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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집에 나타난 신불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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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明集>에 나타난 神不滅論
서론
한 문화에서 발생한 사상체계가 다른 문화 속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전통사상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특히 뿌리깊은 중화의식을 가진 중국은 다른 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 충돌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중국인들의 불교 수용은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리오,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논하리오”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현세중심적인 사유구조를 지닌 중국인들에게 윤회와 해탈이라는 내세관을 지닌 불교는 너무나 낯선 사유체제이었을 것이다. 현세에서 부귀, 장수 등의 복을 누리는 것을 추구했던 중국인들에게 인생을 苦라고 생각하고, ‘苦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현세의 욕망을 끊어 버리는데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참으로 수용하기 힘든 교리였을 것이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토착화되는 과정 속에서 중국 고유의 사상과 교리적, 존재론적 관점에서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문제 중 하나가 ‘신멸불멸론 논쟁’이다. 여기서는 중국의 불교수용과정에서 발생한 이 논쟁 중 신불멸론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원시불교의 무아설과 윤회사상
무아설은 불교에서 말한 존재의 속성인 苦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교의이다. 我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욕망의 원인이고, 이 욕망이 바로 苦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苦를 없애기 위해서 욕망의 근원인 我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없애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붓다의 무아설이다. 그러나 본래 붓다가 설한 무아설은 有我의 반대개념이 아니다. 즉 붓다의 무아개념은 有我의 상대개념이 아니라 ‘我가 존재한다’는 즉 영속적이고 불변하는 실체적인 존재에 대한 부정이다. 이러한 영원한 실체를 부정하면서 불교는 동시에 윤회를 설명하고 있다. 이 안에서 결국 ‘윤회의 주체’가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영속적이고 불멸하는 실체적 존재, 즉 윤회의 주체를 부정한다면 어떻게 윤회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我가 없다면 누가 다음 生에 업의 결과를 받을 것인가?
이 문제는 초기불교때부터 문제시되었고 결국 그 이견의 차이는 붓다입멸후 교단이 분열하게 되는데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불교 자체내에서도 윤회의 주체가 문제가 되었다면, 현세적이며 실체론적 사유체계를 지닌 중국인들에게 무아설과 윤회사상을 동시에 지닌 불교사상은 얼마나 당혹스런 교리였을까? 원시불교에서는 논쟁거리가 되기는 했으나 붓다의 무아설을 고수하면서 윤회의 주체를 상정하지 않은 윤회사상을 지켜왔다. 그러나 중국에 와서는 원시불교에서 부정했던 윤회의 주체를 神(정신)으로 상정한 신불멸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영원한 존재를 부정한’ 무아설이 어떻게 중국에 와서는 ‘영원한 실체를 인정하는’ 신불멸론으로 해석되었는가? <弘明集>에 나오는 신불멸론 중 牟子, 鄭道子, 宗炳, 慧遠의 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2.牟子의 神不滅論
원시불교에서는 報應의 주체가 되는 것이 십이연기 가운데 識이라고 본다. 識이 중국에서 번역시 識과 유사한 글자인 神을 빌려서 나타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중국에서 운용하게 되면서 魂, 靈, 정신 개념과 혼용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신, 魂, 靈 등 여러 개념으로 혼용되어 사용된 神개념이 초기불자들에게 ‘영원히 불멸하는 실체’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즉 <奉法要>을 저술한 극초가 “정신(영혼)은 일정한 거처를 지니지 못하고 옮겨다니기를 그치지 않으니 이를 일컬어 非身”이라고 말했듯이 神(非身)은 중국초기불자들에게 윤회의 주체개념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모자는 당시 불교의 윤회전생에 대한 불신을 지닌 사람이 한 “佛道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데, 나는 이 말을 믿을 수 없다”라는 말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영혼은 진실로 멸하지 않는다. 다만 육신만이 썩어 없어질 뿐이다. 비유하면 육신은 오곡의 뿌리와 잎과 같고 영혼은 오곡의 씨앗과 열매와 같다. 뿌리와 잎은 생겨나면 반드시 죽지만 씨앗과 열매에 어찌 없어져 죽는 것이 있겠는가?”
