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글스미스의 신앙 (2) 10.10.25
- 다음글엘리아데의 불교사해석 10.10.25
종교인류학연구
페이지 정보

본문
<참고문헌>
김승혜 편 <종교학의 이해> 분도출판사.
길희성, <포스트모던 사회와 열린 종교> 민음사.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길희성 역 <종교의 의미와 목적> 분도출판사.
루돌프 옷토, 길희성 역 <성스러움의 의미>, 분도출판사.
반델레에우 길희성 손봉호 역 <종교현상학 입문> 분도출판사
요하킴 바하, 김종서 역 <비교종교학> 민음사.
막스뮐러 김귀산 역,<종교학입문>, 東文選 1995.
정용두,류성민 공저,<종교학 10강>,성광문화사 1995.
목차
1.종교학이란 무엇인가
2.현대학문으로서의 종교학의시작
3. 종교학확립 이전의 종교연구들
4.종교학의 확립;쐬더블롬과 옷토 크리스텐센과 네덜란드학파
5.종교학의 발전;반델레에우, 요아킴바흐, 엘리아테
6.종교현상학과 종교역사학; 뻬따쪼니,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7. 종교와 사회과학의 관계
8. 정령과 주술;타일러와 프레이저
9. 종교와 인격;프로이드
10.성스러움으로서의 사회;뒤르껭
11. 소외로서의 종교;마르크스
12. 사회의 심리적 구성;에반스 프리차드
13. 문화체계로서의 종교;기어츠
14. 종교학적 연구와 동양적 시각
1. 종교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삶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한다. 이간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경험을 하느냐보다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경험보다 해석이 더 중요한 이유는 해석을 통해 인간은 자기경험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그것을 다시 상징으로 표현하여 저달하려 하기 때문이다.
상징체계로서의 종교는 인간이 체험하게 되는 혼란 속에서, 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같은 인간의 일상적 삶속에서도 의미와 가치를 보도록 하여 한 인간이나 인류의 여 ㄱ사에 위대한 섭리가 있음을 알려 주었다. 곧 종교적 상징을 통해 인간성안에 잠재된 종교성이 불러일으켜지는 것이다.
그럼 종교학에서는 그 연구대상인 종교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종교는 religion의 번역어로 religion는 라틴어 religi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로마시대부터 두가지로 해석되었다.
1) 기원전 1세기 키케로에 의하면 religio는 다시읽는다는 뜻을 지닌 re-legere에서 나온 단어로 반복되어 낭송되는 종교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초월자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는 말로 이해되었고
2) 4세기 락탄시우스에 의하면 다시 묵는다는 re-ligare에서 나온 단어로 신과 인간의 간계에 초점을 맞추어 죄로 끊어진 관계를 재결합시켜 주는 끗을 가진 말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정의는 유신론 전통에서 적합할지 모르나 무신론전통에는 해당되지 않으므로 보다 포괄적 정의로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을 다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에 대한 용어가 서구에서 어떻게 사용되어왔는지 역사적으로 고찰한 종교학자는 스미스이다. 그는 각 개인적 신앙와 축적적 전통을 구별하여 17,8세기이후 종교를 외형적 체계로만 보아 복수로 쓰기 시작한 것은 비인간화된 안목에 의한 것이며 종교의 근원적인 의미는 인간 마음 안에 있는 신앙이라고 강조했다. 즉 종교를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전통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통을 신앙하며 살아가는 신자들을 연구하는 것이라 볼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종교학은 타학문과 구별됨을 알수 있다. 종교학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주변학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종교학과 타학문과의 관계
1)종교학과 신학
신학은 자기가 속한 종교전통만을 대상으로 하여 연구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수행함에 비해 종교학자는 가능한 한 세계의 모든 종교를 대상으로 비교연구하며 이를 이해하고자 한다. 즉 신학은 한 특정종교에서 전수해온 진리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여 그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후대에 전수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종교학은 한 특정종교의 시각이 편견과 독단이 될 수 있음을 의식하여 그것을 일단 배제하는 학문적 객관성고 공정성을 견지하고자 한다. 따라서 종교학은 사회과학과도 관련을 지닌다.
2)종교학과 사회과학
인간의 편견은 종교적 독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지성에서도 온다. 종교학은 세속적 지성으로 영위되는 사회과학적 종교연구가 지닐수 있는 편견과 독단을 경계한다. 사회과학적 종교연구는 학문적 객관성과 객관적 진리의 추구라는 이름 아래 신앙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종교의 내적 초월적 측면을 무시하고 경험적 관찰과 조사가 가능한 종교의 외적 가시적 면에 치중하여 연구하는 경향을 띤다. 즉 종교를 종교현상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현상으로 파악하려는 환원주의적 오류를 범하기도 하며 또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종교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검증되지 않은 전제를 갖고 종교를 판단한다.
