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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明集 강독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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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明集> 제1권 4, C
20. 물어서 말하기를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귀를 좋아하고 가난하고 천한 것을 싫어하지 않는 이가 없으며, 기쁨과 안락함을 즐기고 수고로움과 권태로움을 꺼리지 않는 이가 없다. 황제(黃帝)는 性(생명)을 양육함에 있어 五肴를 최상으로 삼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밥은 精한 것(깨끗이 쌀을 대낀 것)을 싫어하지 않고 鱠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지금 沙門은 붉은 옷을 몸에 두르고 하루에 한 끼만 먹고 六情을 닫고 스스로 세상을 끊어버리는데 이와 같이 산다면 어떤 즐거움(聊)이 있겠는가?
牟子가 말하기를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이 원하는 바이지만 (올바른 방법인) 道로서 그것을 얻지 않으면 취하지 않아야 하며, 가난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道로서 이를 얻지 아니하면 떠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노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섯가지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고, 다섯가지 소리는 사람의 귀를 어지럽게 하며, 다섯가지 맛은 사람의 입맛을 버려놓는다. 말타고 종횡무진 달리면서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발광케 하고, 얻기 어려운(진귀한) 재물은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을 타락케 한다.성인은 그 배를 위하지 그 눈을 위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이 말이 어찌 빈 말이겠는가?
유하혜(柳下惠)는 三公의 지위를 얻었다 해서 그의 지조를 바꾸지 않았고, 단간목(段干木)은 자신을 위문공(魏文公)의 富와 바꾸지 않았다. 허유(許由), 소부(巢父)는 나무 위에서 살면서 제왕의 궁전보다 안락하다고 스스로 말했다.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지만 문왕(文王), 무왕(武王)보다도 더 배부르다고 스스로 말했다. 이는 모두 각자 자신의 뜻을 이루었기 때문이니 어찌 즐거움이 있지 않다 하겠는가?
21. 물어 말하기를 만일 불경(佛經)이 (그같이) 깊고 신묘하고 화려하다면 그대는 어찌 이 (불경)를 조정(朝廷)에서 담론(談論)하지 않고, 이를 군부(君父)와 논하지도 않으며 규문(閨門)에서 이를 닦지도 않고, 이를 갖고 친구와 교류하지 않는가? 어찌 다시 (유교의) 경전(經傳)을 배우고 제자(諸子)를 읽는가?
牟子가 말하기를 “그대는 아직 그 근본에 도달치 못해서 그것을 묻고 있다.” 무릇 (祭禮에 사용하는) 조두(俎豆)를 루문(壘門)에 배치하고 (戰陣에 사용하는) 旗를 조당(朝堂)에 세우고 호구(狐裘)를 입고 유빈(蕤賓)에 대처하고 칡베옷을 입고 황종(黃鐘)의 추위에 대처한다는 것은 화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처해야 할 곳에서 벗어나고 그 시기(계절)에서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공자의 (도덕의) 術을 몸에 익히고 (法家의) 상앙(商鞅)의 門에 (제자로) 들어가며 맹자의 말씀에 제휴하는 것이니,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의 정원을 방문하면 그 功은 조금도 없고 그 過는 장척(丈尺)만큼 있게 된다.
노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상사(上士)는 도를 듣고 노력해서 이를 행하며, 중사(中士)는 도를 듣고 기억하는 듯도 하고 망각하는 듯한 (반신반의한) 태도를 취하며, 하사(下士)는 도를 들으면 큰 소리로 웃는다.” 나는 크게 웃는 것을 두려워하므로 (불교에 대해서) 논의하지 않는 것이다. 목마르면 반드시 江河의 물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물이나 샘의 물을 마시니 어찌 배부른 바가 없으리오. 때문에 경전을 다시 읽는 것뿐이다.
22. 물어 말하기를 漢地(중국)에서 시작해서 불도(佛道)에 관해 들은 것은 어디서 좇아 나온 것인가 (어떤 緣由에 의한 것인가)?
