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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겐의 정법안장과 불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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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Ⅲ. 『정법안장』의 구성
2.
가. 1. 『정법안장』의 의미
『정법안장』이란 석존이 마하가섭에게 법을 전수할 때 “내게는 正法眼藏涅槃妙心 實相無相微妙의 法門이 있다”(『聯燈會要』제1)라고 한 바로 그 석존의 깨달음에서 드러나는 진리를 말한다. 정법안장의 ‘眼’은 비춘다는 뜻이고 ‘藏’은 含藏한다는 의미이다. 정법안장은 절대적 진리인 正法에 의해서 諸法을 비추고 含藏한다는 것이다. 도겐은 正法을 전하고자 하는 강한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기에 자신의 저술을 『정법안장』이라 이름지었다. 도겐에 있어 정법안장은 바로 ‘坐禪’이다. 좌선을 정전불법으로 본 도겐의 사유는 『정법안장』전체에 흐르고 있는 핵심주제이다.
일반적으로 도겐의 『정법안장』은 이해하기 힘든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도겐은 『정법안장』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말하려 한 것이라기보다 자신이 자각한 正法의 세계를 言語道得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곧 도겐은 『정법안장』을 통해 그 세계가 석존으로부터 이어온 正傳佛法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도겐은 『정법안장』 각 권의 끝에 ‘언제 어디서 示衆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도겐의 저술 동기를 엿볼 수 있다. 즉 도겐은 대중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정법안장』을 저술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언설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정법안장』이 도겐의 깨침인 제1義諦를 제2義諦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깨침의 세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중국선종에서 不立文字를 표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言說은 존재의 진리를 개념이나 관념 속에 가둠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존재의 실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따라서 문자를 통한 공안의 뜻풀이로 공안 내에 숨겨져 있는 活鱍鱍地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겐은 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비사유인 깨침을 언어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그럼 도겐은 文字禪이 지닌 오류를 다시 범한 것이 아닌가?
도겐에게 있어 언어는 하나의 道得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한 道得의 ‘道’는 말한다, 설한다는 의미이고 ‘得’은 그 言說을 철저히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道得은 불법의 진실을 설하여 그것을 행위로 체현함을 의미한다. 도겐에게 있어 저술작업은 깨침의 세계를 언어활동을 통해 체현함을 말한 것이다.
도겐은 자신의 종교세계를 非思量의 思量으로 표현한다. 非思量의 思量이란 사량분별을 넘어선 사량을 말한다. 『정법안장』은 이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므로 打坐의 思惟이며 身心脫落을 언어로 표현한 ‘非思量의 思量’인 것이다. 도겐은 「現成公案」 끝에서 天月과 水月의 이야기를 한다. 天月이 佛智見 혹은 涅槃妙心이라면, 물에 비친 달(水月)은 打坐의 사유가 낳은 자각의 언어로 天月이 언어화된 것이다. 이와 같이 『정법안장』은 言詮不及이라는 선일반의 이해를 넘어서 깨침의 세계를 언어로서 드러낸 것이다. 이같은 『정법안장』의 저술은 修證一等의 수증관에 선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즉 도겐은 수증일여의 입장에서 遇一行 說一法을 『정법안장』의 각 권에 남긴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법안장』 각각은 도겐이 一行을 만날 때마다 설한 각각의 다르마(法)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겐의 수증관에 대해서 각각 달리 해석하므로 『정법안장』을 이해하는 시각도 이에 따라 각각 달리 드러난다는 점이다. 전통종학과 비판종학 내에서 보여지는 시각의 차이가 그 좋은 예이다. 즉 도겐의 수증관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정법안장』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정법안장』은 여러 방식으로 편집됨으로써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 중 75권『정법안장』과 12권『정법안장』은 도겐이 직접 편집한 것이다. 그러나 양자는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정법안장』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 도겐사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쇄가 된다. 이를 고찰하기에 앞서 『정법안장』의 종류와 그 구성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나. 2. 『정법안장』의 종류와 구성
도겐이 『정법안장』을 저술하기 전에 이미 大慧宗杲가 저술한 『정법안장』이 있었다. 大慧의 『정법안장』은 그가 59세 되던 紹興17年(1147)에 侍者 沖密이 편찬한 661칙의 공안을 편집한 것으로, 대혜가 문하에게 공안을 참구시키기 위해서 만든 공안집이다. 도겐이 大慧와 같은 書名을 붙힌 것은 大慧의 『정법안장』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알고도 의도적으로 같은 書名을 붙힌 것이다. 그럼 도겐은 어떤 의도로 대혜와 같은 書名을 붙였는가?