종교학은 신학적 연구에서 오는 편견못지 않게 종교의 초월적 측면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세속주의적 사회과학적 연구에서 오는 편견도 동시에 극복하면서 세계종교를 연구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3) 종교학과 철학
종교학은 철학과는 달리 단지 사상이나 관념만을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것들의 배후에 있는 종교적 체험과 수행 그것들이 위치하고 있는 삶의 자리인 종교적 의례나 공동체적 기반에 대한 연구들도 중요시한다. 다시 말해 종교학의 관심대상은 철학보다 다양하고 인간의 삶에 밀착된 생동적 현상들이다.
또한 철학은 비판적 지성의 입장에 서서 그것의 진리성의 문제에 더 관심을 지니고 있다면 종교학은 진리성의 문제보다 그것들이 지닌 종교적 의미와 기능을 이해하는데 일차적 관심을 두고 있다.
종교철학은 종교의 본질을 묻거나 종교적 교리나 관념들의 진위를 묻는 학문으로서 그것은 종교학 보다 철학의 한 분야이다. 그러나 종교철학이 종교의 본질을 다룬다 해도 구체적 종교현상과 현실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공허한 사변에 지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종교철학은 반드시 종교학적 기반이 필요하며 그 위에 가능한 학문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한 특정 종교입장이나 한 특정 사회과학적 시각이나 지적 관념과 사상으로 추상화하여 종교를 다루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기초작업이 바로 종교학이다.
4)종교학의 분야들
종교학의 기초분야는 종교사학이다. 종교사는 역사적 관점에 서서 개별종교전통들의 역사 및 인류전체의 종교사적 발전을 통시적, 종적으로 고찰하는 학문이다.
종교를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종교사학과는 대조적으로 종교현상을 공시적,횡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이 종교현상학(혹은 비교종교학)이다. 즉 종교의 구조나 유형을 고찰하거나 특정 종교전통의 울을 벗어나 여러 종교전통이 공유하는 유사한 종교현상을 유형별로 묶어 비교고찰함으로써 그 현상들이 지닌 본질적 의미의 이해를 도모하는 학문이다.
그 외 종교사회학, 종교인류학, 종교심리학 등이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방법을 사용한 종교연구는 종교학과 사회과학이 공유하나 양자 간에는 차이가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간의 사회적 행동이나 제도 사회변화의 이해를 위해 종교를 연구하는 경향이 강하나 종교사회학에선 사회현상보다 종교현상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 따라서 종교학은 종교를 사회적 현상으로 환원해 버리려는 일부 종교사회학자들의 접근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한다.
6) 종교학의 시대적 요청과 사명
어떻게 우리는 고도로 합리화되고 기계화되는 현대문명속에서 삶의 초월적 의미를 열어주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이웃과 타문화들이 마찬가지로 소중히 여기는 신앙전통에 대해서도 우린 자세를 견지할수 있을까?
편협한 종교적 도그마에 갇히지 않으면서 천박한 세속주의적 가치에 포로가 되지 않고 종교적 광신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세속적 무관심이나 회의주의의 제물이 되지 않을 수 있으까
전염병처럼 퍼지는 도덕적 허무주의와 세속적 향락주의가 인간을 구원할수 없는 것만큼이나 종교적 광신과 편협한 독단주의 역시 현대적 위기에 대한 해답은 못된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학은 현대의 다원적 상황하에서 발생하여 그 필요에 부응하는 학문으로서 종교로부터 오는 편견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편견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중도적 학문이기 때문이다.
2. 현대학문으로서의 종교학의 시작
종교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확립되는데 시발점이 된 사람이 막스뮐러(1823-1900)이다.
그는 헤겔주의와 신 칸트적 사고를 수용했으나 가장 큰 영향은 프리드리히 셀링의 자연철학이었다. 즉 무한성은 모든 유한한 것 속에 현존한다는 뮐러의 주장은 셀링의 용어와 견해의 도움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뮐러는 1846년 리그베다의 번역을 위해 영국에 가서 그후 영국에 머물렀다. 그는 옥스퍼드대학에서 가르쳤고 인도연구에 관심을 집중했다. 1849-1873년사이에 산스크리트어판 리그베다를 4권의 분량으로 출판했는데 이것이 서구에서 인도연구의 초석이 되고 힌두교자체 부흥에도 계기가 되었다.1870년 영국의 왕위학회에서 강연을 하면서 처음으로 종교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그로부터 3년후인 1873년 <종교학입문>을 출판했다.1875년 <동양의 성전>이라는 50권 분량의 동양종교전통의 경전을 모은 글의 편집자가 되었다.
그는 특히 신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했는데 세계제종교의 가장 위대한 상징은 자연현상들의 인격화라고 생각했다. 즉 해 달 별 천둥 계절이 인격화된 것이 종교상징이라 주장했으며 그 가운데 태양신화가 가장 중요한 것이고 원시제의나 신화는 태양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라 했다. 이런 견해로 볼 때 가장 이상적 형태로 실현된 것이 베다시대의 인도종교라는 것이다. 그는 베다를 연구하면서 자연현상 뒤에서 무한한 실체를 찾는 인간의 원초적 모습을 알아보려 했다.
막스 뮐러는 비교종교학의 방법론을 발전시켰는데 그것은 언어학에 기초를 두고 신화를 비교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사고를 완벽하게 해명할수 있는 과학을 확립하려 했다.
