는 이 장이 근저가 되어 있다. 선이라는 것에 그런 철학적 고찰이 가능한가 철학은 그런 고찰를 거부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근본문제이다. 그 문제에 두가지 극면으로부터 접근하고자 한다. 하나는 선이라는 입장에 있어서의 철학적 특히 종교철학적인 논구이며 또 하나는 저자자신이 선에 이른 개인적인 사정의 국면이다.
첫째 국면의 문제가 된 것은 선이라는 입장이 모든 언어와 문자의 영역을 모두 초월한 경지로서 드러나 스스로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에 있어 사물을 그리든가 언설하거나 사고한다는 것은 모두 선의 입장으로부터의 이탈이다. 선의 성립된 장과 관련없는 곳 오히려 관련된 장, 아닌 곳 전부가 밖에 서있지만 그래도 선에 관련된 것이 된다. 모든 의식활동을 모두 초극해서 배제한다고 하는 요청이 선의 입장의 본질에는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사상의 입장 과학도 철학도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서의 시도는 하나의 자기모순이라는 것이 된다.
선의 입장의 특성이 불립문자, 교의별전인 것은 현재 남아있는 많은 선사들의 어록과 종파로서 발전의 역사(절등록, 전보록)을 본다면 역사적으로는 선의 입장은 용수를 組로 한 대승불교의 한 종파로서 성립해 전개되었다. 그 본원을 인도불교에 있어 禪那의 행을 지니면서 중국에 있어 대승불교의 발전 중에서 출현해 나온 것이며.
선은 삼국전래의 역사를 통해서 동아의 정신문화에 근본적인 영향을 준 종교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언어와 문자 관념과 사상 등 인간의 의식활동의 모두를 초탈한 영역으로서 있었다. 도겐이 신심탈락의 도로서이다. 그 道는 오직 그 길을 실지로 걷는 행, 수행, 수도, 수증으로서 실천을 통한 수득된다. 그것이 또 석존의 본심으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佛心宗으로도 불렸다. 선의 입장은 이런 입장에 도달한 사람을 스승으로서 선사로부터 선사로 상속괴며 부처로부터 조사로, 조사에서 조사로 전달된 것이지만 그것은 행을 통해서 가능했다. 그 경우 전달은 그 경우의 전달은 한그릇의 물을 한그릇으로 옮긴다는 의미였다.
6 선은 각 사람이 자기본래의 면목을 직증하는 것이라고도 말할수 있지만 그것은 사람에게 전해지기 위해서 모든 언어와 문자, 그래서 특히 용수이래의 제종파의 교학에 있어서 철학적 논리가 자유자재로 사용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 문헌에 표현되어 있는 언어와 사상의 내용은 知情意의 전면을 걸어서 철학이라고 하는 입장과 완전히 무관계할 수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말해 철학이전이고 철학이후이지만 동시에 또 그것은 철학이전 철학이후라는 성격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다. 그 의미에서 현대에 있어서 그 국면을 밟아서 철학이라는 입장에 선을 반영하여 선의 사상적인 관찰을 깊이 추구한 것도 완전히 불가능하지 않고 또 무의미하거나 유해한 것이라고 단순히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시대상황은 동양세계와 서양셰계가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그런 현대세계에 선이라는 입장을 전달하는 길로서 철학이라는 입장을 매개로 하는 일이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다음은 나의 개인적인 사정과 결부하여 보고 싶다. 나는 중학 상급에서 고교시기에 하목침석의 책을 읽었는데 그 심저에 선에 대한 관심을 깊이 간직해 스스로 참선한 경험을 지니기도 했다.
7 그후 니시다의 <사색과 체험>을 읽고 마음의 전환을 경험했다. 그래서 철학을 배우고자 했다. 그 의미는 선의 문제 선과의 관계에 관해서 말하면 그것은 철학이전의 장이었다. 선에 대한 관심은 선에 대한 관심은 교또에 오면서부터 활발해져서 선의 문헌과 많은 불교서적을 읽었다.
그것은 앞서 사용한 언어와의 관련에서 말하면 철학이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 경력의 과정에서 철학이전으로부터 철학에로, 철학에서 철학이후라는 길로 나아간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반대방향 즉 철학이후인 선의 행의 입장에서부터 철학을 통해서 철학이전의 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의미까지도 지닌다. 그 의미에는 철학이후의 영역에서 철학이전의 영역을 비추어보는 것에 있어서 그 사이에 철학이라는 움직임이 매개적인 역할을 한다는 형이 된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인생의 길이 철학이전과 철학이후라는 양날래에 축으로 하여 철학하는 길로서 열려 유지되어온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형을 나자신에게 선이라는 입장이 자신이 철학적 자각의 길이었다. 선의 입장을 철학적으로 구명한다는 것이 자신으로서 가능하게 된 이유는 대개 이상과 같은 사정안에 있는 것이다.
종교논집 제1 <종교란 무엇인가>가 간행된 이래 본서(선의 입장)이 나오기까지 20여년의 긴 세월이 걸린 것은 나 자신의 신변에 일어난 여러 변화에 의해서 방해되어 온 것도 배경이 된다.
1. 西谷啓治의 生涯
1) 1기(1900-1949)
a) 철학의 길에로.