大慧의 『정법안장』은 古則公案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러나 도겐의 『정법안장』은 古則公案이 아닌 ‘現成公案’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공안에 대한 양자의 시각 차이를 보여준다. 즉 대혜는 전수되어오던 古則公案을 공안으로 이해했다면, 도겐은 ‘지금 여기’에 現成하는 모든 것을 공안으로 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이 參究해야 할 공안 자체인 것이다. 이와 같이 現成公案의 참구는 기존의 공안집을 통해 전해오던 공안으로 참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현성함을 참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겐이 현성공안을 말한다고 해서 고칙공안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가 고칙공안을 부정했다고 보는 것이야말로 도겐을 왜곡되이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도겐이 마치 공안선을 비판하고 묵조선을 택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겐은 공안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지관타좌의 입장에서 공안을 현성공안으로 보고 있다. 도겐에게 있어 지관타좌와 현성공안은 단일방법론에 대한 두 측면이다. 김희진은 도겐에게 있어 ‘좌선이 공안이고 공안이 좌선’이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공안은 현성공안이며, 그 현성공안과 지관타좌이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겐에게도 古則을 중심으로 한 공안집이 있다. 이는 바로 『仮字정법안장』과 구별되는 『眞字정법안장』이다. 『眞字정법안장』은 『仮字정법안장』과 성격이 다르므로 도겐의 親著인지 의심을 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가와무라 고우도우(河村孝道)의 노력으로 金澤文庫로부터 雍安10年(1287)에 복사된 『정법안장』이 발견되어 이것이 『三百則』의 中卷과 일치하였기에 『眞字정법안장』이 도겐의 저술임이 밝혀졌다. 그럼 도겐은 왜 『仮字정법안장』와는 다른 『眞字정법안장』을 굳이 저술한 것인가?
도겐이 『眞字정법안장』을 저술한 목적에 대해서, 大久保道舟는 그가 『仮字정법안장』에 나오는 古則公案의 台本으로 삼기 위함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河村孝道는 『仮字정법안장』 뿐 아니라 『永平廣錄』 등 도겐의 모든 저술의 台本으로 삼기 위함이라고 본다. 『眞字정법안장』은 曹洞, 臨濟, 雲門, 潙仰, 法眼인 五家의 종파의식을 넘어 唐代에서 宋代에 이르는 선사들의 정법안장을 古則으로 뽑은 것이다. 이는 후에 『仮字정법안장』에서 말한 것과 같이 종파의식을 넘어서 법의 근원으로 돌아가 순수하게 正傳의 佛道를 자각하고 실천으로 살아가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즉 도겐은 정법안장涅槃妙心을 이어받은 조사들의 古則을 선택하여 정리함으로써, 다른 저작들과 같이 『眞字정법안장』를 통해서도 ‘정법안장’의 의미를 밝히고자 한 것이다.
河村孝道는 『眞字정법안장』 역시 『仮字정법안장』처럼 문하들이 참구하기 위해 편집한 공안집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河村孝道는 『三百則』의 서두에 나오는 “(嘉禎乙未一陽佳節住持) 觀音導利 興聖寶林寺에서 入宋했던 沙門도겐이 법을 전하고자 한다”라는 序文을 든다. 즉 도겐이 序文을 직접 썼다면, 누군가를 위해 이를 썼을 것이다.
『眞字정법안장』은 도겐이 자신을 위해서 모은 공안집이라기보다 제자들에게 참구하기 위해 마련한 공안집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眞字정법안장』이 문하들이 참구하기 위한 공안집이라면, 대혜의 『정법안장』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 점에서 石井修道는 『眞字정법안장』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저술한 것이라고 보는 河村孝道의 견해에 반대했다. 石井修道는『眞字정법안장』에 수록되어 있는 305則 중 129則의 공안이 「宗門統要集」에 나오는 것임을 밝힌다.
