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데의 불교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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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데연구(1997. 6. 19)
엘리아데의 불교사 해석
서론
기본적으로 종교학은 ‘종교현상’을 그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때 연구 출발선상에서 학자에 따라 대체로 두 가지 태도를 보이는데 그 하나는 어떤 것이 종교 현상이 될 수 있나 라는 종교현상의 범위를 설정하는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 의해 종교현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무엇이건 종교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는 종교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제기하여 종교기원을 밝히려 노력했거나 작업가설적 종교정의에서 출발하여 그것에 의거하여 종교현상이라 지칭할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대부분 환원주의, 독단주의, 종교학적 불가지론에 빠졌음을 종교사는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다. 후자의 경우는 그 현상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라는 것에 연구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본고에서 살펴볼 엘리아데는 후자에 속한다.
엘리아데는 종교현상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종교를 연구했다. 엘리아데는 인간이 聖을 자각하는 양태인 종교 안에는 비교가능한 기본적인 구조와 유형이 있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이들 구조와 유형은 성현, 상징, 원형의 형상을 취하기 때문에 종교자료들 속에서 이들을 비교하고 밝혀내는 것이 종교사가의 임무이다. 따라서 엘리아데에 의하면 세계종교사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순수한 기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사료들이 일정한 구조에 의해 읽혀지고 배열되며 해석되어야만 완성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엘리아데의 불교사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기에 앞서 종교사 전체를 바라보는 엘리아데의 시각 및 그 방법론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고 그의 방법론이 불교사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되었고 그런 시각이 지닌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성현과 역사성
엘리아데는 종교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성현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있다. 그는 성현이라는 개념 설정에서 먼저 성을 인간의 의지나 의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실재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전제하는 실재라고 본다. 사람이 거룩한 것을 깨닫는 것은 그것이 세속적인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그 무엇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현을 ‘어떤 신성한 것이 그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낸다’는 것이라고 본 엘리아데는 가장 원시적인 것부터 가장 고도로 발달된 것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종교사는 다수의 성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조건지우진 특정구조와 문화적 표현들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 성은 ‘역사적 자료’라는 객관적 실재로서 다루어질 수 있다고 엘리아데는 말한다. 이와 같이 엘리아데는 인간의 성에 대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면 모두 성현이 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도 성의 개념을 ‘지금 저기’에 있는 객관적 실재로 보지 않는다. 즉 그는 성을 인간의 실존적 정황 자체이며 산 경험이라고 본다. 여기서의 경험이란 본질이라 지칭하는 특정 대상에 대한 경험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이란 무엇을 객관적으로 경험한다는 사실보다 처음부터 인간은 종교적이라는 삶을 살고 있어 필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의식이 드러나는 것, 바로 그것자체를 의미한다. 즉 성은 스스로를 드러내면서도 성이 성으로서 인식되는 것은 종교인의 삶 속에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인의 삶의 모습을 말하지 않고는 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엘리아데는 강조한다.
