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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를 어떻게 사느냐, 그것이 깨달음의 척도다---------------최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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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일상은 특별한 것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나 직장에 가고, 거기서 친구나 동료를 만나 얘기를 나눈다.
또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일을 하고 거기서 예기치 않던 어떤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자신의 마음자리를 살펴보면, 우리가 암암리에 우리 삶을 중요한 것들과 그렇지 않는 것들, 특별한 것과 사소한 것들로 나누며 살아감을 발견케 된다.
대개 먹는 일이나 친구랑 이야기하는 일, 잠자는 일 등은 평범한 것들에 속하고, 누구를 만나거나 중요한 무슨 일을 하는 것은 특별한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은 이 특별한 것들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이원화된 삶의 양식은 평범하다고 여긴 것들은 중요하다고 생각-자기 기준에서- 한 것들의 수단으로 전락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이원화된 삶은 자신이 목표로 삼은 것조차 수단으로 전락하고 마는 모순을 낳는다.
그것은 우리가 방편적으로 정해놓은 목표들도 그것을 이룬 후에 또 다시 자신이 세운 다음 목표의 수단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발견케 된다. 우리가 목표와 수단이라는 이원적 구도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어느 한 순간도 온전히 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은 내가 설정해놓은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모든 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되고 만다.
마음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순간순간 갈라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짜장면을 먹을 때는 그 전에 먹었던 짬뽕을 떠올리고 친구에게 비난의 말을 들으면 과거에 누군가에게서 거부당했던 일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 마음이 들면 기분은 점점 더 나빠져 하루 종일 우울해져 버리고 만다.
어디 그 뿐인가. 어떤 고통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과거에 즐거웠던 일이 스멀스멀 올라와 지금 당하는 고통을 더욱 비참하게 느끼게 만든다.
또 어떤 즐거운 일을 경험할 때면 이 행복이 빨리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갖기도 한다.
이렇듯 현재 처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느끼기보다 이원화된 양가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갈라진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양분화된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지금 여기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이 과거로 가버렸음을 깨달음이 필요하다.
이는 기쁠 때 슬픔을 생각하고 슬플 때 기뻤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픔을 슬픔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이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는 길을 도겐(道元)선사는 ‘자신을 잊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자신을 잊는다’는 것을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도겐선사가 말한 자기를 ‘잊는다’는 의미는 나를 이원화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 자신이 처한 현 상황을 직시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원화해서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뜻한다.
우리의 영성생활을 들여다보아도 양분화된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기도할 때 우리는 그 전에 있었던 일들에 마음이 가 있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지 않는가?
그리고 사도직을 하느라 바삐 움직이다보면 조용히 기도했으면 하는 갈망을 갖곤 한다.
이렇듯 활동과 기도 안에서 우리 마음은 갈라져 갈등을 느끼곤 한다.
기도할 때 기도하지 못하고 일할 때 일에 마음을 다하지 못함은 결국 우리 마음이 이원화되고 갈라져 있기 때문이리라.
성숙한 영성생활은 우선 기도와 활동을 조화롭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는 데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어떤 완전한 규칙(rule)에 자신의 삶을 맞추려 할 때, 우리는 현실에 늘 불만을 느끼거나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영성의 이원화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자신이 만들어놓은 영성생활의 환상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여기에 마음을 다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도할 때 기도하고, 일할 때 일하고, 먹을 때 먹고, 잠잘 때 잠잘 수 있음은 지금 여기를 사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영성생활을 저 멀리 어디에 도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만큼 큰 착각은 없다. 깨달음의 세계는 지금 여기를 떠나 따로 있는 게 아닌 까닭이다.
지금 여기에 마음과 몸을 다해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바로 깨달음을 사는 길이며 그것이 진정한 영성생활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