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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도여정, 나의 수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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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도여정과 수행이야기
최현민 (사랑의 씨튼수녀회 수녀)
1. 수도여정의 시작
나는 모태신앙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이렇듯 스스로 신앙을 택한 게 아니라 어머니 신앙을 물려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나는 고등학교까지 그저 일요일 미사나 참례하는 정도에 그치는 신자였다. 사실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스스로 신앙을 선택하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면서 뜻밖의 사건(?)이 생겼다.
어느 날 미사 후에 집으로 가려고 성당을 나서는데 주임신부님께서 나에게 ‘대학생이냐’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하니 다짜고짜 나를 교리교사실로 데려가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나를 소개하라’고 하는 게 아닌가? 얼떨결에 나자신을 소개하고 나자 자동적으로 그 모임의 멤버가 되어 버렸다. 타의에 의해 이뤄진 것이니 그 후에 안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나는 일단 신앙을 스스로 택하기 전에 내 신앙이 무언지 알고 난 뒤에 결정하자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렇게 주어진 기회에 가톨릭 신앙에 대해 좀더 알아본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주일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이렇게 2년간 교리교사를 한 뒤에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본당이 바꾸었는데 거기서도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두 번째 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 교사 중 두 분이 신학교에, 한 분은 수녀원에 갔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수도성소와 사제 성소를 택하는 분들을 보면서 나는 ‘왜 이들이 세상을 떠나 성소의 삶을 선택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당시 본당 수녀님은 나에게 당신이 속한 수도회의 성소피정을 소개해 주셔서 가보기도 했지만 그 때는 수도성소에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마치고 생명에 대한 연구를 더 해보고자 대학원에 진학해서 2년간 생화학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나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에 이렇게 계속 실험실에서 살아가는 게 맞는 선택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 자신의 미래를 식별할 피정을 했고 그 피정 중에 나는 과학의 세계로는 어느 한 나무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몰라도 숲 전체에 대해서 알 수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지인이셨던 신부님께서 사랑의 씨튼 수녀회 성소 피정에 한번 가보라고 소개해 주셨다. 그래서 그 모임에 갔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본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당시 사랑의 씨튼 수녀회는 광주에 본원이 있어 내가 방문했을 당시 20여명의 수녀들이 살고 있었다. 작은 공동체를 이룬 수녀원은 마치 한집안 식구가 모여 사는 것같은 소박한 느낌을 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수녀님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에서 ‘코모레비(木漏れ日、こもれび-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와 같은 작은 빛줄기를 만났던 것 같다. 그건 잔잔한 일상이 주는 빛, 다시 말해 그리 강하지도 않으면서 마음 깊이에까지 와 닿는 빛같은 것이었다. 그 때 그 빛은 주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작은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코모레비’는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나오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과도 유사하다.
아무튼 나는 수녀님들에게서 비쳐지는 빛을 마음에 간직하고 돌아오면서 새로운 길에 대한 갈망이 조금씩 커져갔다. 그래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도회 입회를 강행했다.
이렇게 시작한 수도생활에서 가장 큰 도전은 무엇보다 공동체 생활이었다. 성장 환경이 다른 이들이 함께 모여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동체의 어려움은 수련과정에서뿐 만 아니라 전 수도생활에서 지속적으로 다가오는 도전이었다. 그것은 공동체 맴버가 계속 바뀌면서 새로운 사람과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은 나 자신을 깊이 바라보고 성찰하면서 스스로를 다듬어가는 과정이 되기도 했다.
2. 이웃종교와의 만남
수련기를 마치고 나는 강진 성요셉여고 과학교사의 소임을 받고 2년간 교편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수도회는 내게 종교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권고해서 1년간 서울대에서 종교학을 공부한 후 종교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다시 성요셉여고에서 과학과 종교를 가르쳤다. 이렇게 1년을 보냈을 무렵 수도회에서는 종교대화라는 새로운 사도직을 위해 내게 종교학을 공부하도록 권고했고, 그래서 그해 서강대에서 종교학 석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불교에 깊이 빠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지도교수이셨던 고 길희성 교수님의 영향도 컸지만, 불자이셨던 친할머니의 종교적 심성이 내 유전자 속에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셨는데 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할머니는 출가를 생각하실 정도로 불교신심이 강한 분이셨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서는 할머니 기일이 되면 가족과 데리고 사찰에 가셨던 추억이 남아 있다.