<<아버지사망, 자기도 결핵-죽음문제, 중학교때 선에 관심있었으나 그보다. 니시다의 영향이 커서 결국 철학의 길로 들어섬, 철학의 길을 걸어가던 중 공허감체험,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참선시작 (36세)-탈저의 자각
유럽으로 유학(37세)하여 유럽근대정신의 전반적 문제가 전부 허무주의와 관련되어 있음을 자각했고 이것이 그의 문제의식의 기반이 되었다. 여기서 그는 그 해결점은 탈저의 자각밖에 없음을 자각하고 이를 “근원적 주체성의 철학”(40세)이라는 저서로 정리함, “아리스토텔레스논고”(48) “신과 절대무(48)”에 나오고 그 이후 그의 문제의식은 허무주의 라는 것을 더 깊이 자각했고 이를 “허무주의”(49세)라는 저서로 출판함. >>
니시타니(1900-1990)는 明治33년 2월27일, 石川縣 鳳至郡 宇出津町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세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도 고교수험 당일, 고열이 있어서 시험을 치룰수 없게 되었는데 결국 결핵이라는 진단으로 인해 입학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결핵의 체험을 통해 그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지녔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성서 및 그 외의 종교책을 읽었는데 당시 “2, 3권의 불교책과 니체의 <찌라투스트라>를 읽은 것도 같은 의미에서였다”고 자신의 청년시대의 회고록에서 기록하고 있다. 그는 중학시절부터 선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당시 애독한 潄石와 스즈끼의 책이 그에게 禪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내가 처음 禪에 대해서 막연하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교 상급시절부터 읽었던 夏目漱石의 책때문이다.....그의 문학과 논평이 내게 선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은 스스로의 심저에 큰 문제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의 입장 서문X1-6-7)
“당시의 자신은 몸에서 일어난 여러 사항 때문에 극도의 고뇌에 지워져있었다. 자신의 가장 근본안에 어디에도 맡길수 없는 절망이 있어 일체가 공허하게 보이고 마음 안에 색막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런 상태에 잇던 나는 소세끼안에 같은 고뇌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안에 신경의 ....그 고뇌와 절망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로서 세상을 초탈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배웠다. 소세끼는 용기를 가르쳐주었다. ..........“”(종교와 비종교 사이 296)
니시타니가 소세끼로부터 배운 것은 ‘나의 개인주의’와 ‘卽天去私’라고 할수 있다. 자기본위의 나의 개인주의라고 말한 그는 개인주의적은 아니다. 卽天去私라고 말한 나이다. (위 책 296)
이것은 그가 니시다에게서 철학을 배우기 이전에 지닌 禪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러나 니시타니에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고교 일년생이 끝나갈 무렵에 니시다 기따로의 <사색과 경험>을 읽은 일이었다. 그는 그 책을 읽고 “자신의 혼의 내면에서 벗어난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니시타니선생> 1X15-16)(종교와 비종교 298참조)
니시타니는 20세 전후의 시기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자신의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니시다에게 철학을 배울 것인가, 출가할 것인가, 무자소로실마가 주최하는 새로운 촌에 들어갈 것인가의 3개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러나 당시 니시타니의 심저에는 허무감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강했다. 그는 자신의 자전적 수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젊은 인생은 한마디로 희망이 전혀 없는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점에서 나는 완전히 허무와 절망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은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 내 영혼의 보잘 것없는 역사에서 돌이켜 보건데 이 결정은 대단한 전환이었다.” (私の靑年時代) <<風の こころ>>95,198, 204
“나는 자신의 문제가 종교의 차원에서의 해결을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철학의 길을 택했다. 니힐리즘이라는 문제가 그것을 요구했다. 철학을 하고자 한 것은 일종의 회심을 의미했다.”( 종교와 비종교 297)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인해 그는 철학의 길을 택하여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철학을 하겠다는 결단은 일종의 회심을 의미했다. 그 결단과 함께 마음이 열려 새로운 생으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동시에 그때까지의 고민도 허무적인 기분과 절망도 사라지고 고요하고 청청한 기분이 되었다. 여기서 비로서 나는 살아갈 힘을 얻고, 살아갈 기쁨을 느꼈다. 교또대학에 들어가게 위해서 東京을 떠날 때에는 마음의 밑에서부터 강건한 용기를 지녔다고 그는 회고하고 있다. <나의 청년시대 XX-18)
그 도정에서 그는 근원악의 문제와 관련하여 셀링을 중심으로 한 독일관념론을 연구했고 제3고등학교 강사(1926년)을 거쳐 교또제국대학강사(1932년)을 지내면서 서양신비주의 연구로 그 폭을 넓혀갔다. 그러나 연구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그 자신도 예상치 못한 정신상황이 그의 내면에서 발생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자신 안에 큰 공허를 느꼈다"고 술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습득한 모든 사상이 "본래의 의미에서 자신의 몸에 붙어있지 않다"는 체험이었다. 즉 자신의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자신과 땅이 격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통해 그는 지금까지 철학적 사색의 길을 걸어온 모두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발이 땅에 닿지 않고 허공에 떠있다는 체험이 그로 하여금 선의 길에 들어서게 했다.
b) 선의 길에로.
니시타니는 철학을 연구하던 중에 자신이 체험한 공허감에 대해 “수득한 그의 사상이 모두 본래의 의미에서 자신의 몸에 붙어 있지 않다고 하는 느낌”, “자신의 발이 지상에 붙어있지 않았다는 느낌”, “자신의 발아래가 이상한 공허가 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곳에 무언가 투명한 벽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한계에 부딪쳤다는 느낌이었지요. ”(직접경험 54)
“무엇을 읽어도 마음에 미치지 못하고 몸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자기분열의 느낌이 점점 깊어지면서 그것을 고민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있는 학문이 철학과 같은, 모든 것을 극도에 원리화해서 생각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떤 학문에도 그 밑에는 내가 체험한 자기분열적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문이나 지식, 지성보다 깊이있는 것의 문제를 여기서 본 것이다.” <學과 無學XX1 168-9>
이러한 체험은 그로 하여금 철학의 최고봉에 위치한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의 지성의 입장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했다. 즉 그들이 도달한 노에시스의 입장은 생의 리얼한 사실로부터 일보 물러나서 이를 학문의 입장에 서서 봄으로써 생의 참된 실재에 입각해 있지 않는 입장임을 자각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통찰은 철학의 자기비판적 고찰과 같이 철학적 사유의 입장에 선 것과는 그 발생원부터 다른 것이었다. 즉 이는 자신이 입각한 철학적 사유의 입장, 곧 종래 철학의 전역사가 무의미한 심연 안으로 붕괴되어가는 '밑없는' 성격을 지닌 공허감이었다.