뮐러는 비교종교학의 방법론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언어학에 기초를 두고 신화들을 비교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사고를 완벽하게 해명할수 있는 과학을 확립하려 했다. 그는 종교를 구성하는 것이 자연현상배후에 그것을 초월하여 있는 무한한 것에 대한 인식이라고 판단하고 자연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할수 밖에 없기 때문에 태앙신화들의 신화가 발생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신화 속에 감추어진 종교의 핵심에 이르려면 신화를 꿰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방법을 통해 인도고대 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들과 그리스 로마의 고대시노하에 나타나는 신들을 비교연구하여 양자가 같은 원천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두가지 점에서중요하다. 첫째는 종교연구라는 새로운 과학을 정립한 핵심적 제창자중 하나이다.그는 <종교과학입문>에서 다양한 학제의 관심들을 통일싴고자 했다. 둘째는 신화에 대한 그의 관심 속에 있다. 이 주제에 관한 교재는 그를 신화연구를 대중화시켰던 사람으로 보증하고 있다.
그는 종교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데 그의 <종교학 입문(1870)>이 출판된 해를 종교학의 원년으로 삼는 것이 정설이 되고 있다.그는 독일출신으로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한 고전어에 능통한 비교언어학자였는데 그는 당시의 기념비적 업적인 동방경전총서 전집을 발간하는 총책임자였다.
그는 옥스퍼드대학교수로 활약하면서 종교철학을 제대로 하려면 모든 종교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 비판적 학문의 열쇄는 비교연구였고 괴테의 말을 빌려서 “하나만 아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종교학적 원칙을 세웠던 것이다.
뮐러는 각 종교의 시초가 그 종교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지니고 있고 따라서 자연적 종교성의 이상을 가장 선명히 보여준다는 사실 때문에 모든 종교의 경전을 중시했다. 따라서 그는 인도최초의 경전인 리그베다를 직접 번역했는데 이는 4권으로 서구에서 인도종교연구의 초석이 되었을 뿐 아니라 힌두교자체 부흥에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870년 동양의 성전들이라는 50권에 달하는 번역총서의 편집일에 전심했다. 경전주의적 경향으로 종교연구의 불균형을 가져왔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편찬사업을 통해 많은 학자를 동원시켜 종교학의 발단을 이룩했다는 점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막스뮐러의 공헌은 종교학을 새로운 독자적 학문분야로 확립하자고 주창하고 이를 위해 서구 학계에 분위기를 조성해 놓았다는데 있다. 그의 가장 큰 공로는 무엇보다 종교학의 미래에 대한 이상을 확고히 정립하였다는데 있다.“종교학은 인류가 개발하기도 되어 있는 학문중 가장 마지막 학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종교학이 개발되었을 때 그것은 세계의 면모를 바꾸게 될 것이며,기독교 자체에도 새로운 새명을 선물하게 될 것이다.그가 말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마지막 학문“이라는 종교학의 사명은 후대의 종교학도에게 깊이 공감받았다.
그의 연구는 유한성과 무한성 간의차이를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묘사하는데 많이 할애했다. 이런 맥락 속에서 그는 종교를 감각과 이성에 대한 의존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다양한 이름과 외양들 속에 존재하는 무한성을 포착할수 있도록 하는 정신기능으로 정의했다.
무한성의 인식은 항상 유형적인 것과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했다.그는 유한성없는 무한성을 생각할수 없듯이 무한성없는 유한성도 그 자체로 생각할수 없다고 한다.
뮐러는 무한성에 대한 인식은 종교가 발전하면서 개념으로 전환되고 확대된다고 본다. 즉 감각의 자료로 전제된 것이 이성과 성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같이 언어의 발전속에 무한성은 인격화된 방식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3.종교학 확립이전의 종교연구들
1870년 이전까지의 종교연구를 4시기로 분류
1)지리상의 발견 이전까지의 시기
2)종교학의 준비시기
르네상스를 계기로 해서 일어난 고전적 신화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특히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이후로 확대되는 15-17세기는 지리상의 발견으로 새로운 다양한 문화와종교에 대한 자료가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이다. 다른 종교에 대한 관심과 소개는 새로운 선교지를 개척하던 가톨릭 선교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인도와 중국과 같이 고도의 문화를 지닌 곳에 들어간 예수회 선교사들은 그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적응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그 방침에 따라 그 지역의 종교전통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마태오 리치(1552-1610)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중국의 정통사상이던 유교를 경전을 중심으로 연구한 후 유교의 가르침이 그리스도교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교가 서구에 알려지자 계몽사상가들은 유교를 자기들이 생각하는 理神論(이신론)의 모범으로 간주했다. 라이프니츠 괴테 볼테르 등 인간이성을 최고규범으로 보는 계몽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확증하기 위해 중국종교 등 다른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단 이들은 이성에 합치되지 않는 종교의 부분은 무시해버렸고, 각 종교를 그 문화배경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학이 성립되지 못했으나 이런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세계에서 새로 발견된 종교자료의 수집이 촉진되었고 따라서 종교전반에 대한 이론적 해석의 필요가 대두되었다.