서강대에서 불교를 공부할 때 제일 먼저 접한 것이 일본불교였다. 불교사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뒤에 발전한 게 일본불교이니, 뒤로부터 거슬러 불교공부를 시작한 셈이다. 기독교 신자이면서 불교를 전공하신 古 길희성 교수님은 일본 중세 가마꾸라(鎌倉; 1185-1333)시대를 살았던 정토진종의 창시자인 신란(親鸞, 1173-1262)을 대학원 첫 학기에 강의하셨다.
신란은 사도 바오로 사상과 흡사한 면이 있어 길교수님은 신란사상에 심취해서 일본에서 신란을 연구한 후 돌아와서 바로 신란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신란에게서는 자신의 죄악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는데 이것은 놀라울 정도로 사도 바오로의 고백과 유사한 것이었다.
(나는) 정토진종(淨土眞宗)에 귀의했건만
진실한 마음은 얻기 어렵고
허가부실(虛假不實)한 나에게는 청정(淸淨)한 마음이란 없구나.
겉으로는 현명하고 선하고 정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탐욕과 노여움과 거짓이 많으니
간사함이 가득 찼도다.
악한 성품은 실로 그치기 어려워
마음이 뱀과 전갈과 같다. 『正像末 和讚』, 『全集』Ⅱ, 527쪽.
이러한 신란의 표현은 사도 바오로의 다음 고백과 일맥상통한다.
“.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결국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있는 죄입니다.” (로마7, 15-16, 18-20, 24.)
신란은 자신의 힘으로는 번뇌구족의 범부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자각을 통해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미타불의 자비’밖에 없음을 깊이 자각했다. 이처럼 자신을 악의 고리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 뿐이라는 신란의 고백은 자신을 죽음의 육체로부터 구해줄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바오로의 신앙과 얼마나 일맥상통하는가.(로마 7, 25 참조)
나는 신란을 공부하면서 불교 내에 그리스도교적 해석이 가능한 신앙인이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수도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한계와 약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느꼈던 내게 신란의 실존적 고백은 깊은 공명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오직 아미타불 신앙만으로 구원이 결정된다면, 다시 말해 악이 구원의 장애가 되지 않는다면,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라는 점에서 신란의 가르침에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할 당위성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신란의 가르침처럼 신심(信心)을 갖는 것만으로 구원된다면 굳이 선하게 살 이유 그리고 이렇게 수도자로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어디에서 찾겠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3. 도겐선사와의 만남
나는 석사논문으로 교토학파의 선불교학자인 히사마쯔 신이찌(久松眞一)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견해에 관해서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신을 자기 외의 대상적인 존재로 봄으로써 이원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과 예수를 절대 유일한 계시의 근거로 본 점을 비판했는데 필자는 이러한 선불교학자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교 비판에 대한 그리스도교 쪽의 평가를 임마누엘신학을 펼친 타키자와 가츠미(瀧澤克己)의 사상을 통해 비교 연구했다.