牟子가 말하기를 “ 옛날 효명황제(孝明皇帝) 꿈에 신인(神人)을 보았는데 몸에는 태양빛이 있고, 날아서 궁전 앞에 왔으므로 (왕은) 이를 흔연히 기뻐했다. 날이 밝아 널리 군신(君臣)에게 그것이 무슨 神인가 하고 물었다. 박식한 학자는 말하기를 “신하가 듣기로는 천축(天竺)에 득도(得道)한 자가 있는데 이를 佛이라 합니다.”
86, c
296014 최 현 민
무엇을 일컬어 도둑질이라고 하는가? 무릇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취하는 것 및 관직에 나아가서 청렴하지 않는 것, 이 모두를 일컬어 도둑질이라고 한다. 무엇을 일컬어 음탕하다고 하는가? 일체 모든 집착, 보통 이를 음탕하다고 한다. 이에 색욕을 시행하는 것은 정식 배우자가 아니면 모두 범해선 안되는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 도둑질을 하면 공적인 것은 아니어도 역시 아울러 도둑질한 죄가 된다. 소위 질투하는 것은 투기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착함을 보고, 사람이 덕이 있음을 본다면 모두 마땅히 이에 대하여 기뻐해야 할 것이지 경쟁하는 마음이나 증오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소위 성내는 것은 마음에 분노와 원한을 품고 마음 속에 응어리(結)을 품은 것이다. 소위 어리석다는 것은 大法(佛法)을 믿지 않고 經道(경전의 길)에 어두워 의혹을 갖는 것이다. 무엇을 일컬어 망언이라고 하는가?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거짓으로 날조하여 끝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일컬어 綺語라고 하는가? 문장은 기교부린 말로 꾸며 화려하나 내용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兩舌이라 하는가? 뒤돌아서서는 다른 말을 하고 이것에 대해서 저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을 惡口라고 하는가? 욕설을 퍼부으며 꾸짖는 것을 말한다. 혹자는 말하기를 입으로 선하지 않은 일을 말하고 남으로 하여금 이를 잇게 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것도 역시 惡口가 된다.
무릇 이 10가지 일, 모두에 조금도 心念을 일으켜선 안된다. 이것을 10善이라고 하며, 또 10戒라고도 한다. 5계는 몸을 단속하는 것이고, 10善은 마음을 막는 것이다. 일에는 엉글고 빽빽함이 있기 때문에 報應에는 輕重의 차이가 있다. 무릇 有方의 경계에 있는 것은 총칭해서 三界라고 말한다. 삼계 안에는 무릇 五道가 있다. 一은 天이요, 二는 人이요, 三은 축생이요 四는 아귀요 五는 지옥이라고 한다. 온전히 오계를 지키면 그런 즉 사람으로서의 相이 갖추어지고, 十善을 행한 즉 천당에 태어난다. 一戒를 온전히 해도 그런 즉 또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높고 낮음이 있고 혹은 장수하고 요절함이 같지 않다.
모두 계로 말미암아 많고 적음이 있다. 十善의 반대는 이를 일컬어 十惡이라고 한다. 십악을 범한 즉 지옥에 들어간다. 대항하여 강하게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毒心을 마음 안에 품고, 사적인 것을 구하고 남을 속이면 그런 즉 혹자는 축생에 떨어지고 뱀이나 살무사로 태어난다. 인색하고 욕심이 많으며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챙기고 항상 부족을 걱정하면 그런 즉 아귀에 떨어진다.
그 죄가 조금 가볍고 작다고 해도 감추인 것이 많고 사적인 情이 공정하거나 밝지 않으면 모두 귀신으로 떨어진다. 비록 적은 복은 받을지라도 고통을 면할 수 없다. 이것을 三塗라고 하며 또 三惡道라고도 한다. 色, 痛痒, 思想, 生死, 識 이를 일컬어 五陰이라고 한다. 무릇 일체의 사물이 形이 있고 볼 수 있는 것은 色이라고 한다. 이를 잃어서 근심하고 괴로와하게 된 것을 고통(痛)이라고 한다. 이를 얻으면 그런 즉 기뻐하는 것을 痒이라고 한다. 미래의 것을 미리 생각하는 것을 思라고 하며 과거의 것을 추억하는 것을 想이라고 한다.