3)18세기의 계몽주의시대로 합리성을 최고규범으로 하여 초기 인류학자들이 종교의 기원을 추구하던 시기-진화론에 기초한 종교기원론
4)낭만주의시기
제삼 시기의 이론형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다. 종교의 기원을 찾으면 종교의 본질을 밝힐수 있으리라는 전제아래 초기 인류학자들은 원시종교연구에 모든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 그 당시 나온 종교기원론을 살펴보자.
1. 샤를르 드 브로쓰의 庶物숭배(fetichism)
서물숭배는 인공을 가한 물건 또는 간단하게 가공해 만든 자연물에 대한 숭배를 말한다. 이 서물숭배는 동식물의 한 부분이나 여러 상징물을 제사의 대상으로 하기도 하며 몸에 새기거나 몸가까이 지니고 다니므로 어떤 효과를 누리고자 한다.그는 1760년 <서물숭배의식>이란 책을 써서 종교의 가장 낮은 단계는 나무나 돌 등 자연적이거나 만들어진 여러 대상을 예배하는 서물숭배라고 결론내렸다. 즉 종교의기원은 원시인들이 초월적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은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사물을 숭배한데서 시작한 것이라 본 것이다.
2.정령숭배(애니미즘)-타일러
애니미즘은 본래 라틴어 애니마에서 유래되었는데 애니마는 목숨 영혼등에 쓰였던 말이다.미개인은 생물 무생물모두에 영혼 생명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니 애니미즘은 물활교 범신관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모든 사물의 현상 가운데 애니미가 있어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는 <원시문화>라는 책을 발표하여 서물숭배보다 앞서 강 나무 달 해 등에 정령(anima)가 있다고 믿는 정령숭배(animism)가 종교의 기원이라 주장했다. 정령숭배가 이루어진 후에 서물숭배에 이르고 그 후 진화하여 다신교 일신적 천신신앙 그리고 유일신신앙이 생기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종교학에 대한 공헌은 단순히 애니미즘이라는 것의 견해에 있다기 보다 더 크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가 세운 하나의 중요한 가정은 “문명의 상이한 단계에 위치해 있을지라도 인류의 본성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의 관심은 인간발전의 역사중 최초단계에 있었다.타일러가 종교를 애니미즘(그의 말로는 “종교는 영적 존재들에 대한 믿음”)으로 규정한 것은 선교사 민족지학자 등이 그 지방 고유의 토양에서 마주치게 될 종교적 이해력 수분과 패턴에 대해 더욱 현실적 감각을 가질 수 있게 하는데 있다. 그는 선교사들이 부족들의 종교를 인식하는데 실패한 것은 그들이 종교적 발전에서 진보적 단계에 속한 자신들의 종교적 믿음 실천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접근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다시 말해 종교를 신에 대한 세련된 교의나 정교한 의례로 이해할 때 부족종교는 종교적 범주에서 배제된다고 본다. 즉 타일러는 종교를 그것이 가지는 가장 원초적이고 기초적인 의미에서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들에 대한 믿음이 우리가 매우 숙지한 상태에 도달하게 된 모든 저급 인종들 사이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타일러는 초기 인류에 대한 정보가 축적될 때마다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필수적인 동력으로 나타난다고 진술했다.
타일러는 최초의 인류는 유령을 일종의 제2의 자아로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생명은 빠져 나가 죽게 하며 유령은 몸에서 떨어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양쪽다 육체와 분리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었다고 추측했다. 이런 개념이 확장되어 생명과 유령을 하나인 것으로 상정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物活論 을 종교의 발생근원으로 해석했다.
타일러의 관점에서 보면 애니미즘은 종교의 발생근원이다. 이는 애니미즘이 종교의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의미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종교의 발생근원이라고 했던 것 뿐이다. 그의 간심은 원시인들의 종교적 이해를 묘사하는 것이었다.
* 타일러(1832-1917)
종교형태는 정령신앙-다신교 -이신교 일신교로 발달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종교연구 방법은 많은 결점을 지니고 있다.첫째 그의 진화론적 방법과는 상반되게 원시사회에도 최고신의 개념이 존재하는 사회가 있다.둘째 종교현상을 인간의 지적 관심의 결과로만 보는 시각은 종교가 형성되는데 필연적 사회적 요건이나 감정적 몰입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그가 의미하는 인간의 지적 능력이 단순 원시문화에서 현대보다 뒤떨어지리라는 가정은 현대학자에 의해 부인되었다.세째 유럽문화중심적이다. 그의 종교형태의 발달도식은 서구의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다른 사회의 종교현상을 해석한 것이다.
3.마나론-로버트 마레트
타일러 제자인 로버트 마레트는 1899년 <정령숭배 이전의 종교>를 발표해서 정령이나 신들에 대한 신앙의 기운은 비인격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유래한다는 마나론을 내놓았다. 마나란 멜라네시아말로 초자연적 힘을 가리키는데, 멜라네시아인들은 이상한 모양의 돌이나 나무 싸움에 승리한 용사안에 마나가 있다고 믿는다는 것을 보고하였었다.