박사과정에서도 종교대화 특히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선구역할을 해온 교또학파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 나고야에 있는 난잔대학에서 2년간 연구원으로 지냈다. 그 곳에서 니시타니 게이지(西谷啓治, 1900~1990)를 비롯한 교토학파에 대해 연구한지 1년쯤 지나갈 무렵, 나는 교또학파의 종교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방법론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철학적 논의가 신앙인들의 구체적인 삶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철학적 개념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신앙은 종교학자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가 말했듯이 정적(靜的)인 무엇이 아니라, 초월을 향해 역동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이 지닌 자질이다. 아니, 신앙은 단순히 초월을 인식함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 초월의 세계에 자신의 전존재를 개방하는 것이며 그 초월을 몸으로 사는 데 있다. 이런 신앙관을 지녔던 나에게 교또학파의 사상은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회의 속에서 지내던 차에 난잔(南山)대학의 쯔치다(土田) 교수님을 통해 도겐선사(道元禪師; 1200-1253)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도겐선사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신앙과 깨달음의 세계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스미스가 말한 종교의 물상화(物象化)의 극복을 통한 신앙의 세계에 자신의 전존재를 열어 둔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게 깊이 다가온 것은 불성에 대한 도겐선사의 독법이었다. 대개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은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해석한다. 이는 곧 내 안에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불성내재론적 해석이다. 도겐을 만나기 전까지 나 역시 불성을 내재론적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도겐의 독법은 달랐다. 그는 일체중생 실유불성을 ‘일체는 중생이요 실유는 불성’이라고 해석하는게 아닌가. 삼라만상의 존재가 바로 불성 그 자체라니? 이러한 의문은 나에게 ‘도겐의 불성론’에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이를 중심으로 <도겐의 수증관(修證觀)>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게 되었다.
도겐이 살던 중세 일본 가마꾸라 시대에는 천태본각사상(天台本覺思想)이 성행했는데 당대는 이 사상에 바탕 하에 본래부처에 대한 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수행을 등한시해 왔다. 즉 현실 그대로의 중생이 부처라면 굳이 수행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에 빠졌던 것이다. 도겐은 당시 천태본각사상 아래 빚어진 수행무용론(修行無用論)에 깊은 의문을 품었는데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은 내게 시사해주는 바가 컸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역시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나 수도적 삶을 살아야 할 동기가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었다.
도겐은 천태본각사상으로 인해 빚어진 당대 수행무용론에 대한 대의단(大疑團)을 품고 입송(入宋)하여 여정(如淨)선사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수행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수행 그 자체가 바로 곧 깨달음(證)이라는 수증불이(修證不二)에 대한 자각이었다. 도겐은 송나라에서 여러 스승을 만났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연세가 지긋한 전좌승(典座僧)이었다. 도겐은 그를 통해 그간의 수행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고 ‘일체 생활이 곧 불도(佛道)’라는 진정한 의미의 佛道-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즉 깨달음은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자각이 그것이었다.
수증불이(修證不二)는 수행이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붓다의 행(行)임을 의미한다.
나는 도겐을 통해 수행은 깨달음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깨달음, 곧 수증불이(修證不二)이며 본증묘수(本證妙修)임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본증묘수란 옥에 티가 없음을 알면서도 더욱 닦아 옥이 빛을 더하게 하듯이(皓玉無瑕 琢磨增輝), 본증(本證)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깨달음의 빛을 더하는 역동성으로 나아가는 묘수(妙修)로서의 닦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도겐은 수행과 깨달음의 관계를 명료하게 보여주었지만 내가 그에게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은 그가 철저하게 붓다를 모방하고자 한 점에 있다. 도겐은 『정법안장(正法眼藏)』을 통해 붓다께서 깨달은 佛法, 붓다께서 행한 佛道에 붓다와 함께 참여하여 살아감에 대해 그리고 있다.
이렇듯 나는 도겐과의 만남을 통해 나 자신의 정체성이 보다 분명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도겐이 붓다의 제자라는 자기 정체성을 지녔듯이, 나 역시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 말이다. 자신의 생명까지 기꺼이 내놓은 예수를 닮고자 이 길에 들어선 나는 시공을 넘고 종파(宗派)를 초월하여 도겐 선사를 통해 자신의 소명을 재확인하도록 재촉받은 것이다. 이렇듯 나는 도겐 선사와의 만남을 통해 스미스가 말한 역동적 신앙의 세계에서 종교간-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만남의 가능성을 조금 맛보았던 것이다.