이와 같이 성현개념이 종교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처음부터 자각하고 경험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엘리아데는 말하기를 “역사를 벗어난 순수한 종교현상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자료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자료가 아닌 것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적 체험은 특수한 역사적 전후관계 속에서 표현되고 전달되는 것이다”라고 한다. 엘리아데는 종교적 자료가 역사 밖에서 이해되어선 안된다는 것에서 역사성을 인정하면서도 종교적 체험이 비종교적 형태로 환원되어서도 안된다는 점에서 초역사성을 강조함으로써 결국 이 두 입장의 연결선상에서 종교학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렇게 볼 때 엘리아데가 성현의 역사를 탐구한다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조건에서의 역사적 과정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역사내에 감추어진 종교적 의미의 초역사적 구조에 대한 역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엘리아데가 말하는 성현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역사를 뛰어넘는 초역사성을 드러내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러한 성현이 지닌 초역사성 때문에 엘리아데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이는 후에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창조적 해석학
성현이 지닌 역사성과 초역사성의 관계는 엘리아데가 종교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그 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그는 역사적 종교현상들을 단순히 역사적인 것으로만 본다면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엘리아데가 볼 때 모든 성현들은 상호관련되어 전체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각각 성현의 의미를 해독한 다음 전체 속에서 다시 고려해야만 그 성현의 진정한 의미가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아데는 “종교학은 단순히 역사적인 연구가 아니라 선사시대로부터 지금에까지 성과 인간과의 모든 종류의 만남을 해명하고 밝히도록 요청받는 전체적 해석학이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학자는 궁극적으로 다양한 실존적 정황들을 되살리고 수많은 전체계적 존재론을 밝혀내 설명해야 한다는 해석학적 노력을 요청받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사의 연구는 이와 같은 전체적인 시각과 함께 그 이전에 밝혀내지 못한 의미까지도 읽어냄으로써 인간을 변화시켜야 함을 엘리아데는 강조한다. 종교사에 대한 전체적 해석학과 더불어 종교적 의미의 재창조작업을 통해 인간을 변화시켜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자 한 엘리아데는 자신의 종교학적 해석의 틀을 ‘창조적 해석학’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말하기를 “창조적 해석학은 전에 파악못했던 의미를 드러내며 그 새로운 해석을 동화한 후에는 의식을 변화시키는 활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는 창조적 해석학을 통해 종교적 인간 즉 종교적으로 인간을 인식하려는데 기초를 두었고 여기서 그가 마음에 품었던 것은 ‘새로운 휴머니즘’이었다. 즉 새로운 인간성 회복, 이 목적을 달성키 위해 종교사는 전체원칙으로써 모든 원칙을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이상에서 살펴본 창조적 해석학, 전체적 해석학 나아가서 신휴머니즘을 추구하고자 했던 엘리아데의 종교사 연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3) 고대존재론
엘리아데는 종교사를 연구하면서 현대인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 인간상을 고대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는 고대 사회의 사람들이 거룩한 것 안에서 혹은 거룩한 대상들에 가까이 다가가서 살고자 하는 경향을 지녔다는 것이다. 즉 고대인들에게 있어 거룩한 것은 곧 힘이었고, 존재로 가득차 있고 궁극적으로는 현실이며 동시에 영원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인의 삶은 존재와 실재로 가득찬 삶이며 우주에 열린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아데는 종교학적 입장에서 고대의 상징과 신화의 탐구에 전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고대종교의 모습에서 가장 종교적인 모습을 발견한 엘리아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종교적인 태도는 가장 원시적인 시대로부터 지녀온 것”이며 “중요한 종교적 태도는 인간이 우주내에 서있는 자신의 입장을 최초로 의식했을 때 한꺼번에 시작되었다”고 본다.
원시인도 시간에다 순환적인 방향을 부여함으로써 시간 자체의 불가역성을 무효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사건도 되일어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어떠한 변화도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세상에는 어떠한 새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동일한 원초적인 원형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즉 이 반복은 원형적인 행위가 시현되었던 신화적인 순간을 현실화함으로써 항상 세계를 태초와 동일한 상태에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념은 고대사회인들에게도 있었다. 그들의 경우 사물은 그 스스로를 영원히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새로운 것은 해 아래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반복은 하나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이 반복만이 사건들에게 실재성을 부여해 준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건들이 스스로를 반복하는 것은 그 사건들이 원형-모범이 되는 사건-을 모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록 원시인이 실재를 표현하는 그 형식이나 이미지가 유치하게 보이기도 하고 나아가 우리에게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기조차 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행위가 비실재의 속세계에 반대되는 절대적 실재에 대한 신앙에 의하여 지배받고 있다고 엘리아데는 말한다. 