4.주술론-프레이저,말리놉스키
진화론적 단계를 따라 주술 종교과학을 묘사했던 것중 가장 알려진 것은 황금가지로 알려진 프레이저의 글일 것이다. 캠브리지 대학 교수이며 이신론자였던 제임스 프레이저는 <황금의 가지>라는 12권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종교의 기원은 주술의 실패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술론을 주창했다. 그는 어떻게 주술이 존재하게 되었는지 알고자 했고 주술과 종교간의 근본적 차이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주술이 의례 의식 주문을 통해 자연적 힘을 조절하고 통제하기 위한 의도로 지속되었음을 주장했다. 프레이저는 주술이 연합형태로부터 발전했다는 타일러의 명제를 그 주장의 기반으로 삼았다.그는 주술 속에 전제된 사고원칙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유사의 법칙이고 또 하나는 접촉의 법칙 또는 감염의 법칙이다.
그는 주술을 물을 붓는 의식으로 비가 오게 하는 등 유사법칙에 따른 모방주술과 한 사람의 머리털이나 이빨을 불사름으로써 그에게 저주를 가져오게 하는 등 접촉의 법칙에 따른 감염주술로 분류했다.
주술적 방법으로 자기환경을 지배하려는 노력에 실패하자 인간은 초월적 힘에 화해를 간청한데서 종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주술은 인류역사에서 종교보다 오래되었다고 결론내렸는데 이는 오류였음이 계속되는 연구에서 알려졌다. 원시종교도 주술행위와 더불어 최고신 내지 다신적 신앙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종교를 통해 인간보다 우월한 힘의 조정을 이해하게 된다. 종교는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두 요소 즉 인간보다 높은 힘에 대한 믿음과 그 힘을 회유하고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구성된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는 다시 종교로부터 과학으로의 전이는 초월적 실재나 신성한 존재의 행위에 준거해서 설명하는 관점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등장한다고 본다.그러나 그는 과학이 실제로 마지막 단계라고 보지 않는다.즉 주술로부터 종교로 다시 과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인간환경에 대한 타당한 지식을 향한 인간의 그칠줄 모르는 질문의 표현이다.
2.말리놉스키(1884-1942)
그는 프레이저의 제자라고 자처했음 1925년에는 프레이저식의 인류학에 몸바치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프레이저를 넘어서서 현지답사 내지는 참여관찰이라는 중요한 연구방법에 도달했다.
그는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최초로 수행한 자로서 그는 뉴질랜드 북동부에 위치한 트로브리안군도에서 약 26개월 조사를 했다. 그의 연구가 이룬 공헌은 주술과 종교를 개념적으로 분리시킨 점이다. 그에 따르면 주술은 차후에 따라오리라 예상된 특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행위로 이루어진 실제적 행위인데 반해 종교는 그 존재자체가 종교적 목적을 달성할수 있는 자족적 행위체이다. 그가 연구한 트로브리안인들에게 주술은 지대한 역할을 했다. 즉 모든 경제적 활동들(경작, 사냥 낚시 향해)은 주술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종교가 문화적이며 사회적 현상으로서 복잡한 믿음 체계를 갖고 사회적 목표를 수행하면서 인간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본 것이다.이와같이 그는 문화현상과 사회제도의 심리적 기능을 추구했는데 이러한 그의 분석은 지나치게 개인의 심리상태에 비중을 둔 분석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종교에 미치는 인간심리의 중요성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그는 래드클리프 브라운과 동시대에 살았는데 그의 출발점은 그의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의 제목인 <주술 과학 종교>에서 명백해졌다. 그는 로버트슨 스미스와 에밀 뒤르껭에 심취한다. 스미스는 원시종교는 “본래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 공동체의 문제였다”는 그의 논점 때문에 말리노프스키의 주목을 끈다. 말리노프스키는 이 원칙을 근대연구의 중심사상이라 언급한다. 또한 그는 뒤르껭이 말한 종교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간의 상관관계가 설득력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주술 종교 과학은 진행중인 발전적 연속체에 의해 통제되는 연속적인 양상으로 보지 않고 이것을 서로 관련되어 있는 사회적 모형의 구성성분으로 이해했다.즉 그는 주술 종교 과학을 삼각성좌라고 말한다. 구성성분들의 성좌에 속하므로 삼각이 되는 것이다.성좌라는 말은 개념적 구조틀이 수정되었음을 지시하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 인류학에 기초하면서도 직접적인 관찰에 많은 비중을 둠으로써 인류학의 경계를 확장하려는 의도를 엿볼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득한 기원에 대한 이론을 확립하기 보다 살아있는 인간의 실제 일상생활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이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역사는 직접적인 중요성을 거의 갖지 못한다.
5.원유일신론(urmonotheismus)-슈미트
그는 최초의 인류는 그들이 어디있든지 간에 지고의 존재를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신교는 종교적 자각의 역사에서 후기에 도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에 대한 최초의 인식을 보여준다. 즉 다신교 이전에 일신교가 있었고 다신교는 퇴락한 상태의 일신교를 보여준다.