心念이 일기 시작하면 生이 되고 想이 지나서 의식이 소멸하게 되면 死가 된다. 일찌기 마음에 關하고 거두워들여서 잊지 않으면 識이 된다. 識이란 歷을 지나고 劫이 누적되고 이를 마음에 품어서 싹이 생긴다. 비록 그것이 유래한 곳은 어둡지만 (유래를 밝히지는 못하지만) 마음 밑바닥에 뿌리가 남아서 몰래 결실이 되어 처음에는 豪釐만큼 적은 것으로부터 끝에 가서는 연못이나 산을 이루게 된다.
초기중국불교의 인간이해
필자는 한위시대 중국인들이 영혼불멸과 인과응보를 당시에 들어온 불교사상의 핵심적 기르침으로 파악했다고 본다. 이러한 불교사상은 중국의 전통사상을 기반으로 한 신멸론과 정면대립된 것이었다. 신멸론의 내용은 크게 사후의 일은 문제 삼지 않는 유가 전통의 입장과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단지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자연적 변화로 보는 도가적 자연주의의 입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멸론을 주장하는 이들(범진, 하승천)은 形과 神은 서로 다른 계통을 가진 다른 존재가 아니라, 한 존재의 두 측면일 뿐이라는 氣一元論에 바탕하여 신멸론을 폈다. 이에 반해 신불멸론은 形神二元的 인간관, 즉 형체와 혼신 사이에 단지 氣의 정미함과 거침만으로는 말할 수 없는 근원적인 차별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는 신불멸론을 통한 새로운 인간관의 출현을 중국불교 내부적인 요인과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본다. 먼저 내부적인 원인으로는 불교의 무아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든다. 본래 불교의 무아론은 인도 브라흐만교의 아트만설과 이에 반대하는 자유사상가들의 단멸론적 인간관 사이에서 나온 中道적 이론인데, 중국에는 단멸론적 인간관 밖에 없었으므로 이 전통적인 단멸론적 인간관을 부정하는 입장이었던 중국의 불교도들은 윤회하는 존재로서 불경에 나타나는 인간을 당연히 상주하는 자아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이해의 바탕을 초기 한역경전에서 찾고 있다. 즉 초기 한역경전에 나타난 무아에 대한 설명은 물질적인 요소와 정신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五蘊의 무아가 아니라, 오직 물질적인 요소인 四大만의 무아를 말하여 非身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초기 한역경전의 영향 아래에서 당시의 중국불교인들은 무아를 비신으로만 이해하여 무상한 육체와는 다른 영원한 정신적인 자아의 존재를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초기 한역경전에 보이는 무아에 대한 잘못된 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중국불교도들의 이해는 필연적으로 신불멸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 요인 이외에 외적요인으로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하였던 후한의 멸망은 유교적 가치체계의 지배력 상실을 초래하였으며, 중국문화의 중심부였던 낙양이 이민족에 의하여 함락된 이후 중국인들은 중화의식의 붕괴를 실감하였으며 이미 힘을 상실한 것으로 나타난 기존의 사상이 아닌 새로운 사상에서 힘을 얻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사대부들은 불교사상 특히 윤회응보사상에서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 외적요인을 말미암아 중국의 불교도들은 기존의 일회적이고 현세적이며 운명 또는 천명의 지배를 받는 인간관을 대치하는 새로운 인간관 즉 영원히 존재하면서 자신이 지은 업보에 따라 윤회하는 인간관을 제시하였으며 신멸불멸논쟁을 통하여 이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신불멸론의 인간관은 윤리관과 구원관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즉 유교의 현세적 인간관에서는 인간이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개인이 현세에 남기고 가는 자손이라는 집단을 통한 과보를 설정해 놓았다. 그러나 혼신의 불멸을 주장하는 불교에서는 인간이 윤리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개인의 지속적인 존재를 근거로 하여 설명함으로써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주의적인 윤리관에서 영원한 존재로서의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주의적인 윤리관으로 바꾸어 놓았다.