이 체험을 통해 그는 존재의 실재성은 知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인가, 철학적 관상과 철학적 실존이 하나의 입장 위에서 성립되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철학적 허무의 상황을 벗어나서 리얼한 세계로 나가는 길은 선 외에는 없다고 느꼈고 결국 철학이 지닌 한계성 아니, 학문 자체가 지닌 한계성을 깨닫게 되면서 ‘철학이후’의 길인 선에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는 <선의 입장>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 중에 하나의 큰 문제가 나의 심저에서 생겨났다.
그런 정신상황이 발생하리라고는 전연 예상하지 않았다.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습득한 모든 것이 본래의 의미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 그런 지식과 지견을 가졌지만, 자신의 발이 땅에 부착해 있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결국 자신의 다리밑에 이상한 공허감이 마음저면에 강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탈출할 길을 찾았지만 결국 그 길은 선밖에 없음을 느껴졌다. 그러나 선은 단지 문헌을 통해서 이해하고 철학적 사유의 궤도 안에서 고찰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지로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나는 선수행을 함으로써 ‘다리밑의 공허’라고 말한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11, 7-8)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相國寺 문을 두둘기고 참선을 시작했다. 그 때가 소화 11년(1936) 그가 36세 된 시기였다. “사상을 잠시 접어두고 다만 앉는다”고 하는 참선생활을 통해서 비로소 “脚下의 공허라고 한 위기를 탈각할 수 있었다”고 그는 서술하고 있다. 유학(1937-39)으로 잠시 중단되었어도 철학적 사색과 참선수행생활은 교또제국대학 교수(1943)이 되어서도 중단되지 않았고 그가 57세까지 25년간 계속되었다. 즉 그에게 있어 ‘앉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앉는다’는 그의 철학적 사색은 본질적으로 行과 결부된 사색적 行이 된 것이다.
이와같이 니시타니에게 있어 선은 철학적 사색을 통해 자신의 발이 공중에 떠있는 것같은 공허함을 극복하는 길이 된 것이다. 그는 참선생활을 통해 밑도 알 수 없는 공허감을 극복하고 ‘실재의 실재적 자각’으로서의 철학적 사색을 비로소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존재의 구극의 근저는 밑없는 것이다. 우리의 생의 근원에는 다리를 놓을 무엇도 없는 곳에 입각해 있다. 그런 탈저의 자각으로부터 새로운 주체성이 종교적 지성과 이성, 그리고 자연성을 일관한 것으로서 드러난다. (<근원적 주체성의 철학> 서언 1940 )
이 탈저의 자각은 신, 이성, 생, 물질에 근거해서 우리의 존재사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자기집착을 벗어남으로써 일체의 원리적 입장으로부터 그 배후에 선 우리의 존재의 직접경험으로써 성립한 자각의 입장인 것이다. '탈저의 자각'이라는 입장이 표명된 이래 그의 사색은 "입각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라는 사실에 철저한 자각화이다.
우리는 니시타니의 선체험이 그에게 준 의미를 다음의 글에서 잘 볼 수 있다. “문자와 언어는 가면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며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선 안된다. 그 안에 움직이고 살아있는 것을 직접 보지 않으면 안된다. 문자와 언어가 지배하는 영역을 돌파해서 그 안에 길을 열고 그것에 의해서 선록을 읽어야 한다.” (1974, 11, 289-290) 이와같이 철학적 언어의 세계로서는 건널 수 없고, 직접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세계가 있음을 니시타니는 자신의 선체험을 통해서 경험한 것이다 . 니시타니는 63세때 자신의 철학의 발족점을 되돌아보면서 “지금 이를 말한다면 결국 니힐리즘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회고하고 있다.(나의 철학출발점)
니시다와 니시타니의 사상적 차이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문제의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양자가 살았던 시대의 차이와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시대배경삽입)
1937(소화 12년)부터 2년간 니시타니는 문부성재외연구원 자격으로 유럽에 유학생활을 보냈다. 그 당시 그는 베르그송의 사상을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르그송의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引退와 노령으로 그는 2년간의 대부분을 독일에서 보냈다. 그 유학생활중 그는 근대유럽에 전통적 정신의 쇠퇴현상 유럽이 그 역사를 통해서 스스로 빠져나온 전통적 가치관 세계관의 붕괴현상이었다.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윤리도 희생정신도 소멸했다. 그 사회적 에토스는 엣것이 아니었다. 신중심적 종교정신뿐 아니라 자유 평등 우애를 내건 근대이성주의와 이를 지지한 정열도 사라지고 거기에는 다만 니힐리즘과 이기주의의 기묘한 화합물이 있었다. 그는 이같은 유럽사회의 에토스의 변질을 보면서 서양세계가 세워온 역사 즉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내려와 지금과 이성이전적 자연에 입각한 근대정신을 살아온 그 역사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허무주의를 통한 허무주의의 초극, 호리오, 297)
니시타니는 유학중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와 마이스터엑카르트>라는 신을 신의 근저에서 구한 중세정신의 대표자인 엑카르트와 초인에서 니힐리즘의 자기초극을 구한 근대정신의 대표자인 니체를 통해 니힐리즘의 초극을 시도했다.