그에게 있어 진보와 진화는 최초의 인류가 지고존재라는 개념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하거나 그 사실을 훼손하는데에 채택될수 없다는 것이다. 본래부터 일신교적인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념을 원유일신론이라 한다.
그는 초기 인류가 받아들였던 하느님이 기도교인들이 경배하는 그 하느님이라 단언하고 싶어했다. 즉 일신교는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빌헬름 슈미트는 1931년 <종교의 기원과 발전;사실과 이론>에서 인류시초에는 원시적 최고신개념이 있었는데 이 유일신 신앙이 퇴폐하여 다신적으로 되었다는 가설이다. 슈미트는 종교가 종교가 아닌 저급한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환원주의적 입장자체가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종교학계는 종교의 기원을 찾으려는 추구는 포기되었고 객관적 연구가 가능한 종교현상자체를 학문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3)에반스 프리챠드(1902-1973)
영국의 인류학자로서 레드클리프-브라운의 영향을 받았다. 말리놉스키의 기능주의적 분석에 비해 사회구조에 역점을 두고 사회현상과 문화현상들 상호간의 관계를 분석했다.그의 종교연구는 아프리카 동부의 누어족에 대한 연구와 아프리카 중앙수단과 자이레 국경에 거주하는 아잔이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종교연구가 그 사회와 문화를 나타내는 총체성을 제시할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그사회구조에 대한 지식없이 특정 종교현상을 분석할수 없다고 했다.
그는 종교의 기원은 기원 그자체가 접근 불가능하므로 밝혀질수 없다고 본다.그는 원시종교연구가들은 기원과 발전의 연구로부터 고유의 관계들로 연구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그에게 있어선 문화적 체계로서의 종교가 적절한 종교에 대한 표현이다.즉 기원과 발전의 간심사로부터 복합체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조합된 문화체계로서의 종교에로 관심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가 지나치게 구조기능적 측면을 강조하여 사회구조로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가능한 한 포괄적으로 종교를 제시하고자 했다는 면에서 비교적 종합적인 종교연구방법론을 제시했다고 본다.
4)기어츠(1926- ):문화체계로서의 종교
파슨스의 제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가 클리퍼드 기어츠이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으 고등연구센터와 관계맺고 있는 인류학자로서 종교는 하나의 문화체계라고 봄으로서 종교학에서 유명하다. 그는 이를 1966년 종교에 관한 인류학적 접근방법의 논문 모음집에서 처음 출판한 문화로서의 종교라는 논문에서 요약했다.종교의 통로는 문화이며 문화를 그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문화는)상징 가운데 구현된 의미가 역사적으로 전달되는 형태이며 인간이 그것에 의해 삶에 대한 지식과 삶을 향한 태도를 전달하고 지속시키고 발전시키는 상징적 형태로 표현된 전해내려오는 개념체계이다.”
또 그는 종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종교는 존재에 대한 일반적 질서의 개념을 구성함으로써 강력하고 침투적이며 지속적 분위기와 동기가 독특하게 실제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실성의 영향력으로 그 개념을 표현함으로써 사람들 가운데 그 강력하고 침투적이며 지속적인 분위기와 동기가 확립되도록 작용하는 상징들의 한 체계이다.”
이와같이 종교에 부과된 역할은 역사적으로 전달된 의미형태로서의 문화개념과 어울린다. 두 정의들(종교와 문화)을 결합하면서 그는 “상징은 사람들의 에토스와 그들의 세계관을 종합하는 기능을 한다.”라고 한다. 그는 그전의 인류학적 탐구가 인류학의 오래된 관심을 통해 종교에 접근했다면 그는 종교를 그 자체의 용어로 접근하기를 원했다.
즉 인류학적 이론을 밝히려고 종교의 자원을 끌어모으려는 관점을 갖고 사회나 문화의 작용에 대한 인류학적 설명 중 종교를 포함시키려는 관심을 갖고 종교주제에 몰두하는 대신 그는 그 주제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기를 원했다.즉 그는 종교가 문화의 한 필수 요소로 존재하므로 사회안에서의 종교의 기능적 역할을 밝히고 묘사했다. 그리고 그는 종교를 세계관의 용어로 즉 세계나 실재에 관계한 하나의 방식으로 보았다.
문화적 용어로 표현하면 종교는 유기적 협동체의 한 체계로서 그 자체가 유기적 협동체의 체계인 문화에 속해있다.
기어츠는 종교의 문화적 측면을 강조했다.종교를 문화체계로 보면서 상징들로 이루어진 종교는 인간들에게 강력하고 광범위하며 지속적인 성향과 동기를 형성하고 존재의 일반적 질성에 대한 개념을 만든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 종교는 상징들의 체계로서 가장 큰 기능은 특정 생활방식과 특정 형이상학을 기본적으로 동일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종교연구의 대표적인 예로서 인도네시아의 발리섬 주민이 전승하고 있는 마을극의 분석을 들 수 있다. 그는 이 예에서 종교적이며 추상적인 의미들이 어떻게 극화되고 감정을 어떤 특정방향으로 실체화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극은 랑다라는 여성신과바롱이란 남성신과의 투쟁과정을 극화한 것이다.이 극에서 군중도 극에 참여하는데 그것은 랑다와 바롱의 접전중 부하 마귀들에게서 심리적인 영향을 받아 일종의 몰아지경으로 떨어지는 때이다.