4. 나와 종교대화
박사과정을 마친 뒤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불교나 명상과 관련한 과목을 강의하면서 김승혜 수녀님과 함께 씨튼연구원에서 종교대화 일을 시작했다. 씨튼연구원 초기에 김승혜 수녀님께서 원장으로 활동하셨고 나는 간사로서 종교대화일을 보조해왔다. 그러다가 나는 김수녀님께서 수녀회 총장이 되어 미국으로 가신 후 연구원일을 책임맡게 되어 지금까지 종교대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수녀회가 그리스도교 영성의 토착화를 위해 종교대화 사도직을 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위해 내가 종교학을 공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씨튼연구원에서 하는 구체적인 종교대화일은 종교대화 모임과 종교강좌 그리고 영성관련 책을 출판하는 것이었다. 그중 씨튼연구원이 해오던 종교대화 일의 중심축은 종교인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1993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30여 년 간 이어져 왔다. 이 모임의 회원은 5대 종단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대학에 몸담고 계신 분들로 구성되었다. 종교인 모임은 1년에 4차례 세미나를 했는데 그중 1회는 각 종교교단의 종교시설에 가서 1박 하면서 세미나를 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모임에서는 함께 선정한 책을 읽고 그것을 돌아가며 발제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처음 10년간은 ‘교의적 차원’에서 종교간 대화를 해왔는데 이를 통해 회원들은 이웃종교를 좀 더 깊이 이해하면서 서로 간에 돈독한 친분관계를 맺어왔다. 각자 자신의 종교적 입장이 분명한 이들 간의 대화였기에 대화의 한계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가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아름다움으로 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초기 10년간의 종교인 모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화』라는 제목으로 운주사에서 출간되었고 중앙승가대학에서 10주년 기념 심포지엄도 갖기도 했다.
이렇게 교의적 차원에서의 10년간 대화해 오면서 앞으로는 보다 구체적인 현대사회의 문제를 갖고 대화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다. 그래서 2004년부터 10여년간 생태문제를 화두 삼아 종교대화 모임을 해왔다. 그 때 이루어진 세미나 역시 녹취, 정리해서 『생태문제, 종교인들이 답하다』 라는 제목으로 출판했고 한국불교 역사문화기념관에서 「하나뿐인 지구-생태문제와 종교간 대화」라는 주제로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었다. 2015년 부터는 생태문제에 이어 ‘종교와 현대과학의 관계’를 대화의 주제로 삼고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종교대화를 해오면서 이 과정들이 과연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교의적 차원에서의 종교대화는 이웃종교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고, 그 이후에 이뤄진 생태문제와 관련한 대화는 현대 인류가 당면한 기후위기를 비롯한 생태문제를 보다 깊이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나는 종교대화에서 얻은 지혜가 나 자신의 삶을 얼마나 더 넓고 깊게 만들었는지를 물어본다. 생태문제를 갖고 10년간 종교대화를 해오면서 과연 내 삶은 더 생태적으로 변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지적인 앎과 삶의 실천 사이의 간극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 삶에서의 간극, 이 사이를 좁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얼마 전 야마기시(산안 마을) 무소유 공동체의 산증인인 김현주씨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1980년 성균관대 운동권으로 민주화운동을 오다가 40년간 이 공동체에 투신해서 살아온 김선생님의 다음 말씀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신념과 각오가 있으면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 착각하며 지내왔다.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신념과 지금 자신의 상태는 별개의 문제다.... 신념에 차서 말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그의 삶이 그가 말한 것과 많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념을 갖고 사는 것과 실제의 삶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좁혀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관점을 풀어 주는데 명상은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것은 명상이 ‘현재의 자신’에 대해 좀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게(sati, mindfulness)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종교인 모임을 함께 해오신) 미산스님께서 개발한 하트 스마일 명상(Heart-Smile Training: HST)을 배워 익히고 있다. (올해 나는 이 명상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을 이수하기도 했다.) 하트 스마일 명상은 불교명상의 지관법(止觀法)에 바탕을 두고 있어 불교명상의 정수를 배울 뿐 아니라 이를 그리스도교 기도에 접목할 수 있는 계기도 되어 내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관상기도 방법의 하나로 <하느님 현존에 머무는 하트스마일 명상>을 보급하려 기획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명상수행을 통해 지금 여기에 깨어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지금까지 나의 수도여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영화 <페펙트 데이즈(perfect days)>에 나오는 주인공 히라야마처럼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코모레비’를 발견하며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수도여정을 통해 걸어가고 싶은 나의 작은 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