니시타니는 ‘양자에 공통적 근본태도는 생의 변증법운동에 대한 철저함, 즉 인간부정을 통한 인간긍정의 철저함이다’라고 술하고 있다. 즉 자기의 생의 근원적 실재를 인간에게 생명을 준 신의 영원한 생명에 돌입한다는 입장 아니, 신과의 합일에서 환희를 맛본 자기마져 부정하고 초극해서 신도 피조물도 아닌 생명의 깊이에서 살아온 엑카르트와 자기발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허무의 심연중에 자신을 던짐으로써 허무가 신의 죽음의 반영이며, 신의 그림자에 묶여 있는 인간의 존재방식임을 깨닫고 그같은 신의 그림자 즉 일체 시비선악의 영역을 초탈한 초인, 그 양자는 “생의 밑없는 깊이가 현재의 순간에 연소된 곳, 생의 생에 서 있다는 것이다.
니시타니는 유럽의 전통정신과 근대정신간에 대립하는 근저에 양정신을 초극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 전통과 근대이라는 깊은 단층밑에서 새로운 통일기반을 추구하고자 한 것이다. 그가 유럽에서의 체험과 위 논문을 통해 비로소 처음 세상에 내놓은 단행본이 바로 <근원적 주체성의 철학>(1940)이다. 그는 그 서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존재의 궁극적 근저는 밑없는(脫低) 것이다. 우리의 생의 근원에는 다리를 놓을 무엇도 없는 곳이 있다. 그 ‘탈저의 자각’에서 새로운 주체성이 종교적 지성과 이성과 자연적 생을 일관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 ‘탈저의 자각’은 실존론적 존재해명을 수행하는 그의 사유의 성격과 그 근저를 명확히 밝힌 용어이며 이것이 그가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표명한 최초의 말이 되었다. 즉 ‘입각할 무엇도 없는 곳’ ‘입장없는 입장’이 바로 니시타니철학의 기반이 된 것이다. 이는 신, 이성(인간) 혹은 자연이라는 종래의 모든 입장에 대해서 그런 배후에서 나온 근본적으로 새로운 입장이다. 그것은 우리의 ‘살아있는 사실’을 그 원리로 한 것으로 우리 측에서 규정하고 의미지운 종래의 입장에서 감춰진 근저 즉 그 ‘자기집착’의 근저를 철저히 돌파하고 초극해서 우리이전의 살아있는 사실자체에 즉 생의 근원적 사실에 근거해서 무엇도 없는 근원적 사실자체를 그 자체로 자각한 입장이다.
그는 그 이후 탈저의 자각적 입장에 철저히 서서 사상을 전개했다. 그것이 하나의 불변적 입장에 머무는 것을 허용치 않는 ‘입장없는 입장’이다. 니시타니는 “종교란 무엇인가”(1961)에서 이 ‘입장없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자신의 입장을 ‘공의 입장’이라고 밝힌다. 이는 탈저의 자각적 입장이 자각적으로 철저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열린 입장이다.
2) 제2기(1950-61)
이 시기는 니시타니의 주저라고 불리우는 “종교란 무엇인가”가 출판된 시기이다. 지금까지 니시타니에 대한 연구는 이 저서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졌다고 볼만큼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성을 지닌 저서이다. 이 저서는 한마디로 ‘허무주의’라는 니시타니의 커다란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이를 초극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의 발족점은 허무주의이외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즉 허무주의는 니시타니 사상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써 선의 용어로 말하면 이는 하나의 대의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사상이 허무주의라는 대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바로 그를 다른 교또학파 학자들의 사상과의 차를 두게 한 기반이 되었음과 동시에 허무주의의 초극으로 내건 공의 입장이 단순히 선불교적 입장이 아님을 의미한다. 즉 그는 단순히 선불교라는 하나의 종교적 입장에 서서 허무주의를 해결하고ㅓ자 한 것이 아니라 선과 철학의 연관성 안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바로 허무주의라는 문제의식이 그로 하여금 이러한 사색을 하도록 요청했다고 니시타니는 후에 회고하고 있다.
그럼 니시타니는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는가? 니시타니는 허무주의의 초극은 바로 니힐리즘 본질 그 자체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즉 허무주의를 직면하는 것이 곧 허무주의 극복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한 공의 입장이다. 절대부정을 통해 절대긍정에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란 무엇인가에서는 어디까지나 절대부정적인 측면 다시말해 색즉시공의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바로 허무주의의 초극은 허무주의 그 자체를 통한다는 것 자체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니시타니는 자신이 말한 공의 입장이 단순히 선불교적 입장이 아님을 말한 것은 자신의 공의 입장을 통해 선뿐만 아니라 정토종 그리스도교까지 포함시켜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그의 포괄주의적 입장은 다른 학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즉 니시타니의 사상은 타종교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높기만 했던 니시타니의 사상은 거기에 머문 것이 아니라 이를 전제로 하여 하산함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의 3기 곧 후기사상이다.
3) 3기(1961-90)
“종교란 무엇인가”가 출판된 이래 니시타니사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점에 변화가 있었는가?
니시타니는 교또대학을 정년퇴직한 후(1963) 오오타니대학교수가 되었고, 스즈끼다이세쯔에게 물려받은 The Eastern Buddism Society를 키워나갔다. 당시 대표적 저작에는 ‘선의 입장’ ‘한산시’ ‘정법안장강화’가 있고 논문에는 ‘반야와 지성’ ‘공과 즉’이 있다.
그가 오오타니대학에서 강의한 것이 그의 저작집 24권-26권으로 정리되었다. 소화 39년-62년(64세-87세)까지의 강의록으로 그는 여기서 신체를 주요테마로 하여 강의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그의 공사상이 우리의 신체안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한다. 그는 여기서 신체와 정토의 의미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이와같이 니시타니는 만년에 가서 구체적인 신체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공과 즉”(1982)의 논문에서도 보여진다. 니시타니는 이 논문에서 ‘정의로서의 공’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한다. 情意은 우리의 감성과 지성이 결부된 세계로써 그 세계에서 드러난 공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가 “종교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절대부정의 세계가 아니라 정의에 드러난 세계를 말한다.