엘리아데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대 존재론이라 일컬을 수 있는 하나의 존재론을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원시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경멸하면서 치워버리지 않고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이 존재론을 고려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사실 이 행위는 존재와의 접촉을 상실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과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엘리아데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원시인들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자신이 비종교적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현대인의 삶은 반쯤 잊혀진 신화와 쇠퇴한 성현과 속화된 상징에 의해 영위된 삶이다. 따라서 그는 현대를 의미가 상실된 길이라고 보고, 다시 고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엘리아데가 자신이 탐구한 고대정신을 통해 현대의 문제를 조명해보고자 한 것은 현대의 불안을 종교적인 문제의식을 지니고 예리하게 통찰함으로써 잊혀진 선사적 휴머니티를 각성시키고자 한 것이다. 즉 그는 현대인의 문제가 종교적 문제라고 보았고, 현대인의 문제를 되물으려면 고대인의 종교적 모습과 그들의 행위규범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엘리아데는 이 고대존재론을 통해 종국에는 새로운 휴머니즘의 도래까지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기 위해서 그는 종교학이 ‘창조적 해석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엘리아데에 대한 비판
이상에서 살펴본 엘리아데의 종교적 해석은 여러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먼저 그에 대한 비판 중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서술이 반역사적이라는 것이다. 즉 엘리아데가 종교를 고대와 그 세계의 상징들로 한정지으려는 시도는 역사로부터 종교를 분리시키려는 것이지, 종교의 역사적 연구나 종교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는 그가 성과 종교인이라는 연역적(a priori) 전제에 의거한 종교자료에서 출발하여 종교학 독단론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봐덴부르크는 엘리아데의 성과 속의 이분법은 삶이라는 전체 경험 속에서 성만을 고립시켜 보기 때문에 이상주의에 빠져버린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즉 엘리아데는 성현개념으로부터 종교사를 조명해 보기 때문에 그의 종교사의 연구방법이 경험적 분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편애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엘리아데처럼 종교사를 성현의 고대 경험의 시각에서 해석한다면 다른 종교사의 모델의 많은 중요한 주제를 무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성현만이 아니며 또한 종교는 엘리아데가 말한 것처럼 단순히 성의 변증법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엘리아데가 말한 성의 형태론만으로는 종교를 설명하는데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엘리아데는 종교현상에 대한 규범적인 접근을 하고 있어 이미 그것 자체가 독단론을 이루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창조적 해석학에서 말하는 창조성도 자의성일 수 있을 유아론적인 태도이어서 그것 자체가 독단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즉 그가 강조했던 창조적 해석학도 규범적 전제에 근거한 이론을 통해 현실의 변혁을 꾀하려 한다는 점에서 종교학적 신학의 전개라는 것이다. 또한 그의 창조적 해석학의 방법론적 과정은 개념적 명료성과 논리적 정밀성을 갖추지 않았으며, 무원칙하고 무규범적인 독단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상에서 본 엘리아데의 종교연구방법에서 가장 핵심적인 비판이라면 그가 본질-직관적 방법에 따라 무비판적으로 귀납적인 일반화를 감행하는 독단을 범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위의 비판에서 지적했듯이 그의 사상은 반역사적이고 귀납적인 일반화를 감행한 종교적 독단론이며 종교학적 신학을 전개한 것인가?
먼저 그의 서술이 반역사적이라는 비판은 그의 「종교사상사」를 접하게 될 때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엘리아데는 「종교사상사」를 끝까지 서술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3권을 살펴볼 때 그는 역사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그 안에서 초역사적인 종교의 의미를 읽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성을 전제로 하여 무비판적으로 귀납적인 일반화를 이루려는 독단론에 빠졌다는 비판은 그의 성현개념과 그의 기본적 종교해석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엘리아데가 성현을 종교이해의 기본틀로 상정했던 것은 그가 종교이해에 있어 그 이외의 방법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주장한 성현이 심리학적인 혹은 사회학적인 입장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읽힘의 과정에서 성현은 본래적인 의도를 상실하고 다만 심리현상이나 사회현상으로 환원되는 것에 대해서 엘리아데는 강하게 반대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입장이 가장 직접적으로 구체화한 것이 ‘성의 불가환원성’이다. 하지만 성의 불가환원성에 대한 그의 주장은 존재론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방법론적 논리에서 말한 것이다.
즉 종교현상은 종교현상 자체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따라서 그 현상의 본래적임에 적합한 해석학적 논의를 통하여 그것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등을 주장하는 맥락에서 그 개념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를 종교적 차원에서 연구한다는 것은 종교현상이 되게끔 하는 종교적 요소가 무엇인가 즉 종교를 종교이게끔 만드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엘리아데가 고대존재론에 입각하여 그외 주제를 무시했던 것도 그가 기본적으로 종교현상을 생리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언어학, 예술 등의 측면에서 파악하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선 종교현상 속에 있는 유일독자의 것, 다른 것으로는 환원시킬 수 없는 요소를 잃어버리게 됨을 그는 강조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종교현상을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종교현상을 그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고찰했던 것이다.