따라서 『眞字정법안장』은 긴 기간에 걸쳐 기록된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어떤 목적을 갖고 300則을 모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石井修道는 『眞字정법안장』이 문하일반에게 널리 개방된 책이 아니라 도겐 자신의 參究를 위해 모은 것이라고 본다. 鏡島元隆 역시 『眞字정법안장』이 『仮字정법안장』와 『永平廣錄』에 많이 인용된 것으로 보아, 이는 문인들이 참구하도록 편찬한 것이 아니라, 도겐이 자기 저술을 위해 모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상에서 우리는 『眞字정법안장』의 성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眞字정법안장』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한 점이 많아 앞으로도 계속 밝혀져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흔히 도겐의 『정법안장』이라고 할 때 『眞字정법안장』이기보다 『仮字정법안장』을 말한다. 도겐의 대표적인 저술인 『仮字정법안장』은 도겐이 직접 편집한 75권과 12권 이외에 義雲에 의해 편집된 60권본, 『秘密정법안장』 28권본, 84권본, 晃全에 의한 95권본, 永平寺에서 출판한 『永平정법안장』등 여러 종류가 있다.
95권본은 江戶시대의 것으로 『仮字정법안장』을 연대순으로 편집 간행한 것이다. 95권본은 도겐이 선술한 和文을 모두 수록하기는 했으나, 『정법안장』 전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95권본은 도겐이 직접 편집한 것이 아니다. 江戶期(1688-1704) 永平寺 35世인 版橈晃全(1627-1693)이 『仮字정법안장』을 모아 95권본으로 편집하기 시작하여 永平寺 50世 玄透卽中(1729-1807)이 재편집해서 大本山 永平寺版으로 간행했다. 그 후 다시 昭和에 이르러 岩波文庫本으로 本山版 『정법안장』 95권의 諸種異本을 校合 간행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60권『정법안장』은 永平寺 제5세인 義雲(1253-1333)이 嘉曆4年(1329)에 편집했다. 60권본은 75권『정법안장』에서 25권을 빼고, 12권『정법안장』중「三時業」「四馬」「發菩提心」「袈裟功德」「出家功德」「供養諸佛」「歸依佛法僧寶」의 7권을 넣은 후, 75권이나 12권에 없는 「法華轉法華」「菩提薩埵四攝法」의 2권을 추가해서 편집한 것이다. 이렇게 합한 것은 59권이지만 「行持」권이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으므로 60권이라고 부른다. 또한 이 『정법안장』은 永平寺 제9세인 宋吾가 편집했으므로 宋吾本 『정법안장』이라고도 불리운다.
『秘密정법안장』 28권본은 福井縣 永平寺에 비밀리에 넣어둔 것으로 初 中 後의 3권으로 나누어 初卷은 「佛向上事」「生死」「心不可得」「後心不可得」「深信因果」「諸法實相」「佛道」「禮拜得髓」「佛道」「三昧王三昧」 「37品菩提分法」의 11권, 中卷은 「傳衣」「佛敎」 등의 10권, 後卷은 「佛祖」「四禪比丘」 등 7권이 있다. 그 중 「生死」「唯佛與佛」은 이 텍스트에만 있는 것이다.
84권본은 75권본『정법안장』을 正篇으로 하여 60권본에는 있으나 75권에는 없는 9권을 따로 편집하여 넣었다. 應永26年(1419) 太容梵淸( ?-1422)이 편집한 것으로 江戶시대까지 標準『정법안장』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文化11年(1814) 화재로 인해 현재는 그 중 약 4분의 1만 남아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다양한 『정법안장』은 모두 도겐의 제자들에 의해 편집된 것인데 반해, 75권『정법안장』과 12권『정법안장』은 도겐이 직접 편집한 것이다. 75권 『정법안장』은 도겐이 興聖寺에 입산한 이래 吉峰寺, 禪師峰, 大佛寺, 永平寺를 이주해 가면서 쓴 것을 수정 개작한 것이다. 도겐은 興聖寺 時節이 끝날 무렵부터 北越로 入山하기까지 정력적으로 수정작업을 해서 75권본을 완성했다.