또한 윤회의 주체를 인정한 중국초기불교는 열반에 대해서도 인도불교와는 다른 해석을 했다. 인도불교에서는 열반이 다만 ‘모든 번뇌의 소멸’과 같은 표현을 하였을 뿐 그 이후의 주체가 남아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명도 하지 않았으나 중국초기불교에서는 열반에 이른다는 것을 불멸하는 혼신이 독존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즉 혼신은 윤회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윤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형이상학적 근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개별적인 혼신이 가지는 개별성을 어떻게 보편적인 것으로 바꿀 것인가 하는 것이 신불멸의 인간관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종병은 혼신을 법신과 동일한 것을 규정함으로써 그 단초를 열어보였으며, 이는 후에 불성, 여래장사상을 통해 중국불교가 형이상학적인 실재를 상정하는 입장을 강하게 유지하게 된 원인으로도 작용하게 된 것이다.
비록 신불멸론이 붓다가 주장했던 무아설과는 동떨어진 사상이었지만, 타문화의 사상을 기존의 사유체계 안에서 재해석해 보려는 시도는 후에 독창적인 중국불교를 형성하게 된 발판이 되었다고 본다.
신불멸사상 자체가 본래의 붓다사상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신불멸사상을 통해 기로써 모든 존재를 설명하려는 일원론적 사유체제에서, 기와는 다른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형이상학적 실재를 규정함으로 중국의 전통적 사유체계를 벗어나게 되었다. (필자는 신불멸론이 주장하는 형신이원론 인간관이 인도 상키야 학파의 푸루샤와 프라크르티 이원론과 유사하다고 본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신멸론은 일회적이고 현세적인 인간관인데 반해, 신불멸론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정하고 있다. 그럼 왜 중국 초기불도들은 붓다의 무아설을 영원불멸설로 받아들였는가?
필자는 그 이유를 중국은 인도와는 달리 아트만론이 없었고, 단멸론적 인간관만 존재했으므로 불교의 중도적 인간관을 끌어내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단멸론적 인간관을 부정하는 신불멸론을 주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무아를 非神으로만 이해하여 무상한 육체와는 다른 영원한 정신적인 자아의 존재를 분명히 하였던 것이다. 혼신과 신체를 엄격히 다른 두 존재로서 구별하여 혼신은 영원하지만, 신체는 무상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이것이 당시의 무아에 대한 이해였다고 필자는 설명한다. 초기 한역경전에 보이는 무아에 대한 잘못된 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중국불교도들의 이해는 필연적으로 신불멸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존의 유교적인 세계관과 가치체계만으로 충분했던 시대에는 불교라는 새로운 사상이 별 의미를 갖지 못했지만, 이민족과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중화의식의 붕괴를 경험하면서부터 이 새로운 사상에서 힘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내적, 외적인 요인으로 말미암아 중국의 불교도들은 기존의 일회적이고 현세적이며, 운명 또는 천명의 지배를 받는 인간관을 대치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관, 즉 영원히 존재하면서 자신이 지은 업보에 따라 윤회하는 인간관을 제시하였으며, 신멸불멸론쟁을 통해 이를 더욱 공고히 하였던 것이다.
(신불멸론에 대한 종교학적 해석)
먼저 불교라는 사상을 접한 당시 중국의 사상체계는 어떠했는가? 필자는 유교라는 사상이 붕괴되어가면서 가치관의 전환이 있었음을 들고 있다. 이런 붕괴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거기에 불교라는 씨앗을 심고자 했으니 중국의 본래토양을 구성하고 있던 여러 사상체계 가치관 간의 마찰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인도불교사상과는 본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는 신불멸론이 중국에 등장하게 된 이유이다.