5) 엘리아데의 불교사 해석
종교사를 기술하는 방식은 학자들의 독특한 방법론 및 관점에 따라 서술내용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종교사를 서술하는 방법론으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은 순수한 역사적 기술, 비교역사적 방법, 현상학적 유형화에 입각한 서술이다. 그 중 엘리아데는 현상학적 유형론을 사용하여 불교사를 기술하고 있다. 그의 「종교사상사」는 이러한 엘리아데의 기본적 관심이 세계종교라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들과 만나서 이루어낸 성과물로서 종교사에 나타난 성의 현현을 연대기적 순서로 분석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 저서를 중심으로 엘리아데의 불교사 해석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시공을 초월한 붓다
엘리아데는 세계종교에서 차지하는 불교의 독특성이 ‘붓다’라는 인물의 독특한 지위에 있다고 규정한다. 불교의 전승에서는 인간의 수명의 길이가 계속하여 감소되어가는 것을 인간의 점진적인 퇴폐의 특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디가-니카야(Digha-nikaya)11, 2-7에 보면 첫번째 부처님인 비파시가 출현한 것이 91카파 전인데 그 때 인간의 수명은 80,000년이었고, 두 번째 부처님인 시키의 때에는 70,000년이었으며, 이렇게 나아가다가 일곱 번째 부처님인 고타마는 인간의 수명이 다만 100년밖에 안 되는 때 즉 인간의 수명이 극도로 감소되었을 때에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간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것이다.
시간의 가역성, 즉 우리가 끊임없이 되돌아가야 할 윤회의 시간을 상정할 때 시간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가 일시적 상태이며 파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세의 끊임없는 유동성과 일시성에 따른 파멸성은 존재의 비실재성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여기서의 소멸성은 물체가 땅에 떨어질 때 깨지는 것과 같은 경험적 파괴가 아니라, 시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내적이고 지속적인 전멸을 의미한다.
붓다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이와 같이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 안에서 산다는 그 사실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즉 이 세계 안에서의 고통은 무한히 윤회해야 한다는 업의 법칙 때문이라는 것이다. 존재의 일시성, 즉 존재는 끊임없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존재의 고통 앞에 붓다는 자신의 메시지를 새로운 약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中部經典(majjhima-Nikaya)를 보면 “붓다는 태어나자마자 대지를 밟으면서 북쪽을 향해 7步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는 주변을 둘러본 뒤 말하기를 “나는 세상에서 최고의 존재, 최상의, 가장 오래된 존재라고 외치며 이번이 나의 마지막 탄생이고 앞으로의 생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붓다의 7발자국은 그가 7단계의 우주적 단계 즉 우주의 끝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붓다는 우주의 끝에 도달함으로써 우주라는 공간을 초월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그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라는 것은 그가 시간을 초월했음을 뜻한다. 주술적인 방법으로 (전우주가 발상된 중심으로 들어감으로서), 붓다는 시간과 창조를 폐기하고 우주창조 이전의 무시간적 순간으로 들어간 것이다.
인도의 모든 철학, 금욕, 명상기술도 바로 시간 내에서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치유해주기 위한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업의 잔재를 없애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이것은 인도에서 보편화된 방법이다. 이는 시간을 되돌아 추적하여 이 세계가 태초에 존재한 그 시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은 태초의 시간에 되돌아감으로써 무시간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시간의 굴레 속에 얽매인 인간조건을 초월함으로써 시간과 존재의 윤회바퀴에 떨어지지 않는 초월적 상태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인도인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지식은 과거에 대한 기억에 기초를 두고 있다.