만년에 가서 그의 저작은 선을 주제로 한 것이 많다. 그러나 그의 선의 해석은 2기에서의 공의입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 더 넓은 세계로 표현되고 있다. 신체, 정의, 정토, 하느님나라, 등이 주요 테마로 등장하고 있다.
이상에서 니시타니의 사상적 변화를 중심으로 그의 생애를 살펴보았다. 필자는 여기서 니시타니의 3기의 사상에 관심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그가 12년간 강의한 도겐의 정법안장의 사상을 중심으로 해서 그의 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3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의 주요문제의식이 되었던 허무주의와 그 초극인 공의 입장을 ‘종교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공의 입장이 지닌 한계점을 살펴보고, 그의 한계점이 후기사상을 통해 어떻게 보완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니시타니의 문제의식-허무주의
니시타니의 문제의식은 한마디로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이는 시대적 문제(철학적 신학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실존적 문제(근원악)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허무주의는 그의 일생의 화두이면서 공안이었다. 이는 단순히 허무와는 다른 ‘현대의 허무’(종교와 비종교 참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그의 허무주의는 허무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니시타니는 종교의 기본은 인간의 실존적 허무를 그 바탕에 두고 있다고 본다. 불교는 제행무상의 허무, 무상(참된 허무의 망각인 무명), 죄업, 인간의 유한성의 무한성, 그리스도교의 경우는 무로부터의 창조에서도 허무를 기초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은 “땅에서 나와서 땅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이와같은 인간의 실존의 근저에 있는 허무를 극복하고자 한 종교의 세계가 근세에 들어서면서 무너지면서 신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중심의 세계관 아래 인간은 자기주체성에 근저한 존재방식을 취했다. 근대의 인간은 자신을 강하게 의식하는 인간이라는 것이 여러 방면에서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을 문제로 한다는 것으로써 그 점에서 어디까지나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인권의 입장도, 자신이 어디까지나 자신이라고 하는 자유의 입장도 근본은 같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이 특히 자기적으로 된 것이 주체적인 성격을 지녀왔다는 것이다. 즉 근대철학은 고대중세철학과는 달리 주체성의 입장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주체적 성격은 자신이 자신이라는 것같은 자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인간이 자기주체성에 근저하여 펼친 근대사회에서 인간이 다시 체험하게 된 것이 니시타니가 말한 허무주의인 것이다. 그 허무주의는 문화, 도덕, 과학 등 근대사회 전반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니시타니는 근현대의 허무주의는 ‘현대의 허무’라고 한 것이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시대적 상황으로서의 니힐리즘
니시타니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문제의식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통상 그의 문제의식은 니힐리즘이라고 본다. 물론 이것은 그의 문제의식의 표면상으로 드러난 용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용어를 갖고 현대를 어떻게 읽고 어떤 것에서 문제의식을 지녔는지 그의 내면 깊이에 있는 면까지 들어가지 못한다면 단지 그의 입장을 ‘허무주의에 입각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의 입장에 들어섰다’는 단순논리로 해석해 버릴 위험이 있다.
필자는 여기서 니시타니 사상이 지닌 문제의식 즉 허무주의의 뿌리를 캐고 그의 문제의식이 그의 긴 생애 안에서 어떻게 그 해결점을 모색해 왔고, 그 안에서 어떤 사상적 변화를 가져왔는지 하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먼저 필자는 니시타니의 사상체계의 흐름을 4단계로 본다. 즉 의식의 장, 허무의 장, 공의 장, 정의로서의 공의 장이 그것이다.
a. 종교적 입장 위에 선 니힐리즘
니시다와 니시타니의 사상의 분기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양자의 문제의식의 차이라고 본다. 니시다는 선을 수행하고 이를 철학과 연관성 속에서 해석하는 선과 철학의 관계가 그의 주된 문제의식이었음에 비해, 니시타니는 허무주의를 문제의식으로 지녔다. 즉 니시다는 선에서 출발하여 철학을 만남에 비해, 니시타니는 철학에서 출발하여 선을 만난다. 여기서 니시타니가 철학을 출발점으로 지니게 된 것도, 철학에서 선에로 나아가는 데 중심이 된 것이 바로 허무주의인 것이다.
니시다의 절대무 철학에선 니힐리즘과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볼 수 없는데 반해 니시타니에게 있어 니힐리즘은 그의 사상의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니시타니는 니시다에서 해명되지 못한 니힐리즘의 문제를 해명하는 길을 자신의 사상의 기틀로 삼았던 것이다. 이는 그의 다음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허무주의의 문제가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상호적대의 근간을 이룬다고 확신한다. 나의 철학적 노력은 이런 확신에서 출발하고 발전하였으며 (허무주의에) 모든 것을 포함하게 되었다.” (私の철학적 발족점229-230)
니시타니는 자신이 문제삼는 허무주의와 보통 말하는 허무와의 구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니시타니가 말하는 허무주의와 허무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니시타니의 허무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전제되는 것은 허무에 대한 이해이다.
통상의 허무가 극복된 종교적 차원에서 다시 허무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니시타니는 이를 강력한 약품의 발견에 의해서 극복된 세균이 저항성을 지녀 나타난 것과 비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곧 니시타니가 말한 니힐리즘의 의미는 허무를 극복한 종교적 입장을 다시금 초극하는 입장을 의미한다. 니시타니는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표어에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니체에 의해 “신은 죽었다. 죽인 자는 우리다”라는 표현은 근대라는 시대가 지닌 허무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신의 죽음은 모든 존재자에게 존재할 의미를 주었고, 이것이 역사를 주관해온 세계의 근원적 통일 원리가 소멸되었음을 의미한다. 니힐리즘은 모든 존재가 그 통일원리의 소멸로 인하여 스스로의 존재의미와 방향을 상실하고 무의미한 허무속을 떠 다니게 된 존재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니시타니는 니힐리즘의 의미를 다음의 예로써 설명하고 있다.