육신은 생사가 있지만 영혼은 불멸한다는 모자의 주장은 당시 중국민간에 널리 퍼져있던 精靈신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또한 모자는 <禮記>, <孝經>을 예로 들어 신불멸론을 펼치고 있다. 즉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집 지붕에 올라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는 <예기>와 종묘제사를 중시해야 한다고 설하면서 주공은 귀신을 잘 섬겼다는 <효경>을 예로 들면서 이것이 불교의 생사관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효경> <예기>에 나오는 魂神사상을 불교의 생사관과 연결시키고자 함은 불자들이 요순, 주공, 공자의 도를 버리고 오랑캐 술법인 불교를 수용하는 것에 대해 갖고 있던 적개심을 없애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모자는 佛經이나 불교의 교의에 입각하여 불교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영혼불멸이라는 당시의 민간신앙이나 <예기>나 <효경>같은 중국전통사상을 통해 神의 불멸을 입증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그의 불교이해가 부족했던 점도 있었겠지만, 불교의 이질적인 면이 이미 중국사상에 있었음을 보임으로써 중국인들에게 이질감을 덜 주기 위함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또한 <이혹론>에서는 무아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불교교리 중 무아설보다 윤회설을 더 중시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我를 부정하는 이질적인 측면보다는 그들의 전통신앙내에 있던 영혼불멸사상과 상통할 수 있는 윤회사상으로 불교를 설명하는 것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모자가 택한 것과 같이 중국전통사상을 인용하여 신불멸론을 펼치려는 방법론은 중국내에 다른 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우리는 그 안에서 중화의식의 깊은 뿌리를 볼 수 있다.
3. 鄭道子의 神不滅論
鄭道子는 “形神은 분리될 수 없을 만큼 함께 있지만, 근원으로 돌아가 보면 정신과 육체는 확실히 구별되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神(정신)은 生의 근본으로 그 근원은 지극히 영묘하니 어찌 七尺(육신)과 더불어 함께 썩고 감각기관과 같이 다해지겠는가?”라고 하여 육신은 병이 나도, 생명의 근원인 神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도자는 정신과 육체를 확실히 구별하여 이 두 개가 서로 근원을 달리하기 때문에 육체는 멸하지만 정신은 불멸한다는 形神二元論과 함께 신불멸론을 펴고 있다. 그는 形神을 구별하고 神은 主이고 形은 從임(神主形從)을 증명하는 예로써 다음을 들고 있다. “한 몸이 서로 의지하는데도 피부와 뼈는 아픔과 가려움을 아는데 손톱과 머리카락은 잘라도 이를 모르는 것은 피부와 뼈는 생명의 본원인데 반해, 손톱과 머리카락은 생명의 본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이 본원에 있으면 앎이 존속되나, 생명이 말엽에 있으면 앎이 소멸된다. 따라서 생명의 본원인 피부와 뼈는 아픔과 가려움을 느끼나 생명의 말엽인 손톱과 머리카락은 못 느낀다. ”
“불은 본래부터 있는 것이지 장작을 기다린 연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장작이 물 속에 있으면 불이 꺼지고 꺼내서 불을 붙이면 불이 생긴다. 하나의 장작이 바뀌지 않았으니 불은 이전(장작을 물 속에 꺼내기 전)에 이미 있던 것이다. 神이 形에 의지하지 않는 것도 이와 같다.”
정신은 生의 근본이므로 육과 함께 멸할 수 없다고 본 정도자는 생명의 근본인 神과 육체인 形의 관계를 감각의 유무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즉 감각을 느낄 수 있는 피부와 뼈는 생명의 본원인 神에 비유했고, 감각이 없는 손톱과 머리카락은 생명의 말엽인 肉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또한 장작이전부터 불은 이미 존재하고 있음도 神의 불멸을 증명해 주는 예로 사용했다. 정도자가 주장한 形神二元論, 그리고 불과 땔감의 비유는 당시 번역된 경전인 <法句經>에서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다.
<法句經> 중 <生死品>에 나오는 한 게송에서 “사람이 자신이 거주하던 낡은 집을 떠나는 것처럼 정신은 몸으로 집을 삼으니 몸은 무너져도 정신은 없어지지 않는다. 정신은 육체에 머무르는 것, 마치 새장이 부서지면 참새가 날아가듯이 육신이 죽으면 정신은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또 한 게송에서는 “정신은 몸에 의지해 이름을 삼는 것, 마치 불이 물질의 형상을 따라 초에 붙으면 촛불이라 하고, 숯, 풀, 똥, 나무에 붙으면 숯불, 풀불, 똥불, 나무불이라 하듯이”라고 하였다. 이 게송은 정신과 육체와의 관계를 설명한 것으로 이 게송의 특징은 정신과 육신을 분리하면 두 가지라는 것이다. 이 둘 사이의 관계는 불과 땔감과의 비유로 설명하는데 이는 중국전통사상과도 서로 계합하는 면이 있기에 신불멸론자들이 즐겨 사용한 것이다.