리그베다 찬가의 작가 Vamadeva는 “나자신이 자궁내에 있음을 발견함으로써 나는 모든 신들의 출생을 알았다.”고 한다. 존재의 고통에 대한 근원적인 치유는 기억의 모래 위에 난 인간의 발자국을 추적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붓다는 다른 요기들처럼 세계의 기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목적은 윤회의 연속성을 끊어버리는데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는 자신이 우주가 존재 속으로 들어왔을 때의 순간을 되돌아가서 그의 전 삶의 과정을 기억을 통해 추적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존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곧 치료는 태초의 시작을 지나왔던 그 근원적인 행위를 기억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Sultavibhanga에 보면 “닭이 알을 낳을 때, 닭이 그것을 품어 따뜻하게 했을 때 그 중 하나가 먼저 그 껍질을 깨고 나온다. 그 많은 알 중에 첫번째로 나온 존재가 바로 붓다이다. 그는 달걀 속에 갇혀서 무지하게 사는 것들 중에서 이 무지의 껍질을 깨고 나왔다. 그래서 나는 그들 중 가장 오래된 존재이며 존귀한 존재이다. ”
여기서 말하는 우주적 달걀이란 우주적 시간의 상징적 표현으로 불교의 윤회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붓다에 의해 신화적 달걀이 깨졌다는 것은 그의 깨달음으로 인해 존재의 윤회바퀴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이 달걀의 껍질을 깨는 것은 우주적 공간과 윤회적 시간을 초월함을 뜻한다. 따라서 그는 우주적 시간을 넘어서서 과거도, 미래도 없는 모든 시간이 영원한 현재인 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원한 현재는 더이상 시간의 일부가 아니며 우리의 세속적 현재와는 질적으로 다른 시간이며 공간이다.
또한 붓다는 전륜성왕으로서 혹은 우주적 통치자로서 일찍부터 태양과 동일시 되었다. E. 스나르는 그의 저서에서 석가모니의 생애를 일련의 태양의 알레고리로 환원시켜 보려고 시도할 정도였다. 이러한 관점은 비록 표현방식에 있어서 과장된 점은 있으나 붓다의 전설이나 신화적인 신격화에 있어서 태양적 요소가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이 붓다를 태양으로 상징화하는 것은 찬도가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태양이 정점에 서있음’과 연결시켜서 태양인 붓다가 그 정점에 섬으로써 우주공간을 벗어남을 표현하는 공간적 상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깨진 달걀, 붓다의 7발자국, 태양이 정점에 서있음과 같은 윤회적 시간을 벗어나는 상징들이 바로 무지로부터 열반에로의 건너감을 뜻한다고 본다. 또한 이는 달리 표현하면 죽음으로부터 생명에로, 조건으로부터 무조건에로 건너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고대존재론적 해석으로서의 붓다
붓다는 세계가 신이나 조물주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악의 행위에 의해 지속적으로 창조된다고 보았으며, 무지와 죄가 증가될 때에는 인간의 생명만이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자체가 소모된다고 보았다. 이와같이 우주의 창조와 진행의 원천을 업력으로 이해한 붓다의 우주론에서 엘리아데는 붓다와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의 유사성 내지는 동일성을 발견하였다. 엘리아데는 이러한 붓다의 생각이 세계가 점진적으로 쇠퇴한다고 생각하여 정기적인 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고대의 관념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이 엘리아데는 불교와 고대인들의 세계관의 유사성을 통해 고대존재론을 불교를 설명하는 중요한 범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전통적 종교인들은 언제나 자신의 종교적 삶의 모델을 과거로부터 구한다. 고대인의 행위의 대부분은 시간의 태초에 신이나 신화적 인물에 의하여 행해진 원초의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초월적인 모델, 원형을 반복하는 행위일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이 반복의 목적은 행위의 규범성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거기에 실재론적인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그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함이다. 엘리아데는 이러한 고대인들의 사고가 붓다와 다르지 않다고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붓다는 자신이 독창적 교리를 제시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에 고대인들의 길을 따르고 있다. 즉 그의 교리는 과거의 성인들과 완전하게 깨달은 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무시작적인 교리인 것이다.”