자식이 전장에서 죽지 않고 다행히 살아왔다. 그러나 자식과 함께 살다가 공습을 만나게 되자 자식은 어머니를 두고 혼자만 급히 도망갔다고 할 때 만일 그녀가 운좋게 살아남아 자식과 함께 살게 될 경우 그녀의 기분은 어떻게 되겠는가? 자식은 육체적으로 존재하지만, 그녀 자신에게 자식의 존재는 상실되었다. 나와 너라고 하는 인격적인 존재의 관계가 끊어져 있다. 그 상실은 회복되기 어려운 것으로 육체적인 죽음에 의한 상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그 이후의 그녀의 절망과 허무도 질적으로 다르게 된다. 그 상실이 윤리적인 존재의 차원에 회복될 수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윤리적 차원에서도, 종교적 차원에서도 회복되기 힘든 것이다.
만일 신 혹은 불이 절대적 존재라면, 그녀의 자식이 죄에 빠진 일을 왜 막지 못했는가? 자식의 죄에 신 혹은 佛도 책임이 있지 않은가? 결국 여기서 신의론의 문제가 그녀의 존재를 괴롭혀 신도, 佛도 부정하게 되는 상황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식의 존재에서 그녀는 윤리적, 종교적인 존재차원에서 깊은 허무를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것은 윤리적, 종교적 차원에서는 해결될 수 없는 허무이다.
그것이 그녀의 발밑에서 펼쳐져 온 것이다. 그녀의 현존재의 근저로부터 나타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자식에게도 향할 수 없고, 신이나, 불에도 향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그녀 안에 허무를 심고, 절망과 고독을 심화시킨다. 윤리나 종교의 차원을 넘어 저항성을 지닌 그 허무, 윤리와 종교로부터도 포괄할 수 없는 것으로서 자각되어온 허무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니시타니가 말하고자 한 니힐리즘의 사태인 것이다. 곧 니시타니가 말한 니힐리즘은 절대적 존재를 근거한 종교적 입장 위에 서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니시타니는 종래의 종교적 입장을 부정한 입장에서의 니힐리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과학의 입장 위에 선 니힐리즘 (근현대과학관의 문제점(6권, 11권 참조)
위에서 살펴본 종교적 입장이 무너진 근대에 신의 자리에 인간이 자리한 인간중심주의가 펼쳐졌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세계가 더 이상 인간의 삶에 의미를 줄 수 없게 되면서 인간은 이제 전통적인 세계관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변화 중 하나가 자연관의 변화이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목적론적 자연관은 이제 더 이상 의미를 주지 못하게 되면서 자연관은 종교적 세계관의 모태로부터 떨어져 나와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변해갔다. 자연계가 기계적 필연의 법칙에 따라 인간이 다만 이용할 대상적 존재로 전락하면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는 단절된 세계로 다가오게 되었다. 세계를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목적론으로 보는 방식이 부정되면서 자연계는 신의 인격성과도, 인간과도 무관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신에 의해서 자연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에 의해서 모든 사물이 생성변화한다는 자연과학적 세계관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즉 자연계는 신의 인격성과 무관한 것이 되면서 우리 앞에는 비신앙의 세계, 비목적적 세계가 펼쳐지게 된 것이다.
신의 목적 아래 있던 자연과 인간이 이제 신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게 되면서 인간은 자연을 기계론적으로 대상화하여 연구발전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근대과학의 발달이다. 곧 근대과학정신은 전통적 세계관, 예를 들면 세계를 신의 창조물로서 신학적으로 제1원인을 기초로 해서 형이상학적으로 연역되고 체계되어온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연의 모든 현상을 순수하게 현상 그 자체로써 보고 이해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정신은 데카르트가 내건 기본적인 입장인 인간과 자연을 원리적으로 분리하여 인간을 지의 주체로 봄으로써 자연은 정신적, 물질적 객체로서 분리된 객체로서의 자연으로써 기계론적으로 보는 정신이다.
자연을 객체화하고 자연을 자연자체로서 말하는 근대과학의 자연관은 신을 제일 원인으로 하는 전통적인 통일원리로 하여 신, 인간, 자연의 체계적 통일을 추구해 온 종래의 세계관에 대신해서 새로운 세계관의 기본적 입장이 된 것이다.
인간이 자연계를 관찰함에 그치지 않고 인간쪽에서 자연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움직여 본다. 자연 중에 주어진 비밀은 무리하게 말해보는 입장이다. 강에 흐르는 물 그 자체로는 물의 성질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없으므로 실험실에서 물을 순수한 것으로 환원해서 물의 성질을 연구한다.(종교와 비종교268) 인간이 구체적으로 자연을 움직여 이를 본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의 발견이라는 의미이다. 과학이 본래 과학으로서 성립해온다는 근본에는 그런 인간의 주체적 입장이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근대는 본질적으로 신과 무관한 과학적 정신, 곧 인간이 신으로부터 해방되고, 형이상학적 몽상에서 인간을 자각한 각성정신이 높혀짐으로써 니시타니가 말한 ‘무신론의 주체화’가 시작되고,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함으로써 그 가치체계를 무너뜨린 정신이 된 것이다. 이 자연과학정신이 기술과 결부해서 인간생활 중에 넓고 깊게 침투해 오면서 인류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스스로의 장래의 행복을 걸게 되었다.