군중은 일상적인세계에서 나와 랑다와 바롱이 살고 있는 특이한 세계에 투사된다.여기서 그들은 그 세계가 실제로 존재함을 체험한다.
의례가 구현하는 종교적 관점에 깔려있는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은 의례자체에 실제로 참여하면서 이루어진다.기어츠는 이런 분석에서 종교는 세계질서를 기술할 뿐 아니라 세계를 형성한다고 한다. 이는 형이상학적 맥락을 뛰어넘어 각자가 경험하는 지적 감정적 윤리적 문제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방식으로 일반적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 발휘된다고 보았다.
5)터너(1920-)
그의 종교연구는 사회적 갈등의 문제와 그 해결책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이런 갈등이 상징화되고 공식화되는 시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시작되었다.그는 종교의례에서 사용되는 상징물들과 그 상징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되는 체계에 분석을 집중시켰다.
그의 상징주의는 생활주기의 위기적 상황에서 갈등을 완화시키는 기제로서 상징물들의 조합과 분류가 어떻게 기여할수 있는지를 잘 제시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내면의 강한 체험등에는 별로 관심을 주지 않아 구조기능주의적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6)레비-스트로스(1908- )
신화에 대한 분석은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에 의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그의 신화분석은 그가 추구하는 인간사고의 심층구조를 밝히려는 목적과 연결되어 신화 속에 나타나는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작용하는 논리에 집중되어 있다.
-요하킴 바하의 종교체험의 특성
<엘리아데>
-엘리아데가 오토의 성스러움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발전시켰으며 이 두 학자의 종교연구에 대한 접근방법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
엘리아데
-엘리아데의 원형이론
-성현의 구조
-(성현의 변증법)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성스러움이라는 종교학적 범주로 설명하라(대표적 학자들의 이론을 설명하면서)
-엘리아데의 시공간의 개념을 통해서 본 성스러움이 현대인에게 무슨 의미인가
-엘리아데의 시간관
-엘리아데의 특징과 문제점
<스미스>
-스미스의 축적적 전통과 신앙
-스미스의 상징론
-인격주의적 종교연구방법
-스미스의 인격적 접근과 그 한계성
<반델레에우>
-종교현상학이란 무엇인가 레에우의 입장에서 논하라
-반델레에우가 제시한 종교현상학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판단중지와 형상직간에 대해 서술하고 그의 종교연구방법에 대하여 오늘의 입장에서 논평하시오
“한 가설이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한다면 그대들의 자료수집은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다. 어떤 가설을 가지고 활동하라 비록 그 가설이 그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 부정되어도 괜찮다. 어떤 가설을 확정하기 위해서나 부정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라.”이것은 종교현상학의 특성을 잘 말해준다.
종교현상학은 체계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종교사와 구별되고,어떤 규범적 성격도 없어서 종교철학이나 신학과 구별된다. 물론 종교현상학은 종교현상의 가치나 진리성에 대한 질문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리와 가치문제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는다.
즉 그들을 괄호속에 넣어버리고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다. 종교현상학은 진리의 문제를 신학이나 종교철학에 일임한다.또 종교현상학은 종교심리학과도 구별된다.
종교현상학은 오로지 종교현상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며 어떤 방식으로 우리들에게 보이는가이다. 현상학은 다만 그 의미만 물어볼 따름이다.따라서 종교현상학은 사실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단순한 사실은 무질서에 불과하다고 보고 사실의 구조에 관심을 둔사 예를 들어 제사란 무엇인가, 주물이란, 신비주의란 무엇인지 묻는다.즉 종교현상학은 현상의 본질,의미를 추구한다.그러기 위해선 현상들 속에서 우리 자신의 정신생활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따라서 느끼고 그 안으로 감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만일 감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현상의 본질속에 침투하지 못하고 언제나 바깥에 서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현상학자는 제사 기도 신화 등 종교현상을 분류하여 이름을 주어야 하며 남의 것을 자기 것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남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기의 지적 편견이나 신학적 입장에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종교현상에 대한 순수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한 현상학적 연구방법을 몇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째는 나타난 현상에 이름을 주는 것으로 각기의 이상적 유형에 따라 제사 기도 신화 등으로 분류하는 일이다.
둘째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그 종교현상을 다시 체험하도록 감정이입을 시도하는 일이다. 셋째는 편견을 배제하기 위해 판단을 중지 내지 보류하는 것으로서 그는 판단중지를 해명하기 위해 에포케라는 용어를 받아들였다. 에포케란 나타나는 현상 그대로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형이상학적 전제나 주관적인 판단이나 가치평가를 괄호안에 넣는 것으로서 이는 하나의 방법적인 기술이라기 보다 실재를 대하는 인간의 전체적인 태도와 그 특성을 가리킨다.