4. 宗炳의 神不滅論
불자들의 신불멸론은 사후의 일을 문제삼지 않던 儒家나 인간의 生死를 氣의 聚散으로 보는 도가적 입장에서는 비판거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신불멸론에 반박하여 정신과 육체의 근원을 하나로 보고, 정신도 육체와 함께 멸한다고 주장하는 신멸론을 비판하기 위해 종병은 <明佛論>을 저술했다.
종병은 <명불론>에서 “周公이 后稷에게 郊제사를 지냈고, 문왕이 종묘제사를 지낸 것”을 예로 들어 영혼이 살아 있음을 주장했다. 또한 그는 윤회의 핵이 되는 정신이 불멸이라고 하는 것을 인간의 지성과 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점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舜은 장님에게서 태어났지만 舜의 정신은 분명히 장님이 낳은 것은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순의 아들인 商均의 정신도 또한 순이 키운 것은 아니다. 생육하기 전의 바탕에 이미 거칠거나 혹은 정묘함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근본은 이미 태어나기 전에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죽은 후에도 불멸이라는 것이다. 또한 불멸이기 때문에 愚者와 賢者의 구별이 있으며 理知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愚者나 賢者는 아무리 생사를 반복하더라도 불멸하는 부분을 고칠 수 없다.”
이와 같이 인간의 지성과 능력의 차이로 신불멸을 증명코자 한 것은 앞서 본 신불멸론보다는 한걸음 진보했지만, 여전히 불교의 교리나 경전에 입각한 설명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종병은 정신을 法身과 연결시켜 설명하고자 함으로써 신불멸론을 불교교의와 연관지어 설명하고자 했다.
“欲情이 오직 神에만 홀로 비추게 되면 곧 生에 해당하는 것(肉)은 사라진다. 생명이 없어지면 몸은 사라진다. 몸이 없어지더라도 神은 남아있다. 이를 일컬어 法身이라 한다.”
이와같은 종병의 법신사상은 그의 스승인 혜원에게서 비롯된 것으로써 그가 지은 <명불론>은 여산에서 혜원의 지도를 받고 50일간 연구와 신앙의 산물인 것에서 알 수 있다.
5. 慧遠의 神不滅論
혜원의 <沙門不敬王者論>의 마지막 일절에서 우리는 그의 신불멸론을 볼 수 있다.
“神은 사물에 감응하지만 사물이 아니므로 사물이 변해도 이것은 없어지지 않으며, 운명에 가탁하지만 운명이 아니므로 운명이 다하여도 이것은 다함이 없다. ...운명에는 정밀함과 거침이 있으므로 그 성질이 각각 다르며 지혜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있으므로 그 비추는 바가 같지 않다.”
즉 神(영혼)은 육신이 변하여도 불변하고 사람의 생명이 다하여도 결코 멸하지 않음을 말함으로써 육신과 영혼은 그 근원이 다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불이 장작에 옮겨지는 것은 영혼이 몸에 옮겨지는 것과 같다. 불이 다른 장작에 옮겨다니는 것은 영혼이 다른 몸에 옮겨지는 것과 같다. .......미혹한 사람은 이 생에 몸이 썩는 것으로 보고 영혼과 감각이 모두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의 나무에서 불이 다 타면 곧 불이 모두 다하였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여 영혼의 윤회는 한 조각의 나무로부터 다른 나무로 불이 옮겨가는 것과 같다는 ‘形盡神不滅’을 주장한 것이다.
이와 같이 혜원이 ‘形盡神不滅’사상을 갖게 된데에는 승가제바의 독자부 저술의 영향이 컸다. 정통불교에 의하면 존재를 이루고 있는 것은 五蘊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즉 오온 뒤에서 苦를 느끼는 我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잡아함> 3권 73의 <重擔經>에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어떤 것이 무거운 짐인가, 이른바 오온이다.
어떤 것이 짐꾼인가, 이른바 푸드갈라가 그것이니...”라고 하여 오온 이외에 다른 것, 즉 푸드갈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독자부는 바로 이 푸드갈라가 假有가 아니라 勝義라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푸드갈라 개념이 중국에 오면서 실체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혜원의 사상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혜원 당시에 이미 용수의 중관사상이 전래되었으므로 그는 정신을 법신과 연결시켜 해석하고자 했다.