그리고 12권본은 도겐이 만년에 접어들면서 집필한 것으로 75권본과는 그 내용상 성격이 크게 다르다. 이와 같이 75권본과 12권본의 차이는 도겐연구자로 하여금 그 이유를 분석하고자 노력해왔다. 다시 말해 왜 도겐이 만년에 가서 75권본과 성격이 다른 『정법안장』을 집필했는지가 큰 관심사가 되어온 것이다. 그럼 여기서는 75권본과 12권본의 저술동기를 중심으로 兩『정법안장』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다. 3. 75권본과 12권본의 관계
75권본과 12권본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먼저 12권본을 쓰게 된 도겐의 동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2권의 저술동기에 대해 전통종학과 비판종학 간에는 팽팽한 대립이 있다. 전통종학은 75권본을 중심으로 도겐사상을 해석한다. 그 반면, 비판종학은 만년에 도겐이 75권내에 본각사상이 잔재한다고 보아 이를 새로 쓰려고 했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도겐이 본각사상을 배제하고 후에 쓴 12권『정법안장』이야말로 도겐사상의 진수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두 『정법안장』에 대한 성격규명은 도겐사상 전체를 어떤 시각에서 보아야 할지와 관련하여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2권의 동기와 관련된 문제의 발단은 12권『정법안장』마지막 권인 「八大人覺」의 懷奘奧書에서 비롯된다. 懷奘은 「八大人覺」의 끝에 “以前所僎仮名정법안장等皆書改”라고 썼다. 여기서 문제는 ‘皆書改’에 대한 해석이다. 즉 「八大人覺」의 懷奘奧書를 통해 도겐이 백권의 『정법안장』을 구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皆書改’가 이전에 쓴 『정법안장』을 ‘이미 모두 고쳐 썼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앞으로 모두 고쳐 써야 한다’는 의미인지 하는 해석의 문제이다. 前者와 같이 해석한다면 ‘75권은 이미 고쳐 썼다’는 것이 되고, 후자로 해석하면 ‘앞으로 75권을 모두 고쳐 써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12권의 저술동기에 대해서 학자들은 여러 견해를 내놓았다. 여기서는 그 대표되는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한다.
전통종학자인 河村孝道는 75권과 12권의 서술형식과 중심사상의 차이는 도겐이 의도한 바가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75권과 12권의 호칭은 편집논상의 표기 호칭이며 「八大人覺」에 나오는 懷奘의 奧語가 말하듯이 두『정법안장』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도겐의 사상을 일관적으로 전해주는 87권『정법안장』이라는 것이다. 「八大人覺」은 도겐이 병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석존으로부터 내려온 戒의 뜻을 되새기며 부처의 正法을 지키고 실천하려는 의지로 쓴 것이므로, 이를 백권『정법안장』선술의 최후권에 두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비판학자인 袴谷憲昭는 75권본과 12권본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도겐은 75권본에서 본각사상을 강렬히 비판하기는 했지만, 아직 부분적으로 이를 허용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겐은 가마꾸라에서 돌아온 후를 기점으로 본각사상을 보다 철저히 비판하게 되었다고 본다. 즉 도겐이 75권본에서 본각사상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반성하고 새롭게 12권『정법안장』을 시작으로 100권의『정법안장』을 완성하고자 했다는 것이 袴谷憲昭의 주장이다.
松本史朗도 도겐이 가마꾸라行 이후 因果思想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껴 인과사상과 상반되는 본각사상을 더욱 비판하게 되었기 때문에 75권본 내에 잔존해 있는 본각사상적인 면을 없애고자 새로이 12권『정법안장』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본다. 石井修道 또한 인과응보론에로의 회귀를 12권본의 저술동기로 보는 비판종학자들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그는 도겐이 12권본을 저술한 것을 가마꾸라行의 실패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도겐이 본각사상적 잔재가 남아있는 75권본을 수정하여 새로이 인과사상을 중심으로 한 『정법안장』100권을 저술할 계획으로 12권『정법안장』의 저술을 착수했다는 것이다.