그러나 엘리아데는 불교가 고대인들의 종교사상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는 불교가 고대종교사상이 가진 일반적 우주론의 구조를 넘어서는 계기를 지니고 있다고 기술함으로써 불교와 고대종교사상과의 차별성을 논한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붓다는 자신이 모든 우주의 순환체계로부터 벗어났음을 공표한 순간, 고대인들의 종교적 세계관에서 결별하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의 순환체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이 우주 안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살고자 했던 모든 고대인들의 종교적 열망에 비추어볼 때 고대인들의 종교적 상상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 다시 말해 불가항력의 윤회를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윤회하는 인간의 상태를 소거시켜 버리고 니르바나를 얻는 길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본다면 이 모든 “무량수”와 이 모든 헤아릴 수 없는 영겁도 구속론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무량수와 영겁의 파노라마에 대한 관조를 통해 인간은 그로부터 탈출하려는 의지를 강화하는데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엘리아데는 우주적 순환에 대한 베다적인 통찰과 불교의 마하야나적인 통찰의 차이에서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난다고 본다. 그 차이는 원형적(전통적)인 인간학적 위치와 실존주의적(역사적)인 위치가 갖는 차이와 똑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보편적인 인과법칙인 業은 인간의 상태를 정당화해 주고 역사적인 경험을 설명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불교이전의 인도인의 의식에서는 위로의 원천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 자체가 오히려 인간의 ‘예속’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의 모든 형이상학과 기법은 그것이 인간의 해방을 전제하는 것인 한, 카르마의 섬멸을 추구하고 있다. 시간은 끊임없이 지속해간다는 바로 그 하나의 사실 때문에 끊임없이 우주의 상태는 물론 인간의 상태를 악화시켜 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적인 순간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역사적인 순간에서 기대되어지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들을 우주적인 예속의 상태로부터 잡아 뗄 수 있는 일, 그것 뿐이다.
붓다가 자신이 생존의 굴레를 깨뜨렸다는 주장을 하면서 사용한 ‘깨어진 알’의 비유는 그가 우주와 순환적 시간을 초월했음을 뜻한다. 이것은 모든 조건지워진 세계의 無化를 말한다. 우리가 인도사상에서의 ‘우주-집-인간의 몸’의 상동관계적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붓다에 의해서 제시된 목표의 혁명적 새로움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붓다는 궁극적으로 ‘안정된 주거 장소에 자신의 삶의 위치를 고정하고자 하는’ 고대인들의 이상을 뛰어넘어 세상의 무화와 모든 ‘조건지워진’ 상황의 초월성을 강조한 것이다.
3) 요가수행과 붓다
불교는 모든 인간의 삶이 부단한 고통의 연속에로 환원되고 마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이 부단한 고통의 연속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최종적인 방법의 불가역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붓다는 구체적으로 세속적 인간조건인 속박과 무지를 없애고 자유, 축복, 해탈의 상태로 다시 태어나는 방법과 수단을 가르쳤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육체를 떠나 깨달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날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 붓다는 바라문교의 정설과 우파니샤드서의 사색적 전통과 주변의 무수한 신비고행적인 이교를 거부하는 듯이 보인다. 붓다는 푸루샤나 아트만을 가정하지 않았으며 어떤 절대적인 원리의 가능성 따위도 부인했다. 그것은 이런 도그마가 지성을 만족시켜 인간의 각성을 방해한다는 이유때문이었다. 또한 붓다가 이러한 논의를 거부한 것은 그것들이 무용하고 성스러움과 영적인 생활과 관계가 없으며, 세상에 대한 혐오, 초연함, 욕망의 단절, 평온, 심원한 통찰력, 교화, 열반 등에 기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붓다는 모든 당대의 철학과 고행주의를 거부했다. 이러한 것들 역시 인간과 절대적인 실재 사이를 차단하는 일종의 정신적인 우상과 같은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그의 거부는 독화살에 쏘인 사람들의 얘기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얘기에서 보여주듯이 붓다의 설법은 고통스러운 사람, 윤회 전생의 그물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을 위해서 행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붓다가 문제삼았던 一切皆苦 諸行無常은 바로 인도철학의 전통적인 문제였고 상키야와 요가학파 및 베단타학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요가나 베단타도 모든 조건과 상황의 비실재성을 인식하였고 결국 인간의 모든 존재의 일시성 때문에 불안과 고통이 생기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요가 베단타의 사상적 연계성 이외에도 붓다는 요가수행을 자신의 깨달음의 방법으로 사용했다. 