그의 법신사상은 그가 라집과 서신왕래를 한 <大乘大義章>에 잘 나타나 있다. <대승대의장> 18통 중 10통이 주로 법신에 대해서 물은 것이다. 이 서신을 보면 그는 법신과 색신의 차이는 무엇인가, 많은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형상에 대해서 설하고 있는데 참다운 법신은 이와 같은 것인가, 법신을 보고 들을 수 있는가, 불타의 서른 두가지 상호가 법신에도 나타나는가, 법신의 존재는 유무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을 질문하고 있다.
이러한 혜원의 질문에 잘 나타나듯이 실체적 세계관을 지닌 혜원의 입장에서는 법신에 대한 추상적인 사고에 만족하지 못하였으며 잡을 수 있고 감각적인 기능을 갖춘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혜원이 지녔던 의문은 중국인의 사유가 불교의 무아설, 공사상과 법신사상을 접하면서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종교적 실존을 문제삼은 것이다.
6. 결론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신불멸론은 불교의 윤회사상을 중국의 실체론적 사유구조 속에 수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상임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윤회의 주체인 神을 상정하게 되었는데 불교가 들어온 초기에는 중국고전의 인용에 의한 중국적 사유에 의존하여 이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다가 혜원에 와서 상좌불교의 독자부의 푸드갈라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생사윤회의 주체로서의 神을 불교적 교의와 연관지어 설명했다.
불교는 본래 단견(일체소멸)과 상견(영구불멸)을 모두 부정하는데 반해 신불멸론은 상견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따라서 신불멸론은 본래의 불교교의인 공성이나 연기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생겨난 것으로 붓다 본래의 사상과는 거리가 있는 사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신불멸론을 통해 불교의 진리인 참된 공성에 직면하기 위한 과도기에서 고심했던 당시 중국인을 만날 수 있다. 비록 그들의 사상이 논리적 비약으로 엉성하고 어설프게 보이는 면이 있지만, 불교를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러한 초기불자들의 시도가 있었기에 오늘날 중국에 그들만의 독특한 불교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은 타문화의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거쳐야 할 토착화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불멸하는 주체로서의 神개념이 혜원에 와서 법신사상과 연결되면서 개별적 주체개념이 보편적인 개념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며 후에 중국에 불성사상이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외에도 신불멸론은 氣로서 모든 존재를 설명하려는 일원론적 사유체제에서 氣와는 다른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형이상학적 실재를 규정함으로써, 중국의 전통적 사유체계를 벗어나는 기틀이 마련해 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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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혜원이 법신을 실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에는 상좌불교 독자부의 푸드갈라설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상좌불교에서는 무아에 대한 俗諦로 승의아로서의 푸드갈라를 말했는데 혜원은 승가제바로부터 이를 수용하게 되어 이를 실체론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물론 그가 후에 구마라집에 의해 공사상과 법신사상을 배워 神의 실체성에 많은 의혹을 지니지만 이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실제적으로 신불멸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지는 불교의 사상에 입각하여 논지를 펼친 것이 아니라 중국고전을 인용한 것이었다. 따라서 불교사상과 연관 속에서 신불멸론을 살펴보려면 혜원의 법신사상을 볼 수 밖에 없다. “생이 없다는 것은 육체가 없다는 것이요, 육체가 없되 신이 있는 것은 法身이라 한다.”
독자부의 <삼법도론>에서는 人我가 있음을 인정하였는데 승가제바는 바로 이 <삼법도론>은 혜원이 있는 여산에서 번역하여 혜원은 여기서 영향을 받아 <법성론>을 썼다. 이 론에서 혜원은 니원 (열반)이 불변의 뜻임을 천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불변의 성품을 혜원은 정신이라고 보았고 결국 열반을 획득하는 것은 불멸하는 정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삼법도론에서 말한 勝義我 즉 人我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래 중국의 신멸론은 일원론인데 왜 중국은 일원론적 구조인 불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원론인 형신이원론이 되었나? 이는 소승에서의 무아설에 대한 방편적인 면 즉 속제로서으 푸드갈라를 이해함에 있어 이를 실체론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 즉 중국의 사유구조 속의 실체론과 속제로서의 푸드갈라와 윤회사상이 어울어져서 신불멸론을 낳게 된 것이다.