또 12권『정법안장』의 저술동기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가진 학자는 마쯔오까 유카꼬(松岡田香子)이다. 松岡은 도겐이 12권본을 쓴 동기를 도겐에게 실존적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도겐이 만년에 병상에 눕게 되어 더 이상 좌선을 할 수 없게 되자, 이러한 실존적 체험을 바탕으로 12권본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도겐은 더 이상 좌선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새로운 실존적 자각이 생겨 只管打坐를 중심으로 한 75권본에서 菩薩의 願을 중심으로 한 12권의 저술방법에로 전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松岡은 75권본이 스스로 깨친 자인 佛의 立場에서 쓴 것이라면, 12권본은 스스로의 힘으로 깨칠 수 없는 중생 곧 약자의 편에 선 菩薩의 立場이라고 본다. 부처의 입장에서 只管打坐의 佛法을 설한 도겐이,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本願力에 의탁한 보살행으로 전향한 것이 바로 75권본에서 12권본으로의 변화라는 것이다. 이러한 松岡의 해석 안에서 부처와 보살의 차이가 드러난다.
곧 佛은 지관타좌를 통해 깨침의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인데 반해, 菩薩은 지관타좌를 통한 깨침의 세계를 포기하고 利他行을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의 말하는 佛과 菩薩은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상반된 존재는 아니다. 이렇게 볼 때 兩『정법안장』의 차이를 실존적으로 佛에서 菩薩에로 전환됨에서 비롯되었다고 본 松岡의 해석 또한 문제가 있다.
兩『정법안장』의 저술동기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나까지마 로오지(中島志郞)의 立場이다. 그 역시 石井修道처럼 12권본의 저술동기를 가마꾸라 行化의 失敗에 있다고 본다. 『정법안장隨聞記』제3에 보면 제자가 도겐에게 “佛法興强을 위해서 關東으로 내려가지 않으십니까?라는 물었을 때 “만일 그가 佛法에 마음을 두고 있으면 이리로 올 것이다”라고 응답했다. 그렇게 자신감에 차 있던 도겐이 스스로 關東으로 내려간 것이다. 이는 도겐이 어떤 이유로 가마꾸라에 갔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中島는 도겐이 가마꾸라행을 강행한 데는 충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가마꾸라에 원각사圓覺寺이라는 승림을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에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中島는 도겐이 가마꾸라행 교화가 실패하자 영평사로 다시 돌아와, 그 이후로는 결코 산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나서 12권『정법안장』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을 근거로 中島는 도겐이 가마꾸라行 이후 출가자 중심으로 전향하여 출가제자들에게 보다 더 기본적인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12권본을 저술했다고 주장한다. 가마꾸라행 이후 도겐이 如淨의 가르침대로 “일생 승림을 떠나지 않겠다”는 출세간의 마음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다는 것이다.
달마종 출신이자 회장懷奘의 뒤를 이어 영평사 제3대가 된 의개義介이 쓴 「어유언기록御遺言記錄」에 보면 회장과 의개가 나눈 문답이 나온다. 여기서 의개는 “ ‘법성의 리理’가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이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15년이나 걸렸다”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의개가 불법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하는데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린 것처럼, 도겐은 출가한 제자들 역시 75권『정법안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도겐은 그들이 불법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기본적인 가르침을 담은 12권『정법안장』을 저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12권본의 저술동기에 대한 여러 견해를 살펴보았다. 전통종학에서는 75권본과 12권본 모두 불법을 전수하고자 하는 도겐사상이 일관성있게 흐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비판종학에서는 12권본의 저술동기는 본각사상에 대한 보다 강력한 비판을 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즉 도겐이 75권본에 잔재된 본각사상을 모두 없애기 위해 새롭게 12권본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판종학자들은 75권본과 12권본의 차이를 ‘본각사상의 유무’로 본다. 도겐이 천태본각사상을 문제삼은 것은 사실이나, 비판종학자들의 해석처럼 본각사상의 비판이 도겐사상의 핵심은 아니다. 도겐이 보다 더 문제삼았던 것은 천태본각사상이 지닌 수행무용론의 극복이다.
