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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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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산다는 건>
하늘에 떠 있는 다양한 구름들,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어드는 눈부신 햇살. 감나무에 달린 익어가는 감들, 오늘 아침에 눈앞에 펼쳐진 이 풍경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래, 우리는 가끔 자연에서 태초의 그 무엇을 힐끗 보고 느낄 때가 있다.
숲은 가로누워 쉬고 있고 개울물은 급히 흐른다.
바위는 묵묵히 그렇게 서있고 비가 촉촉이 내린다.
들녘의 논밭은 기다리고
샘물이 솟는다.
바람은 잔잔히 불고
축복이 은은하게 가득하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노래한 시다.
보통 서양 철학에서는 기분이나 감정은 세계와 사물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방해가 된다고들 말하지만 하이데거는 인간은 늘 어떤 기분 속에 살아가지 기분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자연의 경이로움을 위 시에서처럼 읊을 수 있었던 것도 자연을 바라보며 느낀 자신의 감정 때문이리라.
성녀 힐데가르트는 자연은 우리에게 녹색생명력을 준다고 했는데 자연속에 머물다보면 이 말이 참임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자연을 통해 비리디타스viriditas 곧 생명을 유지시키는 힘을 받곤 한다.
가끔씩 감성이 예민해지면 우리 주위에 자명하게 존재해온 것들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할 때가 있지 않나?
이런 경이의 기분이 들 때 종전에 보지 못했던 광채를 느끼기도 하는데 아마 이게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빛’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은 거기에서 존재의 신비를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존재의 신비를 접하는 것은 내가 온전히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물게 되면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보게 된다. 다시 말해 존재의 실상이 지닌 경이로움에 눈뜨게 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이런 경이로움을 갖게 될 때 우리는 우울이나 허무감에서, 고독감이나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안에는 이미 허무나 고독, 무력감을 극복할 잠재적 능력이 깃들여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그것이 잠들어 있을뿐. 그 잠들어 있는 존재의 빛이 드러나도록 내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그 빛이 나와 너를 비추게 된다.
하이데거는 지금 여기를 사는 자를 ‘현존재’라 했다. 불가에서는 이를 깨달은 자 곧 각자(覺者)라고 하고 장자는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그렇다! 깨달음은 지금 여기에 눈뜨고 지금 여기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들에서 자유로와져 여기에 마음을 다해 살 때 우리는 존재의 경이로움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런 자는 사도바울이 말한 “늘 감사하십시오 늘 기뻐하십시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의미일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