그러나 사태는 인간이 생각했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던 것에서 이제 자연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 역설적 관계가 발생한 것이다. 자연법칙을 지배하던 인간이 자연법칙에 지배당하는 역설적 사태를 니시타니는 ‘현대 문화의 위기’라고 본다. (종교 137)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면서 인간생활이 합리화되어갔고 진보되어왔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합리화된 생활의 근저에서 점차 합리화 이전의 ‘삶 그대로의 삶’이 도리어 합리성이 전혀 손닿지 않는 곳에서 허무를 바탕으로 하여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138> 그것은 당연히 본래 있어야 할 사태의 모습이 도리어 역으로 나타나게 됨을 의미한다. 즉 인간은 자기가 만든 기계에 의해 도리어 끌려 가게 된 것이다. 니시타니는 이런 현상이 바로 과학의 진보에 따른 문제의 근본에 잠재해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파행이상의 것으로 인간이 만든 핵무기가 이제는 인류를 전멸시킬 위험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의 진보에 따른 인간의 기계화 현상은 현대 정치체제에서 드러나 체계의 기계화로 인해 인간을 점점 더 기계화해 갔다. 즉 공산주의 국가의 정치체제는 전체주의의 경향을 나타났으며 체제의 기계화와 함께 인간을 기계화해 갔다. 자유주의 국가에서의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욕구 주체의 자유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와같이 서로 다른 두 체제의 방향은 근본적으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기계문명의 문제와 정치 체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뿌리를 둔 것으로 거기서 현대의 허무주의가 암호화된 모양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종교139> 이와 같이 자연 법칙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생겨난 역전은 인간을 기계화로 몰고 감으로써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허무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세계로부터도, 인간으로부터도 초월적 차원의 통로를 제거시켜버렸고, 그로 인해 인간존재의 기반에 예상치 못했던 깊은 허무를 안겨주었다. 즉 과학적 합리주의의 사고로 인해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를 상실함으로써 허무의 심연은 더욱 깊어지게 된 것이다. 니시타니는 근대과학에 의해 이루어진 합리성의 입장은 ‘피복된 니힐리즘’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피복된 니힐리즘’ 즉 과학적 지성과 기술에 있어 침투한 합리성과 그것에 의해서 피복된 니힐리즘은 지금까지 믿었던 일체가 불신에 빠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허무의 늪 속에 빠져들어가게 했다는 것이다.
자기 존재를 정직하게 직시한 현재의 많은 실존주의자들이 정면으로 이 허무에 입각하여 문제를 직시하고자 했다. 즉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의 기계화로부터 인간이 현재 빠져 있는 역전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역전의 바닥에 열려진 함정은 허무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허무에 입각해 있는 인간은 역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니시타니는 말한다. 허무는 허무 자신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이 거대한 허무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다시 그 전의 종교적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이것은 이미 불가능한 세계가 되어 버렸다. 여기서 니시타니는 허무주의의 어둠 속, 그 저변에 깔린 세계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3) 근대문화 위에선 니힐리즘
허무주의는 근대이래의 주체적인 인간의 입장을 문제삼고 있다. 이는 근대의 모든 부분과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즉 근세의 인간의 입장은 특히 주체적인 형으로 드러난 것은 문화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되어 왔다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문화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닌 본성 즉 인간성을 어디까지 확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무상이나 죄업의 견지에서 본 인간관과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즉 고대 중세의 종교적 인간관과는 정반대)(우에다, 종교와 비종교 266)
4) 도덕의 입장 위에 선 니힐리즘
근세의 도덕적 견해, 윤리는 자신의 안의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것이다. 도덕법이 신이나 불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자신의 이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칸트가 말한 실천이성의 자기입법, 즉 자율이라는 것으로 자신을 따르는 법이라는 것을 자신의 안에서 실천적으로 자각한다는 것같은 입장이다. 그 자유이 도덕의 기초이므로 그런 생각은 특히 근세적 특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종교와 비종교 268)
이것이 근대인간의 존재방식이다. 이를 신앙과 연관시켜 보면 인간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내어간다는 것 자신을 주장해간다는 것은 완전히 무상과 생멸을 면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죄업과 무명을 이탈할 수 없다. 이를 확실히 해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도덕이나 학문 예술 과학 그외 문화에 있어 인간의 활동도 근본적으로는 업을 면할 수 없다.(브락트는 이를 문제삼음)
물론 근대문명과 문화는 인간생활의 기계화에 의해서 인간생활이 보다 발전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근대에 일어난 인류의 역사의 그런 큰 변화는 앞서 말한 것같이 인간의 주체적 자각의 입장을 토대로 하고 있다. 즉 근대문화 그 근본에 죄나 무명의 문제가 있다는 것도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현대의 허무의 입장과 허무주의는 일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근대화는 다른 말로 세속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신앙이나 종교에 기초하지 않고 자연과학이라면 자연 그 자체에 즉해서 자연을 탐구한다. 문화라면 인간을 인간성이라는 기초위에 머물고 그로부터 예술과 철학, 정치와 교육의 활동을 한다. (종교와 비종교 273)
도덕의 경우에도 인간행위의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을 인간자신 안에서 구한다. 거기서 행복을 구하거나 양심을 구한다. 근대는 그런 세속화라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런데 현대가 되면 하나의 큰 문제가 드러나온다. 이는 과학이라는 것, 문화나 도덕의 자체는 특히 진보발전해오나 그로부터 발전하면 한만큼 허무의 입장이 밑으로부터 표면에 드러난다.
지금까지의 신앙이나 종교의 입장은 자신을 돌파하는 경우 자신의 근본에 허무라는 것에 부딪친다. 허무는 우리의 존재하고 있는 근본의 곳에 의지하는 곳이 결여되어 있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때의 발을 딛을 장이 없어 발밑에서 허무를 생각한다.
3. 허무주의의 원인
1) 인격중심 및 자기중심
앞서 우리는 니시타니가 문제삼은 허무주의가 그리스도교적 세계관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럼 구체적으로 그가 문제삼은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의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가?
니시타니는 이것이 바로 서구 사상의 기반인 그리스도교의 인격적 개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교의 인격 개념이 내포한 자기중심성이 허무주의를 낳은 문제의 핵심이 된다는 것이다. 니시타니는 전통적 사유의 인간중심성에서 우리 시대가 당면한 위험성을 보고 있다.