따라서 도겐사상의 핵심은 무엇보다 그의 수증관에 있다. 이런 점에서 도겐사상의 핵심을 ‘본각사상의 유무’로 보는 비판종학의 관점은 문제가 있다. 필자는 비판종학자처럼 12권의 저술동기를 도겐자신의 사상적 변화 때문으로 보거나, 松岡처럼 실존적 전환이라고 보기보다는 中島이 주장한 것처럼 도겐이 가마꾸라행 이후 더욱 출가자 중심이 되어서 출가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12권본을 저술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도겐이 75권본을 버리고 12권본을 취하고자 보기보다 75권본과 12권본이 양립할 수 있는 차원이 다른 두 텍스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兩『정법안장』의 차이는 도겐이 지닌 저술동기에서 온 것이지, 결코 도겐자신의 사상적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75권『정법안장』은 깨친 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라면, 12권본은 불도佛道에 들어서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보다 쉬운 표현으로 저술한 것으로 본다. 즉 75권본이 마치 석존께서 화엄을 설할 때처럼 자신이 깨달은 바를 그대로 설한 것이라면, 12권본은 제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하고자 한 스승의 배려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도겐이 법을 전하고자 하는 사명감에서 자신이 깨친 바를 있는 그대로 펼친 것이 75권『정법안장』이라면, 12권『정법안장』은 가마꾸라행 이후 자신의 가르침이 세간과 타협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출가자 중심으로 전향하여 출가제자들을 가르치고자 저술한 것으로 본다.
이상에서 75권본과 12권본『정법안장』의 저술동기에 관해 살펴보았다. 도겐은 『정법안장』을 통해 무엇보다 자신의 수증관을 말하고자 했다. 그의 「불성」권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도겐은 「불성」권을 통해 불성을 수증의 문제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고는 「불성」권을 통해 도겐의 수증관이 지닌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라. 4. 『정법안장』 「불성」의 위치
「불성」은 도겐이 남송으로부터 귀국한 후 교또 부근의 興聖寺에 있을 때 시중한 것이다. 이는 「現成公案」과 「辯道話」와 함께 도겐의 대표적 저술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겐은 이를 仁治2年(1241) 10월14일 觀音導利興盛寶林寺에서 시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후 수차례에 걸쳐 삽입 혹은 삭제 등이 이루어졌음을 필사본을 통해 알 수 있다. 懷奘이 필사한 眞筆本에는 未再治本과 再治本의 두 奧書가 있는데 둘 다 仁治2年 10월14일로 되어 있다. 최초의 未再治本은 仁治4年(1243) 4월19일에 書筆한 것이나 그 후 도겐은 正嘉2年(1258) 4월25일 이를 再治 校合하였다.
그 전까지는 「불성」이라는 別號만 있었는데 재치분에는 『정법안장』「불성」제3로 고쳐 쓰여있다. 그럼 누가 校合을 행했을까? 이에 대해 河村은 懷奘이라고 주장하고, 水野彌穗子는 적어도 懷奘은 아니라고 본다. 이 두 奧書 차이로 인해 正嘉2年(1258) 校合時期에 「불성」이 『정법안장』제3으로 자리매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불성」권은 저작 후에도 여러번 손을 댄 작품이며 75권 중에서도 상하 두 권으로 된 「行持」를 빼면 가장 많은 분량이다. 그만큼 「불성」은 도겐에게 있어 중요한 저술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불성사상은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으로 여겨져 왔고 수증의 문제 또한 불성사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도겐의 문제의식인 천태본각사상 역시 불성 이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도겐은 당시 일본불교계에 왜곡된 면을 바로잡고자 정법을 배우기 위해 송으로 갔고, 거기서 참된 불성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 후 도겐은 귀국하여 자신이 깨달은 정법을 전하고자 저술한 것이 『정법안장』이다. 『정법안장』 중 「佛性」권은 「辨道話」와 『정법안장』제1권인 「現成公案」과 더불어 도겐사상의 대표적인 저술로 알려져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정법안장』「佛性」권 분석을 통해 修證 문제와 관련된 도겐의 불성이해를 살펴보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