현상학자가 해야할 넷째 작업은 해명이라는 것이다. 해명이란 현상의 전체구조를 파악하여 분명하게 하는 일로서 처음의 작업에서 이름을 붙인 일을 다시 확인하고 심화하는 일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파악된 구체적 현상을 보편적 전체 속에 배치할 수 있게 되어 이상적이고 유형적인 상호연관성을 알게 된다. 이렇게 전체를 파악하는 일을 형상직관이라 부른다.
반델레에우는 종교연구자의 입장에서 신앙을 중심으로 시작되는 신학적 방법과 종교가 가진 인간 현상을 시작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현상학적 방법이 그것이다. 종교현상학자는 자기신앙을 남의 종교를 이해하는 다리로 사용하라고 한다. 신학자는 호교론적 판단을 모류하로 종교현상학에서의 자료의 의미와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성사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종교에 있는 비슷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면 깊은 신학적 이해를 할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이 반델레에우는 훗설의 철학적 현상학을 도입시켜 크리스텐센의 업적을 이론화 했다는 것과 종교학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선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 엘리아데와 요하킴 바흐가 있는데 그들이 지닌 맹점은 신학과 현상학의 구별을 이론화 했으나 실지로 충돌이 있고 일반화에 의해 유형화 시켰으나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20세기 전반기에 유행했던 유형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역사적 종교의 그 근본부터 출발하는 史的 고찰이 심화되고 있다.
<종교현상학>
-종교현상학
-종교연구에 있어 현상학적 접근과 사회학적 접근 사이의 차이점(레에우와 뒤르껭 베버를 중심으로)
-종교현상학이 종교연구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는?
<인류학>
-종교기원설의 다양한 형태들
-뒤르껭이 주장한 종교의 사회기원론을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하고 그에 대해 논평하라
-기어츠의 종교연구방법론
<심리학>
-프로이드의 종교이론
-자기의 종교가 아닌 타종교의 이해란 가능한 것인가
-세속화란 무엇이며 현대종교에 미친 영향(피터버거의 <종교와 사회>)-
-종교현상학 종교사회학적 관점에서
-세속화란 무엇이며 그 종교적 결과
피터버거의 <종교와 사회>중에서
124 세속화란 원래 종교전쟁 직후 영토와 재산이 교회라는 권위조직체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현상을 지칭하기위해서 사용되었다. 이 용어가 로마 교회법에 있어서는 인간의 질서있는 세계에로 복귀를 의미하게 되었다.
버거는 세속화를 사회와 문화의 어떤 영역이 종교적 제도와 상징체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세속화는 근대사회의 보편적 현상으로 볼수 있지만 그렇다고 사회모든 영역에 퍼져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 세속화의 운반기관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서구문명의 밖에서 볼 때 세속화는 서구문명에 의한 것이 되며 서구문명의 내부(시골목사의 견지)에서 보면 세속화는 근대경제과정 즉 산업자본주의의 역학이다.
127그런데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갖는 것은 서구의 종교전통이 어느 정도까지 그 자체 내에 세속화의 씨앗을 배태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130 개신교의 세속화의 힘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세속화의 근원은 고대 이스라엘 종교에서부터 있었다. 즉 세계의 탈마법화는 구약성서에서 시작된다.
132 구약성서는 우주 밖에 서있는 하느님을 가정한다. 우주는 하느님의 창조물로 하느님과 맞서고 있다. 즉 하느님은 철저하게 초월적이며 어떤 자연현상이나 인간현상과 동일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분은 세계의 창조자일뿐 아니라 유일한 하느님이다.
134여기서 초월적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근본적 성서적 양극화가 표현되고 있다.
137이러한 하느님의 초월적 성격과 기독교의 성육신의 개념은 모순된다. 즉 기독교에는 일신교로부터의 기독교적 배교의 본질이 숨어있다는 고전적인 이슬람교의 견해에도 어느 정도의 정당성이 있다.
이러한 기독교의 성육신의 관념이 카톨릭에서는 천사와 성자가 종교적 실재에 자리잡게 되었고 이런 변화는 마리아의 찬미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즉 가톨릭은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천상과 지상간의 존재의 유비를 드러냈고 이는 성서이전의 고대종교의 의태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개신교와 카톨릭의 차이-개신교는 하느님을 철저한 초월자의 자리에 두고 있으나 가톨릭은 천사 마리아 성인들을 통해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보다 가까와졌다.)
그런데 왜 세속화는 근대서구에서 일어났나?
146세속화가 세상사람들에게 미친 것은 종교에 대한 신뢰성의 위기를 통햇이다. 세속화는 실재에 대한 전통적 종교적 규정의 설득력을 광범위하게 붕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53세속화와 다원주의간에 깊은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다. 세속화가 종교적 전통의 탈독점화를 초래했으며 그 결과 다원적 상황을 낳았다고 말할수 있다.
160다원주의적 상황은 세속화와 연결됨으로써 종교를 이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다원화와 세속화의 보편적인 이 두과정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