신불멸론은 현세중심이고 내세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한 중국 사유체제가 윤회, 해탈이라는 내세간을 가진 이방사유체제인 불교를 접하면서 양자 사이의 사유체계의 교류 안에서 발생한 문제제기이며 불교가 중국에 정착하기 위해서 거쳐야만 했던 과도기적 사유체계의 과정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본시 불교내에 윤회해탈은 인도라는 사상체계내에서 파생된 사유체계였고 거기서 자연스럽게 붓다는 윤회사상을 도입하여 무아설을 펼쳤지만 중국의 실체론적 사유에서는 붓다의 무아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 중국인들의 실체론과 불교내의 윤회사상이 만나면서 결국 윤회의 주체인 혼신을 상정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불교본래의 사상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발상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불교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신불멸론 자체가 붓다가 거부한 바로 그 아트만인데 그것을 다시 불교교리로 해석한 것은 중국의 사유적 뿌리가 실체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불멸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불멸보다는 전통적인 사상(예기나 장자 등)의 권위를 빌려서 이를 증명하고자 했다. 필자는 그 이유를 불경만을 의지함으로써 발생하는 고립성과 순환성을 탈피하면서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또한 신불멸론자들은 자연의 법칙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다. 즉 자연의 이치를 윤회와 인과응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유불도3교의 만남)
혜원은 사문불경왕자론에서“形盡神不滅”로 신멸설을 반대, 그는 형체와 신은 둘이라고 보고 정신을 법신이라 보고 법신은 항상 존재한다고 봄. 그는 <文子>를 인용하여 육체는 흩어지지만 영혼은 흩어지지 않느다. 영혼의 윤회는 한조각나무로부터 다른 나무롤 불이 옭겨가는 것과 같다. 나무는 다르나 불은 같듯이 육체는 다르나 영혼은 같다.
(신멸론)
1.羅含의 재생론은 천지가 정돈되어 있음은 만물이 聚散隱現하여 순환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순환하고 거듭 생겨나는 이치에 의해 영혼이 존속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노장의 자연주의설과 불교의 업보설을 바탕으로 영혼불멸설을 주장
(지나불교와 유교도교 65쪽)재생론은 천지만물의 자연순환, 人神質의 자연의 이합 위에 영혼불멸을 인식 “만물은 有數이고 천지는 무궁하다. 만물이 재생하지 않으면 천지에 끝이 온다. 재생한다는 것은 천지가 끝이 아님을 밝히는 것이다.
2.사문 慧琳이 <白黑論>을 써서 유교(白學)과 불교(黑學)을 나눠 우열을 비교, 불교를 비방하고 何承天이 <達性論>으로 불교를 비방하자 종병은 이에 대항하여 <明佛論>을 지었다. 홍명집 3장의 백흑론에 의하면 영혼은 공이므로 존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헤림은 불교는 본래 본무를 설하는데 이의가 있지 업과 윤회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교의 본무는 노장의 無와 같은 사상이므로 불교는 필요없다. 즉 혜림은 본무를 불교의 중심사상으로 보고 이를 노장의 무와 같은 사상이므로 불교는 필요없다고 주장, 즉 혜림은 본무를 불교의 중심사상으로 보고 이를 노장의 무와 같다고 봄, 이에 반해 종병은 윤회를 불교의 중심사상으로 봄, 이에 종병은 영혼은 음양과 같은 것으로 만물 속에 있는 현묘한 것이므로 불멸한다고 한다. (육체는 거친 것이나 영혼은 불멸) 사람은 성불하도록 예정되어 있는데 그 원인은 신이 불멸하기 때문이다.
3.이에 홍명집 4권의 달성론에서 하승천은 영육은 장작과 불처럼 서로 의존하여 장작이 없으면 불도 없다고 반박했다. 생사는 자연현상이므로 정신과 육체는 동시에 생멸한다. 즉 4계절의 바뀜과 같이 영혼존속을 부정했다. 이에 종병은 불은 장작에서 나오나 영혼은 육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영혼의 극치는 육체를 떠나 독존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4.范縝의 신멸론은 ‘形神相卽論’이다 즉 정신과 신체는 불이일체라고 하는 사고방식으로 일관된 우물론적인 일원론이다. 육체는 영혼(정신)의 質이고 영혼(정신)은 육체의 用으로 보고 신체를 칼에 정신을 그 날카로움에 비유했다. 날카로움이 없으면 칼이 없고 칼이 없으면 날카로움이 없다. 정신이 곧 몸이고 몸이 곧 정신이므로 몸이 존재하면 정신이 있고 몸이 없어지면 정신도 사라진다고 함으로써 신멸론을 주장. 이에 沈約, 숙침(難신멸론), 조사문이 범진에게 반박했다. 소침은 칼날이 무디게 되면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것이지만 칼은 여전히 있다.신형합용론 (중국불교사상사 44)
종병은 여산의 법신감응사상을 이어서 神明 獨照의 법신을 강조
그는 정신이 불멸함을 인간의 지성과 능력의 차이로 알수 있다고 본다.
