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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유일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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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유일성 문제
(본고는 운주사에서 출간된 <불교와 그리스도교, 영성으로 만나다, 최현민 저> 제1장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포괄적 그리스도론을 주장해온 파니카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별했습니다. 역사적 예수는 그리스도임에 틀림없으나 그리스도를 역사적 예수와 동일시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한 인물에 국한시키는 한계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든 존재를 포괄하는 전 우주적 존재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에서입니다. 이런 점에서 파니카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지만,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명제는 꼭 성립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즉 그리스도는 그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 예수만이 아니라 불교의 보살을 뜻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변선환은 이러한 파니카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비판합니다. 복음은 구체적인 역사와 삶을 연관 지어 해석해야 하는데, 파니카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은 자칫 형이상학적인 사변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선환은 보다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론을 펼치기 위해 민중종교의 그리스도론을 말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시아에 전래되기 전에도 아시아인들이 나름대로 토착 신앙 안에서 삶의 의미와 진리를 발견하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즉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가 들어오면서 서구 신학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영성에 의해 새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새로운 세례’라는 것은 그들의 민중적 상황을 통해 골고타의 죽음과 부활 체험이 아시아 신학으로 거듭나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변선환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형이상학적 그리스도론보다는 예수가 죄인 민중의 친구였다는 실천에 근거해서 예수의 유일성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가 유일하고 보편적인 규범이지만, 이웃 종교인에겐 그리스도인들처럼 동일한 규범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신 중심적이고 비규범적으로 그리스도를 해석한 변 목사의 관점에서 예수는 역사적 인물이기에 역사적 구체성을 절대화할 수 없었고 따라서 예수의 유일성을 보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변 목사는 감리교단 안에서 이단으로 축출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예수의 유일성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예민한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존 휙은 예수를 ‘신의 한 은유’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예수가 성육신 되신 하느님임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를 은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는 세상 속에서 하느님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지닌 분임에는 확실하지만, 예수가 하느님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 휙은 예수를 ‘신의 한 은유’로서 설명합니다. 이와 같이 은유적인 의미로 예수를 설명하면 누구든지 예수처럼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행위를 통해 성육신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다시 말해 성육신은 예수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존재에게 열려 있는 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존 휙과 같은 맥락에서 길희성은 예수를 보살로 보는 아시아적 그리스도론인 보살기독론을 펼쳤습니다. 보살의 개념으로 그리스도를 설명하고자 시도한 그의 보살기독론은 공과 하느님을 동일 실재로 보고, 그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시아적 그리스도’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 것입니다. 보살은 대승불교에서 이상적 존재상으로서 이미 깨달았지만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되기를 보류한 존재라고 본 길희성은 “보살이 2000년 전 갈릴래아 지방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예수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아시아인들은 예수의 의미를 우리 문화와 종교적 감성 속에 자리 잡아온 보살로 이해함이 당연하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보살기독론에 대해 변선환 목사는 다음과 같은 비판을 가합니다. “신앙의 보편적 가능 근거는 공이나 절대무絶對無라는 비행접시에 있지 않고 인간 실존의 자기 이해에 있으며, 이 자기 실존은 내 구체적 생의 상황, 곧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를 추상적이고 이상적 존재인 보살과 대비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변 목사는 길 교수가 불교나 그리스도교를 동일시함으로써 성서 신앙을 불교적으로 환원시켰다고 비판합니다. 길 교수도 자신이 보살이라는 이념에 더 비중을 두고 예수를 해석한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는 그리스도교가 ‘예수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종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다원주의론적 관점에서 보살기독론을 주장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보살기독론이 지닌 문제야말로 신 중심적 다원주의가 지닌 문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