윤회사상을 들여오면서 윤회의 주체의 문제가 실체론적 사유구조를 지닌 중국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윤회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윤회하는가, 윤회의 주체가 없다면 윤회설은 무슨 의미인가?
무아설이 나오게 된 배경 붓다는 인도문화 속에서 일체개고로부터 깨달음의 길에 올랐다.그래서 苦는 결국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무아임을 깨달을 때 고는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중국인들의 사고는 현세주의적이며 인생을 고로 보지않고 즐거움으로 본다. 이와 같이 내세중심이며 공사상을 지닌 불교가 현세중심이고 실체론적 사유를 지닌 중국에 들어와 부딪친 것은 당연하다.
이는 무아설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본래의 무아설은 단견과 상견을 모두 부정하고 我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의 문제는 無記로 취급했는데 중국에 오면서 무아설은 독자부가 방편적으로 내세운 푸드갈랄르 윤회으 주체로 이해ㅏ하고 상견설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 정신을 성불론과 불신론과 연결시키고 있는 점이다. 이는 필시 그가 혜원에게서 받은 영향이다. 그는 법신에 대해서 “ 정신이 극에 달하면 형체를 초월해서 홀로 존재하게 된다. 형체가 없이 정신만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 法身常主의 의미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중국의 초기불자들은 이질적인 불교를 수용하는 데에 기존의 전통사상에서 설명해 낼 수 있는 부분을 찾고자 고심했다. 윤회 업보 무아라는 불교교리를실체론적 사유그릇에 담아보고자 시도했던 것이 중국초기불자들의 신불멸론이었다.
이와 같이 사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불교의 생사관으로 본 牟子의 사상은 본래 불교의 윤회설의 변용이라 할 수 있다. 인도불교에서는 자신이 한 행위에 따라 과보가 주어진다고 하지만 그 과보를 받는 영원불멸의 본체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도자는 28-1 “理(태극)는 形보다 精하고, 神은 理보다 묘하다”고 했다. (28-2) “만물의 大本인 太極은 運元의 氣에 불과하지만 능히 만물의 조화의 근본으로써 불변한다. 하물며 靈의 極이며 有無가 모두 다한 神明이야 어찌 멸하는 도리이겠는가” 라고 하여 신명을 태극 위에 두어 神-태극-形의 순으로 신본형말설로서 형신을 구별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입증은 불교 본래의 사상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환담도 <新論>에서 불과 심지를 비유하여 “심지가 없이 불이 홀로 허공을 밝힐 수 없다. 이와 같이 사람도 늙으면 불과 심지처럼 다 사라진다. 사람이 형체를 품수받아 존재하는 것은 저 초 하나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나 그 초가 다 녹아 없어지는데 미쳐서는 어찌 스스로 다한 것을 바꿀 수 있겠는가? 즉 등불이 스스로 다하면 바꿔주려고 해도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사람도 육신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다”고 하여 신멸론을 폈다.
또한 “업의 과보는 개인이 혼자서 받는다”(봉법요87-2끝)는 불교의 업보사상을 통해 각 개인을 영원한 윤회의 주체로 인정하면서 중국전통사상인 유교의 가족중심적 응보관에서 개인응보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神 자체는 영묘히 비추어서 여러 형체를 신묘히 통솔한다. 形과 氣息은 함께 운행하고 神과 妙覺은 같이 흐르니 비록 動靜이 서로를 바탕으로 하지만 정묘함과 거침에 있어서는 근원을 달리한다”고 하여 살아있을 때에는
중국에는 본래 불멸하는 실체개념이 없었기에 중국인들은 초기불자들의 신불멸론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신멸을 주장하였다. 혜림은 <백흑론>에서 불교의 공사상을 本無로 보고 이는 老莊의 無와 같으므로 불교는 필요없다고 주장하면서 영혼 역시 空이므로 존속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승천은 <달성론>에서 생사도 4계절의 바뀜과 같이 자연현상이므로 정신, 육체는 동시에 생멸한다고 본다. 하승천과 같이 신불멸논쟁을 한 이가 종병이다.
신불멸론은 중국의 실체론적 사유구조 속에 독자부의 푸드갈라개념과 윤회사상이 녹아들어오면서 윤회의 주체를 상정하게 된 과정 속에서 생긴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신불멸론은 대체로 神관념에 대한 모호성, 중국고전의 인용에 의한 중국적 사유의 의존, 神을 단지 윤회의 주체로만 보려는 입장으로 불교교의 자체가 지닌 공성이나 연기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온 산물임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