붓다는 자신의 방법이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고래의 방법을 통해 그 길을 따른 것 뿐이라고 선언했다. 바로 그 길은 시간을 초월한 태고의 길, 해탈의 길이요, 不死의 길이며 또한 요가의 길인 것이다. 에밀 쎄나르가 말했듯이 붓다는 인도의 금욕적, 명상적인 전통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완성했던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요가의 영역에서 출현했고 요가의 틀에서 그의 사고가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붓다에 있어서의 구원이란 모든 형태의 요가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노력, 진리에의 확고부동한 동화의 결과로써 성취되는 것이지, 이론이나 다른 종류의 고행적인 노력으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었다. 진리는 이해되어야 하고 동시에 체험적으로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 俗, 苦, 幻의 삶을 완전히 버리고 니르바나에 이르는 삶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붓다는 전통적인 요가 기법을 사용한다. 엘리아데는 불교에 있어서 수도와 명상의 예비 행위가 「요가경」 및 다른 고전 문헌에서 권장하는 준비 단계와 유사하다고 본다. 그러나 불교의 명상은 요가에서처럼 調息에 관한 연습이 아니라 불교의 진리에 관한 명상, 즉 물질의 실체가 없음에 대한 전신적인 체험에 관한 명상인 것이다.
불교초기에 문제시 되었던 知와 체험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한가의 문제점은 요가와 상키야 사이에서 일어났던 문제와 동일하다. 붓다에게는 개인적인 체험 속에서 실현되지 않는 지식은 하찮은 것이었다.
붓다가 총애했던 아난다도 비록 학식에 있어서 그를 따를 자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차 결집회의에서 그를 제외시키려 했던 것은 그가 완벽한 요가적 체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난다는 모든 종류의 경전에 정통해서 그의 지혜는 방대했지만 心一經에 있어서는 열등했던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두 요소를 한데 결합해야만 불순이 소멸된 상태를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체험은 구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선정에 의해서 주어지는 경험적인 지식이라 하더라도 이것 역시 지혜의 조명을 받지 못하면 니르바나로 들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지혜와 명상을 통한 체험은 해탈에 있어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붓다에 의해 밝혀진 모든 진리는 요가적 방법 속에서 실현되었고 명상되었으며, 경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붓다가 깨달음에로 나아가는데 제시한 요가적 명상방법은 인도전통과 붓다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역할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4) ‘역의 합일’로서의 공
시대가 지나면서 붓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붓다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 즉 붓다의 인간적인 면과 초월적인 면 중 어떤 점을 강조하는가는 상좌불교의 분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즉 아라한의 인간성과 관련된 五事를 인정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따라서 분파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상좌부는 아라한의 성자성만을 고집하는데 반해, 대중부는 아라한의 인간성도 인정했다. 이와 같이 아라한이 지닌 인간적인 면을 인정한 대중부는 실제로 붓다의 인간성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대중부에 오면서 붓다의 인간적인 면보다 초월적인 면이 부각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붓다의 초월적인 면은 대중들에게 붓다를 통한 구원론적 신앙을 갖도록 했다. 즉 붓다의 육신을 불탑에 모시는 행위나 사찰구조를 통해 그의 몸을 상징화하거나 붓다상을 만들거나 그의 삶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을 성지로 만들어 순례하는 행위들은 붓다의 불가역적이고 구원론적 행위에 대한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이 소승에서 대승불교에로의 변화는 불교의 해탈사상에 변화를 가져왔다. 대승불자들은 그 자신만의 해탈을 추구하는 아라한보다 타인의 구원을 돕기 위해 자신의 해탈을 보류한 보살을 더 우월한 것으로 보았다. 즉 대승이 발달하면서 아라한이 아닌 보살로 이상형이 바뀐 것이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는 제자들에게 엄격한 길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박티형태의 인격적인 헌신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보살관은 라마와 크리쉬나와 유사한 것으로 엘리아데는 본다.