즉 정신은 불멸하기 때문에 숙연의 작용으로 과보를 받아 성불이 가능하다는 것 (성불론, 불신론) 사람은 성불하도록 예정되어 있는데 그 원인은 신이 불멸하기 때문, 인간이 수행을 통해 부처됨은 정신이 형체를 떠나 독존의 상태에 도달함을 의미 즉 정신이 극에 달하면 형체를 초월하여 홀로 존재 法身常主. (이는 상키야철학의 푸루나의 獨住와 유사)(중국불교사상사 39쪽참조)
4.정도자의 신불멸론: 形神구별, 神主形從, 神-理-形의 순서로 형과 신을 구별,
*신불멸론은 중국적 사유에 의존하여 신을 윤회의 주체로 보려는 경향이 있으나 신 자체의 공성이나 연기성을 추구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불교는 본래 단견(일체소멸)과 상견(영구불멸)을 모두 부정하는데 당시엔 업과 윤회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신불멸론의 상견적 뉘앙스를 풍긴다.
(논쟁의 문제점) 신을 일단 정신이라 번역했지만 이 말 자체가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인지 충분히 반론을 제기한 논쟁이 되지 못했다. 신불멸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데체로 신 관념의 동요와 막연성, 중국고전의 인용에 의해서 상징되는 중국적 사유에 대한 의존, 신을 인과응보적인 입장에 한정해서 파악하려는 입장이 두드러지지만 신 그 자체의 공성이나 연기성을 추구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여산혜원의 신불멸론이 가장 본질에 접근해 있다.
사에 있어서 일체의 소멸을 설하는 斷見과 함께 신체적인 정신으 영구불멸을 설하는 常見까지도 부정하는 것이 본래의 불교이다. 이와 같이 중국에서는 업과 윤회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常見의 뉘앙스를 풍기는 신불멸의 견해가 정통적인 불교사상이라고 인정되어 온 것이다. 여기서 중국불교사상의 하나의 특질을 엿볼 수 있다.
신불멸론은 바로 무아설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고 할 때 왜 중국에서는 불교의 무아론은 신불멸론을 이해하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중국인들은 붓다가 설한 무아설과는 동떨어진 아니 정반대설인 영혼불멸을 주장하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자체부터 다시 의문을 가져야 한다. 붓다의 무아설이 자아가 없다는 의미였나? 이에 반해 영혼불멸은 자아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인가? 신불멸론을 검토하면서 불교분래의 무아개념에 대해서 다시금 검토해 볼 기회가 되었다. ‘무아라는 개념’이 지닐 수 있는 오해 즉 我가 없다는 단순논리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에서 이를 非我로 이해함으로써
또한 무아개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공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공이 지닌 부정의 논리를 이해하기에 중국사유체계 자체가 실체가 중심이었으므로 신불멸론과 같은 과도기적 사유체계가 필요했었는지 모른다.
무아설 자체내에 영혼 불멸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는가? 왜 중국은 무아설에서 신불멸론 사상을 끌어냈는가? 그들의 무아설 이해의 오류는 어디서 온 것인가? 경전번역상의 문제, 중극인들에게 없던 무아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온 과도기적 사상,
(중국불교학강의)
원시불교에서는 보응의 주체가 되는 것이 십이연기 가운데의 識이라고 했다. 식을 번역할 때에 이와 유사한 神을 빌려서 나타내었다. 이러한 개념이 중국에서 魂 靈 정신의 개념과 혼용하였다. 234
당시 번역된 경전 중 윤회사상의 완전하게 소개한 것이 삼국시대의 지겸이 번역한 법구경인데 이 번역본 뒤에 <생사품>이 증가되었다.