“지금까지의 여러 종교는 지나치게 인간 본위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신의 관심이 인류에게만 향해 있는 것으로 여겼다. 즉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인간 자신의 요구나 목적에 대한 대응으로서만 생각해 온 것이다. ”
그는 그리스도교의 신의 인격성 이면에는 비정한 무차별이 있어 인간과 자연을 차별하여 인간을 자연 위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니시타니는 인간과 자연을 차별하여 자연계의 법칙이 신에 속하지 않는다면, 신은 절대존재가 아니며 신이 아니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가졌다. 따라서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격 개념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즉 니시타니는 신이 절대적 존재라면 그의 완전한 사랑은 무차별적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니시타니는 마태5: 43-48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여라”와 마태5:48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하느님의 사랑의 원친평등의 사랑, 적까지도 사랑하라는 무차별의 사랑에서 그리스도교의 인격적 하느님의 개념을 재고해 보고자 한다. 즉 니시타니는 선인도, 악인도 평등하게 포용하는 신의 완전성에는 신 자신 속에 이미 자기를 비운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철저히 자기를 비움으로서 무차별적으로 베푸는 사랑, 선인이나 악인에게 골고루 태양을 비추어 주는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은 자기비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니시타니는 필립비서 2장도 신자신의 자기비움의 의미로 해석한다. 바로 하느님의 자기비움안에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하느님 자신이 지닌 ‘자기비움’의 성격이다. 즉 니시타니는 자신의 근본적 관심인 공과 무아사상으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개념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니시타니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를 공안으로 사용하여 이를 설명한다. 즉 이제 바오로 안에 사는 것은 바오로냐? 예수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니시타니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사이에 어떤 차이도 없을 때 비로소 완전한 그리스도교인이 실현된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이 니시타니는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구분지어 설명하고 있다. 니시타니는 하느님과 예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경우가 ekkenosis라면 신의 경우는 kenosis이며 그것을 동양적으로 말하면 무아이다.” (종교란 67 (101) 즉 그리스도의 경우는 성취된 업이며 신은 본래성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의 경우는 원래 신의 모습에서 하인의 모습을 취함으로써 자기를 비운데 비해(예수는 단순히 신이 인간의 모습을 취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절대사랑의 실현 드러남 그 자체) 신의 경우는 처음부터 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의 경우는 자기를 비운다는 것이 본래의 본성인데 반해, 예수의 경우는 그것이 성취된 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니시타니는 신의 완전성이 예수를 통해 드러난 것보다 더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결국 니시타니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은 ‘자기비움의 활동’이라기보다 존재의 완전한 형태 곧 신의 완전성이며 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니시타니가 예수의 자기비움의 활동보다 신이 본래 지닌 완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것이 바로 니시타니의 그리스도교 이해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에게 있어 예수는 자기 비움의 활동인데 비해, 신은 본래 자기비움의 성격을 지닌 보다 근원적인 것으로서 ‘ 비인격적 인격’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즉 니시타니는 하느님을 ‘비인격적 인격’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바로 비인격적 인격이야말로 참된 인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비인격이라는 개념은 인격의 반어로서 사용되었다기보다, 무아라는 성격을 지닌 것이다.
니시타니는 무아의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신의 인격적 개념을 비판하고 곧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은 하느님의 본래성인 자기비움에 있으며 이것은 무아개념과 연관시켜 설명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무아, 신의 철저한 자기비움을 엑카르트의 절대무신학에서 발견한다.
“神性은 신 속에서 신이 신 자신이 아닌 것을 의미한다. 신이 신자신이 아닌 절대무에 있어서 비로소 신이 신 자신이라는 말은 신의 본래성에 탈자성이 상정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종교란 77-78)
그럼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은 니시타니가 말하는 무아로서의 하느님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그의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의 이해는 올바른 것인가?
아베는 니시타니가 신의무제를 다룰 때 예수그리스도를 완전히 도외시 했다고 말한다. 이러나 니시타니의 인격개념에 대해서 한스 반델펠스는 그의 해석에는 서양의 전통적인 인격관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았다. 즉 니시타니는 삼위일체론의 입장으로부터 인격개념의 역사가 형성된 측면 및 그 결과, 인격 안에는 개체성보다도 관계성이 강조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니시타니에게는 전통적인 교회신학 즉 교부신학과 중세 가톨릭 신학과의 근본적인 대결이 결여되어 있음도 지적하고 있다. 그 결과 니시타니는 부정신학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전통의 정통적인 면-예를 들면 중세 전성기의 신학자들에게는 명백했던 부정신학-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연관해서 유비의 사상에 관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보다 커다란 비유사성이 확립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이 비유사성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앞에서 말한 유사성도 확립될 수 없을 것이다. ”(한스 185)
여기서는 한스가 지적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역사 안에서 성립된 인격 개념을 다 검토해 볼 수는 없다. 다만 필자가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니시타니의 인격개념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필자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아베가 지적했듯이 니시타니가 예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리스도교의 인격개념은 삼위일체론에서 볼 수 있듯이 개체성보다 관계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첫 번째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부터 살펴보자.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예수 안에서 신의 자기비움이 완성되었다고 본다. 즉 신의 공화의 결말이나 최고점은 신의 자기공화와 인간의 자기공화가 철저히 그리고 전적으로 일치하는 곳에서 실현된다. 바로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신앙인 것이다. 즉 신의 자기 공화와 인간의 자기 공화가 나자렛 예수 속에서 명백히 일치하는 것이다. (한스책 309)
니시타니는 나자렛 예수에게서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베는 니시타니가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거의 취급하지 않고 신의 문제만을 다루었다는 것은 조금 과장된 면이 있으나 니시타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