한편 대승불교는 보살의 삶을 추앙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물의 비실재, 비존재성인 공을 말한다. 이제 구원의 조건은 공이라는 새롭고 급진적인 사상으로 발전함으로써 보다 고무적인 것이 되었다. 따라서 구원에는 보살과 지혜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게 되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위한 信愛가 승리하는 그 순간이 바로 ‘모든 세계는 실재적으로 공’임을 깨닫는 것이라는 이 진리는 역설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엘리아데는 신도들의 신애적 신앙행위나 구원론적 신화가 무한정 증가하는 점과 공이라는 놀라운 형이상학의 극단적이고 엄격한 측면이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또한 엘리아데는 불교의 보살 중 가장 유명한 관세음보살은 힌두교의 3신이 결합된 우주적 신으로 해석한다. 또한 모든 위험에서 중생을 보호해주는 관세음보살을 아미타보살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결국 철저한 수행방법을 통한 자력구원의 양식에서 인간은 이제 아무런 노력도 없이 단 한마디 생각이나 말로써 극락세계에 도달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 엄청난 비약이지만, 엘리아데는 이 양극단적 사유체계에 연계성이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다.
엘리아데는 초월성을 드러내는 모든 상징들은 양극성을 극복한 것으로 본다. 이는 궁극적 실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조건에 놓인 양극성을 극복하는 것이 필연적임을 뜻한다. 엘리아데는 불교에서 말하는 이 양극성의 극복은 인도사상에 그 뿌리가 있다고 본다. 인도사상에서 존재의 양극성은 바로 인간조건이며, 이러한 인간조건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은 이 양극성을 일치시킴으로써 무조건적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마이트리 우파니샤드에서 존재와 비존재를 브라흐만의 두 측면-유한한 시간과 영원성으로 구별한 것이다. 해탈한 자는 바로 이 시간성과 무시간성 사이의 긴장을 극복한 자이다. 그들은 더 이상 이 둘을 구별하지 않는다. 엘리아데는 인도사상에서 양극성을 극복함으로써 얻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고대사고와 같다고 본다.
엘리아데는 이와같은 양극성의 극복을 ‘역의 합일’로 보고 여러 신화적, 종교적, 철학적 예증들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그가 예로 든 양극성은 미트라와 바루나, 브라만의 가시적 측면과 불가시적 측면, 브라흐만과 마야, 푸루샤와 프라크리티, 후기의 쉬바와 샤크티, 그리고 윤회와 열반 등이다. 엘리아데는 이런 양극성이 역의 합일 안에서, 즉 역설적인 통일과 총체성 안에서 극복된다고 본다. 엘리아데는 이러한 역의 합일이 지반 무크타(jivan mukta)에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여기서 말하는 지반 무크타란 “삶에서 해방된 자”를 뜻한다.
이처럼 현세에서 궁극적인 구원을 얻은 지반 무크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에 머물러 있다. 혹은 지반 무크티는 “깨달음을 얻은 자”로서 그에게는 니르바나와 삼사라가 하나이자 동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절대자, 궁극적 해방, 자유, 해탈, 무크티(mukti, 구원) 등은 경전에 지칭된 바의 대립적 쌍 곧 양극성을 넘어서지 못한 자들에게는 결코 접근될 수 없다. 이와 같이 엘리아데는 지반무크타가 이룬 역의 합일이 나가르주나의 공의 교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본다.
나가르주나는 공의 교의를 궁극의 진리인 진제와 세속적, 일상적인 진리인 속제로 나누어 설명한다. 엘리아데는 공을 진제와 속제라는 진리의 양면성으로 설명한 나가르주나의 교의를 ‘역의 합일’의 논리로 설명했다. 즉 나가르주나는 중생과 붓다, 윤회와 해탈의 차이를 부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윤회)와 구원(해탈)이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나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엘리아데는 이를 역의 합일이라고 보았고, 보살은 바로 이 역의 합일을 성취한 자로서 그에게 해탈은 곧 윤회요, 중생은 곧 부처인 것이다. 즉 엘리아데는 공이 지닌 ‘역의 합일’ 안에서 보살의 생애가 지닌 위대성이 드러난다고 본다. 즉 보살은 니르바나에 살면서 윤회를 경험하고, 법신이면서도 무한한 중생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해탈의 상태에 있으면서도 세속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