인도불교는 무아를 주장했으나 독자부는 유아를 주장했다. 즉 일반적으로 我와 윤회의 주체가 구별이 되며 윤회의 주체는 識이지 我가 아니라는 것이다. 我는 정신과 육체를 초월한 별도의 것으로 인도철학에서는 푸루사나 아트만이라 하고 佛家에서는 푸드갈라라고 한다. 독자부 계통에서는 푸드갈라가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는 假有가 아니라 勝義라는 것이다. 승가제바가 여산에서 독자부의 저술을 완역했을 때 혜원은 이것을 대승학설로 알고 널리 선양하였다.
혜원은 사문불경왕자론의 마지막에서 육체는 없어져도 정신은 불멸한다고 하여 정신이 궁극에 도달하면 신령스럽고 미묘하게 되며 육신과 신은 함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즉 형체와신은 둘이라고 간주한 것이다.이와 같이 신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상이 독자부의 有我사상이다.
*<모자이혹론>
세간에서는 <예기>의 말을 인용. 이는 불멸하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정한 것이다. 몸은 오곡의 뿌리나 잎사귀와 같고 영혼은 오곡의 씨앗과 같다. 뿌리나 잎은 생하여서는 반드시 죽어간다. 그러나 종자는 끝남이 없다. 정신의 불멸을 불이 장작이 옮겨지는 것으로 비유
불이 다른 장작에 옮겨지는 것은 神이 다른 몸에 옮겨지는 것과 같다. 장작은 다른 것이어도 불은 같은 것이듯이 육체는 사라져도 정신은 남아 다른 몸으로 옮겨간다고 설명
또한 <효경>에서 종묘제사를 중시해야 한다고 설하면서 주공은 귀신을 잘섬겼다고 하여 이것이 불경에서 설하는 생사관과 비슷한 것이라 하여 융합을 꾀하였다. 즉 모자는 불교의 업보설에서 출발하여 불경을 통해 신불멸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중국전통사상과 관습을 통해 이를 입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윤회설이 분명히 변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본래 인도불교에서는 자신이 한 행위에 따르는 과보가 주어진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 과보를 받는 영원불변의 본체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혹론의 저자는 불멸의 영혼을 내세워 그것이 행복을 누리거나 재앙을 만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도자의 신불멸론>
비록 형과 신이 서로 돕지만(相資) 그 근원은 다르다. -
정도자는 태극은 형이하학의 기이며 神明은 太極이상의 형이상적인 실재이다. 신은 형을 기다리지 않고 본래부터 있는 것이다. 고로 형이 없어져도 신이 다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신은 형이 생겨나면 반드시 거기에 거하여 자연히 조감의 用을 작용하니 양자의 관계는 相卽인 것이다. 신을 근본으로 하고 형을 이에 속하는 것으로 해서 그 근원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神本形末設이다.
(경전번역문제)중국불교학강의
인도인의 사유방식과 중국인의 사유방식이 일치하지는 않는데 이러한 사상의 차이는 문자의 표현에 영향을 미치며 문자의 표현은 사유방식의 수용에 영향을 미친다.
(독자계 有我사상의 영향)
독자부에서는 유아와 부처님이 말씀하신 無我가 결코 상충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한 勝義我는 不可說法類에 속하기 때문이다.<<삼법도론>>에서는 인아와 오온의 관계는 설할 수 없는 것이나 인아가 있음을 정확히 이해하여야 하며 이해하지 못할 때는 무지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독자부에서 승의아가 있다는 주장이다.
삼법도론의 勝義人我주장이 번역되자 당시의 학계는 커다란 영향ㅇ르 받았다. 이 때문에 유아론이 우세한 지위를 차지하였고 윤회 인과응보 등이 크게 유포되었다. 124
혜원은 법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근본사상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여 열반의 내용에 대한 견해를 통해 이러한 정신을 관철시켰다. 아울러 形神의 관계로써 열반을 설명하면서 ‘형체가 다하여도 정신은 존재한다’고 하였다.
혜원은 생사윤회의 주체가 되는 人我를 긍정했다는 말이다. 인아가생사의 속박을 받기 때문에 정이 일러나면 번뇌를 제거하고 생사를 끊어야만 열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사를 끊어 윤회를 벗어나야 정신이 사물의 속박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정신의 영원한 존재 열반의 불멸성을 긍정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과 삼법도론의 승의 인아 등을 긍정한 내용은 완전히 상통한다. 133
(중국불교사)

